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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4. 6. 23:00

 

 금요일 저녁엔 빵집에 들른다. 두 군데 정도를 번갈아가며 격주로 간다. 한 곳은 체인점이고 한 곳은 동네 빵집이다. 두 군데 다 그럭저럭 맛있는 빵을 팔아서 일주일에 두세번 정도는 간다. 

 빵을 자주 먹으니 자주 사러 가지만, 금요일 저녁에 사가는 크로와상은 어쩐지 남다른 데가 있다. 크로와상을 집으면 그제서야 일주일이 지나갔다는 걸 실감한다. 시사프로그램으로 인사발령이 난 후엔 더욱 뻐근하던 평일의 부담감이 옅어지는 순간이다. 겹겹의 크로와상 결을 떼어내는 것처럼 한 겹 한 겹 덜어져가는, 평일의 무게. 물 먹지 않았나 고민해야 하는 데일리 시사의 부담(꼭 10년만에 도돌이표처럼). 

보통 빵집에선 언제나 내 취향대로 빵을 고르지만 금요일의 크로와상만은 다르다. 주중에 아기를 돌봐주시는 시부모님을 위한 크로와상이다. 저녁이 꽤 깊어지고 나서야 퇴근하는 나와 남편 때문에 아기와 길고 긴 하루를 보내시고 나면, 토요일 아침엔 도무지 손가락을 움직여 아침밥을 차리기 싫으실 것 같아서다. 마음껏 늦게까지 주무신 후에 커피와 크로와상, 과일로 간단한 아침을 곁들이면 드디어 평일이 끝났다는 걸 실감하실지도 모른다. 나나 남편과는 어쩐지 정반대의 업무시계다. 

 금요일의 크로와상을 가방 속에 넣고 집에 가는 길에는 왠지 벅찬 마음이 든다. 일주일을 그래도, 잘 버티고, 잘 해치웠다. 주말 아침에 부스스한 머리로 일어난 아기의 얼굴이며 볼록한 배에서 나는 쿰쿰한 냄새를 실컷 맡을 생각을 하면 어쩐지 코로나고 뭐고 세상이 온통 아름다워보이기 시작한다. 물론 이 짧은 착시현상이 오래가진 않는다. 아기는 너무 사랑스럽지만 언제나 내 기대보다 일찍 일어난다(주말인데 일곱시 삼십분이라니! 조금 더 잘 순 없겠니). 일어나자마자 뻐뜨~~ 빠방~~ 하고 외치며 창문에 딱 달라붙어 나가고 싶음을 온몸으로 발산한다(아직 밖은 너무 추워). 끊임없이 책을 들고 와 땍~~ 땍~~ 하며 애절한 눈빛으로 애원한다. 다 읽었다 싶으면 또! 또! 무한반복이다. 토끼의 눈코입이 어디 달려있는지 스무 번 넘게 읽어주느라 아침부터 성대가 피로감을 호소하며 파르를 떨려온다. 너무 사랑스럽지만 너무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행복하지만 고되고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지만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이 아파온다.

 아기를 낳은 당사자인 나도 이런데, 다른 가족이나 하물며 가족이 아닌 이들에게 아기 돌보기란 어떨까. 상상하기 시작하면 내 마음만 더 어려워질 것 같아 자주 상상하진 않으려 한다. 다만 금요일 저녁이 되면, 노트북을 덮으며 고민할 따름이다. 오늘은 두 군데 중에 어느 빵집엘 들러서 크로와상을 사갈까. 크로와상은 운반이 까다로운 축에 속한다. 짐이 가득한 에코백 속에 대충 던져넣어도 다음날 먹는데 아무 지장이 없는 하드한 계열 빵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일단 집게로 집어들 때부터, 나답지 않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힘조절을 잘 해야 겉면이 무너지지 않은 채 그대로 쟁반 위로 옮길 수 있다. 직원이 흰 봉투를 옆으로 기울여 모로 누운 크로와상을 그대로 넣어주면, 함부로 방향을 바꾸지 말고 그대로 뉘어 가방 맨 위에 잘 올려둬야 한다. 휴대폰이라도 잘못 올리면 크로와상의 연약한 테두리는 무너지고 만다. 

 금요일 저녁의 마음은 크로와상을 조심스레 운반하는 데서 정점에 이른다. 얇고 연약한 갈색 결이 무너지지 않게 집으로 잘 들고 갈 것. 간격이 꽤 벌어진 징검다리를 겨우 건넌 것처럼 일주일을 건너와 만난, 작은 크로와상. 얇고 기다란 크로와상의 테두리를 무너지지 않게 잘 지키는 일은 갑자기 일주일의 일과 중 가장 중요한 임무로 격상한다. 마치 크로와상이 나의 주말이라도 되는 것처럼. 아니, 요즘들어 크로와상은 그 자체로 나의 주말이다. 작고 소중하고 겹겹이 아주 고소해서 떼어먹어도 떼어먹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은데 금방 끝나버리는. 

 오늘은 월요일. 어쩐지 좀 더 팍팍했던 월요일 퇴근길엔 부러 크로와상을 파는 빵집을 멀리서만 쳐다보고 왔다. 금요일 저녁에만 손에 넣을 수 있는, 조심스럽게 크로와상을 집어드는 그 느낌을 아껴먹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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