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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2. 16. 10:30

 

 어느 날엔가 퇴근해서 집엘 갔는데 아기가 계속 쑥떡 비슷한 걸 찾는다. 쑤꾸리~! 쑤꾸리~! 그런데 평소에 쑥떡은 잘 발음하던 단어고, 쑥떡을 먹고 싶었으면 쑥떡 주세요라든가 쑥떡 먹고싶어요 했을 아이가 쑤꾸리~!를 발음할 땐 제스처가 뭔가 남다르다. 아주 큰 소리로 소리치는 건 둘째치고 자꾸 뭔가를 집어 던지는 게 아닌가. 힘차게 배에서부터 나오는 목소리로 쑤꾸리, 동시에 손에 쥔 인형이나 작은 블럭 같은 걸 멀리 멀리 던져댄다. 아침나절에만 해도 없던 나쁜 버릇이 들었나? 누군가 뭘 던지는 내용을 책에서 봤나? 뭐라고 해야겠다 싶어 아기를 붙잡고 물건 던지는 거 아니야, 하고 눈을 딱 쳐다보고 엄격하게 말했다.

 아기는 조금은 황당하고 또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던지는 거 아니야! 쑤꾸리 하는거야! 

 그러면서 또 내달려가 손에 쥐고 있던 걸 멀리 보내며 쑤꾸리를 외친다. 어딘가 목표 지점에 도달했는지 박수를 치며 좋아하기까지 한다. 쑤꾸리를 외칠 때 마다 즐거워보였다. 아기가 저녁 내내 외친 쑤꾸리는 다름아닌 슛 골인이었던 것이다. 슛, 골인~! 

 쑤꾸리는 며칠 가지 않아 슛, 골인으로 아주 정확하게 교정되었다. 두 돌이 되며 말이 부쩍 는 아기는 출근하는 내게 잔소리까지 한다. 엄마 눈이 펑펑 오니까 조심조심 엉금엉금 기어가. 짐짓 어린이처럼 참견도 잘 하고, 입기 싫은 옷은 나한테 어울리지 않아! 하며 밀어내기도 한다. 어쩌다 가끔 쑤꾸리처럼 불완전 학습된 단어를 쓰더라도 곁의 어른이 아, 슛 골인? 하고 가르쳐주면 그 단어는 금방 교정돼버린다. 내가 잘못 알았구나 하고 잠깐 발음하는 어른의 입을 유심히 쳐다보며 금방 연습을 한다. 슛 골인. 슛 골인. 엄마 다시 해봐 슛 골인. 그러고 나면 쑥떡과 비슷하던 쑤꾸리는 사라져버린다. 너무 짧은 찰나의 미숙함이다. 아침엔 있었다가도 저녁이 되면 햇볕과 함께 사라져버리는 찰나의 미숙하고 불완전한 아름다움, 너무 금방 사라져 마음을 에이는 구석이 있는 귀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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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는 갑자기 자기 아빠더라 나잡아라바! 라고 외치더니 기저귀 찬 엉덩이를 뒤뚱뒤뚱 흔들며 멀리 도망을 갔다(말은 청산유수인데 기저귀를 가릴 생각은 전혀 없다). 나 잡아봐라 놀이가 하고 싶은 모양인데 다섯 음절까진 발음이 어려운 모양이었다. 제딴에 한껏 열심히 도망가던 아기는 다시 한 번 뒤를 돌아보더니 나잡아라바! 하고 소리친다. 나잡아라바, 나잡아라바, 왠지 주문같기도 먼 중동의 작은 도시 이름일 것 같기도 한 이 다섯 음절을 아직까진 고쳐주지 않았다. 잡아라바라가 아니라 나 잡아봐라야, 이렇게 얘기해버리면 또 순식간에 사라질 미숙함이란 걸 알아서. 너무 짧게 또 빨리 우리를 스쳐가는 찰나의 불완전함이라는 걸 이제는 너무 잘 알고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