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main image
분류 전체보기 (177)
A (177)
Visitors up to today!
Today hit, Yesterday hit
daisy rss
tistory 티스토리 가입하기!
'A'에 해당되는 글 177건
2021. 12. 15. 12:44

 

필요에 의해 써보는 책상시리즈 1 

부제 : 모범생은 책상에 앉으면 마음이 편해지는가? - 책상의 원형기억을 찾아서

 책상의 원형은 낡은 공립 고등학교에 놓여있는 1인용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기저기 생채기가 나고 낡아 반질반질해진 목재 합판으로 이루어진 책상. 잿빛 철재로 이루어진 짧은 다리와 책 몇 권이 들어가는 서랍이 아래로 달려있다. 코팅때문인지 아니면 수많은 엉덩이를 거치며 닳아서인지 반질반질했던 의자는 엉덩이를 깊숙이 붙이고 앉아야 나았다. 의자에 90도로 허리를 맞춘 다음 책상에 바짝 붙여 배와 책상의 거리를 최소화하는 방식. 책상에 윗배가 살짝 눌릴 정도로 앞으로 가 닿으면, 몸의 무게를 의자와 책상에 앞과 아래로 분산시킬 수 있어 한결 안정적이었다. 

 그 시절 책상에서는 거의 모든 것이 가능했다. 아니, 모든 것을 해결해야 했다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0교시인 8시에 책상에 앉으면 야간자율학습이 끝나는 10시까지 책상에 붙어있어야하니 하루 최소 14시간을 보낸다. 당연히 책상은 밥상이자 침상이기도 했는데, 희한하게 책상일 때는 어떤 자세를 취해도 불편하기만 하던 그 작은 가구가 쪽잠을 잘 때만큼은 기가 막히게 몸에 착 감기곤 했다(누구에게나 있는 경험일 것이다). 차가운 철재 다리나 책상의 거친 옹이도 잠을 자고자 하는 학생들의 욕구 앞에선 아무런 장애물이 되지 못했다. 다만 앞으로 구부러지며 가슴이 압박되는 자세 때문인지 책상에서 자면 가위를 자주 눌렸는데, 다음 교시가 시작되어 선생님이 문으로 들어오시는 장면이 보여도 도통 일어날 수 없었다. 뺨을 맞대고 누운 늙고 낡은 책상에서의 잠은 아주 진득하고 또 끈적였다. 옆에 앉은 짝꿍이 세차게 몸을 흔들어주기 전까진 도무지 뺨을 떼어내기 어려울만큼. 

 일단 책상에서 한숨을 돌리고 나면 나머지 일과는 편하게 흘러갔다. 침자국을 닦아내고 급식을 받아와 먹은 다음 음식물 자욱도 닦아낸다. 하루 한 번은 닦아줘야 또 뺨을 부비며 잘 수가 있으니까. 낮은 의자 등받이에는 언제든 덮을 수 있는 체육복 상의가 걸려있어 포근함을 연출했다. 본연의 취지에 맞게 수업을 듣고 필기를 하고 잠깐 딴 생각이 나면 죄 없는 책상 위를 볼펜으로 살짝 긁어 뭔가를 적어둔다. 십대 소녀에게 응당 있을 법한 심각한 고민같은 것... 다음 날 보면 H.O.T forever라고 적혀있을 따름이었지만. 나 말고 대부분의 아이들도 책상 위에 무언가를 즐겨 썼다. 누군가를 향한 사랑이나 증오나 분노나 아니면 다음 시험 과목에 반드시 나올 것 같은 공식같은 것들. 입 밖으로 소리내어 말할  없는  일단 책상에 써 두었다. 나 말고도 누군가 봐주길 원하는 소극적인 발언. 수신인 없는 그 낙서들을 발견하게 되는 건 대개 주말 사이 토익시험을 치러 온 수험생들이긴 했지만. 

 그 시절 책상은 작은 요새였다. 모범생이었던 내가 자습시간에 책상에 잠들어 있으면 선생님들은 대개 밤에 공부를 늦게까지 해서 피곤한 알았다. 새벽 두세시까지 깨어 신해철의 고스트네이션을 듣느라 피곤한 줄은 당연히 몰랐다. 낮 두시의 자습시간엔 윤도현에서 윤종신으로 이어졌던 두시의 데이트를 들었다. 졸거나 다른 짓을 하는 것처럼 보여 내 앞으로 다가오던 선생님들도, 책상 위에 근엄하게 붙어있는 두 사진을 보면 그냥 돌아섰다. 왜인지 2000년대 초반 내 책상에는 체 게바라의 사진과 서울대 사회과학대학교의 사진이 나란히 붙어있었다. 굳이 해석해보자면 체제에 저항은 하고싶은데 좋은 대학엔 들어가고싶다, 반항하고 싶지만 좋은 대학에 들어가서 이상주의적인 단어들로 내 반항심을 표출해보고 싶다, 정도였을까. 사실 해석할 필요도 없고 당시가 체 게바라의 사후 30주년이라 그냥 베스트셀러였다. 게릴라라니...왠지 멋있잖아! 국사책 표지에는 동네 베스킨라빈스에서 떼어온 김재원 포스터가 오려 붙여져 있었으니 김재원과 체 게바라와 서울대 사회과학대학의 붉은 건물은 서로 영문을 모른 채 나란히 펼쳐져 있었다. 그야말로 대혼란의 책상. 

 아무리 알 수 없는 조합으로 책상이 가득찼다 해도, 그 책상은 내 것이었다. 조가 바뀌거나 줄이 바뀌면 대개 책상과 의자를 들고 함께 이동했다. 그래서 책상은 때때로 개인의 환유로 쓰였다. 누군가 자리를 비우면 자리에 하고 싶은 말을 전했다. 과자나 쪽지를 올려두고 화해를 청하기도 수다를 걸기도, 때론 소심한 해꼬지들이 책상을 통해 오가기도 했다. 하긴 하루에 열 너댓시간을 보내는 곳이니 책상에 우리의 일부분이 정말로 깃들지 않았으리란 법도 없다. 목소리가 스며들고 침이 스며들어 책상은 더욱 낡아갔고 아이들은 책상에서 나아가 졸업했다. 학교를 떠났다해도 책상에 길들여진 생활의 패턴은 변하지 않았다. 일곱 살에 입학한 공립학교에서 처음 만난 낡은 목재 책상, 그리고 거기에 앉아 하루의 대부분과 일상의 대부분을 보내는 삶. 책상 위에 앉아 웃고 울고 쓰고 읽고 밥을 먹고 쪽잠을 청하고 여가를 누리던 하루의 패턴. 내 일평생의 안정감. 

 - 

 이제 책상과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에게 아주 편한 존재다. 아니 적어도 책상을 아주 가까이 여기며 살아가고 있다. 무엇이든 일단 책상 위에서 해야 편해지기 때문에, 쇼핑도 영화 보기도 일단 책상에 앉아 의자를 바짝 끌어당겨 앉은 채 시작한다. 자세를 잡고 나면 내용은 어떠해도 상관없다. 인스타그램으로 남들이 얼마나 잘 사는지 구경하며 부러워하는 동시에 이마트 홈페이지에 들어가 쿠폰을 다운받는다. 2미터 거리두기를 한 채 이런 내 모습을 보면 너무나 학구적이겠지. 모범생은 삼십대가 되어도 언제나 지금 내 모습이 어떻게 보일지 의식하며 산다. 정작 내가 책상에서 하는 일의 구 할은 시간 흘려보내기인데도 말이다. 다른 장소에서 시간을 쏟아버릴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책상에 앉게 된다. 거기서 시간을 흘려보내면 왠지 아주 사소한 일에도 의미가 생기는 것만 같아서.

 문제가 생긴 건 3년 전이다. 더는 책상 생활이 가능하지 않다는 선고를 받은 것이다. 어쩌면 앞으로도 꽤나 불가능할 거라는. 당황스러웠다. 그럼 전 이제 어디에 있어야 하나요? 

 

 

 

 

 

 

 

 

2021. 12. 10. 10:55

 

 새 책을 주문하면서 동시에 하는 생각이 있다. 이걸 어디에 두지. 얼른 보고 빨리 처분해야겠다. 책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 책은 택배 봉투를 북북 뜯으며 새로 사서 읽는 걸 좋아하는데 도무지 둘 곳이 없다. 삼년 전 이사를 하며 가진 책의 거의 대부분을 처분했는데도 여전히 쌓이고 또 쌓인다. 정작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 책이 찾아보면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얼마 전엔 내겐 중요한 책 한권이 도통 보이지 않아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알라딘 중고서점에 내 이름이 적혀있는 싸인본이 돌아다니는 꿈을 꿨다...저자분들, 부디 고의가 아님을 알아주세요). 오늘도 새 책을 주문해서 보려다 이걸 또 어디 두지 한숨부터 쉰다. 어쩌다 책 한 권 둘 곳이 없어서 떠도는 신세가 됐단 말인가! 

 

 

2021. 12. 2. 12:18

 

 자율주행중인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비둘기를 치어 죽게 했다면, 타고 있던 사람은 죄책감을 덜 느끼게 될까.

 동네에서 자율주행 챌린지가 열렸다. 평소에도 차가 드문 동네라 운전면허학원의 연습용 노란 차들이 늘 줄지어 다닌다. 나도 십년 전 일부러 여기서 면허를 땄다. 길은 넓고 반듯한데 차가 비교적 드물다. 자율주행 차량들도 이 동네에서 달리면서 한결 마음 편했을 것이다. 갑자기 차선이 줄어드는 일도 없고 좁은 골목길을 비집고 나가지 않아도 된다. 앞으로 탁 뻗은 도로를 무사히 잘 달리며 신호만 잘 지켜도 아무런 문제 없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는 곳. 대체로 아무 문제 없이.

 -

 그 날도 차는 목적지에 잘 도착했다. 주차를 하고는 겨우 내려서 실눈을 뜨고 바퀴를 확인했다. 꼼꼼히 볼 자신이 없어 휙 스치듯 보았다. 혹시 뭔가가 바퀴에 눌러붙어있다면 어떡해야하나. 상비약처럼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수많은 걱정목록 중에 로드킬은 미처 없었다. 로드킬에 대처할 수 있는 비상가방같은 건 생각하지도 못했다. 꾸리려고 배낭을 열어봤자 무엇을 넣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비둘기들이 잘 모여있는 회전교차로를 진입하던 순간이었다. 차도에 나와있던 비둘기 두 마리가 웬일인지 날아가질 않았다. 비둘기를 보고 속도를 줄여 느리게 진입한 게 문제였다. 차라리 빠른 속도로 인기척을 내며 들어왔으면 평소처럼 날아가버렸을텐데. 멀리서부터 숨죽여 들어온 자동차 앞에서 비둘기 두 마리는 태연하게 바닥의 무언가를 쪼고 있었다. 일단 비상등을 켰다. 내려서 쫓아야 하나. 몇 초간 고민했을까, 뒤에서 경적을 울렸다. 빵 아니고 빠바바바방, 얼른 비켜 이 XXX아... 라고 말하진 않았지만 백미러로 보이는 노란 택배차량의 운전석에 앉은 남자는 표정으로 화를 내고 있었다. 순간 당황한 나는 그대로 악셀을 밟았다. 비둘기는 시야에서 사라졌다. 제발 그 사이 날아갔길, 경적을 듣고 놀라 옆으로 비켰기를 빌면서. 

 아 제발, 제발, 제발... 하고 중얼거리면서 회전교차로를 돌아 나오는데 작은 출렁임이 느껴진다. 평소에 몰랐던 턱이 여기 있었을까. 아니면 원래 경사가 있었나. 아니면 너무 긴장하고 신경을 써서 그냥 과민하게 느낀걸까. 제발 제발 하던 중얼거림은 미치겠네, 미치겠네, 이렇게 바뀌었다. 뒤따라오던 노란 쓱 차량은 교차로를 벗어나 무심하게 옆 단지로 진입했다. 노랗고 커다란 트럭이 괴물처럼 느껴졌다. 아니 사실 그 순간 괴물이 된 것은 내가 몰던 작은 은색 승용차였을 것이다. 이제 아이를 등하원시키는 용도로만 사용하는 낡고 정든 차, 그 순간엔 아주 무겁고 매서운 쇳덩이였을. 

 -

 내가 비둘기를 치어 죽였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냥 납작 눌러놓기만 하고 교차로를 빠져나왔을까. 두 마리 다 치어버린 건 아닐까. 며칠간은 회전교차로를 지나지 않고 멀리 돌아왔다. 놀이터를 가는 길에도 장을 보러 가는 길에도 시선을 주지 않았다. 어쩌면 그 출렁임은 그냥 순간의 착각였을지도 모른다. 오래된 포장 도로에 흔히 있는 요철이었을지도. 비둘기들이 얼마나 날쌘데 아무렴 그 큰 경적을 듣고도 가만히 있었을리가. 일주일쯤 지나서 다시 회전교차로를 지났다. 천천히 진입해 천천히 돌아나왔다. 교차로 가운데 있는 작은 텃밭에서 비둘기들은 여전히 뭔가를 찾고 있었다. 출렁거림은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도로는 평평했고 악셀을 밟는 발 끝은 조용하기만 했다. 

 자율주행 챌린지를 위해 늘어서있는 자동차들을 보며 궁금해했다. 이 차를 타고 가다가 비둘기를 치어 죽게 한다면 죄책감은 자동차와 절반쯤 나누게 될까. 아니 개발사와 절반쯤 나누게 될까. 챌린지에 나온 자동차들 중에는 심지어 전투용 장갑차가 있었다. 장갑차 위에는 드론이 달려 있어 드론이 적을 알아보면 장갑차가 포를 쏜다고 했다. 장갑차가 자율주행해서 알아서 적을 죽이면, 전쟁의 책임자들도 사람들 죽였다는 직접적인 책임감은 덜 느끼게 될까. 이미 여러 곳에서 그런 전쟁은 진행중이고, 이 편에서도 사람이라서 어쩔 수 없이 드는 죄책감같은 것역시 점점 덜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누구의 것도 아닌 출렁임만 어슬렁거리며 출렁출렁 여럿을 죽이고 있을까. 

 -

 발 끝에 느껴지던 작고 경미한 출렁임을 기억한다. 차가 스윽 하고 넘어서던 작은 동산같은 것. 차는 아무렇지 않게 다음 구간으로 진입했지만 그 순간 무언가가 부서지고 잘려나갔을지도 모른다는 의심까지 넘어서진 못했다. 쟁반노래방의 쟁반이 웃고 떠들던 사람들의 머리 위로 불시에 떨어지는 것처럼, 죽음은 도처에서 불시에 생명체를 기습한다고 생각해왔다. 막연히 피격만 두려워할 때는 그랬다. 이젠 조금 달리 걱정한다. 내가 어디선가 쟁반을 떨어트리는 처지가 될지도 모른다고. 단단히 붙잡아야 한다고. 식은땀 나는 두 손으로. 

 -

 그 날, 경적이 아무리 울려도 잠깐 내려서 비둘기를 손으로 날려보낼 수 있었다면. 

 금방 아주 멀리 날아갔을텐데. 

 

 

 

 

 

 

2021. 11. 26. 13:59

 

 첫째 아이는 새벽에 한 번정도 깬다. 둘째 아이는 두 시간마다 한 번씩 깬다. 합하면 밤새 나는 대여섯번을 일어나야 한다. 어쩔 수 없이 꿈의 중간에 깨어나 당황스러운 장면을 생생하게 기억하게 되는데, 어제는 꿈에 박근혜가 나왔다. 눈빛이 흐린 박근혜가 내게 다가와 손을 덥썩 잡았는데 손이 식은땀으로 축축해 진저리치며 뒷걸음을 쳤다. 아침에 정신을 차리고는 그래도 전두환이 나오지 않은 게 어디냐고 혼자 위안했다. 그래도 박근혜는 최소한 여기에 살아있는 사람이니까. 

 

 

 

2021. 11. 19. 11:11

 

 어두워진 뒤 남부지법 앞에서 택시를 잡으려던 순간이었다. 갑자기 내 머릿 속으로 다른 존재가 비집고 들어올 것만 같은 공포에 휩싸였다. 빙의가 되려는 건가? 택시를 겨우 잡아타고 집에 오기는 했지만 증상이 이따금씩 계속됐다. 특히 저녁시간에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면 심해져어느 날인가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 내려야 했다. 내과에 들러 피검사며 심전도검사도 했지만 이상한 데가 없어 그냥 걱정하고 가끔 울며 지낼 때였다. 

 얼마 전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다 갑자기 그 때가 떠올랐다. 이제는 공황장애 증상 같은 것들이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어 낯설지 않지만, 대학생이었던 나는 그 증상이 마음의 문제란 건 몰랐다. 열두 시간 넘게 내리 방청했던 시범 국민참여재판의 내용이 어린 내게는 쇼크였고 트리거가 됐을지도 모른다는 것도 이제서야 짐작할 뿐이다. 어디든 병원, 병원, 진료를 받아야 했다. 버스에서 내려 눈 앞에 보이는 한의원에 무작정 들어간 건 불이 켜져 있어서였다. 퇴근 시간이 지난 후였다. 간판은 걸려있지 않았지만 '한의원 개원 준비중' 이라는 현수막이 붙어있었고 그 옆엔 지금도 진료중이라는 안내가 덧붙여져 있었다. 

 2층이었나 3층이었나 계단을 걸어 올라가니 환하게 밝혀진 한의원 안에선 몇몇 사람들이 내부를 정돈하고 있었다. 개원을 앞두고 이리저리 집기를 배치중인 것 같았다. 갑자기 이러저러해 진료를 좀 봤으면 좋겠다고 하니 선선히 그러라고 해주어 고마웠다. 진맥도 보고 이름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뜸도 뜨고 한 시간 가까이를 탕약 냄새가 은은한 한의원에서 누워 쉬었다. 진료를 마칠 때는 무슨 환을 권하며 한 달 정도를 먹으면 컨디션이 훨씬 좋아질거라고 해, 40만원인가를 결제하고 환을 받아왔다. 검고 동그란 초콜릿처럼 생긴 환이 서른 개 정도 들어있는 금장 박스를 챙겨 나오는 길엔 한결 나았다. 돈이 아까워 환은 일단 챙겨먹었는데 그 덕분인지 차츰 나아지는 것도 같았다. 

 나아가는 줄도 모르고 살던 어느날, 자주 타던 노선의 버스를 타고 지나가다 그 한의원 앞에 섰다. 한 달도 넘게 시간이 흘러 이젠 정식으로 간판이 달려 있었다. 저기가 그 한의원이네 그때 참 감사했는데... 애틋하게 쳐다보는데 간판에 적힌 이름이. 

 

탈모 전문 한의원

 

 어, 하고 눈을 치켜뜨는 사이 버스는 다시 앞으로 내달렸다. 명동의 복잡한 건물들과 사람들 사이로 탈모 한의원의 간판은 점점 사라져가는 중이었다. 명동 롯데백화점 맞은 편 아주 목 좋은 건물의 2층인가 3층, 아무리 봐도 똑똑히 탈모 전문이라고 쓰여있던 간판의 굵고 힘찬 글자체. 짧은 순간이었지만 탈모 한의원이란 건 확실했따. 난 머리숱 너무 많은데... 10여년 후 원형탈모의 고통을 겪을 줄은 꿈에도 몰랐던 20대 초반의 나는 텅 비어가는 버스에서 혼자 괜한 배신감을 느꼈다. 탈모라니 난 머리숱 너무 많아서 탈인데.

-

 나은 줄도 모르고 낫고, 나는 줄도 모르고 나면서 산다. 머리를 감고 말리는데 잔디처럼 자라나는 새 머리카락이 한가득이다. 이리 넘겨도 저리 넘겨도 길이 들지 않는 새 머리카락 몇 웅큼들. 아기를 낳고 갑자기 여기저기 동그랗게 머리가 빠지기 시작해 꿈에서도 비명을 지른 게 얼마 전인데 나는 줄도 모르는 사이 여기저기 머리가 자라기 시작했다. 원형탈모의 대가가 대학병원을 나와 개업했단 얘기를 듣고 강서구 어딘가를 찾아갔던 건 아주 전생처럼 까마득하다. 이젠 언제 다시 퍼머를 할 수 있나 그런 걱정만 하며 산다. 

 탈모 한의원에서 환을 지어먹고는 미국에도 다녀오고 저녁 노을이 내릴 때 버스를 타고 한강대교를 지나다니며 센티멘탈에 잠기기도 했다. 지하철은 지금도 잘 타지 않지만 버스 탈 일이 있으면 즐거워하며 잘 탄다. 그 시절 버스에서 내려 급히 찾았던 한의원도 여전히 성업중이다. 명동 롯데백화점 맞은 편 그 자리는 아니지만 가끔 체인점 간판을 볼 때마다 기억하려 한다. 나은 줄도 모르고 나았다는 걸, 그게 축복이라는 걸. 몸이든 마음이든 어딘가 아파 괴로워 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은 줄도 모르고 나아서 사세요, 하고 마음 속으로 기도한다. 정체불명의 검은 환을 씹어먹는 사이 비싼 약값이 억울해서든 진짜 약발이어서든 아프다는 것조차 잊었던 오래 전의 나처럼. 십 년쯤 후엔 사람들과 밥을 먹다 우스개로 써먹을 수 있기를.

 때론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도움이 온다. 한 달치 환을 다 먹고 다시 찾았던 그때 그 한의원, 원형탈모 부분탈모 전두탈모 환자들 틈에서 나 혼자 풍성한 머리숱을 자랑했던 그 로비 풍경은 참 뜬금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뜬금없는 곳에서조차 스위치가 탁 올라가 깜깜하던 사방을 순식간에 밝힌다. 그렇게 마음이 나은 줄도 모르고 낫고, 머리카락이 나는 줄도 모르고 나며 살아간다. 모르고 살아가는 게 축복이라는 것 하나만 알면서. 

 

 

 

 

 

 

 

 

 

 

 

2021. 11. 11. 14:17

 

 카페에서 때이르게 흘러나오던 캐롤에도, 새벽잠을 깨운 아기의 울음소리에 얼핏 보았던 눈발에도, 꺼내입은 패딩과 코트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는데 계란을 사다 망연자실해져버렸다. 초록마을에서 산 한 판 계란을 들추자 쪼르르 직힌 난각번호 옆 유통기한에 새겨진 글씨, 12월 1일. 기어이 올해의 마지막 시즌도 생활 속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2021. 11. 6. 00:23

 

2006년 가을의 일기. 나 오늘도 낙엽 주워 들어왔는데...

 

 

--

 

일주일이 또 빠르게 지나갔다.

선거신문 덕에 수요일부터는 학교에서 밤새고 어쩌고 하느라

여하튼 이제 선거신문은 끝났다. 다음주는 82호 마감이다.

 

교열 마치고 늦게 돌아오는데 앞에 터덜터덜 양복 입은 아저씨가 걸어가길래

아 정말 저런 어른의 삶은 시시하겠다

라고 생각하는 순간 아저씨가 뒤로 홱 돌아섰다.

 

 

깜짝 놀랐는데 길에 떨어진 낙엽 한장 주워 가시더라

 

--

 

 

 

 

2021. 11. 5. 13:31

 

 

100킬로미터로 김포한강로를 달린 다음 십여분간 일방통행 농로를 지나 농장에 다다랐다. 근처 수풀에서 신나게 뛰어노는 아이에게 내가 가장 많이 한 말, "야생진드기 조심해야해!" 잠들기 전 생각해보니 얼마나 황당한 이야긴가. 평생을 야생진드기는 커녕 야생 근처에도 가까이 가본 적 없는 주제에 야외에 나오면 가장 무서워하는 게 야생진드기라니. "이런 덴 야생진드기가 많으니까 진짜 조심해야된다구!" 정작 야생진드기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데... 방금 네이버 이미지 검색을 해보고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꿈 속에서도 맴 논밭 주위를 맴돌며 불안하게 외치던 나. "치사율이 얼마나 높은데 엄청 무섭다구!" "???"


 

 

 

 

 

 

 

2021. 10. 29. 11:57

 

 며칠 전 합정역을 걸어 지나가다 바닥에서 아주 붉게 잘 물든 단풍을 보았다. 몸을 굽혀 단풍을 주워들고 뒷면에 벌레 먹은 데가 없는지 확인하고 있는데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마침 내가 단풍을 주워들고 있던 곳이 합정역에 많은 발코니형 카페 바로 앞이었던 것. 단풍잎을 주워 허리를 펴자 데이트중인 것 같은 커플과 눈이 마주친다. 왠지 좀 민망해지긴 했지만 당당하게 단풍잎을 가디건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가을이 되자 길을 가다 만날 수 있는 거의 모든 나무들엔 열매가 달리기 시작했다. 저기도 열매가 있어? 싶은 곳에도 어김없이 손톱보다도 작은 열매들이 맺힌다. 키 작은 관목부터 나뭇가지를 주워들고 아무리 흔들어도 닿지 않는 높다란 사철나무들에까지. 우리 동네에는 꽃사과와 산딸나무, 땡감이 한 차례 지나갔다. 이제 곧 구기자가 열리고 떨어질 차례다. 

 왜 모르고 살았지, 하고 나무를 하염없이 쳐다보다가 그렇지만은 않을 수도 있단 생각을 했다. 아주 오래 전엔 나도 이 모든 열매들을 뜯고 맛보기도 하고 주머니에 소중하게 넣어뒀다 터지면 울기도 했을 것이다. 멈춰 서서 굽어보고 들여다보고 작은 숲 안으로 들어가볼 여유가 없어 아주 오랫동안 잊고 있었을 뿐. 

 오늘도 주머니 속엔 익은 열매들, 너무 익어 터지기 직전의 열매들, 아직 덜 익어 초록 풋내 나는 열매들로 가득하다. 열매, 열매, 눈 닿는 모든 곳에 여전히 열매가 맺혀 있다. 아직 한 번도 만져보지 못한 새로운 것들로. 키가 조금 더 컸으면 좋겠다. 높이 달린 열매들을 마음껏 만져볼 수 있게. 요즘 난 새로 태어난 사람처럼 아주 신기한 것 투성이다. 

 

 

2021. 10. 26. 14:03

어둠 속에서 보이는 건 자라 한 글자 뿐이었다. ZARA. 자라의 오십원짜리 쇼핑봉투가 힘 없이 집 앞에 놓여 있었다. 택배는 아니었다. 누군가 정확히 현관 앞에 두고간 종이봉투였다. 무성의하게 찢은 연습장 한 장이 절반 정도 위로 비죽 솟아있었고 드문드문 보이는 글자 몇 개. 놀란 우리는 발걸음을 멈췄다. 예사롭지 않은 봉투임이 분명했다. 적어도 자라의 스웨터나 티셔츠가 들어있는 게 아님은 틀림없었다. 열어보고 싶지 않았지만 얼른 열어서 확인해야 집에 들어갈 수 있을 터였다. 아이 두 명을 각자 안은 채 주춤주춤 봉투로 다가갔다.

죽 찢은 연습장에는 사인펜으로 썼음직한 한 문장이 두 줄에 나뉘어 적혀있었다. "키워/보세요". 휘갈겨 대충 쓴 것이 분명한 종이 한 장에는 보내는 사람도 이유도 설명되어 있지 않았다. 거기서 확실한 건 단 하나뿐이었다. 그 자라 봉투의 수신인이 우리 가족이라는 것. 봉투의 입구는, 모르는 척 슬며시 옆으로 밀어둘 수도 없게 확실히 우리 집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키워/보세요, 라니. 대체 종이봉투에 뭘 넣어둔걸까. 두려운 마음으로 휴대폰 라이트를 켜 종이봉투 안을 비추었다. 푸다닥. 무언가 살아있는 생명체가 움직이고 있었다. 밀봉된 투명 봉투 안에 묵직한 생명감이 느껴져왔다. 심지어 하나가 아녔다. 뒤에서 눈이 동그래져있던 아이가 흥분 반 두려움 반이 섞인 목소리로 소리질렀다. "물고기네~~??"

일요일 저녁 여섯시 반. 누군가 우리 집 현관 앞에 물고기 아홉 마리를 놓고 갔다. 어떤 이유로 놓고 간다는 부연설명은 없었다. 황당했다. 여기가 베이비박스도 아니고 왜 살아있는 생명체를 유기하고 간단 말인가. 아니, 베이비박스라면 적어도 '키워/보세요' 대신 '키워/주세요' 정도로 공손하기라도 했을 것이다. 키워보라니, 무엇을, 도대체 왜? 우리 부부는 이미 어린 아이 둘을 키우는 것만으로도 둘의 키움 능력치를 최대한으로 끌어쓰고 있는데.

황당함이 가시자 두려움이 찾아왔다. 물고기를, 그것도 살아 헤엄치는 물고기를 아홉 마리나 남의 집 앞에 두고 간 사람의 마음이 대체 무엇이었을지 상상하기 싫었다. 요즘 아이가 많이 울어서 화가 난 이웃이 있었던걸까. 나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원한을 산 일이 있었을까. 혼자 상상에 빠져있는데 남편이 말한다. 원한이면 죽은 물고기를 뒀겠지, 지금 살아있잖아. 저렇게 놔두면 물고기들 다 죽을 것 같아. 그리고 자갈들이랑 물고기 사료도 함께 두고갔어. 진짜 그냥 키워보라는 거야.

황당한 메시지, '키워/보세요'의 발신인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겠지만 우리 집엔 살아 헤엄치는 물고기 아홉 마리를 키울만한 시설이 전무했다. 심지어 나는 어린 시절에도 물고기를 키워 본 경험이 없었다. 유년시절을 탈탈 털어보아도 뭔가를 길러본 일이 드물었다. 어린 아이들이 흔히 좋아할만한 잠자리 잡기나 개미 키우기... 여하튼 그 모든 종류의 살아있는 생물을 기르는 데는 취미가 없었다. 길러보진 않았지만 소질도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집에는 기어다니는 아기 한 명과, 걸어다니지만 갖은 관심이 필요한 조금 큰 아기 한 명이 함께 살고 있었다. 이들을 기르는 데 온 힘을 다 바쳐도 쉽지 않은 판국에, 물고기라니. 나는 내심 남편이 연못이든 어디든 바깥의 적당한 장소에 그 물고기들을 유기하고 오길 바랐다. 차마 입 밖에 내진 못했지만 간절히 ‘처리해주길’ 원했다. 인상을 팍 구기고 물고기들을 집안에 들이고 싶지 않은 티를 냈다. 아이가 쭈뼛쭈뼛 말하기 전까지는.

엄마, 물고기랑 같이 있으면 좋겠어.

차마 물고기를 싫어한다는 얘긴 할 수 없었다. 말하지 않아도 이미 아이는 눈치챈 것 같았지만. 게다가 물고기들은, 몇 시간 갇혀있었을지 모르는 투명 비닐봉투 안에서 힘겹게 파닥거리는 중이었다. 파닥거림은 그 자체로 생명력의 전시인 동시에 위태로운 신호였다. 그대로 작은 비닐봉투 안에 가뒀다간 아침이 되기 전에 아홉 마리의 사체로 바뀔 게 틀림없었다. 살아있는 물고기 아홉마리도 골치였지만 죽어버린 물고기 아홉마리가 현관 앞에 놓여있다고 생각하면 더 견딜 수 없었다. 나는 체념한 채 쓰지 않는 반찬통을 뒤적거리다 가장 누렇고 냄새가 밴 통을 꺼냈다. 어항만은 못하겠지만 당장 하루 이틀밤을 지새울 임시 숙소로 나쁘진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 집엔 아홉 마리의 물고기들이 헤엄치기 시작했다. 재어둔 불고기며 막 담근 겉절이를 담아뒀던 오래된 락앤락 보관용기 안에서. 아이는 헤엄치는 물고기들 머리 위로 동봉돼있던 사료 몇 알을 떨어트리며 즐거워했다. 무작위의 아홉 마리가 아녔다. 노아의 방주에 탑승시키기 위해 종류별로 솎아내기라도 한 것처럼, 질서정연하게 종류 별로 세 마리였다. 청소물고기 세 마리, 구피 세 마리, (아직 종을 알아내지 못했지만 아주 빠르고 날렵하며 아이 새끼손가락만한) 어떤 종 세 마리. 남편과 아이는 락앤락 용기 앞에 한참을 앉아 물고기를 가리키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여차하면 이름도 붙여줄 기세였다.

임시 물고기 숙소 앞에서 들려오는 아이의 웃음소리를 뒤로 한 채 나는 머리를 핑핑 굴려보았다. "키워/보세요" 의 발신인을 찾아내야했다. 대체 누가 왜, 살아 있는 물고기들을 기습적으로 두고 갔는가. 아무리 떠올려봐도 그럴 만한 사람이 쉽게 떠오르질 않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