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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8. 24. 09:25

 

 한 달간의 근속휴가가 끝나기 전에 냉동실을 비웠다. 몇 년 묵은 음식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거기 들어있는 걸 알면서도 이상하게 꺼낼 수 없었던 온갖 쓰레기들을 몇 번에 나누어 비우고 버렸다. 찰옥수수, 조기, 핫도그, 들깨가루와 콩고물, 찹쌀떡과 백설기를 비롯한 온갖 종류의 떡, 어머니들이 얼려두신 미역과 시래기같은 나물들, 먹다 남은 돈까스, 언제 사두었는지 아이들 모르게 깊숙하게 숨겨두었다가 아예 잊어버린 하겐다즈 아이스바, 수족구 걸린 아이들에게 준다고 얼려두었던 요거트 아이스크림...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을 때 마다 대책없이 밀어넣었던 냉동칸은 미어지고 터지기 직전이었는데, 비우고 나자 거의 구십프로가 텅 비어버렸다. 

 얼어있던 음식물 중 태반은 이미 유효기간을 넘긴 것들이었다. 나는 냉동에 대해 무언가 대단히 착각하고 있었던 게 걸까. 얼려두면 무엇이든 영원히 보존하고 먹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아니 사실은 대체로 다 알고 있었다. 먹기를 포기하고 남은 음식들, 지금 당장 먹지 않을 음식들은 그 순간 이미 절반은 쓰레기가 된 것이나 다름없었는데 다만 버린다는 죄책감을 느끼기 싫었을 뿐이다. 오늘도 과소비했다는 느낌, 먹지 못할 식재료를 잔뜩 사서 버리고 또 버린다는 기분나쁨. 재정적으로 환경적으로 모두 마땅치 못한 행동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위해 순간적으로 택한 비겁한 냉동실 행. 국산 들깨가루가 얼마나 비싼데 버리지 않고 냉동실에 두면 들깨미역국도 끓이고 떡국도 끓이겠지? 하고 미래의 나에게 막연히  미뤄두었던 책임소재들. 하지만 내게는 대체로 그럴만한 여유가 없었고 한 번 냉동실에 들어간 음식들은 여간해선 해동될 기회를 얻지 못했다. 

 얼어있는 음식들 중에는 원래 무엇이었는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종류들도 있었다. 반나절을 해동하고 나서야 정체를 알 수 있었던 블루베리와 비트 스무디, 무엇인가를 끓이고 남았던 육수, 만두를 빚기 위해 만들어두었던 고기와 숙주 다짐소. 얼면서 모양이 변해버린 것들은 녹아가면서 다시 자신이 가지고 있던 고유의 향과 모양을 피력하기 시작했는데 하나같이 한번 얼었다 녹은 것들이 가지는 특유의 얼음 비린내를 풍겼다. 한때 싱싱하고 활기 넘쳤던 식재료들의 거뭇하고 누릿한 몰락. 

 하루 동안 거의 10kg을 버렸다. 버리면서 유예된 죄책감들을 느꼈다. 얼린다는 건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얼려둔다고 식재료가 자동으로 근사한 음식이 될 리도 없으며 자연스럽게 예정되어있는 부패를 막아주지도 않는다. 냉동은 그 어떤 것도 막지 못한다. 떠내보내고 버려야 할 것들은 대체로 그 순간에 정해지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심지어 나 자신도 그 사실을 대체로 명확하게 인지한다. 그러니 이젠 용도가 정해진 순간 과감하게 행동해야 한다. 그 어떤 죄책감이든 그냥 시의적절하게 느껴버려야 한다. 휴가 끝에 나 자신에게 보내는 충고 - 비겁한 냉동실형 인간만은 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