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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8. 8. 07:37

 

 

 오랜만에 이석원 작가님을 만나고 돌아오던 저녁. 익숙한 빵집 앞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흰색 블라인드가 반쯤 올라가있는 뒤로, 사람의 실루엣이 보였다. 불 꺼진 빵집의 전면유리 안에서 블라인드 절반을 올려둔 채 뒤로 반쯤 누운 사장님이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밖을 보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자신의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였을까, 블라인드가 걷힌 공간에 맞춘 듯이 사장님의 몸이 들어맞았다. 천천히 횡단보도를 다 건너자 표정이 보였다. 한 손에 맥주를 들고 눕듯이 앉은 사장님의 표정이 아주 어두웠다. 스치면서 눈길을 두는 것조차 미안하고 어려울만큼의 어두움이었다. 빵집 앞을 지나치는 게 서늘해져 방향을 꺾어 돌았다. 

 다음날 아침 긴장하며 빵집 앞을 지났다. 혹시 빵집에 무슨 일이 벌어져 있진 않을까. 슬로우를 건 것처럼 천천히 빵집 옆을 지나며 어색하게 시선을 돌려 안을 살폈다. 아침 커피를 사기 위해 들른 사람들이 매장 안에 줄을 서 있었다. 깨끗하고 산뜻한 실내는 흐트러진 곳 없이 그대로였다. 반만 올라가있던 블라인드는 모두 같은 선까지 줄을 맞춰 올라가 햇볕이 고르게 들었다. 사장님은 어제 본 그 모습 그대로였지만 맥주캔을 들고 누워있는 대신 커피머신 앞에서 분주히 아이스 커피를 뽑고 있었다. 하얀 모자가 단정했다. 

 어젯밤의 빵집 풍경은 그냥 잊어버리기로 했다. 뒤로 쓰러지듯 비스듬히 누워 창 밖을 바라보던 사장님의 실루엣도. 누구에게나 블라인드를 대충 내린 채 보란 듯 드러눕고 싶은 순간이 있고, 나도 마찬가지다. 그럴 때 나는 맥주캔을 들고 누울 자리가 마땅찮아 주로 아름다운 것을 듣는다. 어쩌면 아름다운 것을 들을 때 내 표정은 아주 어두워서 어젯밤 블라인드 밑의 사장님 못지 않을지도 모른다. 길어야 5분도 되지 않게 드리우는 찰나의 어두움이지만.

아름다운 것을 틀어놓은 채 여기저기를 쏘다니며 마음껏 그림자를 뒤집어쓰면 기분이 나아진다. 잠깐 음영 속에 몸을 담그면 다시 환한 곳으로 나갈 의지가 생긴다. 빵집을 돌아 지나며 사장님도 어젠 그림자에 실컷 좀 파묻혔을까, 그랬으면 좋았을텐데, 괜히 생판 모르는 남 걱정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