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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2. 6. 12:02

 

 

 아기를 돌보다 허리를 다친지 이주가 훌쩍 넘었다. 디스크에 문제가 있으리란 판정을 받곤 휴직생활의 가장 큰 즐거움이던 운동을 중단해야했고, 막 쓰기 시작했던 조금 긴 글은 도입부에서 멈춰버렸다. 초기엔 침상안정을 하느라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 뒹굴거리며 보냈다. 병원에서는 누워서 절대 휴대폰을 하지 말라고 했지만 그건 아이폰과 옴니아가 태동하기 전으로 돌아가야 가능한 일 아닌가... 어쨌든 모로 누워 쓸데없는 신변잡기들을 탐독하며 시간을 펑펑 낭비했다. 

 분통과 심술이 났다. 이 금쪽같은 시간에! 주양육자가 제대로 돌봐주지 못하자 아기는 아기대로 짜증이 늘어났고, 도움의 손길 없이 혼자서 아기를 하루종일 돌봐야 하는 날에는 좀 나아졌다 싶던 통증이 다시 도졌다. 걱정병은 더 심하게 도졌다. 환우카페에 가입해 글을 읽다 오밤중에 혼자 눈물짓기도 여러번(아 이렇게 내 인생이 끝나는건가...). 이제 운동도 글쓰기도 못하고 아기를 안고 매일 하던 산책도 못하는건가? 내년 봄이 오면 에버랜드도 가야하는데? 그 좋아하던 동백꽃 필 무렵도 누워서 봐야했고 무엇보다 책도 제대로 읽을 수 없었다(신기하게 그 와중에 복직해서 일은 어떡하나 걱정은 들지 않았다). 할 수 없는 것들의 목록이 늘어갈수록 짜증이 치밀었다. 몸이 다운되는 속도보다 마음이 다운되는 속도가 곱절로 빨랐다. 

 보름 넘게 희망과 절망의 자맥질을 반복하다 이틀에 한 번꼴로 물리치료와 한의원을 찾았다. 디스크엔 어차피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꽝꽝 얼어버린 근육이나마 풀 수 있는 방법을 찾아헤맸다. 동네 정형외과의 물리치료실에선 2900원에 고주파와 뜨거운 찜질을 제공한다. 처음 물리치료실에 들어갔을 땐 세상에 왜 이렇게 아픈 사람들이 많은지 깜짝 놀랐는데, 알고보니 모두 다 심각하게 아픈 건 아니었다. 한낮의 물리치료실은 일종의 낮잠방이었다. 누구나 아프고 결리는 곳은 한 군데씩 있으니까 잠깐 뜨끈한 침대에 누워서 찜질도 하고 지릿지릿 고주파도 쐬다보면 잠이 스스스 와도 너무 잘 온다. 커튼이 쳐진 침상은 열 개 남짓. 침상 머리맡에선 이십대 초중반의 물리치료사들이 마카롱과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먹으며 겨울 여행지를 검색하느라 들떠있다. 설렘에 들뜬 말소리를 들으며 제각기 허리며 팔목이며 어깨를 지지고 누운 사람들. 그렇게 잠깐 눈을 감고 뜨면 확실히 개운해졌다. 기분이.

 정형외과 물리치료실로 부족하다면 정오가 살짝 지난 오후, 동네 한의원엘 간다. 일단 계단참에서부터 진하게 달인 한약 냄새가 들큰하게 풍겨와 코를 벌름거리게 된다. 가정집처럼 신발을 현관에 벗고 들어가면 뜨뜻한 온돌바닥이 추위에 굳은 발을 덥썩 움켜쥔다. 맨발로 응접실(?)에 올라서면 오래 전 외할머니집에 놀러간 것처럼 오래된 화분들이 줄지어 놓여있다. 소지품 따위는 아무도 챙기지 않는다. 대기실에 뜸이며 부항을 뜨러 들어간 사람들의 가방과 겉옷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그 분위기만으로도 이미 오리엔탈 아줌마의 마음은 무장해제. 침을 맞을 생각은 없었지만 어느새 허리에 침이 꽂혀 있었다(그것도 봉침...).

 봉침을 꽂아넣은 채 뜨거운 적외선을 쬐고 있으려니 옆 칸에 누운 할머니가 자신이 왜 아픈지 설명하는 이야기가 서라운드로 들려온다. 최근에 이사한 집이 4층인데 엘리베이터가 없단다. 그런데도 강아지 두 마리를 안고 매일 산책을 했단다(어쩐지 나와 비슷. 강아지 두마리=9개월 아기 무게). 몸신인가 하는 프로를 보니 물에서 하는 운동치료법이 유명하다는 데 건대병원에서만 있다고, 원장님은 건대병원 가봤느냐고 물어보신다(네 가봤죠 근데 여기선 너무 멀어요). 엘리베이터는 몇 층 건물부터 보통 설치하냐고도 하신다(보통 5층 이상이면 있고 4층 밑은 잘 없더라고요). 김장을 해야해서 배추를 절여놨는데 속은 어떻게 무치냐고 걱정이시다(원장님도 이건 뾰족한 수가 없으신지 고민하신다). 

 내 허리 아픈 것 따위... 하고 숙연해질 때도 있다. "열네 살에 농사 시작했는데 말이 농사지 쌀 80키로짜리를 내가 들고..." 옆 침상에서 넘어오는 회고담을 듣고 있으면 9키로그람도 안되는 아기를 돌보다 허리가 나간 나는 왠지 민망하다. 하지만 뭐든지 저중량 고반복이 엄청난거니까 나도 할 말은 있다. 아무튼 한의원 원장님은 어떤 소재에서도 티키타카를 놓치는 법이 없다. "아이고 그러셨구나 근데 그 시절에 이 키면 동네에서 제일 크셨겠어요" "맞아 내가 79년에 군대를 갔는데 키가 174라고 축구를 엄청 시켰어..." 그리고 넘어가는 축구하다 부상당한 이야기, 정권의 격랑기와 변화를 군대에서 지켜본 이야기(어우 저는요 국민학교 조회시간이었는데 십이륙을 그때 들었잖아요 실시간으로...). 앞과 뒤, 좌우에서 끝도 없이 이어지는 살아온 이야기들을 듣다보면 어느새 초탈하게 된다. 인생사 격랑이지 뭐, 쿠데타와 내란 와중에 군대에서 고생도 하고 키 크다는 이유만으로 축구에 차출됐다가 허리 부상을 입기도 하는거지 뭐. 내 허리가 디스크면 어떠랴 터지지 않았으니 조심조심 살아가면 되겠지. 운동 좀 더 한다고 체력이 갑자기 국가대표 될 것도 아니었고, 당장 쓰고 싶었던 것들 써봤다 한들 필생의 걸작선이 될 것도 아닌데 잊어도 아무렴. 

 그렇게 한 시간 넘게 부항과 봉침, 뜨끈한 핫팩에 등을 기댄 채 한약 달이는 냄새에 푹 절여져 있다 나오면 마음의 결이 어쩐지 좀 달라진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가득한 한의원에서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귀동냥하다보면 누구나 언젠가는 아프게 될 수 밖에 없는, 우리네 운명을 다시 한번 받아들이게 된다. 크게 아프면 그건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해볼 일이지만 작게 아프다면 행복한 일이다. 할 수 있는 것들을 다 하며 도취된 채 한해를 마무리하지 못하고, 시무룩한 채로 물리치료며 부항이며 받으러 다니다가 소침해지고 또 약간은 숙연해진 나처럼. 그런데 이 기죽은 씁쓸함이 나쁘진 않다. 약침과 부항 가운데서 들려오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 어쩐지 자꾸 다시 거리로 나가 힘차게 걷고싶은 마음이 든다. 살다보면 이런 일 저런 일 당연히 생기는 것이고 그때마다 적절히 슬퍼하고 또 적절히 대응하며 살아가면 될 일이라는 걸 다시 되새긴다. 다들 그렇게 살아오며 내 옆 침대에 누워 침도 맞고 사혈도 빼고 있으니까. 

'다만 나쁜 일들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들이 함께 한다는 것,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 벌새의 마지막 대사를 한번 더 떠올린다.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던 마지막 말을 가장 좋아한다. 사라지고 닳아가는 것들 속에서도 작은 아름다움을 발견하길 소망하며 느려진 걸음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하나뿐인 내 물렁뼈들이 가능한 한 오래 버텨주길 바라며, 늘 걸어다니던 게 당연한지도 모르고 걷던 그 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