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main image
분류 전체보기 (177)
A (177)
Visitors up to today!
Today hit, Yesterday hit
daisy rss
tistory 티스토리 가입하기!
2021. 4. 8. 11:31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내가 여기 있나이다>에 보면 대략 이런 구절이 나온다. "어린 아이가 언제 마지막으로 부모에게 달려가 안겼는지, 그 순간은 아이도 부모도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 마지막 순간은 분명히 존재한다". 

 어제는 1년 넘게 아기를 돌봐주시던 시부모님이 집으로 돌아가시는 날이었다. 내가 복직을 하게 되면서 아예 월요일 아침에 우리 집으로 오셔서 아기를 봐주시고, 금요일 저녁에야 본가로 겨우 돌아가시는 주말살이를 일 년이나 하셨다. 덕분에 우리 부부는 지금 아기가 집에서 어쩌고 있을까 걱정없이 아주 편하게 회사를 다녔고 때로 주말까지 이어지는 남편의 각종 학회 일정들까지 무탈하게 넘길 수 있었다. 아기는 그야말로 지상낙원을 누렸다. 할아버지 할머니에 파트타임으로 놀아주는 시터 이모까지 무려 성인 세 명의 돌봄을 받았다. 또래 친구들이 돌 무렵 일찌감치 기관 생활을 시작할 때도 동네의 모든 공원과 연못을 섭렵하며 열매를 주워 소꿉장난을 즐겼다. 먹고 싶을 때 맘껏 먹고 자고 싶을 때 맘껏 잠들었으며 언제든 친구가 필요하면 할아버지 할머니가 지내는 방문을 열어제끼고 "얘들아 나랑 놀자!" 하고 우렁차게 외칠 수 있었다. 

 마지막 저녁이란 걸 아는지 모르는지, 이제 할머니 할아버지는 가시고 한동안 못 보게 될 거라고 말해도 아기는 영 어리둥절한 눈치였다. 금요일 저녁에 가셔서 며칠 있다 월요일에 또 오신다는 얘기겠지? 아기의 눈빛에선 사태의 심각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먹는 저녁일지도 몰라, 내가 짐짓 엄숙한 목소리를 내봤지만 밥상을 앞에 둔 아기는 징징대기 시작했다. 졸리고 귀찮다는 얘기였다. 할머니가 금세 포대기를 가지고 아기에게 다가왔다. "우리 어부바 하고 나갈까?" 아기는 대번에 눈웃음을 지으며 익숙한 할머니의 등에 찰싹 달라붙어 세상 가장 편한 자세를 취했다. 26개월차 이젠 아기와 어린이의 중간, 누가 봐도 어부바를 하기엔 너무 큰 덩치였지만 할머니 등에서만큼은 자기가 영원히 응애응애하고 울먹이는 아기라고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애착인형 두 개를 양 손에 쥐고 포대기에 싸인 아기는 어둠이 내린 동네의 놀이터와, 하나 둘 불이 꺼지기 시작한 요일 장터의 풍경을 한참동안 구경하다 돌아왔다. 

 한참의 산책을 끝내고 연두색 포대기에서 천천히 내리는 아기의 얼굴엔 더없는 평화가 스며있었다. 그런 아기의 얼굴을 쳐다보는데 괜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기는 기억하지 못할 자신의 마지막 어부바를 나는 오래 기억하게 될 것 같은 마음이 들어서. 언젠가 좀 더 커서 이 이야기를 이해할 날이 오면, 청명하고 아주 맑은 어느 4월의 봄날 저녁에 자신이 누렸던 아름다운 마지막 어부바의 풍경에 대해 꼭 들려줘야겠단 다짐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