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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에 해당되는 글 4건
2020. 2. 29. 00:04
[A]

 

 

 스물 셋이라고 그러더라. 요즘 열심히 구독하고 있는 각종 뉴스레터들 중 하나에서였던 것 같다. 사람들은 평생 자신이 스물 셋 무렵일 때 들었던 가수들과 노래들을 좋아하게 된다고. 

 하루 세 시간을 만드느라 선곡양이 꽤 많다(질과는 반비례하는 것 같다). 새벽에 깨서 보채는 아기를 도로 재우고 나도 쪽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하다 회사로 달려와 멜론과 네이버뮤직을 동시에 켜두고 선곡을 한다. 30초씩 듣고 넘기며 가수 이름과 제목을 빈 큐시트 위에다 법원이나 국회 속기사라도 된 것처럼 와다다 쳐넣는다. 그렇게 속도를 내다 가끔 발이 턱 걸려서 노래를 넘기지 못하고 주저앉아 다 듣고 또 듣고 있을 때도 있다. 시간이 삼십 분 밖에 남지 않았는데, 얼른 큐시트를 채워야 하는데, 다음 장으로 넘어가야 하는데 노래가 발목에 딱 걸려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순간. 

 겨우 정신을 차리고 일을 마친 다음 발목을 잡았던 노래들을 다시 소환한다. 야 너네들 일할 때 사람 발목 잡지 마. 일렬로 앉혀놓고 노래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거진 비슷한 시기가 나온다. 스무살에서 스물 셋. 그 언저리에 들었던 노래들을 여전히 사랑한다. 다른 좋은 노래들은 그냥 좋아하고, 스물 셋의 노래들은 사랑한다. 그러니 발목잡히는 거겠지. 이제는 뻔하고 조금은 지루해진 노래들인데도. 

 어저께는 퇴근길에 혼자 코인노래방에 가서 딱 세 곡만 부르고 싶은 마음을 겨우 참았다. 특히 모노의 넌 언제나가 너무 부르고 싶어서 입만 달싹이며 걸었다. 어차피 착실히 마스크를 낀 차림이라 소리내 부르며 걸어도 이상하지 않았을텐데. 그 와중에도 '노래방엘 가고싶어하다니... 내가!! 내가!!!' 마음속으로 느낌표를 때려박으며 놀랐다. 멜로디후르츠와 잼을 폭파해버리고 싶어했던 10년 전의 나는 어디에. 

 여튼 코로나 종식의 날=노래방 가는 날이다. 아기야 그날 엄마 찾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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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2. 25. 23:13

 

 나도 그랬다. 마지막이나 끝은 막연히 시간과 연관지어 떠올렸다. 선형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들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게 마지막일 거라고 생각해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80여년을 살다가 어떤 이유로 삶을 종료하게 될 거라고. 상상은 언제나 시간의 순서대로 흘러갔다. 더 나이를 먹고, 은퇴하고, 할머니가 되고, 몸의 어딘가가 아프다거나 말을 듣지 않는다거나. 

 묵시록의 삽화같은 거리 풍경이 이어진지 2주 남짓. 처음 우한의 소식을 들었을 때는 아주 먼 곳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한 번도 가본 적 없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중국의 어떤 고장을 상상했다(인구 천만의 대도시일줄은 꿈에도 몰랐다). 상황이 심각해졌다던 1월 중순에도 우한은 여전히 내게 먼 곳이었다. 복직 전 마지막 여행을 다녀오고 옷을 사러 이 곳 저 곳을 다니며 쇼핑했다. 아기와 하루종일 뒹굴거리며 낮잠도 같이 자고 저녁 일찍 잠에 들었다. 평화로운 나날들이었다. 

 2월의 시작과 함께 모든 게 달라졌다. 마치 여고괴담의 복도장면처럼, 어렴풋이 윤곽만 보이나 싶었는데 눈을 깜빡하고 나면 코 앞에 얼굴을 들이민다. 복직 첫 날 손소독제와 알콜솜을 챙겨 회사로 향했다. 방송국엔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었고 나도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매일 다른 사람들과 점심을 먹고 이야기를 나눴다. 서로의 커피잔에 침방울이 섞여드는 줄 모른 채 열을 올려가며 회사 이야기를 했다. 그러는 사이 뭔가 거대한 게 바뀌어가고 있었다. 마지막의 문제는 이제 더 이상, 시간이 아니었다.

 언제를 살아가느냐가 아니라 어디를 살아가느냐가 생사를 결정하기 시작했다. 생사가 아니더라도 생사에 준하는 사회적 죽음과 낙인을 선고받기도 한다. 확진자들의 동선이 공개되고 나면 그 장소는 초토화된다. 과거에 그 장소를 다녀갔던 사람들 뿐 아니라 미래에 그 장소로 올 예정이었던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방금도 휴대폰에는 재난문자 알림이 다녀갔다. "2월 1일 이후 은평성모병원을 출입한 이력이 있는 분들 중 호흡기증상이 있으시면 마스크 착용 후 선별진료소를 방문해주십시오". 이제 모든 것은 장소의 문제로 바뀌었다. 태어났는데 대구였고 옮길 일이 없어 평생 대구에 살았던 사람들은 졸지에 더 절박한 끝을 유사체험한다. 생수가 동나고 마스크 한 장을 사려고 끝없는 줄을 기다리면서. 서울의 대형병원들은 대구 경북 지역의 환자들의 접수를 받지 않기 시작했다. 대형병원마저 뚫리면 끝장이니 이해는 가지만, 그 문구가 언제든 내가 서 있는 여기, 이 곳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왠지 억울하고 답답해진다. 

장소가 때로는 끝을 결정할지도 모른다. 시간의 선형성에만 기대고 있던 내게는 요즘이 작지만 또렷한 충격이다. 동시에, 일종의 무력한 연대감을 느낀다. 언제를 선택할 수 없는 것처럼 어디 역시 선택의 영역 밖이니까. 80년대 후반에 태어나겠다고 결심한 것도 아닌데 태어나서 정신을 차려보니 87년 3월이었던 것처럼, 삶에 주어진 조건들 속에서 몇 가지 조합을 하다보면 '여기'에 살게 된다. 정착하게 되고 그 장소를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된다. 극소수 코스모폴리탄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삶은 비슷하리라. 어디인지가 그렇게 중요한 문제였구나. 그건 아마 그 '어디'가 아주 위험해지고 나서야 내지를 수 있는 외마디 비명일 것이다. 이미 많은 장소에서 들려왔지만 내가 아주 먼 곳의 메아리일거라고만 여겨오던. 알레포와 로힝야처럼 이국적인 단어 뒤에 숨어있던, 그 장소를 선택한 적 없었을 수많은 마지막들의 소리. 

-

 언제 그리고 어디. 삶을 결정짓는 아주 중요한 문제들 앞에서는 결국 무력하다. 수많은 결정을 하고 대단한 결심을 하는 것처럼 뻐기며 지내보지만 결국은 모른다. 내일 '그 곳'은 과연 어디가 될지. 내가 발 딛고 선 여기일지, 아닐지.

 마스크 핫딜을 기다리며 새로고침 버튼을 누르다 지쳐 생각이 길어졌다. 역시 장소가 문제였나. 집이 아니라 피씨방에서 접속했으면 하나쯤은 잡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피씨방에 가서 마스크를 사고싶진 않다. 그냥 사랑하는 곳에 머무르고 싶다. 어디인지가 우리의 생사를 결정하는 줄을 알게 된 후에도, 결국엔 그 어디를 쉽사리 버리지 못한다. 모르는 새 이미 나의 일부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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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2. 13. 22:03

 

 복직 2주차. 하루 세 시간의 녹음방송을 송출하려니 생각보다 허둥지둥할 때가 많고 여유가 없다. 그래도 열흘 남짓 지나니 어느정도 손에 익어 대충 다음 스케줄을 꿸 수 있게 됐다. 약간의 루틴도 생겨났다. 별 거 아닌 이 루틴이 사람을 참 든든하게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나의 아주 사소한 루틴은 이거다. 일주일에 사흘은 사람들과 약속을 잡아 밥을 먹고, 하루는 밥을 먹지 않고 점심에도 일을 하고, 하루는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오지 않는 카페에 가서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책을 한 권 읽는 것. 이렇게 읽지 않으면 책 읽을 시간은 아예 낼 수 없다. 복직하면서 혼자 만든 이 작은 루틴 덕에 이번주의 씨네21과 '아무튼, 하루키'를 재미있게 읽었고(나도 아무튼 OO을 써보고 싶단 생각마저 들었다!) 베스트셀러라 미뤄뒀던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읽기 시작했다. 이 좁고 좁은 상암동 바닥에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오지 않을 카페를 알고 있다는 게 얼마나 든든한 일인지 모른다. 뒷춤에 아주 작고 단단한 차돌을 하나 말아 쥐고 있는 기분이랄까. 커피는 맛이 없고 선곡은 오락가락하지만 호밀샌드위치는 그럭저럭 먹을 만 하다. 주위에선 주로 뜨개질을 하는 소모임의 멤버들이 커피를 마시거나 아이들을 데려온 엄마들이 대화를 나눈다. 한 번도 꺼내본 적은 없지만 책도 엄청나게 많다. 적고보니 왠지 적은 게 후회될 정도로 아깝다. 앞으로도 나만 알고 몰래 가야겠다. 

 오늘도 비를 그으며 급히 걸어가 사십오분짜리 독서를 즐기고 돌아왔다.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발목양말이 주룩 내려가있어 열심히 양말을 추켜올리는데 웬 시선이 느껴져 쳐다보니 새침하고도 세심한 눈빛의 초등학생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정확히 이런 말풍선이 머리 위에 떠올라있는 것만 같은 표정으로 말이다. "나는 어른이 되면 공공장소에서 발목양말을 추켜올리는 아줌마는 되지 말아야지. 옷매무새는 꼭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정돈해야지." 

 너무 열심히 발목양말을 추켜올리던 나는 괜히 뻘쭘해져서 백스텝을 밟아 카페에서 나왔다. 마시다 만 커피를 손에 들고 급하게 걸어들어오는데 덜 올린 발목양말이 걸리면서 새침하게 나를 쳐다보던 그 초딩의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하얗고 말수가 적은 초딩들에게도 그럭저럭 근사한 어른이 되고 싶었는데 이것 참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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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2. 3. 21:11

 

 

 1년 전 노트북과 가방을 챙겨 걸어나왔던 사무실로 다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에 내려 긴 복도 끝까지 걸어가면 사무실. 휴직을 신청할 때는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이 아주 약간은 있었던 것 같은데 결국(어쩌면 당연히)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앉아보니 거의 모든 게 그대로인데 어쩐지 혼자만 방학을 끝내고 앉아 새 학기 시간표도 모른 채 주섬주섬 가방 푸는 전학생 느낌. 가랑비에 솔찮히 젖었던 옷을 그럭저럭 말려왔는데 이제 다시 가랑비에 젖을 일만 남았다. 다행인 건 때론 그 가랑비가 나쁘지 않을 때도 있다는 것(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으나). 한 것도 없는데 10년차가 되었다.

 얼마나 더 프로그램에 이름을 얹으며 살 수 있을지 모르니 비 오는 동안 그럭저럭 맞을 만한 빗방울을 제조해야 한다. 같은 우산을 쓰는 사람들이랑 커피도 마시고 조금 더 웃어가면서. 커피는 또 우중커피가 제대로니까 말이다.

 

 

 

 

 

| 2020.02.04 20:04 | PERMALINK | EDIT/DEL | REPLY
비밀댓글입니다
남태평양 | 2020.02.13 22:16 신고 | PERMALINK | EDIT/DEL
사실은 저도 말만 이렇게 하고 소나기 기미라도 보이면 당장 피하고 싶어진답니다. ㅎㅎ 아무래도 비는 적당히만 내려야 젤 좋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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