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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냄새'에 해당되는 글 1건
2019. 10. 14. 15:40

 

 

 요즘 나는 냄새의 탄생을 지켜보고 있다. 정확히는 한 사람에게 어떻게 체쥐가 깃드는지를 목격하는 중이다. 나의 관찰 대상자는 당연히 우리 집 아기다(아기는 식생활부터 수면패턴, 흔적과 표정까지 모든 것을 내게 관찰당하는 중이다). 

 처음 아기에게서 맡은 냄새는 산뜻한 베이비바스향이었다. 산후조리원에서였다. 조리원에서는 아침 7시가 넘으면 아기들을 방으로 데려다주는데, 그렇게 배달되어 온 아기에게선 항상 향기가 났다. 아기를 각 방으로 데려다주기 전에 신생아실에서 뽀득뽀득 씻긴 탓이었다. 아기에게서는 원래 그렇게 아기 향과 파우더향이 섞인 좋은 냄새가 나는가 했는데 집에 데려와보니 그게 아니었다. 향이 강한 제품을 쓰지 않으면 아기에게선 주로 분유 냄새가 났다. 먹고 나서 잘 게우던 시기라 소화되다 만 분유의 비릿한 냄새와 아기의 땀이 섞인 냄새였다. 사람들이 아기 냄새라고 부르는, 달큰한 냄새. 아기 냄새는 주로 정수리와 목덜미 근처같이 땀이 많이 나는 곳에서 맡을 수 있었다.

 아기 냄새가 변하기 시작한 건 5개월 무렵이었다. 분유를 주식으로 삼다가 미음을 먹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쌀 미음과 채소 미음만 먹다가 처음으로 소고기 미음을 먹은 날, 낮잠을 재우느라 닫아뒀던 아기 방 문을 열자 낯선 냄새가 확 밀려왔다. 고기 누린내였다. 그 냄새에는 어딘가 조금 덜 유순하고 복잡한 구석이 있었다. 남의 살을 먹고 사는 동물이 풍길 수 밖에 없는, 약간은 공격적인 냄새였다. 어디에서나 쉽게 맡을 수 있는 사람의 냄새이기도 했다. 이후로 아기의 식단이 변할 때마다, 아기는 먹은 그대로를 자신의 체취로 뿜는다. 어제는 가지와 무, 소고기를 넣은 미음을 먹였더니 방문을 열자 푹 졸이고 삭혀진 무 냄새가 훅 하고 끼쳐왔다. 며칠동안 아기는 가지와 무 냄새를 자신의 냄새로 두르고 다닐 것이다. 닭고기 미음을 먹은 날은 닭죽 냄새가, 고구마와 밤 미음을 먹은 날에는 구황작물의 달달한 냄새가 난다. 입었던 옷과 머물렀던 방과 내뿜는 체취에서 고스란히 아주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아기의 신진대사는 어른보다 조금 더 단순하고 또 정직해서일 것이다. 

 사람은 먹는 것 그대로가 그 사람이라는 말이 얼마나 정확한지. 나는 먹는 그대로의 인간이다. 별달리 수식할 것도 꾸밀 것도 없이, 오늘 아침으로 먹은 고구마와 점심으로 먹은 샌드위치 그 사이에 마신 연한 라떼가 곧 나다. 내 안에서 그런 재료들이 뒤섞이고 곰섞여 내 몸의 일부가 될 것이고 내가 정신이라고 믿는 것을 작동할 연료를 공급한다. 거창하고 고상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아도 결국에는 몇 가지 동식물에 의존해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이 단순한 삶의 작동 원리를 잊을 때 마다, 냄새가 나에게 이 사실을 일깨워줄 것이다. 아기에게서 나는 아주 정직한 냄새, 결국에는 내 냄새를 닮아갈 그 냄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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