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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6. 2. 13:01

 

 여름의 하이라이트는 바닥에 비친 나뭇잎 그림자를 쳐다보고 밟으며 지나다니는 일. 횡단보도 앞에서, 커피를 주문해놓고 기다리는 상가 앞에서, 일주일에 한 번은 들르는 소아과 가는 길가에서, 고개를 떨구면 발바닥 근처에서 아른대는 여름의 모양들. 바람에 흔들리는 생동감은 분명히 여름의 나뭇잎이지만 열기는 음소거되고 조용히 흔들리기만 한다. 여름 나뭇잎 그림자들은 아무리 밟아도 데지도 젖지도 않는다. 너무한 열기와 땀과 습도같은 것들을 필터로 곱게 한 겹 걸러내면 이런 모양이 될까. 한참 발바닥 언저리를 쳐다보다 앞으로 나아간다. 다음 여름 그림자를 밟기 위해서. 이 계절이 아니면 다시는 밞을 수 없는 여름의 나뭇잎 그림자들을 바라보기 위해서.

 겨울엔 겨울로 전력질주하지만 여름은 아무래도 조금 떨어져서 느끼는 편이 좋다. 이렇게 그림자나 밟으면서. 

 

 

 

 

2022. 5. 13. 10:52

 

 손으로 쓰는 다이어리를 아직 가지고 있어 가끔 스스로의 손글씨를 마주한다. 너무 못나서 생각했다. 아, 손글씨 쓸 일이 없어지니까 이렇게 글자 모양이 이상해지는구나. 다이어리를 덮으며 드르륵 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훑어보는데 떠올랐다. 아, 이게 원래 내 필체였구나. 손글씨 쓸 일이 있을 때도 나는 이런 모양으로 글자를 적었지. 예전에도 동글동글하거나 날카롭거나 무튼간에 자신만의 필체가 뚜렷한 사람들을 부러워했던 기억이 났다. 안 쓰다보니 못 쓰게 된 게 아니라 원래 못 썼던 걸 잊고 있었다. 매순간 얼마나 많은 합리화를 하며 살고 있는지. 

 

 

2022. 5. 12. 12:02

 

 과거만큼 안전한 여행지는 없다. 과거에서는 누구도 누구를 해치지 못한다. 일어날 모든 일은 이미 일어나거나 끝났으며 진행중인 사건들 역시 치명적일만큼 놀랍지는 않다. 중간 결과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괴로움이 희미해진 자리엔 비교적 좋았던 기억들만 남아 여행자들을 미소짓게 한다. 과거의 제국에 입장한 관람객들은 여기저기서 멈추어 서서 과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그 시절이 남긴 유산의 양에 놀라고, 기억이 가물거리면 사진첩이나 다이어리같은 해설지를 뒤적여본다.

 세상의 다른 박물관이나 유적지가 그렇게 하듯이, 입장객들에게 다만 오백 원씩이라도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과거의 인류를 그보다 더 생생하게 보존해둔 곳이 있을까. 개인과 무리의 모든 말과 행동이 사진과 텍스트로 박제되어 관람객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 100년 전의 생활상을 보듯 싸이월드에서 20년 전의 머릿속을 보고 놀란다. 여행이 끝나면 언제나 그렇듯 약간의 아쉬움과 홀가분함이 남는다. 입장료도 내지 않고 너무 놀라운 세상에 다녀왔다는 미안함과 함께. 

 

 

2022. 5. 12. 11:19

 

 딸아이는 늘 어린이집에 가기 싫어한다. 1년이 넘었는데도 다섯 번을 가면 세 번은 울며 들어간다. 누굴 탓할 수도 없는데 나도 엄청난 등원 거부자였기 때문이다. 유치원에 다닐 때는 아침에 화장실에서 일부러 나오지 않았고, 사회체육센터를 다닐 때는 셔틀을 타러 갔다가 나를 향해 오는 버스를 보고도 못 본 척 다른 곳을 쳐다보며 차를 놓쳤다(기사분이 클락션을 울렸던 것까지 생생하다). 또래들이 우글우글한 공간에서 몇 시간을 함께 밥도 먹고 놀이도 하고 잠도 자야한다니 상상만 해도...자신이 없어진다. 요즘도 누군가를 만나면 온 기운을 다 빼앗기고  허우적대며 겨우 돌아오는데 우리 딸아이도 그런 걸까. 

 문 안으로 아이를 들여보내고 나면 꼭 창문으로 선생님과 함께 나와 손인사를 하며 내가 돌아서는 모습을 지켜보는데, 늘 웃다가 울고야 만다.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마스크 위로 보이던 눈이 반달에서 여덟 팔자로 일그러지고 선생님이 아이를 안은 채 황급히 뒤로 돌아서면 나도 출석 어플을 체크한 뒤 돌아 나온다. 차라리 소리를 듣는다면 마음이 편할텐데. 소리 없는 울음의 모양을 보고 나오는 날이면 그 장면이 계속 떠오른다. 유리 너머 어렴풋이 보이던 울음의 모양, 들리지 않지만 그래서 더 잘 보이는 얼굴. 웃음에서 울음으로 변할 때 달라지는 근육들은 그 어떤 소리보다도 강렬한 이미지가 되어 잔상으로 남는다. 소리 없는 울음의 민낯은 얼마나 강렬한지. 

 

 

2022. 5. 11. 12:27

 

"두려울 게 뭐 있겠어요." 조급한 웨이터가 덧문을 내리고 일어나면서 말했다. "자신 있어요. 자신 만만하다고요." "젊고, 자신감 있고, 일자리도 있다 이건가." 나이 많은 웨이터가 말했다. "만사에 부족한 게 없군."

"그럼 아저씨는 뭐가 부족한데요?" "일자리만 빼고는 모든 게 부족하지." "저처럼 모든 게 있잖아요." "아냐, 자신감이라는 건 가져 본 적도 없고, 또 이젠 예전처럼 젊지도 않아." "자, 이제 쓸데없는 얘기는 그만하고 자물쇠나 채우세요." "나는 늦게까지 카페에 남고 싶어." 나이 많은 웨이터가 말했다. "잠들고 싶어 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밤에 불빛이 필요한 모든 사람들과 함께 말이야." 

 

 

 

2022. 5. 10. 11:07

 

 허허벌판 위에 홀로 솟아있는 원색의 탑과 기둥들이 몇 킬로미터 밖에서도 선명했다. 들판에 들어선 주차장에 차를 대자 멀리서 바람이 불어오며 노래가 들려왔다. 블럭으로 외벽이 장식된 호텔을 지나자 정문이 등장했다. 붉고 푸른 옷을 입은 직원들이 블럭의 손처럼 자신들의 손을 디귿자로 모아 오그린 채 아래 위로 흔들며 인사했다.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문을 통과하자 세상의 큰 것들을 죄다 옮겨둔 공원이 등장했다. 청와대, 여의도 63빌딩, 해운대의 주상복합건물, 산과 바다.

 블럭으로 이루어진 풍경들을 한참 보다가 왜 레고를 좋아하지 않는지 다시 알게 되었다. 무엇이든 조립하고 해체해서 세상을 구현해낸다는 그 컨셉 자체가 싫다. 크고 웅장한 자연물과 인공건축물부터 꽃에 이르기까지 무엇이든 박스 안의 비닐봉지 속에 해체되고 축소된 채로 들어가 있고, 설명서대로 쌓고 조립해 다시 그 모습을 만들어낸다는 구상 자체가. 초등학교 무렵 즈음에 누군가에게서 얻어온 블럭을 한참 조립하다 아주 메스껍고 머리가 아팠던 적이 있는데 그때부터였을까. 해체와 재조립을 싫어한다니 아무튼 조금이라도 나아가거나, 나아지기는 글러먹은 모양이지만 여하간 여전히 좋아할 수가 없다. 아무것도 해체되지 않고 조립될 이유도 없는 세상에서 살고싶다. 그래도 조립과 해체가 가능한 세상 중에서 꼭 선택해야 한다면, 큰 것들을 작게 만들어 소유하기보단 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을 크게 크게 확대해 바라보고 관찰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2022. 4. 29. 15:04

 

 2년에 걸쳐 세 번 보았다. 대형 수족관 속에서 한 시간 단위로 공연을 펼치는 사람. 갈 때마다 컨셉이 달라져 다른 의상을 입은 탓에 동일인인지 확신할 순 없지만 다녀올 때마다 인터뷰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를 수가 없다. 여기보다 조금 더 춥고 외따른 곳에서 살다 왔을 것만 같은, 어린 시절에 어떤 이유로 싱크로나이즈드를 배웠을 63빌딩의 인어공주. 가오리와 철갑상어떼 사이를 누비며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손키스를 날리는 사람. 점심으로는 무엇을 먹고 저녁에는 어떤 이불을 덮고 잘까, 꿈에서는 어떤 사람들과 무슨 대화를 나눌까. 아침이 오면 운전을 해서 여의도로 출근할까. 어떻게 해야 만날 수 있을까. 만나자고 하면 날 이상한 사람으로 여길까. 63빌딩에 다녀올 때마다 떨칠 수 없는 인어공주에 대한 마음. 

 

 

2022. 4. 29. 14:18

 

 집 회사 집 회사를 반복하며 사는동안 잊고 있던 봄철 알러지가 다시 도졌다. 하루에 서너 시간은 밖에서 보내는 탓이다. 약을 먹고 하루종일 졸음이 와 헤롱대는데 몸도 마음도 한없이 쳐져 6집을 들으며 하염없이 동네를 빙빙 돌았다. 셀 수 없이 많은 감정들이 마음을 스쳐지나가는 사이 만 보 정도를 걸었고 재채기는 더욱 심해졌지만 마음이 한결 나았다. 그래도 되나 싶지만 적어도 내게 음률이 주는 모든 멜랑콜리는 한 밴드에게서 온다. 언젠가 다시 라이브 무대를 볼 날이 올거라고 여전히 믿는다. 

 

 

2022. 4. 19. 11:32

 

 아침 일찍부터 소란스럽다. 장터가 열리는 날이다. 베란다에 서서 천막 갯수를 가늠해본다. 왼쪽부터 과일, 건어물, 해물, 채소... 즉석 돈가스와 닭강정, 분식집도 자리를 펼치는 중이다. 화덕피자를 구워내는 트럭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오늘 저녁으로 마르게리따 피자를 사와서 먹기로 첫째와 약속을 해놓은 참이다. 사야 할 식재료들도 많다. 이제 막 돌이 된 둘째도 삶은 제철 감자의 맛을 보더니 한 알을 혼자서 다 주워먹기 시작했다. 새벽 출근하는 남편은 당근 라페를 넣은 샌드위치를 좋아한다. 첫째는 블루베리나 산딸기가 보이면 놓치지 말라고 당부하고 어린이집엘 갔다. 점심으로 먹을 돈가스도 튀겨 와야 한다. 유리 그릇 하나와 에코백을 챙겨 장터로 나간다. 화요일이기 때문이다. 휴직생활을 시작하고 가장 크게 달라진 건 요일에 대한 감각이다. 

  일을 할 때는 그 날의 방송으로 요일을 가늠했다. 라디오 프로그램은 보통 일주일 단위로 주간 코너를 가지고 있다. 월요일은 책을 소개하는 코너, 화요일은 선곡 대결이 있는 날, 수요일은 디제이가 혼자 진행하는 날, 목요일은 라이브 코너가 있는 날... 이런 식이다. 모든 요일은 방송을 기준으로 돌아간다. 금요일에 생방송을 하지 않는 경우엔 주말 방송분까지 사흘치를 열심히 편집해야 하는 날. 편집기 앞에 하루종일 앉아있다 샌드위치를 사와서 먹으며 3초, 5초, 10초씩 분량을 덜어내는 작업을 하다보면 어느새 퇴근 시간이었다. 

  일을 멈춘 지 1년쯤 지나자 감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월요일엔 6단지에서 장이 열리고 화요일엔 우리 단지에서, 금요일엔 5단지에서 장이 열린다. 비슷비슷하지만 포인트가 조금씩 다르다. 6단지 장터에선 즉석도넛집을 좋아한다. 명태식해를 무쳐서 만 원에 파는 가게도 있다. 국은 끓이고 단품 요리는 해봤어도 밑반찬은 영 못하는 내겐 밑반찬 파는 집이 많은 장터가 동앗줄이다. 장이 열리는 날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각 단지를 다니며 하나라도 사온다. 미역국은 내가 해서 먹을 수 있지만 오징어채나 멸치볶음은 잘 못한다. 5단지 장터엔 그 날의 국과 김치를 담궈 파는 분이 계신다. 여름이 다가오기 시작하면 빨리 움직여야 한다. 텅 빈 김치냉장고를 열무김치로 채워넣어야 점심을 굶지 않을 수 있다. 

  육아휴직 1년, 시간표가 프로그램 주간 구성안에서 주간 식단으로 바뀌어간다. 먹는 일에도 방송 못지 않게, 아니 어쩌면 방송보다 훨씬 더 많은 수고가 필요하다. 방송은 재료를 잘 세팅해두면 어느 순간부터는 알아서 굴러가기도 한다. 성능 좋은 냉장고 안에 유기농 재료들을 칸칸이 잘 채워넣으면 어느 순간 요리가 완성되어 있기도 한 경우랄까. 주기적으로 냉장고가 비지 않게 재고 관리를 하고 요리의 마지막 단계에서 간에 신경을 쓰면 아주 큰 하자가 발생하진 않는다. 하지만 진짜 먹는 일엔, 단 한번의 '저절로' 도 허용되지 않는 편이다. 아무리 좋은 유기농 재료를 냉장고에 채워둔들 시간이 지나면 음식쓰레기가 될 뿐이다. 밀키트로 떼운다 하더랄도 불을 올리고 물을 끓이며 몸을 움직여야 한다. 밥을 열 번 짓는다고 해서 가면 갈수록 밥 짓는 시간이 짧아지는 것도 아니다. 한 끼를 해결하는 덴 언제나 만만치 않은, 그 날 분량의 새롭고도 놀라운 수고가 투입된다. 물론 가장 놀라운 건, 그렇게 밥을 지어 먹어도 몇 시간이 지나면 또 배가 고파진다는 점이다. 

 입맛이나 먹을 수 있는 재료의 종류가 모두 다르단 것도 염두에 둬야 한다. 우리 집엔 어른 두 명과 세 돌, 이제 갓 돌인 아이 두 명이 함께 살기에 조금 더 까다롭다. 앞니 몇 개로 대부분의 음식을 씹어먹는 둘째에겐 무른 음식들이 필요하다. 주로 소고기나 오징어, 야채를 함께 갈아 완자를 만들거나 데쳐서 준다. 남는 재료로는 어른들이 먹을만한 음식을 만들어 소진한다. 아이 둘과 어른 둘이 먹는 일을 신경쓰는 데만 해도 일주일의 시간표가 빡빡하게 들어찬다. 나름 신경을 쓴다고 써도 언제나 결과물은 시원치않다. 어찌저찌 장을 봐다가 무언가를 먹고 먹였다는 데서 위안을 삼는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열심히 장을 보고 나면 주말이 온다. 일을 하지 않아도 금요일은 여전히 좋다. 주말이라고 아이들을 돌보는 일이 쉬워지진 않지만, 묘하게 달라진 다른 흥분이 있다. 한데 모이기 어려운 네 사람이 하루종일 어울려다니며 단합대회를 하는 느낌이다. 오트밀에 우유를 부어 다 같이 아침을 먹고,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지 고민한다. 냉장고에 일주일 내 남아있던 잔반도 처리한다. 우당탕탕 모여 여섯 끼니를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챙겨먹다보면 시간이 달아난다. 월요일이 다가온다고 출근할 일은 없는데도 왠지 마음이 저려온다. 뭔가 깜빡하고 처리하지 않은 일이 있는 것만 같다. 주말에 나가는 녹음방송에 광고를 제대로 넣었는지 스스로의 정밀성을 의심하게 되는 순간. 제대로 된 노래 대신 MR을 심어넣은 건 아닌지 갑자기 초조해지는 일요일 저녁. 평일의 감각은 완전히 달라졌지만, 주말이 끝나는 소리는 여전히 귓전을 때리며 온 몸을 관통해온다. 그래보았자 월요일이 되면 다시 6단지 장터를 향해 에코백을 매고 갈 뿐이지만. 

  육아휴직 1년. 수입은 줄었지만 먹고 사는 일 그 자체에는 한뼘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장터에 펼쳐졌던 천막의 소란이 조금씩 잦아들고 있다. 화요일이 절반 넘게 지나갔다는 표시다. 

 

 

 

 




2022. 4. 19. 11:06

 

 "사랑하면 얼굴을 많이 봐야되는데, 나는 어린이집에 다녀서 엄마 얼굴을 많이 못봐. 엄마 사랑을 많이 못 받는 것 같아."

 37개월의 항변에 대꾸할 말이 없어 내일은 함께 놀러 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