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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6'에 해당되는 글 1건
2019. 12. 26. 15:23

 

 

 쥐는 갑자기 등장한다. 음식점이 많은 상가 건물 뒷편이라든지 낮고 무성한 화단에서 스스슥 소리와 함께. 미키마우스와 쥐 혹은 햄스터와 쥐의 간격은 엄청나서, 살아있는 쥐가 재빠르게 지나가는 걸 보면 악 소리가 절로 난다. 분홍빛 꼬리는 왜 또 그렇게 길게 자취를 남기는지. 쥐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까, 아니 쥐를 싫어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까? 불결과 궁핍의 대명사, 왠지 생긴 것보다 더 징그럽게 느껴지는 외모. 발견하면 비명을 질러야 할 것 같은 느낌. 

 올해 성탄절엔 이 쥐를 생각했다. 몇 해 전 본 풍경이 갑자기 떠오르면서다. 동부이촌동에서 커피를 마시고 상점가를 산책중이었던 것 같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끝을 따라가보니 쥐 한마리가 애타게 왔다갔다, 같은 지점에서 빙빙 맴돌고 있었다. 동물병원 앞이었다. 자그마한 턱을 따라 동물병원의 유리 자동문 앞에 다다른 쥐가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문 앞에서 종횡무진 통로를 찾는 중이었다. 거기까지였으면 아직까지 그 쥐를 기억하진 못할 것이다. 그 쥐는 뭔가 이상했다. 뒷다리를 다쳤는지 한쪽 다리를 심하게 절었다. 절뚝이는 걸음으로 막힌 문 앞을 오른쪽 왼쪽으로 가로질러 봤지만 문이 열리진 않았다. 

 동물병원 문 앞에 선 쥐는 문을 열어달라고 애원하는 것처럼 보였다. 누가 봐도 그랬다. 징그러운데 불쌍했다. 쥐는 무서운데 아픈 쥐였다. 길을 가던 사람들이 멈춰서서 그 당황스런 풍경을 어찌할 바 모르고 쳐다봤다. 어찌할 바 모르긴 동물병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유리 자동문 안에서 유니폼을 입은 직원들이 난감한 표정으로 쥐를 지켜보고 있었다. 문을 열어줄 수도 없지만 쫓아버리기도 애처로웠다. 쥐는 절박했다. 아파서 절박했든 대낮에 사람들이 많은 도로 한가운데서 갈 곳을 몰라 절박했든 몸짓이 그랬다. 동물병원은 이름이 동물병원일 뿐 고양이와 개를 위한 곳이란 걸 알려줘야 했을까. 사람들이 무서웠다면 잽싸게 다른 곳으로 도망갈 수 있었을텐데 그러지 않았다. 쥐에게는 그 나름의 급한 용무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도심 한복판, 그것도 동부이촌동처럼 깔끔한 동네에서 본 장면치곤 굉장히 강렬했다. 한동안 잊고 있다가 갑자기 이 장면이 떠오른 건 환대와 구원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서였다. 조건 없는 환대 안에 구원의 실마리가 숨어있다는 성탄절 메시지였다. 누구를 맞이하고 누구를 내칠지 인간적으로 재고 따지지 않을 때,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구원이 다가온다는 얘기다. 맞다. 지금은 구원인 것처럼 보이는 이가 세월이 지난 후엔 악몽으로 돌변하기도, 보기만 해도 몸서리치던 이가 시간 지난 후 죽마고우로 변하기도 한다. 잘 알고 판단하는 것처럼 굴어보지만 사실은 말짱 모른다. 어차피 우리의 판단은 틀린다. 삶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영원히 알 수 없다. 자신할 수 있는 건 나의 무지, 단 하나 뿐이다.

 그러면 쥐를 환대할 수 있을까. 누구에게든 조건 없는 환대를 베풀 것. 다정한 강아지와 새침한 고양이를 귀여워하듯이 생쥐에게 같은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지금으로선 아니다. 아기를 낳고 나니 세상을 조금 다르게 보게 된다. 더 사랑스러운 눈으로? 아니, 더 의심스러운 눈으로. 아기를 낳기 전보다 방어적으로 변했다. 세상은 원래 두려웠지만 곱절로 두려워졌고, 싫어하는 것들의 목록은 세 배로 늘어났다. 해롭고 두려운 존재들로부터 도망쳐야 할 것 같다. 어떤 존재가 해로울지 모르니 미리 결계를 친다. 먼저 거절한다. 그런 마당에 조건 없는 환대라니, 그런 성탄절 메시지라니. 버스를 타고 멍하니 그 말을 곱씹는데 난데없이 생쥐의 모습이 재생된 것이다. 기억 속에 켜켜이 숨어있던 작고 더러운 길거리의 쥐. 

 그 날 동물병원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다친 쥐의 다리를 치료하고, 붕대를 감아줄 수는 없는 일이다. 절뚝거리던 쥐는 한참을 문 앞에서 서성이다 어디론가 사라져갔다. 상가 건물의 작은 통로, 비좁은 수로, 조용한 화단 속으로. 원래 있던 곳으로. 떠나는 생쥐를 보던 누군가 뛰어나왔다. 동물병원 바로 옆, 베스킨라빈스의 통유리에 붙어 아이스크림을 먹던 아주 작은 아이였다. 아이가 허겁지겁 사라지는 쥐를 몇 발자국 따라갔지만 쥐는 금새 사라져갔다. 다친 다리를 계속해서 절뚝거리면서. 그제서야 동물병원의 문이 다시 열렸다. 개와 고양이와 인간이 편히 드나들 수 있는 안전하고 깨끗한 통로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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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쥐는 갑자기 나타난다. 이촌동 동물병원 앞에서 맞닥트린 아픈 쥐가 그랬던 것처럼, 삶의 쥐들도 갑자기 튀어나올 것이다. 으악 이 쥐새끼! 하고 비명을 지르게 될지도 모른다. 사람이 되기도 사건이 되기도 할 것이다. 그 때 나는 쥐를 환대할 수 있을까. 너무 싫은 그 생쥐 앞에서 조건 없이 마음을 열 수 있을까. 오늘 내가 환대한 생쥐가 훗날 라따뚜이가 되어줄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환대해야 하는 건 아닐 것이다. 조건없는 환대에는 말 그대로 조건이 없다. 미래에 대한 기대라곤 없는, 오로지 현재 그 상태로의 환대라야 진짜겠지. 

 곧 한 살을 더 먹는다. 생쥐를 환대하는 연습. 무엇이든 환대하는 연습. 나의 타고난 기질과 아주 반대되는 덕목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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