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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5. 13. 17:53

 

 아기를 키우는 일은 양가감정과 싸우는 일이다. 아기를 보살피다보면 이 아기가 말을 하고 의사표시를 할 수 있을 때까지 잘 돌봐줘야겠다는 생각과, 당장이라도 짐을 싸서 뛰쳐나가고 싶다는 욕망이 충돌하곤 한다. 노트북을 들고 나가서 어디서든 글을 쓰고 싶고, 심지어는 직장으로 복귀하고 싶을 때도 있다. 글을 쓰고 일을 하는 건 나를 보살피는 일의 범주에 속한다. 나를 보살피는 일은 아기를 보살피는 일과는 대척점에 있다. 적어도 100일이 안 된 아기를 키우는 내겐 그렇다. 심지어 잘 하고 싶은 건 아닌데도, 그냥 적당히 둘 다 동시에 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두 가지를 동시에 하고 싶다는 마음은 하루에도 몇 번씩 충돌한다. 아침나절에는 아기가 한없이 귀엽고 사랑스럽다가도, 몇 시간이 지나면 바깥 세상으로 관심이 이동한다. 보고싶은 친구들이 떠오르고 뉴스도 궁금해진다. 학위를 따고 회사를 만들고 책을 번역하고, 어마어마한 성취를 이뤄내는 것처럼 보이는 지인들도 있다. 탁월해져 저 멀리 가버린 것만 같은 사람들의 소식을 듣고 나면 갑자기 아기 트림 자욱이 남은 목 늘어난 티셔츠 차림의 내가 보인다. 그러고보니 머리는 언제 감았더라

 라디오도 요즘 내겐 양가감정의 대상이다. 정확히는 지상파 라디오라는, 몸집은 무겁지만 변화는 더딘 이 매체가 그렇다. 좋으면서도 떠나고싶다.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애틋하면서도 미래를 생각하면 답답해진다. 라디오는 나의 가장 좋은 시절, 언제나 곁에 있었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매일매일 밤늦게 잠들고 소설을 읽고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던 시기. 사연은 딱 한번 소개된 적 있다. <이적의 드림온>의 마지막 방송이었을 것이다. 박정언님이 보내신 문자입니다, 이적의 목소리로 소개되는 내 사연을 들으며 나는 자그마한 기숙사 방 안에서 아주 행복했다. 20대를 지나오며 라디오에서 일하는 사람이 된 후에도 그랬다. 작게나마 내 팀을 꾸리고 디제이와 부스 안에 있으면 그 프로그램 안에선 작고 소박하게 기쁜 순간이 많았다. 

 한편으로 요즘 라디오는 더 이상 돌아보고 싶지않은, 좋았지만 그 때 뿐이었던 추억같다. 요즘같은 세상에 오래된 채널에서, 더군다나 라디오를 만든다는 건 어쩐지 외로운 고고학자의 조용한 발굴작업처럼 느껴진다. 선조들이 남긴 위대한 유산을 그리워하며 과거를 파고들고 또 기념하는. 어쩌다 작은 사금파리를 발견하면 아주 기뻐하지만 알아주는 이는 드물다. 전설이었던 시절, 화려했던 전성기, 그 시절이 남긴 흔적을 애지중지 갈고 닦는 몰락한 제국의 고고학자.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번영하지도 않을 것이 분명한 우리의 일. 

 라디오와 아기를 떠올리면 언제나 두 가지 마음이 충돌한다. 애틋하고 즐겁다가도 도망치고 싶다. 아기를 사랑하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해진다. 프로그램을 만드는 작은 공간이 그립다가도 족쇄처럼 느껴진다. 라디오라는 오랜 매체를 벗어나 에스타운이나 씨리얼 시리즈같은 장기 프로젝트를 해보면 어떨까. 개인적으로 아카이빙하고 싶었던 주제들도, 쓰고 싶은 글들도 떠오른다. 하지만 당분간은 책임져야 할 것이다. 아기를 그리고 월급 받는 만큼을. 

 두 가지 마음 속에서 갈팡질팡하다 울음을 터뜨린 날이 있었다. 아기가 타고 있는 스윙을 흔들어주다가 나도 모르게 와앙 하고 눈물이 터졌다. 아기는 나를 동그란 눈으로 쳐다보더니 활짝 웃었다. 우는 모양이, 얼굴 근육이 움직이는 표정이 신기하고 재밌는 모양이었다. 이후로도 아기는 내가 흑흑, 하고 우는 시늉을 해 보이면 소리까지 내면서 즐거워한다. 울던 나조차도 어리둥절할만큼의 큰 미소였다. 양가적인 마음은 정리되지 않았지만 - 아니 앞으로도 더 심해지겠지만, 우는 나를 보며 잇몸밖에 없는 작은 입을 활짝 벌리며 웃는 아기를 보는 게 웃겼다. 그 순간만큼은 웃는 아기를 보는 게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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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나마 다행인 게 하나 있다. 라디오도 아기도 매일 매일 리셋된다는 점이다. 아기는 매일 자란다. 나의 기분도 그에 맞춰 매일 한 뼘씩 달라진다. 어제는 뛰쳐나가고 싶은 감정이 이겼다가 오늘은 보살피고 싶은 감정이 이긴다. 두 가지 감정 말고도 조금 더 다양한 감정들이 스며들기도 한다. 라디오 역시 오늘과 내일, 하루하루가 새롭게 다르다. 오늘 방송을 처참하게 망쳤어도 내일은 또 새로운 백지가 주어진다. 반대로 오늘 대박을 쳤어도 내일이면 아무 소용이 없다.

 오늘도 라디오를 켜놓고 아기를 보살핀다. 어르고 달래고 먹이고 재운다. 라디오에서도 먹고 사는 이야기와 기쁘고 슬픈 이야기가 하루종일 이어진다. 매일 비슷하지만 매일이 새롭게 다르다. 아기와 라디오는 매일 새로 받아들어야 하는 백지장이다. 어쩌면 이 백지장이, 가능성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한다.

 아기와 라디오, 그리고 내일의 나는 또 어떻게 달라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