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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2. 25. 23:13

 

 나도 그랬다. 마지막이나 끝은 막연히 시간과 연관지어 떠올렸다. 선형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들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게 마지막일 거라고 생각해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80여년을 살다가 어떤 이유로 삶을 종료하게 될 거라고. 상상은 언제나 시간의 순서대로 흘러갔다. 더 나이를 먹고, 은퇴하고, 할머니가 되고, 몸의 어딘가가 아프다거나 말을 듣지 않는다거나. 

 묵시록의 삽화같은 거리 풍경이 이어진지 2주 남짓. 처음 우한의 소식을 들었을 때는 아주 먼 곳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한 번도 가본 적 없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중국의 어떤 고장을 상상했다(인구 천만의 대도시일줄은 꿈에도 몰랐다). 상황이 심각해졌다던 1월 중순에도 우한은 여전히 내게 먼 곳이었다. 복직 전 마지막 여행을 다녀오고 옷을 사러 이 곳 저 곳을 다니며 쇼핑했다. 아기와 하루종일 뒹굴거리며 낮잠도 같이 자고 저녁 일찍 잠에 들었다. 평화로운 나날들이었다. 

 2월의 시작과 함께 모든 게 달라졌다. 마치 여고괴담의 복도장면처럼, 어렴풋이 윤곽만 보이나 싶었는데 눈을 깜빡하고 나면 코 앞에 얼굴을 들이민다. 복직 첫 날 손소독제와 알콜솜을 챙겨 회사로 향했다. 방송국엔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었고 나도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매일 다른 사람들과 점심을 먹고 이야기를 나눴다. 서로의 커피잔에 침방울이 섞여드는 줄 모른 채 열을 올려가며 회사 이야기를 했다. 그러는 사이 뭔가 거대한 게 바뀌어가고 있었다. 마지막의 문제는 이제 더 이상, 시간이 아니었다.

 언제를 살아가느냐가 아니라 어디를 살아가느냐가 생사를 결정하기 시작했다. 생사가 아니더라도 생사에 준하는 사회적 죽음과 낙인을 선고받기도 한다. 확진자들의 동선이 공개되고 나면 그 장소는 초토화된다. 과거에 그 장소를 다녀갔던 사람들 뿐 아니라 미래에 그 장소로 올 예정이었던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방금도 휴대폰에는 재난문자 알림이 다녀갔다. "2월 1일 이후 은평성모병원을 출입한 이력이 있는 분들 중 호흡기증상이 있으시면 마스크 착용 후 선별진료소를 방문해주십시오". 이제 모든 것은 장소의 문제로 바뀌었다. 태어났는데 대구였고 옮길 일이 없어 평생 대구에 살았던 사람들은 졸지에 더 절박한 끝을 유사체험한다. 생수가 동나고 마스크 한 장을 사려고 끝없는 줄을 기다리면서. 서울의 대형병원들은 대구 경북 지역의 환자들의 접수를 받지 않기 시작했다. 대형병원마저 뚫리면 끝장이니 이해는 가지만, 그 문구가 언제든 내가 서 있는 여기, 이 곳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왠지 억울하고 답답해진다. 

장소가 때로는 끝을 결정할지도 모른다. 시간의 선형성에만 기대고 있던 내게는 요즘이 작지만 또렷한 충격이다. 동시에, 일종의 무력한 연대감을 느낀다. 언제를 선택할 수 없는 것처럼 어디 역시 선택의 영역 밖이니까. 80년대 후반에 태어나겠다고 결심한 것도 아닌데 태어나서 정신을 차려보니 87년 3월이었던 것처럼, 삶에 주어진 조건들 속에서 몇 가지 조합을 하다보면 '여기'에 살게 된다. 정착하게 되고 그 장소를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된다. 극소수 코스모폴리탄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삶은 비슷하리라. 어디인지가 그렇게 중요한 문제였구나. 그건 아마 그 '어디'가 아주 위험해지고 나서야 내지를 수 있는 외마디 비명일 것이다. 이미 많은 장소에서 들려왔지만 내가 아주 먼 곳의 메아리일거라고만 여겨오던. 알레포와 로힝야처럼 이국적인 단어 뒤에 숨어있던, 그 장소를 선택한 적 없었을 수많은 마지막들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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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 그리고 어디. 삶을 결정짓는 아주 중요한 문제들 앞에서는 결국 무력하다. 수많은 결정을 하고 대단한 결심을 하는 것처럼 뻐기며 지내보지만 결국은 모른다. 내일 '그 곳'은 과연 어디가 될지. 내가 발 딛고 선 여기일지, 아닐지.

 마스크 핫딜을 기다리며 새로고침 버튼을 누르다 지쳐 생각이 길어졌다. 역시 장소가 문제였나. 집이 아니라 피씨방에서 접속했으면 하나쯤은 잡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피씨방에 가서 마스크를 사고싶진 않다. 그냥 사랑하는 곳에 머무르고 싶다. 어디인지가 우리의 생사를 결정하는 줄을 알게 된 후에도, 결국엔 그 어디를 쉽사리 버리지 못한다. 모르는 새 이미 나의 일부가 되어버렸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