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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6. 26. 09:50




 몇 년째 다니고 있는 상수동의 헤어샵에는 곰청년이 산다. 곰청년은 주로 카운터를 지키거나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쓸고, 샵으로 걸려오는 전화를 처리한다. 펌은 일년에 두어 번, 컷트는 거의 한 달에 한 번 하니 나는 매달 곰청년에게 전화를 거는 셈이다. 덩치가 꽤 커서 혼자 곰청년이라고 별명을 붙였다. 홍대 앞 인디밴드에서 조용한 드러머를 하고 있을 것만 같은 인상의 20대 청년으로 커다란 뿔테에 과묵한 인상이다. 


 머리를 하는 짧지 않은 시간동안 곰청년이 거울에 자주 보인다. 내가 주로 앉는 자리 뒷쪽으로 곰청년의 데스크가 있어, 앉아 있으면 자연스레 곰청년을 관찰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손님들의 예약전화가 없고 쓸어낼 머리카락들도 없을 때 곰청년은 주로 창 밖을 바라본다. 헤어샵의 한쪽 벽면은 전면 유리로 트여있어 상수동 거리가 훤히 보인다. 곰청년은 작은 데스크에 큰 덩치를 구기고 조용히 앉아서 하염없이 창 밖을 구경하곤 한다. 밖으로 나가고 싶지만 나갈 수 없는 우리 속의 곰처럼 말이다. 나는 그런 곰청년을 거울 너머로 가끔 살펴보며 곰청년의 머릿속에는 무슨 생각이 오가는지 항상 궁금해하며 컷트나 퍼머를 한다. 잘은 모르지만 헤어샵을 나가고 싶어하는 것만은 분명했다. 창 밖으로 완전히 돌아간 몸의 방향, 언제나 밖을 바라보는 시선은 분명히 먼 곳으로 떠나고 싶어하는 사람의 몸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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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곰청년이 사라진 건 얼마 전이었다. 오랜만에 머리를 자르러 갔더니 카운터가 비어 있었다. 디자이너 선생님들이 번갈아가며 전화예약을 받고 카운터를 챙겼다. 사람 한 명이 줄었다고 가게가 공연히 분주했다. 카운터 보시던 직원분은 어디 가셨나봐요, 하고 묻자 디자이너 선생님이 답한다. 아, 그만뒀어요. 다른 일 하고싶다고.  나는 내심 기뻤다. 곰청년이 드디어 헤어샵을 탈주한건가! 좁고 작은 헤어샵의 데스크가 아닌 넓은 어떤 곳에서, 몸을 구겨넣지 않고도 즐겁게 일할 수 있기를 바랬다. 인상처럼 어디선가 시원하게 드럼을 치고 있어도 좋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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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2주 전, 다시 찾은 헤어샵에서 곰청년을 다시 만났다. 그는 여전히 데스크에 몸을 구겨넣은 채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어색하게 건넨 인사에 곰청년은 힘 없는 인사로 답했다. 머리를 자르며 넌지시 물었다. 데스크 보시는 분 다시 돌아오셨네요. 디자이너 선생님은 말 없이 웃기만 했다. 


 헤어샵의 곰청년은 오늘도 창 밖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비가 시원하게 내리는 날이면 더 열심히, 간절하게 창 밖을 바라볼 것이다. 창 밖을 간절히 쳐다보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일이 없기라도 한 것처럼. 그러다 잠깐 졸음에 들면, 곰처럼 크게 기지개를 켜며 거리로 나서는 꿈을 꿀지도 모른다. 다음 달에 머리를 자르러 가면 과연 그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까. 부디 언젠가 곰청년이 그에게 잘 맞는, 아주 넓고 탁 트인 곳을 찾아 떠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