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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0. 10. 12:39

 

 

 길고양이를 만나면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움츠린다.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서다. 고양이는 내게 언제나 낯설고 두려운 생명체였다. 빤히 쳐다보는 눈동자와 조심스럽고 의뭉스러워보이는 걸음걸이, 앞에 있는 사람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고양이과 특유의 새침함까지 왠지 불편했다. 흔히들 하는 질문으로 고양이냐 개냐, 하면 나는 당연히 개라고 대답해왔다. 속이 보이는 것 같고 알 것 같은 개, 맹목적으로 사람을 좋아하는 개가 좋았다. 길을 가다 만나는 강아지들도 반가웠고 남의 개들도 다 귀여웠다. 오랫동안 그게 내 성향이라고 생각했다. 고양이는 좋아하지 않고 개는 좋아하는 성향이라고. 

 그 믿음이 깨진 건 쌩뚱맞게도 얼마 전 읽은 책 때문이었다. 미국계 유대인 가족의 삶을 다룬 2부작 속에서 나는 도통 흥미를 느낄 수가 없었다. 유대인 작가가 쓴 소설이었다. 이야기 자체가 재미없는 건 아니었다. 잘 엮인 서사와 메시지에 유려한 문장 사이사이 적절한 위트까지 섞여 있어 소설로는 완벽했다. 그런데 대체 왜 재미가 없었을까. 책을 덮고 한참이 지나서야 불현듯 깨달았다. 내게는 아는 유대인이 한 명도 없다. 꼭 '가까이 지내는' 사이로 아는 게 아니더라도, 건너 건너 알거나 어렴풋이 의식하고 지내는 그런 유대인이 한 사람도 없었다(우디 알랜이나 조지소로스를 안다고 할 수는 없으니...). 소설에서처럼 어느날 이스라엘에 거대한 위협에 놓여 전 세계의 유대인을 본국으로 호출한다고 해도 나는 여전히 그 이슈에 대해 잘 모르고 심지어 듣고 싶지 않아할지도 모른다. 아는 유대인이 없으니까. 흠 잡을 데 없이 빼어난 이 소설이 내게는 너무나 먼 이야기처럼 들렸던 건, 소설의 탓도 무엇도 아니라 그냥 내가 그 삶에 대해 너무 몰라서였다. 

 '아는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된 다음부터 떠올려보게 됐다. 내게는 아는 고양이가 있나? 없다. 친하게 지내는 고양이라곤 한 마리도 없었고 이름을 부르는 친구네 집의 고양이조차 없다. 아는 강아지는 있나? 너무 많다. 15년 전 친구가 키우던 강아지의 죽음까지 기억한다. 그렇다면 다른 종, 다른 존재에 대해서는 어떤가. 이름을 부르고 안아줄 수 있는 아는 아기가 생기기 전까진 빽빽 울어대고 소리를 질러대는 아기라는 존재를 좋아했던가? 아니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다. 고양이와 강아지, 아기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대부분의 세상을 그렇게 판단해왔다. 알면 친숙해지고 익숙함은 곧 호감이 된다. 모르면 좋아하지 않게 된다. 낯선 건 싫어하게 된다. 내게 친숙한 것, 봤던 이야기, 알 것 같은 구조가 한 군데라도 있어야 호감을 느낀다. 취향이나 성향과는 크게 상관없는 아주 단순하고 편협한 상관관계였다.

 아주 재밌었지만 동시에 재미없었던 미국계 유대인 가족의 이야기를 읽고 난 뒤 길고양이를 보면 잠깐 멈춘다. 나는 저 고양이와 아는 사이가 될 수 있을까? 알게 되면 나도 고양이를 좋아하게 될까? 길을 가다 고양이가 보이면 쭈구리고 앉아 야옹 소리를 내고 손짓을 하며 편의점에 들러 주섬주섬 뭔가를 사오게 될까? 

 그러다 결국 아는 고양이가 한 마리 생기고야 마는 장면을 상상한다. 아 네 이름은 무엇이구나. 이름이 예쁘구나. 이제 우리 알고 지내자. 아는 고양이가 한 마리 생기면, 나는 아마 그 종 전체를 이해하게 될지도 모른다. 알게 되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고 계속 모르는 상태로 지내는 건 그 나름대로 참 무시무시한 일이다. 부쩍 쌀쌀해진 거리에서 아직은 모르는 고양이들을 마주칠 때 마다 알게 되는 일에 대해 계속 생각한다. 앞으로 알아가야 할, 아직은 모르는 수많은 존재들에 대해서도. 

 

 

 

 

 

함보르 | 2019.10.13 10:30 | PERMALINK | EDIT/DEL | REPLY
헉 책 다크포레스트 맞니? 나도 읽으면서 비슷한 생각했업..
남태평양 | 2019.10.14 12:44 신고 | PERMALINK | EDIT/DEL
앗 아니 조너선 사프란 포어 신작이었는데... 하지만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니 왠지 좋구나(?). 한국 방문의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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