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main image
분류 전체보기 (177)
A (177)
Visitors up to today!
Today hit, Yesterday hit
daisy rss
tistory 티스토리 가입하기!
'2019/12/27'에 해당되는 글 1건
2019. 12. 27. 23:43
[A]

 

 10년 전에는 확실하고 분명한 태도를 동경했다. 만사를 아는 것처럼 구는 게 멋졌다. 세상사를 빠르게 분별하고 판단해 행동으로 단호하게 옮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간에게 합리성이 주어졌다면 그걸 최대한으로 쓰는 게 당연하다고. 

 이제는 완전히 정반대가 되었다. 애매모호한 사람들이 좋다.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에 대해 한참을 우물쭈물할 것 같은 사람들이. 모호한 웃음, 알쏭달쏭한 얼버무림 뒤에 남은 그 잔상에 마음이 간다. 사실 잘 모르겠어, 라고 솔직하게 털어놓을 때의 겸연쩍음같은 것들. 어설픈 칼잡이들보단 의뭉스런 회색인간들이 차라리 인간적이다. 

 회색지대가 사라져가고 있다. 숨쉴 곳이 줄어든다. 스물 셋의 나였다면 분명 이대로도 나쁘지 않다고 여겼겠지만 나는 이제 그렇지 않다. 그리고 한 가지만은 확실히 안다. 회색지대가 사라진 조직은, 결코 건강하지 않다는 걸. 잘 알지도 못하면서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흑백의 음영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것만큼 비극적인 일은 없다. 

 

 

prev"" #1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