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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9. 1. 00:28

 

 열시쯤 잠들었다 늘 화들짝 깬다. 아이들을 재우며 같이 잠들었다가 아! 아직 뭔가 할 일이 있었는데! 하고 호다닥 잠에서 도망나온다. 오늘의 할 일은 보육료 결제. 낮에 메시지가 왔었는데 까맣게 잊고 있다 한밤이 되어서야 다시 떠올랐다(완전히 잊은 게 아니니 그게 어딘가). 

 ARS며 포털이며 접속해 국민행복카드 번호를 누르는데 알 수 없는 이유로 결제가 되지 않는다. 카드를 붙들고 이리저리 헤매는 사이 얕은 잠은 모두 달아나버린 뒤. 생각은 낮에 만났던 사람들에게로 이어진다. 좋은 날씨, 점심의 비스트로에서일로 만난 두 사람과의 대화가 좋았다. 복직 후 매일 점심약속이 있지만 대화가 좋았다고 여겨지는 날은 드물다. 직장인들의 점심이란 대개 회사와 사람과 업무에 대한 불평으로 시작해 끝나기 마련이고 나 역시 대체로 그런 대화엔 열을 올린다. 

 이례적으로, 오늘 점심의 주제는 죽음이었다. 어떤 부고로 시작한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각자가 처음으로 죽음이라는 개념을 깨친 어린 시절의 이야기에서부터 죽음과 관련한 각종 단상들을 오갔다. 놀랍게 읽은 기사와 책과 영화 속의 장면들이 오가는 사이 이야기 속에서 가장 자주 등장한 말이 있었다. 마침 요 며칠 내내 내 마음에도 맺혀 있던 문장이었다. 인생이 대체 뭔가, 삶이 대체 뭔가- 정확히는 인생,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걸까. 정도가 될 것 같다. 

 요즘 퇴근길엔 늘 인생 정말 알 수 없다, 혼자 되뇌였다. 오랜만에 복직해 전해들은 S의 근황 때문에 더욱 그랬다. S는 한 때 제왕처럼 조직에 군림하며 동료들을 쳐냈다. 얼굴이 알려지는 직종이었기에 악명도 빨리 높아졌고, 그 악명이 진영논리에 따라 반대편에서는 장점이 되기도 했다. 조직에서 군림한 이후 어찌어찌 뱃지 근처까지 갔는데 막판에 틀어져 결국 입성에는 실패했다. 여기까지는 모두가 아는 얘기. 한 시절 그와 쌍둥이처럼 엮여 불리던 B가 최근 모 정당의 핵심 인재(?)로 활약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S가 떠올랐다. 며칠 전 끝내 전해들은 근황은 그닥 유쾌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도 몹시 힘든 시간일 것임이 분명했다. 시원하지도 통쾌하지도 않았다. 다만 더 궁금해질 뿐이었다. 무엇을 위해 삶을 그런 방식으로 꾸려 나갔을까. 종착점에 어떤 트로피가 자신을 기다리길 바라고 바랐을까. 다른 사람들을 울리고, 괴롭히며 나아간 자리에서 무엇이 남아 그를 기다리고 있었을까. 

 죽음에 대해 한참 이야기하다 회사로 돌아오는 길에 S의 구둣발 소리를 떠올렸다. 조용한 복도를 쩌렁쩌렁 울리던 무겁고 둔중한 굽의 울림. 징이 박힌 것처럼 바닥을 쳐내던 신발의 반향음. 또각또각 소리에 마음을 졸이며, 문을 열러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던 스텝의 움직임. 새벽 생방송을 위해 스튜디오에 들어서면 느껴지던 차가운 한기와 뒤섞여- 인생 무언가, 아니 S는 무엇을 위해 그 시절의 매일매일을 그렇게 꾸린 걸까, 허망하고 답 없는 궁금증만 마음 속에 가득 고인다. 지금은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그 구둣발 소리. 

 

 

 

 

 

  

2022. 8. 26. 10:53

 아이를 어린이집에 들여보내고 자리에 앉으면 아홉시 반. 아무리 검색해도 노래가 나오질 않는다. 분명히 이 이름이 맞는데 노래 제목을 검색해도 나오질 않는다. 뭐지? 뭐지? 한참 이리저리 찾다 자리에서 혼자 머리를 박았다. 조윤선은 얼마 전 출소했고 가수는 나윤선...아... 

 

 

2022. 7. 30. 10:40

 

 작년 8월 19일의 다이어리. "연희동 엄마의 서재 방문, 2시간 이용. 주차장 올라가고 내려가는 길이 조금 어려움. 제임스 설터의 책 약간 읽음." 이후로도 엄마의 서재는 자주 등장한다. 나흘 뒤 23일, "엄마의 서재 방문, 비 많이 온다." 지난 가을과 겨울엔 일주일에 하루 이틀은 꼭 엄마의 서재에 들러 오전 시간을 보냈다. 뭔가 해보려고 글도 쓰고 목차도 구성하고 기획안도 만들던 때였다.

 오전 열시반쯤 도착하면 보통 두어 사람이 있었고, 벽을 보고 있는 유일한 1인 책상이 있어 늘 거기에 앉았다. 스탠드도 켤 수 있고 모든 공간을 등지고 있어 마음이 편해지는 자리였다. 뭔가 해보려다 잘 풀리지 않으면 얼마든지 꺼내어 볼 수 있는 책들이 있었고 맞은 편엔 앤트러사이트, 옆엔 스타벅스까지 있어 커피를 마시고 들르기에도 좋았다. 주차를 해두고 사러가마트나 피터팬제과에 걸어갔다 오기도 했다. 

 명목상의 휴직이 끝나는 오늘, 아이 어린이집을 쉬고 자연사박물관엘 갔다. 아이에겐 말하지 않았지만 아마도 마지막 평일 데이트였을 것이다. 1년 365일 방송이 나가는 라디오 피디들에겐 일주일 휴가조차 어렵다. 어쩌다 평일 연차가 주어진다 하더라도 맘 편히 아이와 하루를 통으로 놀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아 미리미리 열심히 다녔다. 셈해보니 이번 휴직 기간에만 자연사박물관에 다섯 번을 방문했다. 

 늘 한적한 평일에만 다니다 사람이 이렇게 많은 자연사박물관은 처음이었다. 어린이집도 유치원도 학교도 마침 방학이다. 근처 중학교에 차를 대고 한시간 반동안 보고 또 본 박물관을 다시 훑었다. 사러가마트 2층에서 점심을 먹고 튜브를 사러 모던하우스에 들렀다. 엄마의 서재를 스쳐 지나오는데 불이 꺼진 채, 안에서는 가구를 빼고 책을 정리하는 중이었다. 영업 종료 소식은 들었지만 닫기 전에 한 번 들를 수 있을 줄만 알았는데, 그게 오늘였다니. 하필이면 휴직이 끝나는 날. 벽면 가득하던 책들은 어디로 갔는지 텅 비어만 있었다. 

 기사를 찾아보니 일룸이 처음 엄마의 서재를 개장한 건 지난 2019년 5월이다. 만 3년 조금 넘은 시간. 일룸과 엄마의서재는 처음 만들어보려던 무언가에 가까이 다가갔을까. 처음 세상에 내보이고 싶었던 꿈과 비슷한 실체를 만들어냈을까. 후회 없이 가능한 모든 시도를 해본 뒤의  폐장날이었을까. 텅 비고 불 꺼진 엄마의 서재를 보는데, 덩달아 무언가 만들어보려 했던 나의 시간들이 스쳐갔다. 

 당장은 무엇도 되지 않았다. 앞으로도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만 조용하던 평일 오전의 구석자리 일인용 책상에서, 뭔가 잡아보려 애쓰던 시간의 잔상만 어렴풋이 남았다. 손에 쥔 것은 없지만 잡으려 했던 시도만큼은 감각의 기억으로 오래 남을 것이다. 손아귀를 말아쥐고 또 말아쥐어보던 지난 일년여의 시간. 펼쳐보면 손바닥은 비어 있었지만 그만둘 수는 없었다. 그만두기 싫었다. 잡히지 않더라도 계속해서 허공에다 손바닥을 펼치는 사람이 되고싶다.

 놀이터와 박물관과 장터 사이 사이에 읽고 쓸 책상을 찾아 헤매던 휴직기간이 끝났다. 

 

 

 

2022. 7. 14. 12:00

 

 공용 현관을 지나 엘리베이터 앞으로 돌아서는 순간 무언가 보였다. 시각과 후각이 동시에 경보를 울려왔다. KF94 마스크를 후벼파고 들어오는 존재감, 엘리베이터 앞에 자리한 주먹막한 갈색의 일그러진 형체. 신발 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는... 똥이었다. 

 휴대폰을 보며 무심결에 걸어들어왔더라면 피하지 못했으리라. 공용 현관을 지나 벽을 돌자마자 마치 계획한 것처럼 절묘한 자리에 떨어져 있었다. 여기까지 생각하다 혼자 고민했다. 떨어트렸다는 말이 적절할까. 의도를 가지고 놓아둔 것일까. 놓거나 떨어트린 이는 누구이며 밟는 불운에 당첨된 자는 누굴까. 여러 정보를 종합했을 때 조금 전까지 그 사물의 주인이었던 존재는 사람일 것 같았다. 동네 강아지나 고양이가 저지를 수 있는 스케일이 아녔다. 

 벽에 붙다시피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엘리베이터 안에도 역시 신발을 따라 온 냄새가 가득했다. 얼른 내리자, 안 밟아서 정말 다행이다, 관리사무소에 연락해야겠다, 생각하며 도망치듯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이상하게도 냄새가 전혀 옅어지지 않았다. 우리 집 앞에는 택배 상자가 놓여있었다. 설마... 기사분이 밟고 올라오신걸까... 더위 때문인지 긴장 때문인지 등에 땀이 배어났다. 

 상자를 뜯고 알콜 스프레이로 가능한 곳들을 소독한 뒤 다시 현관문을 열어보았다. 냄새는 나는데 보이는 흔적은 없었다. 혹시 모르니 밀대 걸레를 들고 알콜 스프레이를 바닥에 뿌리며 청소를 했다. 앞집 영역을 침범하지 않기 위해 걸레를 좌회전시키는데 눈에 무언가가 걸렸다. 성인 엄지만한 크기의, 역시나, 1층 현관에서 보았던 그 똥의 일부분이었다. 마치 배달 온 소포처럼 정확하게 앞집 현관 앞에 떨어져 있었다. 아! 

 뒷걸음질치며 문을 닫고 들어왔다. 심한 딜레마에 빠졌다. 현관을 열면 냄새가 들어온다. 하원하던 아이도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어! 똥냄새가 나! 하고 코를 쥐어틀었다. 방문 미술 선생님 역시 요상한 표정을 지으며 현관 앞에 서 있었다. 1층의 문제는 관리사무소에서 금방 해결하고 돌아갔지만 앞집 문제는 애매했다. 앞집 앞에도 있는데요, 하고 전화를 해야 하나. 아니면 직접 치우시라고 인터폰을 해야 하나. 아니다, 문을 열고 나오시다가 확인하고 알아서 수습하겠지. 기대를 품고 몇 시간을 기다려 보았지만 그대로였다. 몇 번이나 문을 열었다 닫는 나를 보며 아이가 물었다. 엄마 뭐 보고 들어오는거야? 달리 둘러댈 말이 없었다. "앞집 앞에 있는 똥 보고 들어오는거야." 아이가 물었다. "누가 치워?" 

 고민을 하다 밤이 되었다. 아이들이 잠든 후 비장하게 문을 나섰다. 앞집 문과의 거리 약 5센티, 우리 집 문과의 거리 약 3미터. 앞집과 가깝다는 이유로 앞집 똥이라고 할 수는 없다. 위치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이미 내 인지 속에 깊숙이 형체와 냄새를 새기고 괴로움을 남긴 뒤 아닌가. 내게 들어온 괴로움은 셀프로 해결하는 수 밖에. 비장하게 일회용 장갑을 끼고 물티슈를 챙겨 현관문을 열었다. 냄새가 조금 옅어져 있었다. 어두운 밤을 잠깐 밝힌 주황색 복도 전등 아래서 급히 똥을 찾아 헤맸다. 똥이 있던 자리와 옆을 샅샅이 뒤졌다. 온데간데 없었다. 치웠구나! 

 사건이 마무리되고 나서도 한동안 생각이 났다. 남의 똥이지만 남의 것이라고만은 할 수 없는 상황. 똥을 그 자리에 두고 간 당사자보다, 타인이 더 오래 번민하게 된다. 똥이란 것의 속성이 대개 그럴지도 모른다. 저지른 자는 대체로 빨리 자리를 뜨게 마련이다. 똥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봉변은 뒤따라오던 사람들이 몫이다. 일단 무엇인지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아, 똥이구나. 놀란 다음엔 당황한다. 배설하고 간 이에게는 쾌감이 남았겠지만 남들에겐 불쾌 뿐이다. 마지막 고뇌의 시간이 닥친다. 달아난 이는 애초에 치울 의도가 없다. 있었다면 진작 치웠을 것이고 만약 가능한 상황이었다면 애초에 공용 현관에 똥을 두지 않았을 것이다. 고민은 타인들의 몫이다. 남의 똥을 치운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관용어는 위대하다. 속담은 대단하다. 대개 진실에 가깝다. 치우는 사람 따로 있다는 짧은 문장 속에 담겨 있던 고뇌들은 괜한 이야기가 아녔다. 

 똥에는 사정이 배어있다. 매일같이 두 아이의 똥을 치우다 보면 알게 된다. 어떤 음식을 먹으면 무슨 색으로 나오고 얼마만큼의 형체를 남기는지. 똥은 내장의 사정과 형편을 정직하게 새긴 채 세상에 나온다. 아이들의 사정은 언제나 살펴야 한다. 그런데 생판 남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돈을 받고 치운대도 못 치울 판인데, 남의 똥에서 풍기는 타인의 내밀한 상황을 고려하긴 어렵다. 그것이 설령 적당한 시간에 화장실을 갈 수 없는 군색한 형편에서 비롯된 절박한 결과물이라 할지라도. 아니, 그 어떠한 형편이나 상황도 상상해주고 싶지 않았다. 똥은 죄가 없고 내겐 여유가 없었다. 

-

 요즘 바닥을 참 잘 쳐다보며 다닌다. 휴대폰을 볼 일이 있어도 눈알을 쉴새없이 굴리며 나아갈 길의 장애물을 탐색한다. 매미도 떨어져 있고 송충이도 기어가고 더러는 남의 똥도 밟게될지 모를 일이니. 무엇보다도...남의 똥을 가지고 이렇게 일기를 쓰고 앉아있을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2022. 7. 8. 14:25

 

 마음의 여유가 없는 날들이다. 시간의 여유가 있냐하면 그것도 아니다. 분명히 휴직중인데 하루 종일 바쁘다. 한 달에 일주일은 오는 아이들의 감기, 각종 검진, 운전면허 갱신하기와 은행 방문하기, 철마다 부족한 가족들의 내복이며 속옷 사다 나르기, 그날 그날의 먹거리 조달하기... 그동안은 이런 일들을 대체 어떻게 했던건가 싶을만큼 정신이 없다. 휴직중인데 왜 책도 못 보고 영화도 못 보고 있는건가. 아, 큰일이 있기도 했다. 복직을 앞두고 모시게 된 새 하원시터분이 3주만에 그만두셨다. 그것도 카톡으로.(MZ만 카톡으로 이별하고 사직하는 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부랴부랴 전단지를 인쇄해 동네에 붙이러 다니고 여기저기 전화를 돌렸다. 소개소, 동네 교회 집사님, 정부에서 지원하는 아이돌보미와 서울시 우리동네 히어로(두 군데서는 모두 인력이 없다는 답을 받았다). 결국 십만원 넘는 유료 결제를 해둔 어플리케이션 두 곳을 통해 새로운 후보군을 얻었다. 평균 연령 환갑의 여성분들을 시간대별로 앞에 앉혀두고 초조하게 마스크 너머를 가늠해보려 애썼다. 숨겨진 자애로움이나 타인의 아이에게도 내줄 수 있을 마음의 여유분 같은 것들을. 

 막막하고 갑갑해서인지 감정의 여유가 전혀 없다가도 희한한 데 이입되었다. 수리 기사가 다녀간 이후 갑자기 얼어버리기 시작한 냉장실 속의 터진 달걀이 그랬다. 갑자기 온도가 낮아질 줄도 모르고 속 편하게 들어앉은 고급 자연방사 유정란의 깨져버린 껍질이 내 자아처럼 보였다면... 너무 나간 것일까. 아이를 둘 낳고 키우게 될 줄 알았더라면 자아를 이토록 포동포동히 살찌우도록 놔두진 않았을 것이다. 초목에서 맘껏 풀을 뜯어먹으며 자연방사의 즐거움을 깨닫게 하진 않았을 것이다. 한때 생명의 가능성이었던 자연방사 유정란들은 고장난 나의 냉장칸에서 껍질에 금이 간 채 우두커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얼어버린 유정란은 바로 버려야 할까. 다른 방법은 없을까. 검색같은 건 해 보지도 않은 채 유정란의 처분을 두고 고민만 하는 중이다. 

 고구마 말랭이가 슬퍼보일 건 또 뭐였을까. 우는 아이들 둘을 넘겨준 채 부랴부랴 어린이집 간담회에 갔다가 마구 달려 집에 오는 길에 마주친 한무더기의 고구마 말랭이. 파장 시간에 치워지고 실리는 것들이 한두 가지는 아니지만 한껏 구워지고 쪄지고 말려진 자색의 고구마 말랭이는 왠지 더 애처로웠다. 박스채 다시 실려가는 생고구마보다, 열기를 견디며 기껏 속성을 변화시키고 진한 색으로 덧입었는데 아무도 집어들지 않았다면. 생고구마에겐 가능성이라도 남아있지만, 마르고 뒤틀어진 말랭이에게 남은 가능성은 어쩐지 그다지 많지 않을 것만 같았다. 쓰다보니 그렇게 이입할거면 한 봉지 사오기라도 할 걸 그랬네.

 카페에서 노트북을 펼쳐본 게 거의 이주만의 일인 것 같다. 화분 위로 솟은 긴 초록의 이파리 하나가 내 얼굴을 반쯤 가리운 자리다. 줄기 가장자리까지 촉촉하고 푸릇한 아주 싱싱한 초목이다. 이파리 하나를 딱 떼어내서 지금 가리운 그대로, 나 자신을 조금씩 가린 채 거리로 나가고 싶다. 한 뼘 그늘이, 서늘한 기운이, 음영 드리워진 시공간이 필요한 날들이다.  

 

 

2022. 6. 20. 11:18

 

 시공간이 멈췄다. 일이 벌어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2-3초정도 되었을까. 오른쪽에 앉아있던 승객이 비명을 지르고 지나가던 승무원이 놀라 복도에서 멈춰섰다. 비명의 끝음이 잦아들기도 전에 아이가 마무리 데코레이션을 하듯 구불구불 세팅된 머리카락 위로 남은 요거트를 흩뿌렸다. 두뇌는 충격으로 잠깐 정지했지만 손과 조음기관은 이미 움직이는 중이었다. 손이 물티슈를 꺼내들어 옆자리 승객의 머리카락을 닦아내는 동안 입에서는 쉴새없이 죄송합니다 진짜 죄송합니다 하는 말이 줄줄 흘러나왔다. 

 머리가 판단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고 나니 사태가 파악되었다. 처음에 인지한 것 보다 훨씬 심각했다. 공들여 세팅한 긴 웨이브머리의 귀밑부터 끝부분까지 흰색 요거트가 범벅이 되어 있었다. 팔목 부분에서 곱게 두 번 접힌 흰색 린넨 셔츠, 생생하게 각이 잡힌 검은 정장 바지에도 모두 요거트가 묻어 있었다. 마치 누군가 큐 싸인을 주기라도 한듯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공들여 빠진 데 없이 고루 뿌렸다. 내가 나도 모르게 큐를 줬나? 여하튼 대형 사고였다. 뿌린 건 둘째 아이였지만 원인 제공과 수습 책임은 모두 내게 있었다. 이륙하면서 귀가 아파 울까봐 파우치 요거트를 쥐어준 건 나였다. 물이나 줄걸. 아니 애초에 아이 둘을 데리고 혼자 비행기를 타지 말 걸. 후회하자면 끝이 없었지만 길게 곱씹을 겨를이 없었다. 비행기 안이 고요했다. 둘째 아이만 빼고. 파우치 안의 요거트를 모두 흩뿌려놓고 먹을 게 없자 화가 나는지 허리를 뒤로 꺾으며 울부짖는 중이었다. 왼편에 앉은 첫째 아이는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는지 창 밖만 바라보며 말이 없었다. 

 머리 끝에 알알이 맺힌 요거트 방울부터 흰색 린넨에 남은 비릿한 흔적을 닦는 사이 비행기는 청주즈음 날아온 것 같았다. 아직 닦을 곳이 한참 남았는데 그냥 내려버리고 싶었다. 혼자 청주공항에 내려서 바람도 쐬고 커피도 한 잔 마시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여기는 택시도 아니고 한 팔에는 낮잠시간을 넘겨 컨디션이 나빠진 13개월 아기가 허리를 꺾으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고 왼편에는 모친과 늘 한몸인듯 붙어 사는 네 살짜리 아이가 앉아 있었다. 왼팔로 아이를 둥가둥가하며 오른손으로 셔츠와 바지의 얼룩을 지웠다. 입에서는 쉴새없이 무언가 사죄의 말들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디 중요한 자리 가시는 건 아니신지요... 죄송합니다... 가슴 부분은 제가 닦을 수가 없어서 남겨뒀어요... 여기 계좌번호도 좀 적어주세요... 옆자리 승객은 요거트 테러를 당한 것으로도 모자라 쉴새없는 아기의 비명까지 가장 잘 들리는 자리에서 감내해야 했다. 앞자리에선가 중년 남성이 흘깃 돌아보며 눈빛을 주었다. 한 번 울부짖기 시작한 아이는 당장 내리고 싶다는 의사를 발길질로 표현했다. 나도 내리고 싶어 그런데 여기는 아직 만 피트 상공... 아이의 귓가에 단호하게 속삭였지만 원하는 답이 아니었는지 짜증만 거세어졌다. 왼편의 첫째만 없다면 안고 복도를 왕복하기라도 했을텐데 급변하는 사태에 불안감을 느낀 첫째 역시 내 바짓자락을 붙들고 눈알만 쉴새없이 굴리고 있었다. 

 잠시 후 김포공항에 착륙하겠습니다, 방송이 나오고도 비행기는 십여분을 더 날았다. 기내는 썩 건조하고 추웠지만 땀이 줄줄 흘렀다. 입술만 달싹이며 초조하게 창 밖을 바라봤다. 김포에 랜딩하고 휴대폰을 켤 수 있게 되자마자 옆자리 승객이 내리기 전에 송금부터 해야했다. 내리시기 전에 또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죄송합니다 이상의 강렬하고 번뜩이는 사죄의 단어는 없을까? 시인이었다면 이런 상황에서 무슨 단어로 뭐라고 사과했을까? 이상한 상상으로 치닫으며 발버둥치는 사이 비행기의 바퀴가 쇳소리를 내며 멈췄다. 착륙 굉음에 놀란 아이는 놀랐는지 비명을 지르다 말고 나를 쳐다보았다. 눈이 마주친 13개월 아이의 검고 윤기나는 두 눈동자는 아무것도 모른 채 태어나 처음 들어보는 커다란 소리에 겁에 질려 있었다. 

 한 비행기에 탄 승객들이 모두 짐을 챙겨 내릴 때까지 자리에 가만히 앉아 기다렸다. 아이 둘을 양 팔에 데리고 느릿느릿 비행기의 좁은 복도를 걸어가고 싶지 않았다. 뒤에 줄줄이 서 있는 사람들을 기다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누구의 길도 가로막고 싶지 않았다. 나는 원래 대략 그런 성향의 사람이었다. 누구의 길도 가로막고 싶지 않고, 모르는 이에게 빚지고 싶지도 않고, 아는 이에게는 더욱 더 빚지고 싶지 않은. 아이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정반대의 유형이 되어간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길 가운데를 막게 되고 생면부지의 사람들에게 빚을 지는 기분을 느낀다. 내가 아주 잘못 키워서라기보다는, 그냥 어린 인간을 키우는 일 자체가 일정 부분 그렇게 생겨먹었다는 생각이 든다. 깔끔하고 단정하게 아무런 민폐도 끼치지 않고 키워내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여겨진다. 말도 못하고 자신의 몸도 통제하지 못하는 작은 생명체는 의지와 욕구만큼은 성인과 똑같다. 여기저기를 쑤시고 들치고 치받으며 쉴새없이 영역을 넘나든다. 

 어렵게 어렵게 캐리어를 찾아 두 아이를 데리고 김포를 나서니 그제서야 아이들이 잠에 들었다. 땀을 흘리며 곤히 자는 아기의 숨소리를 들으며 평소 싫어하던 공차에서 밀크티를 사서 벌컥벌컥 마셨다. 좋아하지 않는 음료를 마셨지만 싫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아니 호불호가 작동할만큼의 여유가 없었다. 김해에서 김포까지 한 시간여를 날아오는동안 가슴 즈음에 있던 마음이 발 밑으로 훅 꺼져버렸음이 느껴졌다. 떨어진 마음을 주섬주섬 주워 올리는데 한없이 늘어지고 무거웠다. 한참 주워 담았는데도 어딘가 약간 모자란 모양이 되었다. 37-A자리, 한시간동안 사투를 벌였던 자리에 나머지 조각들이 고여 있을까. 무겁고 낮아진 채로 자꾸 가라앉으며. 긴 머리를 예쁘게 세팅했던 옆자리 승객은 어디로 가는 길이었을까. 중요한 날이었으면 어떡하나. 사과가 부족하다 느꼈을까. 십만원은 턱없이 적은 금액이었을까. 나를 뭐라고 생각했을까. 몰상식한 엄마들 중 하나라고 여기진 않았을까. 상상하면 더 괴로웠지만 생각이 멈추질 않았다. 

 의지대로 흘러갈 수 있다고 여겼던 날들은 꿈이 되었다. 의지와 상관없이 아니 정반대로 흘러간다. 새침하게 살기가 어려워졌다. 앞으로 또 어떤 말들로 사죄를 하게 될까. 알지도 못하는 사이 생면부지 타인의 길을 막고 서 있게 될까. 무엇도 확실하지 않아진 건 덤이다. 직장이나 직업같은 것, 나 개인이 좋아하는 작은 이야기들, 내면의 목소리, 사실 이런 것들이 그간 너무 비대해져 있었던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한마디로- 내 맘과 상관없이 남의 영역을 마구 돌아다니게 되고 동시에 개인은 무척이나 흐릿해져간다. 자아의 비중을 과감히 줄이지 않고는 쉽게 감내하기 어려운 과정이다. 내 안에서 진짜 중요한 가운데만 남기고는 거의 다 버려야만 지속 가능해진 삶. 남길 게 무엇인지 버릴 게 무엇인지 구분하는 게 삼십 대의 마지막 남은 숙제다.  

 

 

2022. 6. 3. 14:30

 

 요즘 동네 놀이터에는 나의 정적이 산다. 다섯살짜리 여자아이, 주로 자신이 통제하고 명령하기 쉬운 네살들과 어울려 놀길 좋아한다. 니가 저기 가서 돌멩이 주워 와! 아니야 거긴 가지 마! 내가 일등이고 너는 꼴찌야!... 같은 대사를 남발하는 골목대장 통제형 캐릭터. 놀이터 사교생활 일년여만에, 네살 아이들 대신 서른 여섯살이 발끈해 버렸다. 자려고 누운 밤에 아닌 척 우리집 네 살에게 살며시 물어본다. "ㅇㅇ이랑 노는 거 어때? 막 시키고 그래서 싫지는 않아?" "그래도 난 같이 노는 게 좋은데. 재밌는데?" "..."  이 무슨 영화 <우리들>같은 경우인가. 

 온 세상에 죄다 굽신굽신 지고 다니면서 동네 다섯살에게는 지기 싫어하는 서른 여섯살의 나. 같이 요이땅 달리기라도 하면 진심을로 달려버린다. 집에 와 이상하게 발바닥이 아파 집에 와 걸음수를 보면 만 이천 보(절반은 다섯살에게 지기 싫어 뛰었을 것이다). 추앙이고 해방이고 자시고 동네 다섯살부터 환대해야 하는데. 

 

 

 

 

 

2022. 6. 2. 13:01

 

 여름의 하이라이트는 바닥에 비친 나뭇잎 그림자를 쳐다보고 밟으며 지나다니는 일. 횡단보도 앞에서, 커피를 주문해놓고 기다리는 상가 앞에서, 일주일에 한 번은 들르는 소아과 가는 길가에서, 고개를 떨구면 발바닥 근처에서 아른대는 여름의 모양들. 바람에 흔들리는 생동감은 분명히 여름의 나뭇잎이지만 열기는 음소거되고 조용히 흔들리기만 한다. 여름 나뭇잎 그림자들은 아무리 밟아도 데지도 젖지도 않는다. 너무한 열기와 땀과 습도같은 것들을 필터로 곱게 한 겹 걸러내면 이런 모양이 될까. 한참 발바닥 언저리를 쳐다보다 앞으로 나아간다. 다음 여름 그림자를 밟기 위해서. 이 계절이 아니면 다시는 밞을 수 없는 여름의 나뭇잎 그림자들을 바라보기 위해서.

 겨울엔 겨울로 전력질주하지만 여름은 아무래도 조금 떨어져서 느끼는 편이 좋다. 이렇게 그림자나 밟으면서. 

 

 

 

 

2022. 5. 13. 10:52

 

 손으로 쓰는 다이어리를 아직 가지고 있어 가끔 스스로의 손글씨를 마주한다. 너무 못나서 생각했다. 아, 손글씨 쓸 일이 없어지니까 이렇게 글자 모양이 이상해지는구나. 다이어리를 덮으며 드르륵 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훑어보는데 떠올랐다. 아, 이게 원래 내 필체였구나. 손글씨 쓸 일이 있을 때도 나는 이런 모양으로 글자를 적었지. 예전에도 동글동글하거나 날카롭거나 무튼간에 자신만의 필체가 뚜렷한 사람들을 부러워했던 기억이 났다. 안 쓰다보니 못 쓰게 된 게 아니라 원래 못 썼던 걸 잊고 있었다. 매순간 얼마나 많은 합리화를 하며 살고 있는지. 

 

 

2022. 5. 12. 12:02

 

 과거만큼 안전한 여행지는 없다. 과거에서는 누구도 누구를 해치지 못한다. 일어날 모든 일은 이미 일어나거나 끝났으며 진행중인 사건들 역시 치명적일만큼 놀랍지는 않다. 중간 결과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괴로움이 희미해진 자리엔 비교적 좋았던 기억들만 남아 여행자들을 미소짓게 한다. 과거의 제국에 입장한 관람객들은 여기저기서 멈추어 서서 과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그 시절이 남긴 유산의 양에 놀라고, 기억이 가물거리면 사진첩이나 다이어리같은 해설지를 뒤적여본다.

 세상의 다른 박물관이나 유적지가 그렇게 하듯이, 입장객들에게 다만 오백 원씩이라도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과거의 인류를 그보다 더 생생하게 보존해둔 곳이 있을까. 개인과 무리의 모든 말과 행동이 사진과 텍스트로 박제되어 관람객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 100년 전의 생활상을 보듯 싸이월드에서 20년 전의 머릿속을 보고 놀란다. 여행이 끝나면 언제나 그렇듯 약간의 아쉬움과 홀가분함이 남는다. 입장료도 내지 않고 너무 놀라운 세상에 다녀왔다는 미안함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