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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7. 30. 10:40

 

 작년 8월 19일의 다이어리. "연희동 엄마의 서재 방문, 2시간 이용. 주차장 올라가고 내려가는 길이 조금 어려움. 제임스 설터의 책 약간 읽음." 이후로도 엄마의 서재는 자주 등장한다. 나흘 뒤 23일, "엄마의 서재 방문, 비 많이 온다." 지난 가을과 겨울엔 일주일에 하루 이틀은 꼭 엄마의 서재에 들러 오전 시간을 보냈다. 뭔가 해보려고 글도 쓰고 목차도 구성하고 기획안도 만들던 때였다.

 오전 열시반쯤 도착하면 보통 두어 사람이 있었고, 벽을 보고 있는 유일한 1인 책상이 있어 늘 거기에 앉았다. 스탠드도 켤 수 있고 모든 공간을 등지고 있어 마음이 편해지는 자리였다. 뭔가 해보려다 잘 풀리지 않으면 얼마든지 꺼내어 볼 수 있는 책들이 있었고 맞은 편엔 앤트러사이트, 옆엔 스타벅스까지 있어 커피를 마시고 들르기에도 좋았다. 주차를 해두고 사러가마트나 피터팬제과에 걸어갔다 오기도 했다. 

 명목상의 휴직이 끝나는 오늘, 아이 어린이집을 쉬고 자연사박물관엘 갔다. 아이에겐 말하지 않았지만 아마도 마지막 평일 데이트였을 것이다. 1년 365일 방송이 나가는 라디오 피디들에겐 일주일 휴가조차 어렵다. 어쩌다 평일 연차가 주어진다 하더라도 맘 편히 아이와 하루를 통으로 놀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아 미리미리 열심히 다녔다. 셈해보니 이번 휴직 기간에만 자연사박물관에 다섯 번을 방문했다. 

 늘 한적한 평일에만 다니다 사람이 이렇게 많은 자연사박물관은 처음이었다. 어린이집도 유치원도 학교도 마침 방학이다. 근처 중학교에 차를 대고 한시간 반동안 보고 또 본 박물관을 다시 훑었다. 사러가마트 2층에서 점심을 먹고 튜브를 사러 모던하우스에 들렀다. 엄마의 서재를 스쳐 지나오는데 불이 꺼진 채, 안에서는 가구를 빼고 책을 정리하는 중이었다. 영업 종료 소식은 들었지만 닫기 전에 한 번 들를 수 있을 줄만 알았는데, 그게 오늘였다니. 하필이면 휴직이 끝나는 날. 벽면 가득하던 책들은 어디로 갔는지 텅 비어만 있었다. 

 기사를 찾아보니 일룸이 처음 엄마의 서재를 개장한 건 지난 2019년 5월이다. 만 3년 조금 넘은 시간. 일룸과 엄마의서재는 처음 만들어보려던 무언가에 가까이 다가갔을까. 처음 세상에 내보이고 싶었던 꿈과 비슷한 실체를 만들어냈을까. 후회 없이 가능한 모든 시도를 해본 뒤의  폐장날이었을까. 텅 비고 불 꺼진 엄마의 서재를 보는데, 덩달아 무언가 만들어보려 했던 나의 시간들이 스쳐갔다. 

 당장은 무엇도 되지 않았다. 앞으로도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만 조용하던 평일 오전의 구석자리 일인용 책상에서, 뭔가 잡아보려 애쓰던 시간의 잔상만 어렴풋이 남았다. 손에 쥔 것은 없지만 잡으려 했던 시도만큼은 감각의 기억으로 오래 남을 것이다. 손아귀를 말아쥐고 또 말아쥐어보던 지난 일년여의 시간. 펼쳐보면 손바닥은 비어 있었지만 그만둘 수는 없었다. 그만두기 싫었다. 잡히지 않더라도 계속해서 허공에다 손바닥을 펼치는 사람이 되고싶다.

 놀이터와 박물관과 장터 사이 사이에 읽고 쓸 책상을 찾아 헤매던 휴직기간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