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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6. 5. 23:36

 

 점심을 먹고 오후 두세시였나. 다음 주 금요일 인터뷰이를 섭외하려다 전주영화제에 <사당동 더하기 33>이 나와 있는 걸 보고 가슴이 뛰었다. <사당동 더하기 22>, 책으로 나온 <사당동 더하기 25>는 그야말로 기념비적인 작품이 아니던가(이런 진부한 표현을 쓰고싶진 않지만). 이사를 거치며 수많은 책을 버릴 때도 <사당동 더하기 25>는 오랫동안 책장을 떠나지 않았다. 바로 연락처를 수소문해 전화를 걸었다. 연락처는 홍보팀을 통해 받았고 잠시 통화가 가능하시겠느냐, 여쭸을 때만 해도 섭외전화를 하다 빼기 일을 기록할 줄은 몰랐다.

 엠비씨 라디오에서 일하는 뫄뫄다, 하고 밝히자마자 "엠비씨 라디오? 누가 듣죠?" 라는 말이 돌아왔다. 음... 살짝 당황을 펼쳤다가 이내 접었다. 교수님께선 아무래도 들어보시지 못한 채널이시겠군요, 했더니 다시 "나는 엠비씨 라디오를 한 번도 안 들어봤어요." 라고 대답을 하신다. 맞다. 들어보지도 않은 매체에 나가서 내 이야기, 내 시간을 털어놓을 순 없는 일이다. 바쁜 중에 전화를 받았다고 하시기에 짧은 시간이지만 설명을 했다. 어떤 프로그램들이 방송되고, 주파수는 어디고, 방송시간은... 너무 구차했을까? 설명을 자르고 다시 같은 말이 돌아왔다. "라디오 생방송을 누가 듣죠? 나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데." 통화의 결론은 당연히 출연하지 않는 것으로 끝이 났다. 

전화를 끊고나니 잠깐, 무슨 감정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기분이 살짝 스쳤다. 모욕감이었다. 순간 감사하다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아, 평소의 나는 모욕감을 느낄 일이 거의 없는 업무환경에서 일하고 있구나.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으로 옮기면서 매일같이 섭외전화를 하긴 하지만 거절을 당할 때도 대체로 일로 거절당하기 때문에 모욕감을 느끼는 경우는 없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그 교수와의 짧은 통화, 그리고 몇 마디 말에서 내가 느낀 분명한 감정은 모욕이었다. 아무리 모르는 사람, 모르는 매체, 모르는 프로그램이라 할지라도 그런 방식의 거절은 드물다. 하물며 SK브로드밴드에서 통신사를 바꾸라고 전화가 와도 "SKT? 누가 쓰죠?" 이렇게 답하긴 쉽지 않다. 전화를 걸어 나를 소개하고 양해를 구했을 뿐인데 뭔가를 잘못하기에도 짧은 시간이었다. 그럼 왜, 나야 책과 이전의 다큐를 통해 그 교수를 알고 있었지만, 그 교수에게 나는 생면부지의 타인이었을텐데 굳이. 

 잠깐 고민하다 짧은 문자를 보냈다. 저희 라디오 채널은 주로 지방의 블루칼라들이 가내수공업을 하는 작은 공장에서 켜놓거나, 물류일을 하며 길에서 듣기 때문에 교수님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하셨을 것 같습니다. (...) 불쑥 섭외전화 드려서 죄송합니다. 문자를 보내고 나니 조금은 마음이 풀렸다. 자신이 경험하지 않았다고 해서, 다른 모두가 비슷하리라 단정하는 건 내가 아는 한 사회학과는 가장 거리가 먼 태도다. 사회학에 발가락도 담궈보지 않은 신세지만 그건 안다. 교수는 빈곤에 대해 누구보다 오랫동안 연구해왔겠지만 빈곤한 채 오랫동안 살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라디오 일을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알 게 된다. 아니, 알 수 밖에 없다. 자신 주변의 화이트칼라들은 누구도 듣지 않는 것 같은 라디오 방송을 누가 어디에서 켜놓고 있는지를. 일력을 한 장 한 장 찢어 손편지로 사연을 보내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다는 것을. 유투브나 넷플릭스같은 건 아직도 누군가에게 너무 멀고, 공짜인 주파수가 그나마 가깝다는 것을. 아직도 방송에서 이런 시대착오적인 이야기가 흘러나오다니, 하고 깜짝 놀라겠지만 그 시대착오가 누군가에겐 현재진행형의 삶이기도 하단 걸 말이다. 

 -

 몇 통의 전화를 더 돌리다 생방송 시간이 되어 후다닥 방송을 마쳤다. 어느덧 오후의 통화는 희미해져 있었다. 퇴근길에 자주 들르는 빵집에 가서 크로와상과 파운드케익을 샀다. 에어팟으로 뭘 듣느라 정신없이 멍한채로 계산대에 가서, 계산을 마치고 돌아서 나오는 길이었다. 점원이 나를 불러세웠다. 에어팟을 빼고 네? 하고 돌아서는데 녹차머핀을 하나 들고 와 이것도 드셔보세요, 한다. 갑작스런 호의라 눈만 크게 뜬 채 감사합니다, 하고 머핀을 가방에 챙겨넣었다. 살까 말까 하다 내려놓았던 머핀이었다. 

 빵집을 나서는데 그제야 그 교수가 그랬구나, 알 것 같았다. 돌아서는 내게 서비습니다, 하고 머핀을 하나 더 쥐어준 점원에게 거창한 선의가 있진 않았을 것이다. 물론 너무 고마운 일이지만 해석을 붙일 필요는 없다. 오후의 전화통화도 그냥 그런 해프닝이다. 누군가에게 모욕감을 주는 데 거창한 악의가 필요한 건 아니다. 빵을 하나 집어드는 것과 비슷한 무게가 아니었을까. 아마 내 문자는 읽히지도 않았을테다.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후식으로 빵을 먹었다(원래 밥 먹고 빵 먹는거니까!). 오늘은 빼기 일과 더하기 일이었네 싶다가 글로 쓸 수 있었으니 총합에선 하나 더 붙이기로 했다. 갑자기 오늘의 통화마저도 아주 싫진 않게 느껴졌다. 그래도 하나는 배웠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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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6. 4. 23:06

 

 아기를 재우느라 누워서 등을 긁어주는데(노인같은 잠버릇이 있다) 어린 시절 살던 대단지 아파트 안의 상가 2층이었나 3층 풍경이 떠올랐다. 정확히는 상가에 있던 안경점. 단지가 큰 만큼 상가도 커서 없는 가게가 없었는데 문구점만 해도 두 개였고, 비디오가게 쌀가게 반찬가게 철물상 분식점 이런 가게들이 1층에 있었고 2층엔 주로 학원이나 미용실이 자리했던 것 같다. 참, 빵집도 있었다. 

 2층 안경점의 진열대 너머 전시돼있는 안경테를 굽어보던 내 모습이 퍼뜩 떠올랐다. 최소 20년은 넘은 풍경일 것이다. 어처구니없는 어제의 실수 때문에 떠오른걸까. 렌즈를 빼지 않고 밤새 그대로 잤다가, 출근길에 눈이 너무 잘보여 그제야 깨달았다. 일회용 렌즈를 24시간 넘게 그대로 차고 일하고 잠자고 일어나 씻고 또 일하러 나왔다는걸. 

 하루종일 눈이 시리고 아파서 인공눈물을 몇 통이나 썼는지 모른다. 며칠간은 내리 안경만 껴야겠다고 생각한 참이었다. 불을 끄고 어두운 방 안에서 자장가를 부르다보니, 아주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던 풍경들이 하나 둘 떠오르기도 하는 모양이다. 기억은 안경점에서 2층 미용실로, 그리고 단지를 벗어나 꽤 걸어가야 했던 신발가게로까지 뻗쳐나갔다. 그 신발가게에서 운동화를 사 신고 돌아오던 어느 시절. 내가 무척 좋아했던 것 같고 엄마가 내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흐뭇해하던 아주 짧은 장면들. 

 모든 게 너무 짧기만 해 애달프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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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6. 3. 23:14

 

싫은 것 : 신념

진짜 싫은 것 : 강한 신념

진짜 진짜 싫은 것 : 강한 신념형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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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년간의 사회생활을 돌아보는 요즘이다. 손꼽게 힘든 몇몇 순간들이 있었는데 대체로 강한 신념형 인간을 선배로 두고 일할 때였다. 자기 확신이 강하다 못해 넘쳐나 남들 - 여기서 남들이란 주로 만만한 후배들이다 - 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그대로 실행하게 하고 싶어하는 군상들과 함께 일할 때는 정말로, 일의 기쁨과 슬픔 밸런스가 와장창 무너진다. 난 이렇게 생각하는데 너는 어때, 가 아니라 난 이렇게 생각하니 니가 이걸 따라주길 바란다. 네? 

 아주 작고 사소한 판단이라도 모두가 다르게 내리는 데는, 제각기의 기준과 가치판단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의외로 그 기본 전제가 없는 사람들이 꽤 많은데, 프로듀서 직군 중에 또 유의미하게 많다. 프로듀서들과 협업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프리랜서인 경우가 많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방송사 제작 파트에서 피디 외의 다른 직군은 대체로 계약직이거나 프리랜서니까. 아니라고 생각하더라도 강하게 반박할 사람이 주위에 없는 채로 오랫동안 일하다 보면 어느새 자기가 진짜로 언제나 맞다고 생각하게 된다. 물론 옳고 그름이 너무 없어도 문제지만 너무 선명하면... 그거 정말 주변 미쳐버리게 만드는 일이다. 

 어젠가 너무 힘이 들어 후배 하나 그리고 선배 하나에게 아이스 쵸코를 마시러 가자고 청했다. 들큰하고 맛은 없는 아이스 음료를 들이켜다가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나왔다. 이제 진짜 협업이 너무 싫어요. 내가 뱉은 말인데 왠지 낯설고 또 마음에 탁 걸렸다. 생각을 하고 한 말은 아니고 진짜 그 순간 그런 생각이 들어 뱉은 말이었다. 사실 요즘 그런 생각을 하긴 했더랬다. 차라리 일주일에 한 편씩이라도, 혼자 오디오 다큐멘터리만 만들면서 회사 다녔으면 좋겠다고. 기획도 섭외도 취재도 편집도 그냥 혼자 하는 1인 시스템으로. 그러니 순간 내가 뱉은 그 말도 거의 진심 100퍼센트에 가까운 말이긴 했을 것이다. 이제 진짜 협업이 싫다. 남들이랑 일하는 게 싫다. 잘 하진 못해도 좋아하니까 그냥 혼자 계속 다큐만 하고 싶다. 

 집에 오는데 왠지 내가 한 그 말이 맴돌았다. 그리고 덜컥 무서워졌다. 협업이 점점 싫어지는 나 역시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남들과 같이 일하는 방법이라곤 모르는 것만 같은, 포용의 틈이라곤 없는, 강한 신념형 인간들을. 타인의 가능성을 거의 믿지 않은 채 자신의 가능성만 극한으로 밀어붙여 탄생하는 게 강한 신념형 인간들 아니던가. 사람이 싫어지고 같이 일하는 게 싫어져가는 내 안에도 이젠 그만 나 위주로 가고 싶고 일하고 싶다는 그런 싹이 이미 자라고 있는 게 아닌가, 신념만 강하지 않다 뿐이지 패턴은 똑같지 않은가, 이런 생각을 하며

 자기반성을 조금 해보았으나 그래도 요즘 너무 힘든 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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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5. 29. 23:59

 

 퇴근하고 돌아오니 아기는 그새 새로운 말을 배웠다. 맛있다, 맛이 없다. 연근을 먹으면서는 연근 맛있다, 푸성귀를 먹으면서는 조그만 이마를 한껏 찌푸리며 맛이 없다, 고 말한다. 오늘 아침에는 자다가 깨서 혼자 무슨 말을 중얼거리기에 옹알이 비슷한 걸 하나 했는데 노래였다. 아기가 혼자나마 지블 보다가... 아기는 옆에서 섬집아기를 부르고 있었다. 노래를 그렇게 길게 부를 줄 안다는 것도 오늘 처음 알았다. 

 아기의 시간은 나와 아주 다르게 흐른다. 나는 하루는 커녕 일주일이 지나도 나아지는 거라곤 하나 없는데, 아기는 하루에도 몇 번씩 달라지고 새로워진다. 아침에 인사하고 저녁에 인사하며 달라진 아기를 볼 때면, 놀랍고 신기하면서 아기가 부러워진다. 노아 바움벡의 <We are young>에서 아담 드라이버를 보는 벤 스틸러의 마음을 알 것 같달까. 존재 자체로 너무나 빛나고 모든 것이 놀라운 성취로 가득한 시절. 누구에게나 있지만 누구나 당시엔 모를 수밖에 없는, <When we were young>. 

 아기의 빛나는 성취를 볼 때마다 부모로서 기뻐하고 놀라워하고 경탄하면서도 나의 시간이 애달파진다. 사람이 나이를 먹으니 시간도 나이를 먹어 내 시간은 이제 아기의 시간보다 굼뜨고 반응속도도 느려졌다. 새로운 것을 습득하는데도 한참 걸리고 적응하는 데는 더욱 오래 걸리는, 나와 비슷하게 나이먹은 나의 시간. 이제는 나의 시간이라는 게 어깨를 나란히 하고 곁에 선 하나의 인격체처럼 느껴진다. 아직 젊은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새로운 걸 시작할 수 있을 것 같기도 전혀 아닌 것 같기도 한, 가늠하기 어렵고 애달파진 나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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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5. 27. 13:29

 

 

 슬럼프가 이런 건가, 생각했던 한 달여가 지나갔다. 일이 이렇게 재미없기는 또 오랜만이었다. 업무수첩을 뒤져보니 어느 날은 이런 메모가 적혀있다. "휴직각이다 ㅅㅂ". 물론 입 밖으로 내진 않았을 것이다. 욕은 언제나 마음 속으로만 하니까. 다만 마음 속으로 욕지기를 뱉는 날이 잦아졌고 회사 화장실에서 거울이라도 볼라치면 깜짝 놀랐다. 어두운 표정의 웬 아줌마가 나를 어찌나 뚫어져라 쳐다보는지. 

앞뒤가 꽉 막힌 것 같은 답답한 심정이 조금이라도 트인 건 의외의 장소에서였다. 코로나가 조금 덜해진 틈을 타, 주말 아침 개장시간에 맞춰 도착한 아쿠아리움. 어둡고 조용한 아쿠아리움 지하 1층의 작은 수족관에서 가든 일이라는 물고기를 만났다. 장어의 일종이라는데 얇고 연약한 빨대처럼 생겨 몸의 절반은 모래 속에 파묻은 채였다. 사람이 가까이 다가가면 그나마 밖으로 나와있던 절반의 몸마저 모래 속으로 싹 사라져버리고 없다. 다른 물고기들이 근처에 다가가도 그랬다. 모래 속에 절반은 숨긴 채, 위험하다 싶으면 재빨리 눈만 남겨놓고 온 몸을 모래속으로 숨겨버리는 그 재빠름에 감탄했다. 찾아보니 큰 위협을 느끼면 아예 모래 속에 머리마저 숨겨버려, 아주 한참동안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두 달만에 모래 밖으로 다시 나왔다는 가든 일도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밤이면 가든 일 사진을 찾아봤다. 분양받아 키운다는 사람들의 후기도 봤지만 역시 키우는 건 쉽지 않을 것 같았다(아기 한 명도 쉽지않은데). 대신 가든 일 사진을 휴대폰에 띄워두고 틈만 나면 쳐다봤다. 커다란 눈 때문에 겁은 많아 보이지만 몸의 절반을 숨겨둠에서 나오는 평화로움이 좋았다. 언제든 도망칠 모래더미가 주위에 가득한 것도. 여차하면 머리까지 파묻어버리고 조류가 한 차례 지나가기를 기다리면 될테고, 어차피 플랑크톤을 먹고 사니 모래톱 안에도 먹을 거리가 없진 않을 터였다. 그야말로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가든일 사진을 볼 때마다 결심한다. 더 자주 도망쳐야겠다. 더 많이 도망쳐야겠다. 도주의 굴을 파고 도망의 시간을 벌어 부지런히 모래를 물어다 놓아야 한다. 조금이라도 센 조류가 몰려올 기미가 보이면 얼른 몸을 더 깊이 모래더미 밑으로 내려보낼거다. 아무도 찾을 수 없도록, 눈만 잠깐 모래 위로 내밀어 둔 채. 여차하면 머리까지 아주 깊이 묻어버릴 것이다. 아무도 찾지 못하도록. 무엇도 닿지 못하도록. 

 

 

 

 

 

 

 

 

함보르 | 2020.05.30 10:04 | PERMALINK | EDIT/DEL | REPLY
호고곡 엊그제 뉴요커 장어 특집을 읽으면서 인간이 장어에 대해 모르는 게 많규나.. 하고 생각했는데 장어 얘기를 여기서도 보다니! 장어 팬이 된 정어니를 위해 공유 뾰롱 ✩ https://www.newyorker.com/magazine/2020/05/25/where-do-eels-come-from
남태평양 | 2020.06.06 00:05 신고 | PERMALINK | EDIT/DEL
한벼리 고마워... 단비같은 링크였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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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4. 6. 23:00

 

 금요일 저녁엔 빵집에 들른다. 두 군데 정도를 번갈아가며 격주로 간다. 한 곳은 체인점이고 한 곳은 동네 빵집이다. 두 군데 다 그럭저럭 맛있는 빵을 팔아서 일주일에 두세번 정도는 간다. 

 빵을 자주 먹으니 자주 사러 가지만, 금요일 저녁에 사가는 크로와상은 어쩐지 남다른 데가 있다. 크로와상을 집으면 그제서야 일주일이 지나갔다는 걸 실감한다. 시사프로그램으로 인사발령이 난 후엔 더욱 뻐근하던 평일의 부담감이 옅어지는 순간이다. 겹겹의 크로와상 결을 떼어내는 것처럼 한 겹 한 겹 덜어져가는, 평일의 무게. 물 먹지 않았나 고민해야 하는 데일리 시사의 부담(꼭 10년만에 도돌이표처럼). 

보통 빵집에선 언제나 내 취향대로 빵을 고르지만 금요일의 크로와상만은 다르다. 주중에 아기를 돌봐주시는 시부모님을 위한 크로와상이다. 저녁이 꽤 깊어지고 나서야 퇴근하는 나와 남편 때문에 아기와 길고 긴 하루를 보내시고 나면, 토요일 아침엔 도무지 손가락을 움직여 아침밥을 차리기 싫으실 것 같아서다. 마음껏 늦게까지 주무신 후에 커피와 크로와상, 과일로 간단한 아침을 곁들이면 드디어 평일이 끝났다는 걸 실감하실지도 모른다. 나나 남편과는 어쩐지 정반대의 업무시계다. 

 금요일의 크로와상을 가방 속에 넣고 집에 가는 길에는 왠지 벅찬 마음이 든다. 일주일을 그래도, 잘 버티고, 잘 해치웠다. 주말 아침에 부스스한 머리로 일어난 아기의 얼굴이며 볼록한 배에서 나는 쿰쿰한 냄새를 실컷 맡을 생각을 하면 어쩐지 코로나고 뭐고 세상이 온통 아름다워보이기 시작한다. 물론 이 짧은 착시현상이 오래가진 않는다. 아기는 너무 사랑스럽지만 언제나 내 기대보다 일찍 일어난다(주말인데 일곱시 삼십분이라니! 조금 더 잘 순 없겠니). 일어나자마자 뻐뜨~~ 빠방~~ 하고 외치며 창문에 딱 달라붙어 나가고 싶음을 온몸으로 발산한다(아직 밖은 너무 추워). 끊임없이 책을 들고 와 땍~~ 땍~~ 하며 애절한 눈빛으로 애원한다. 다 읽었다 싶으면 또! 또! 무한반복이다. 토끼의 눈코입이 어디 달려있는지 스무 번 넘게 읽어주느라 아침부터 성대가 피로감을 호소하며 파르를 떨려온다. 너무 사랑스럽지만 너무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행복하지만 고되고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지만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이 아파온다.

 아기를 낳은 당사자인 나도 이런데, 다른 가족이나 하물며 가족이 아닌 이들에게 아기 돌보기란 어떨까. 상상하기 시작하면 내 마음만 더 어려워질 것 같아 자주 상상하진 않으려 한다. 다만 금요일 저녁이 되면, 노트북을 덮으며 고민할 따름이다. 오늘은 두 군데 중에 어느 빵집엘 들러서 크로와상을 사갈까. 크로와상은 운반이 까다로운 축에 속한다. 짐이 가득한 에코백 속에 대충 던져넣어도 다음날 먹는데 아무 지장이 없는 하드한 계열 빵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일단 집게로 집어들 때부터, 나답지 않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힘조절을 잘 해야 겉면이 무너지지 않은 채 그대로 쟁반 위로 옮길 수 있다. 직원이 흰 봉투를 옆으로 기울여 모로 누운 크로와상을 그대로 넣어주면, 함부로 방향을 바꾸지 말고 그대로 뉘어 가방 맨 위에 잘 올려둬야 한다. 휴대폰이라도 잘못 올리면 크로와상의 연약한 테두리는 무너지고 만다. 

 금요일 저녁의 마음은 크로와상을 조심스레 운반하는 데서 정점에 이른다. 얇고 연약한 갈색 결이 무너지지 않게 집으로 잘 들고 갈 것. 간격이 꽤 벌어진 징검다리를 겨우 건넌 것처럼 일주일을 건너와 만난, 작은 크로와상. 얇고 기다란 크로와상의 테두리를 무너지지 않게 잘 지키는 일은 갑자기 일주일의 일과 중 가장 중요한 임무로 격상한다. 마치 크로와상이 나의 주말이라도 되는 것처럼. 아니, 요즘들어 크로와상은 그 자체로 나의 주말이다. 작고 소중하고 겹겹이 아주 고소해서 떼어먹어도 떼어먹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은데 금방 끝나버리는. 

 오늘은 월요일. 어쩐지 좀 더 팍팍했던 월요일 퇴근길엔 부러 크로와상을 파는 빵집을 멀리서만 쳐다보고 왔다. 금요일 저녁에만 손에 넣을 수 있는, 조심스럽게 크로와상을 집어드는 그 느낌을 아껴먹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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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3. 18. 15:36

 

 

누가 뭐라 해도 난 나야
난 그냥 내가 되고 싶어
I wanna be me me me
굳이 뭔가 될 필요는 없어
난 그냥 나일 때 완벽하니까

 

ITZY의 노래를 듣다보면, 남과 달라지는 게 지상과제였던 십대와 이십대의 어느 시절이 떠오른다. 조금이라도 더 그럴듯해보이고 싶었던, 보통이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기에 보통 이상이 되기를 은밀히 소망했던. 어쩌면 그 즈음은 누구에게나 그런 시기인걸까. 자신이 아주 평범하다는 걸 인정하는 사람들에게까지도 상승의 기운이 침투하는. 

새벽에 깨어있고 소설을 좋아하고 멋진 문장을 만들어내면 세상이 달라보인다고 믿던 시절을 다 지나보낸 지금은 이제 이런 노래들에 새삼 울컥하게 된다. 다만 한 뼘이라도 남들과 다른 면을 가지고 싶었던 마음이 이제는, 다만 한 줌이라도 남들과 비슷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마음으로 변했다. 아주 보통으로 살고 싶다. 평범한 인생을 쟁취하고 싶다(이제는 보통이야말로 '쟁취'해야 하는 것이란 걸 안다). 자신이 요절할 거라고만 믿었다던 어느 빛바랜 록스타처럼.

 

찬란하게 빛나던 내 모습은
어디로 날아갔을까 어느 별로
작은 일에도 날 설레게 했던
내 안의 그 무언가는
어느 별에
거칠 것이 없었던 내 모습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어느 틈에
작은 일에도 늘 행복했었던

-

 

시간이 나면, 하고 미뤄둔 게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대중가요의 노랫말을 가지고 분류하는 작업이다. 그 중에서도 2000년대 초중반, 세기말부터 유의미하게 폭증했던 내면의 폐허(?!)를 다룬 가사들을 모아보고 싶다. 영화시장과 출판산업이 한참 젊은 천재들을 발굴해내던 시절(이라고 쓰니 정말 구태의연해보이지만), 자의식 충만했던 대중가요들이 반영한 그 시절 영혼의 허영. 내면에 침잠하고 이야기에 몰두할 수 있었던 한 줌의 여유. 그 시절엔 아이돌그룹의 가사라 하더라도 한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맡아 작사하는 일이 흔했고, 요즘처럼 한 곡의 작사가와 작곡가를 합해 열 손가락이 넘어가는 일이 흔치 않았다. 그야말로 멜랑콜리의 시대와 그 노랫말들. 어우, 하고 이맛살을 찌푸리면서도 계속 듣게 되는 내 기준 옛날 노래들.

여하간, 자기 자신의 청춘과 그 시절에 대해선 - 정말이지 객관적이기 어렵다. 요즘 맨날 라떼 백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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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3. 4. 10:53

 

 

 

https://www.youtube.com/watch?v=TcPk2p0Zaw4&amp=&feature=emb_title

 

 

 

웨즈 앤더슨 + 티모시 샬라메라니요. 너무 가고싶다 영화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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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2. 25. 23:13

 

 나도 그랬다. 마지막이나 끝은 막연히 시간과 연관지어 떠올렸다. 선형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들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게 마지막일 거라고 생각해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80여년을 살다가 어떤 이유로 삶을 종료하게 될 거라고. 상상은 언제나 시간의 순서대로 흘러갔다. 더 나이를 먹고, 은퇴하고, 할머니가 되고, 몸의 어딘가가 아프다거나 말을 듣지 않는다거나. 

 묵시록의 삽화같은 거리 풍경이 이어진지 2주 남짓. 처음 우한의 소식을 들었을 때는 아주 먼 곳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한 번도 가본 적 없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중국의 어떤 고장을 상상했다(인구 천만의 대도시일줄은 꿈에도 몰랐다). 상황이 심각해졌다던 1월 중순에도 우한은 여전히 내게 먼 곳이었다. 복직 전 마지막 여행을 다녀오고 옷을 사러 이 곳 저 곳을 다니며 쇼핑했다. 아기와 하루종일 뒹굴거리며 낮잠도 같이 자고 저녁 일찍 잠에 들었다. 평화로운 나날들이었다. 

 2월의 시작과 함께 모든 게 달라졌다. 마치 여고괴담의 복도장면처럼, 어렴풋이 윤곽만 보이나 싶었는데 눈을 깜빡하고 나면 코 앞에 얼굴을 들이민다. 복직 첫 날 손소독제와 알콜솜을 챙겨 회사로 향했다. 방송국엔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었고 나도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매일 다른 사람들과 점심을 먹고 이야기를 나눴다. 서로의 커피잔에 침방울이 섞여드는 줄 모른 채 열을 올려가며 회사 이야기를 했다. 그러는 사이 뭔가 거대한 게 바뀌어가고 있었다. 마지막의 문제는 이제 더 이상, 시간이 아니었다.

 언제를 살아가느냐가 아니라 어디를 살아가느냐가 생사를 결정하기 시작했다. 생사가 아니더라도 생사에 준하는 사회적 죽음과 낙인을 선고받기도 한다. 확진자들의 동선이 공개되고 나면 그 장소는 초토화된다. 과거에 그 장소를 다녀갔던 사람들 뿐 아니라 미래에 그 장소로 올 예정이었던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방금도 휴대폰에는 재난문자 알림이 다녀갔다. "2월 1일 이후 은평성모병원을 출입한 이력이 있는 분들 중 호흡기증상이 있으시면 마스크 착용 후 선별진료소를 방문해주십시오". 이제 모든 것은 장소의 문제로 바뀌었다. 태어났는데 대구였고 옮길 일이 없어 평생 대구에 살았던 사람들은 졸지에 더 절박한 끝을 유사체험한다. 생수가 동나고 마스크 한 장을 사려고 끝없는 줄을 기다리면서. 서울의 대형병원들은 대구 경북 지역의 환자들의 접수를 받지 않기 시작했다. 대형병원마저 뚫리면 끝장이니 이해는 가지만, 그 문구가 언제든 내가 서 있는 여기, 이 곳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왠지 억울하고 답답해진다. 

장소가 때로는 끝을 결정할지도 모른다. 시간의 선형성에만 기대고 있던 내게는 요즘이 작지만 또렷한 충격이다. 동시에, 일종의 무력한 연대감을 느낀다. 언제를 선택할 수 없는 것처럼 어디 역시 선택의 영역 밖이니까. 80년대 후반에 태어나겠다고 결심한 것도 아닌데 태어나서 정신을 차려보니 87년 3월이었던 것처럼, 삶에 주어진 조건들 속에서 몇 가지 조합을 하다보면 '여기'에 살게 된다. 정착하게 되고 그 장소를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된다. 극소수 코스모폴리탄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삶은 비슷하리라. 어디인지가 그렇게 중요한 문제였구나. 그건 아마 그 '어디'가 아주 위험해지고 나서야 내지를 수 있는 외마디 비명일 것이다. 이미 많은 장소에서 들려왔지만 내가 아주 먼 곳의 메아리일거라고만 여겨오던. 알레포와 로힝야처럼 이국적인 단어 뒤에 숨어있던, 그 장소를 선택한 적 없었을 수많은 마지막들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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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 그리고 어디. 삶을 결정짓는 아주 중요한 문제들 앞에서는 결국 무력하다. 수많은 결정을 하고 대단한 결심을 하는 것처럼 뻐기며 지내보지만 결국은 모른다. 내일 '그 곳'은 과연 어디가 될지. 내가 발 딛고 선 여기일지, 아닐지.

 마스크 핫딜을 기다리며 새로고침 버튼을 누르다 지쳐 생각이 길어졌다. 역시 장소가 문제였나. 집이 아니라 피씨방에서 접속했으면 하나쯤은 잡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피씨방에 가서 마스크를 사고싶진 않다. 그냥 사랑하는 곳에 머무르고 싶다. 어디인지가 우리의 생사를 결정하는 줄을 알게 된 후에도, 결국엔 그 어디를 쉽사리 버리지 못한다. 모르는 새 이미 나의 일부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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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2. 13. 22:03

 

 복직 2주차. 하루 세 시간의 녹음방송을 송출하려니 생각보다 허둥지둥할 때가 많고 여유가 없다. 그래도 열흘 남짓 지나니 어느정도 손에 익어 대충 다음 스케줄을 꿸 수 있게 됐다. 약간의 루틴도 생겨났다. 별 거 아닌 이 루틴이 사람을 참 든든하게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나의 아주 사소한 루틴은 이거다. 일주일에 사흘은 사람들과 약속을 잡아 밥을 먹고, 하루는 밥을 먹지 않고 점심에도 일을 하고, 하루는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오지 않는 카페에 가서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책을 한 권 읽는 것. 이렇게 읽지 않으면 책 읽을 시간은 아예 낼 수 없다. 복직하면서 혼자 만든 이 작은 루틴 덕에 이번주의 씨네21과 '아무튼, 하루키'를 재미있게 읽었고(나도 아무튼 OO을 써보고 싶단 생각마저 들었다!) 베스트셀러라 미뤄뒀던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읽기 시작했다. 이 좁고 좁은 상암동 바닥에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오지 않을 카페를 알고 있다는 게 얼마나 든든한 일인지 모른다. 뒷춤에 아주 작고 단단한 차돌을 하나 말아 쥐고 있는 기분이랄까. 커피는 맛이 없고 선곡은 오락가락하지만 호밀샌드위치는 그럭저럭 먹을 만 하다. 주위에선 주로 뜨개질을 하는 소모임의 멤버들이 커피를 마시거나 아이들을 데려온 엄마들이 대화를 나눈다. 한 번도 꺼내본 적은 없지만 책도 엄청나게 많다. 적고보니 왠지 적은 게 후회될 정도로 아깝다. 앞으로도 나만 알고 몰래 가야겠다. 

 오늘도 비를 그으며 급히 걸어가 사십오분짜리 독서를 즐기고 돌아왔다.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발목양말이 주룩 내려가있어 열심히 양말을 추켜올리는데 웬 시선이 느껴져 쳐다보니 새침하고도 세심한 눈빛의 초등학생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정확히 이런 말풍선이 머리 위에 떠올라있는 것만 같은 표정으로 말이다. "나는 어른이 되면 공공장소에서 발목양말을 추켜올리는 아줌마는 되지 말아야지. 옷매무새는 꼭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정돈해야지." 

 너무 열심히 발목양말을 추켜올리던 나는 괜히 뻘쭘해져서 백스텝을 밟아 카페에서 나왔다. 마시다 만 커피를 손에 들고 급하게 걸어들어오는데 덜 올린 발목양말이 걸리면서 새침하게 나를 쳐다보던 그 초딩의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하얗고 말수가 적은 초딩들에게도 그럭저럭 근사한 어른이 되고 싶었는데 이것 참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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