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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6. 5. 23:36

 

 점심을 먹고 오후 두세시였나. 다음 주 금요일 인터뷰이를 섭외하려다 전주영화제에 <사당동 더하기 33>이 나와 있는 걸 보고 가슴이 뛰었다. <사당동 더하기 22>, 책으로 나온 <사당동 더하기 25>는 그야말로 기념비적인 작품이 아니던가(이런 진부한 표현을 쓰고싶진 않지만). 이사를 거치며 수많은 책을 버릴 때도 <사당동 더하기 25>는 오랫동안 책장을 떠나지 않았다. 바로 연락처를 수소문해 전화를 걸었다. 연락처는 홍보팀을 통해 받았고 잠시 통화가 가능하시겠느냐, 여쭸을 때만 해도 섭외전화를 하다 빼기 일을 기록할 줄은 몰랐다.

 엠비씨 라디오에서 일하는 뫄뫄다, 하고 밝히자마자 "엠비씨 라디오? 누가 듣죠?" 라는 말이 돌아왔다. 음... 살짝 당황을 펼쳤다가 이내 접었다. 교수님께선 아무래도 들어보시지 못한 채널이시겠군요, 했더니 다시 "나는 엠비씨 라디오를 한 번도 안 들어봤어요." 라고 대답을 하신다. 맞다. 들어보지도 않은 매체에 나가서 내 이야기, 내 시간을 털어놓을 순 없는 일이다. 바쁜 중에 전화를 받았다고 하시기에 짧은 시간이지만 설명을 했다. 어떤 프로그램들이 방송되고, 주파수는 어디고, 방송시간은... 너무 구차했을까? 설명을 자르고 다시 같은 말이 돌아왔다. "라디오 생방송을 누가 듣죠? 나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데." 통화의 결론은 당연히 출연하지 않는 것으로 끝이 났다. 

전화를 끊고나니 잠깐, 무슨 감정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기분이 살짝 스쳤다. 모욕감이었다. 순간 감사하다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아, 평소의 나는 모욕감을 느낄 일이 거의 없는 업무환경에서 일하고 있구나.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으로 옮기면서 매일같이 섭외전화를 하긴 하지만 거절을 당할 때도 대체로 일로 거절당하기 때문에 모욕감을 느끼는 경우는 없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그 교수와의 짧은 통화, 그리고 몇 마디 말에서 내가 느낀 분명한 감정은 모욕이었다. 아무리 모르는 사람, 모르는 매체, 모르는 프로그램이라 할지라도 그런 방식의 거절은 드물다. 하물며 SK브로드밴드에서 통신사를 바꾸라고 전화가 와도 "SKT? 누가 쓰죠?" 이렇게 답하긴 쉽지 않다. 전화를 걸어 나를 소개하고 양해를 구했을 뿐인데 뭔가를 잘못하기에도 짧은 시간이었다. 그럼 왜, 나야 책과 이전의 다큐를 통해 그 교수를 알고 있었지만, 그 교수에게 나는 생면부지의 타인이었을텐데 굳이. 

 잠깐 고민하다 짧은 문자를 보냈다. 저희 라디오 채널은 주로 지방의 블루칼라들이 가내수공업을 하는 작은 공장에서 켜놓거나, 물류일을 하며 길에서 듣기 때문에 교수님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하셨을 것 같습니다. (...) 불쑥 섭외전화 드려서 죄송합니다. 문자를 보내고 나니 조금은 마음이 풀렸다. 자신이 경험하지 않았다고 해서, 다른 모두가 비슷하리라 단정하는 건 내가 아는 한 사회학과는 가장 거리가 먼 태도다. 사회학에 발가락도 담궈보지 않은 신세지만 그건 안다. 교수는 빈곤에 대해 누구보다 오랫동안 연구해왔겠지만 빈곤한 채 오랫동안 살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라디오 일을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알 게 된다. 아니, 알 수 밖에 없다. 자신 주변의 화이트칼라들은 누구도 듣지 않는 것 같은 라디오 방송을 누가 어디에서 켜놓고 있는지를. 일력을 한 장 한 장 찢어 손편지로 사연을 보내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다는 것을. 유투브나 넷플릭스같은 건 아직도 누군가에게 너무 멀고, 공짜인 주파수가 그나마 가깝다는 것을. 아직도 방송에서 이런 시대착오적인 이야기가 흘러나오다니, 하고 깜짝 놀라겠지만 그 시대착오가 누군가에겐 현재진행형의 삶이기도 하단 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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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통의 전화를 더 돌리다 생방송 시간이 되어 후다닥 방송을 마쳤다. 어느덧 오후의 통화는 희미해져 있었다. 퇴근길에 자주 들르는 빵집에 가서 크로와상과 파운드케익을 샀다. 에어팟으로 뭘 듣느라 정신없이 멍한채로 계산대에 가서, 계산을 마치고 돌아서 나오는 길이었다. 점원이 나를 불러세웠다. 에어팟을 빼고 네? 하고 돌아서는데 녹차머핀을 하나 들고 와 이것도 드셔보세요, 한다. 갑작스런 호의라 눈만 크게 뜬 채 감사합니다, 하고 머핀을 가방에 챙겨넣었다. 살까 말까 하다 내려놓았던 머핀이었다. 

 빵집을 나서는데 그제야 그 교수가 그랬구나, 알 것 같았다. 돌아서는 내게 서비습니다, 하고 머핀을 하나 더 쥐어준 점원에게 거창한 선의가 있진 않았을 것이다. 물론 너무 고마운 일이지만 해석을 붙일 필요는 없다. 오후의 전화통화도 그냥 그런 해프닝이다. 누군가에게 모욕감을 주는 데 거창한 악의가 필요한 건 아니다. 빵을 하나 집어드는 것과 비슷한 무게가 아니었을까. 아마 내 문자는 읽히지도 않았을테다.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후식으로 빵을 먹었다(원래 밥 먹고 빵 먹는거니까!). 오늘은 빼기 일과 더하기 일이었네 싶다가 글로 쓸 수 있었으니 총합에선 하나 더 붙이기로 했다. 갑자기 오늘의 통화마저도 아주 싫진 않게 느껴졌다. 그래도 하나는 배웠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