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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0. 14. 22:53

 

 4년 전 베트남 여행에서였다. 호이안 구시가지 골목의 소담스럽고 예쁜 찻집에선 이런저런 소품들을 함께 팔고 있었다. 아기자기한 티팟들을 사오고 싶었지만 집에서 차분히 앉아 차를 마시는 일이 거의 없기에, 다른 기념품을 골랐다. 천장에 매달려 있던 푸른색 물고기 모양의 천 인형. 허공에 달린 물고기는 푸른색 새 같기도, 헤엄을 치는 것 같기도 한 모양새였다. 푸른 계열의 질감과 소재가 다른 다섯 가지 천으로 누빔이 되어 있었고 검고 작은 동그란 눈이 예뻤다. 선물하고 싶은 사람이 떠올라 푸른 물고기 인형을 사왔다.

 마법같은 그 공간에서는 허공을 나는 푸른 새 같던 인형이, 집에 돌아오자 왠지 마뜩찮아보였다. 선물하기를 미루고 집에 둔지 오래. 버리자니 아깝고 원래 인형에는 소질이 없는 내가 가지고 있기엔 어중간했다. 이사를 하며 100리터짜리 쓰레기 봉투를 다섯 개 갖다버리던 날, 인형을 두고 잠깐 고민했던 것도 같다. 호이안의 적막하고 고즈넉했던 그 찻집의 분위기가 아까워, 버릴 수는 없었다. 

 인형이 쓰임새를 찾은 건 아기침대에서였다. 신생아 시절, 아기 침대에 휑하게 혼자 누워 있는 아기가 왠지 심심해보여서 친구라도 하라고 옆에 놓았을 뿐이었는데. 그 시절 아기는 손도 발도 제 맘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머리도 가누지 못해, 옆에 무엇이 놓여있는지도 잘 몰랐다. 나도 인형을 굳이 치울 필요가 없으니 그렇게 하루, 이틀, 사흘, 몇 달이 흘렀다. 아기는 아침이면 쑥쑥 자라있는 콩나물이나 상추처럼 부쩍부쩍 컸고, 언젠가부터 자기 옆에 누워 있는 푸른 물고기의 존재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곁에 가보면 물고기와 마주보고 껴안은 채 잠들어 있었다. 몸을 좀 더 컨트롤할 수 있게 되면서는 티가 났다. 아기가 물고기를 몹시 좋아한다는 게. 멀리서도 '물고기!' 한 마디를 들으면 아기는 뒤뚱뒤뚱 바닥을 기어 몹시 빠른 속도로 푸른 물고기에게 다가와 지느러미 부분을 낚아챈다(그리고 입으로 가져간다). 물고기 인형을 손에서 뺏아들기라도 하면 아기는 할 수 있는 모든 소리를 지르며 항의의 의사를 표시한다. 아기가 물고기에게 하는 애정표현이란 온통 물고 빠는 종류의 구강기적 구애행위지만, 물고기를 볼 때의 그 표정은 확실히 사랑에 빠진 표정이 분명하다. 눈이 없어질만큼 환하게 웃으며 물고기를 쳐다보기 때문이다(아 질투나). 

 잠들 때면 물고기의 존재는 더 소중해진다. 분명 잠에 빠진 것 같은데도 두 손으로 허공을 허우적거리며 무언가를 잡고 싶어한다. 그럴 때 아 역시 엄마를 찾는구나, 하고 슬그머니 내 손을 쥐어줬다가 몇 번 패대기침을 당했다. 아기는 엄마나 아빠를 만지고 싶어하는 게 아니라 오로지 그 푸른 물고기, 푸른 물고기를 찾을 뿐이었다. 물고기의 지느러미 부분은 누비천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그 지느러미 부분을 특히 좋아한다(지느러미를 좋아한다니 어감이 이상하지만). 아기의 손에 쏙 들어가는 사이즈의 누비 지느러미. 아기는 자면서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며 잠자리 밖을 벗어나기도 하지만 물고기를 놓치진 않는다. 두 손에 지느러미를 꼭 쥔 채 함께 굴러다닌다. 

 물고기 관리는 나의 몫이다. 침냄새가 풍기는 물고기를 삶아서 햇볕에 일광욕을 시켜준다. 아기가 다른 놀잇감에 정신이 팔려있는 낮시간동안만큼은, 푸른 물고기에게도 자유를 주는 편이다. 아기를 유인해야 할 때는 유용하게 쓰인다. 맘마 먹으러 와야지, 기저기 갈러 와야지, 이야기하는 대신 일광욕중이던 물고기를 손에 쥐고 흔들면 아기는 멀리서도 파바박 기어서 정확히 물고기를 낚아챈다. 너 어디 있었니 보고싶었잖아 하는 표정으로 침을 흘리며 물고기에게 함박웃음을 지어준 뒤 볼을 부비부비한 다음 물고기의 주둥이 부분을 입으로 집어넣는다(일광욕은 소용없어진다...). 

 심심해보이던 아기 침대를 채울 요량으로 굴러다니던 인형을 스윽 집어넣은 지 7개월이 지났다. 아기는 물고기 인형이 없으면 잠에 쉽게 들지 못할 만큼 물고기 인형에 애착이 생겼다. 표정을 보면 애착 정도가 아니라 정말로 사랑에 빠진 것만 같다. 물고기의 푸른색은 삶통에서 몇 번 삶겨나오는동안 많이 옅어져, 이제는 어디를 봐도 낡은 물고기가 되었다. 호이안의 한적하고 우아한 찻집에 풍경처럼 매달려 있던 푸른 물고기의 소담스럽던 자태는 사라진 지 오래다. 물론 아기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예쁜 물고기 인형이겠지만. 

 물고기를 소중하게 어루만지며 잠든 아기를 물끄러미 바라볼 때면, 모든 작은 행동이 어디선가 누구에겐가는 완전히 다른 의미가 될 수 있으리라는 상상을 한다. 7개월 전의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버리지 못한 인형을 그냥 거기에 두었을 뿐인데. 그냥 한 마디를 건넸을 뿐인데. 그냥 안부를 물었을 뿐인데. 그냥 사소한 선물이었을 뿐인데. 누군가는 그로 인해 사랑에 빠지고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결정을 내리고 또 내겐 아무 의미 없는 것들이 누군가에겐 인생의 애착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오늘도 무엇을 그냥 던지기 전에 한번 더 떠올려본다. 호이안의 찻집에서 날아와 이제는 침범벅이 된 푸른 물고기 인형을. 아무것도 아니었다가 무언가가 되어버리는 그 순간을. 

 

 

B | 2019.10.14 23:03 | PERMALINK | EDIT/DEL | REPLY
말귀를 알아듣는다니 신기하다..
아직 난 먼 미래같은데 ㅋㅋ
남태평양 | 2019.10.14 23:22 신고 | PERMALINK | EDIT/DEL
알아듣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저 인형을 너무나 좋아함... 엄마나 아빠보다 더 좋아해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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