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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5. 29. 23:59

 

 퇴근하고 돌아오니 아기는 그새 새로운 말을 배웠다. 맛있다, 맛이 없다. 연근을 먹으면서는 연근 맛있다, 푸성귀를 먹으면서는 조그만 이마를 한껏 찌푸리며 맛이 없다, 고 말한다. 오늘 아침에는 자다가 깨서 혼자 무슨 말을 중얼거리기에 옹알이 비슷한 걸 하나 했는데 노래였다. 아기가 혼자나마 지블 보다가... 아기는 옆에서 섬집아기를 부르고 있었다. 노래를 그렇게 길게 부를 줄 안다는 것도 오늘 처음 알았다. 

 아기의 시간은 나와 아주 다르게 흐른다. 나는 하루는 커녕 일주일이 지나도 나아지는 거라곤 하나 없는데, 아기는 하루에도 몇 번씩 달라지고 새로워진다. 아침에 인사하고 저녁에 인사하며 달라진 아기를 볼 때면, 놀랍고 신기하면서 아기가 부러워진다. 노아 바움벡의 <We are young>에서 아담 드라이버를 보는 벤 스틸러의 마음을 알 것 같달까. 존재 자체로 너무나 빛나고 모든 것이 놀라운 성취로 가득한 시절. 누구에게나 있지만 누구나 당시엔 모를 수밖에 없는, <When we were young>. 

 아기의 빛나는 성취를 볼 때마다 부모로서 기뻐하고 놀라워하고 경탄하면서도 나의 시간이 애달파진다. 사람이 나이를 먹으니 시간도 나이를 먹어 내 시간은 이제 아기의 시간보다 굼뜨고 반응속도도 느려졌다. 새로운 것을 습득하는데도 한참 걸리고 적응하는 데는 더욱 오래 걸리는, 나와 비슷하게 나이먹은 나의 시간. 이제는 나의 시간이라는 게 어깨를 나란히 하고 곁에 선 하나의 인격체처럼 느껴진다. 아직 젊은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새로운 걸 시작할 수 있을 것 같기도 전혀 아닌 것 같기도 한, 가늠하기 어렵고 애달파진 나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