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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7. 14. 12:00

 

 공용 현관을 지나 엘리베이터 앞으로 돌아서는 순간 무언가 보였다. 시각과 후각이 동시에 경보를 울려왔다. KF94 마스크를 후벼파고 들어오는 존재감, 엘리베이터 앞에 자리한 주먹막한 갈색의 일그러진 형체. 신발 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는... 똥이었다. 

 휴대폰을 보며 무심결에 걸어들어왔더라면 피하지 못했으리라. 공용 현관을 지나 벽을 돌자마자 마치 계획한 것처럼 절묘한 자리에 떨어져 있었다. 여기까지 생각하다 혼자 고민했다. 떨어트렸다는 말이 적절할까. 의도를 가지고 놓아둔 것일까. 놓거나 떨어트린 이는 누구이며 밟는 불운에 당첨된 자는 누굴까. 여러 정보를 종합했을 때 조금 전까지 그 사물의 주인이었던 존재는 사람일 것 같았다. 동네 강아지나 고양이가 저지를 수 있는 스케일이 아녔다. 

 벽에 붙다시피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엘리베이터 안에도 역시 신발을 따라 온 냄새가 가득했다. 얼른 내리자, 안 밟아서 정말 다행이다, 관리사무소에 연락해야겠다, 생각하며 도망치듯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이상하게도 냄새가 전혀 옅어지지 않았다. 우리 집 앞에는 택배 상자가 놓여있었다. 설마... 기사분이 밟고 올라오신걸까... 더위 때문인지 긴장 때문인지 등에 땀이 배어났다. 

 상자를 뜯고 알콜 스프레이로 가능한 곳들을 소독한 뒤 다시 현관문을 열어보았다. 냄새는 나는데 보이는 흔적은 없었다. 혹시 모르니 밀대 걸레를 들고 알콜 스프레이를 바닥에 뿌리며 청소를 했다. 앞집 영역을 침범하지 않기 위해 걸레를 좌회전시키는데 눈에 무언가가 걸렸다. 성인 엄지만한 크기의, 역시나, 1층 현관에서 보았던 그 똥의 일부분이었다. 마치 배달 온 소포처럼 정확하게 앞집 현관 앞에 떨어져 있었다. 아! 

 뒷걸음질치며 문을 닫고 들어왔다. 심한 딜레마에 빠졌다. 현관을 열면 냄새가 들어온다. 하원하던 아이도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어! 똥냄새가 나! 하고 코를 쥐어틀었다. 방문 미술 선생님 역시 요상한 표정을 지으며 현관 앞에 서 있었다. 1층의 문제는 관리사무소에서 금방 해결하고 돌아갔지만 앞집 문제는 애매했다. 앞집 앞에도 있는데요, 하고 전화를 해야 하나. 아니면 직접 치우시라고 인터폰을 해야 하나. 아니다, 문을 열고 나오시다가 확인하고 알아서 수습하겠지. 기대를 품고 몇 시간을 기다려 보았지만 그대로였다. 몇 번이나 문을 열었다 닫는 나를 보며 아이가 물었다. 엄마 뭐 보고 들어오는거야? 달리 둘러댈 말이 없었다. "앞집 앞에 있는 똥 보고 들어오는거야." 아이가 물었다. "누가 치워?" 

 고민을 하다 밤이 되었다. 아이들이 잠든 후 비장하게 문을 나섰다. 앞집 문과의 거리 약 5센티, 우리 집 문과의 거리 약 3미터. 앞집과 가깝다는 이유로 앞집 똥이라고 할 수는 없다. 위치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이미 내 인지 속에 깊숙이 형체와 냄새를 새기고 괴로움을 남긴 뒤 아닌가. 내게 들어온 괴로움은 셀프로 해결하는 수 밖에. 비장하게 일회용 장갑을 끼고 물티슈를 챙겨 현관문을 열었다. 냄새가 조금 옅어져 있었다. 어두운 밤을 잠깐 밝힌 주황색 복도 전등 아래서 급히 똥을 찾아 헤맸다. 똥이 있던 자리와 옆을 샅샅이 뒤졌다. 온데간데 없었다. 치웠구나! 

 사건이 마무리되고 나서도 한동안 생각이 났다. 남의 똥이지만 남의 것이라고만은 할 수 없는 상황. 똥을 그 자리에 두고 간 당사자보다, 타인이 더 오래 번민하게 된다. 똥이란 것의 속성이 대개 그럴지도 모른다. 저지른 자는 대체로 빨리 자리를 뜨게 마련이다. 똥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봉변은 뒤따라오던 사람들이 몫이다. 일단 무엇인지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아, 똥이구나. 놀란 다음엔 당황한다. 배설하고 간 이에게는 쾌감이 남았겠지만 남들에겐 불쾌 뿐이다. 마지막 고뇌의 시간이 닥친다. 달아난 이는 애초에 치울 의도가 없다. 있었다면 진작 치웠을 것이고 만약 가능한 상황이었다면 애초에 공용 현관에 똥을 두지 않았을 것이다. 고민은 타인들의 몫이다. 남의 똥을 치운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관용어는 위대하다. 속담은 대단하다. 대개 진실에 가깝다. 치우는 사람 따로 있다는 짧은 문장 속에 담겨 있던 고뇌들은 괜한 이야기가 아녔다. 

 똥에는 사정이 배어있다. 매일같이 두 아이의 똥을 치우다 보면 알게 된다. 어떤 음식을 먹으면 무슨 색으로 나오고 얼마만큼의 형체를 남기는지. 똥은 내장의 사정과 형편을 정직하게 새긴 채 세상에 나온다. 아이들의 사정은 언제나 살펴야 한다. 그런데 생판 남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돈을 받고 치운대도 못 치울 판인데, 남의 똥에서 풍기는 타인의 내밀한 상황을 고려하긴 어렵다. 그것이 설령 적당한 시간에 화장실을 갈 수 없는 군색한 형편에서 비롯된 절박한 결과물이라 할지라도. 아니, 그 어떠한 형편이나 상황도 상상해주고 싶지 않았다. 똥은 죄가 없고 내겐 여유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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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바닥을 참 잘 쳐다보며 다닌다. 휴대폰을 볼 일이 있어도 눈알을 쉴새없이 굴리며 나아갈 길의 장애물을 탐색한다. 매미도 떨어져 있고 송충이도 기어가고 더러는 남의 똥도 밟게될지 모를 일이니. 무엇보다도...남의 똥을 가지고 이렇게 일기를 쓰고 앉아있을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