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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2. 2. 10:36

 

 일주일 전이었다. 모처럼 춥지 않고 맑은 겨울 날씨길래, 집에만 있기 아까워 부암동으로 차를 몰고 갔다. 주차를 해두고 스콘을 사고(자그마하던 스콘 가게가 다섯 배로 커져 있었다! 긴 생머리의 20대 레깅스 등산족들이 등산 후 스콘을 먹는 풍경이란...) 사람이 없는 골목길을 이리저리 누비다, 무계정사를 발견했다. 몽유도원도의 배경이 되었다고 알려져 있는 작은 집터. 넓지 않은 고택이 복원되어 있었고 햇볕이 잘 드는 마당에는 봉오리가 빼곡히 맺힌 목련나무가. 아주 조용하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바닥에는 작은 자갈들이 빠짐없이 깔려있어 돌멩이를 좋아하는 아기는 삼사십분을 쪼그리고 앉아 돌멩이를 이리 옮기고 저리 옮기며 놀았다. 어른 둘은 바위 위에 걸터앉아 햇볕을 쬐는 망중한..

 이 끝나고 아주 평화로운 마음으로 집으로 출발하려 아기를 카시트에 태우다가, 그만 내 팔에 힘이 빠져 아기의 팔이 카시트 옆부분에서 꺾이고 말았다. 두둑 하는 소리가 들리고 아기와 눈이 마주치자 둘 다 동공확대. 이어지는 울음소리. 팔이 아프다는 아기 말에 돌아볼 것 없이 근처 응급실로 향했다. 아픈데 병원까지 데려가니 아기는 대략 패닉상태. 울부짖는 아기를 결박해 엑스레이를 찍고 부목을 댔는데 부목을 물어뜯고 자기 손가락을 물어뜯으며 부목을 떼어내라고 반항한다. 다행히 뼈에 이상은 없다지만, 혹시 모르니 부목을 좀 대고 있으라는 의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부목이 내동댕이쳐졌다. 두 돌 아기도 죽을 힘을 다하면 이렇게 완력이 셀 수 있구나, 순간 깜짝 놀랐다. 응급실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부목을 주워 아기를 안고 너덜너덜 집으로 돌아오니 아기는 또 멀쩡한 듯 잘 논다. 

 정신없는 주말을 보내고 출근해 회사에 앉았는데 걸을 때 마다 발이 아프다. 뭔가 하고 봤더니 신발 속에 무계정사의 작은 돌멩이가 굴러다닌다. 어젠 멀쩡해 보이던 아기가 월요일 아침이 되자 어깨가 아프다고 한바탕 울부짖은 후였다. 납덩이처럼 가라앉은 마음을 질질 끌고 겨우 출근했는데 걸음 걸음을 뗄 때마다 발바닥을 따갑게 굴러다니는 작은 돌멩이가 떠나질 않았다. 점심을 먹으러 갈 때도, 커피를 마시러 갈 때도, 화장실을 갈 때도 발에 밟혔다. 신발을 벗어 털어버리면 되는데, 이상하게 또 털어버릴 수는 없었다. 아기가 장난치느라 내 신발 위에 옮겨다 둔 돌멩이들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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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이 지나도록 신발에서 빠져나올 생각을 않는 작은 돌멩이를 밟으며, 자식이 생긴다는 건 평생 신발 안에 자갈을 넣고 다니는 기분일까 잠시 생각했다. 빼려고 해도 차마 뺄 수 없고, 좋은 걸음이든 기쁜 걸음이든 걸음마다 늘 밟히기 마련인. 아주 짧은 찰나라고 하더라도 잊기는 어려운 작은 돌멩이. 

 심지어 곧 신발 속 돌멩이가 하나 더 늘어난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양 발에 저벅저벅 무언가가 밟힐 것이다. 내가 아무리 먼 곳으로 떠나든, 어떤 놀라운 걸음을 걷든 결코 잊고 걸을 수는 없을 작고 귀여운 돌멩이 두 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