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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2. 2. 12:18

 

 자율주행중인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비둘기를 치어 죽게 했다면, 타고 있던 사람은 죄책감을 덜 느끼게 될까.

 동네에서 자율주행 챌린지가 열렸다. 평소에도 차가 드문 동네라 운전면허학원의 연습용 노란 차들이 늘 줄지어 다닌다. 나도 십년 전 일부러 여기서 면허를 땄다. 길은 넓고 반듯한데 차가 비교적 드물다. 자율주행 차량들도 이 동네에서 달리면서 한결 마음 편했을 것이다. 갑자기 차선이 줄어드는 일도 없고 좁은 골목길을 비집고 나가지 않아도 된다. 앞으로 탁 뻗은 도로를 무사히 잘 달리며 신호만 잘 지켜도 아무런 문제 없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는 곳. 대체로 아무 문제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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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날도 차는 목적지에 잘 도착했다. 주차를 하고는 겨우 내려서 실눈을 뜨고 바퀴를 확인했다. 꼼꼼히 볼 자신이 없어 휙 스치듯 보았다. 혹시 뭔가가 바퀴에 눌러붙어있다면 어떡해야하나. 상비약처럼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수많은 걱정목록 중에 로드킬은 미처 없었다. 로드킬에 대처할 수 있는 비상가방같은 건 생각하지도 못했다. 꾸리려고 배낭을 열어봤자 무엇을 넣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비둘기들이 잘 모여있는 회전교차로를 진입하던 순간이었다. 차도에 나와있던 비둘기 두 마리가 웬일인지 날아가질 않았다. 비둘기를 보고 속도를 줄여 느리게 진입한 게 문제였다. 차라리 빠른 속도로 인기척을 내며 들어왔으면 평소처럼 날아가버렸을텐데. 멀리서부터 숨죽여 들어온 자동차 앞에서 비둘기 두 마리는 태연하게 바닥의 무언가를 쪼고 있었다. 일단 비상등을 켰다. 내려서 쫓아야 하나. 몇 초간 고민했을까, 뒤에서 경적을 울렸다. 빵 아니고 빠바바바방, 얼른 비켜 이 XXX아... 라고 말하진 않았지만 백미러로 보이는 노란 택배차량의 운전석에 앉은 남자는 표정으로 화를 내고 있었다. 순간 당황한 나는 그대로 악셀을 밟았다. 비둘기는 시야에서 사라졌다. 제발 그 사이 날아갔길, 경적을 듣고 놀라 옆으로 비켰기를 빌면서. 

 아 제발, 제발, 제발... 하고 중얼거리면서 회전교차로를 돌아 나오는데 작은 출렁임이 느껴진다. 평소에 몰랐던 턱이 여기 있었을까. 아니면 원래 경사가 있었나. 아니면 너무 긴장하고 신경을 써서 그냥 과민하게 느낀걸까. 제발 제발 하던 중얼거림은 미치겠네, 미치겠네, 이렇게 바뀌었다. 뒤따라오던 노란 쓱 차량은 교차로를 벗어나 무심하게 옆 단지로 진입했다. 노랗고 커다란 트럭이 괴물처럼 느껴졌다. 아니 사실 그 순간 괴물이 된 것은 내가 몰던 작은 은색 승용차였을 것이다. 이제 아이를 등하원시키는 용도로만 사용하는 낡고 정든 차, 그 순간엔 아주 무겁고 매서운 쇳덩이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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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비둘기를 치어 죽였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냥 납작 눌러놓기만 하고 교차로를 빠져나왔을까. 두 마리 다 치어버린 건 아닐까. 며칠간은 회전교차로를 지나지 않고 멀리 돌아왔다. 놀이터를 가는 길에도 장을 보러 가는 길에도 시선을 주지 않았다. 어쩌면 그 출렁임은 그냥 순간의 착각였을지도 모른다. 오래된 포장 도로에 흔히 있는 요철이었을지도. 비둘기들이 얼마나 날쌘데 아무렴 그 큰 경적을 듣고도 가만히 있었을리가. 일주일쯤 지나서 다시 회전교차로를 지났다. 천천히 진입해 천천히 돌아나왔다. 교차로 가운데 있는 작은 텃밭에서 비둘기들은 여전히 뭔가를 찾고 있었다. 출렁거림은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도로는 평평했고 악셀을 밟는 발 끝은 조용하기만 했다. 

 자율주행 챌린지를 위해 늘어서있는 자동차들을 보며 궁금해했다. 이 차를 타고 가다가 비둘기를 치어 죽게 한다면 죄책감은 자동차와 절반쯤 나누게 될까. 아니 개발사와 절반쯤 나누게 될까. 챌린지에 나온 자동차들 중에는 심지어 전투용 장갑차가 있었다. 장갑차 위에는 드론이 달려 있어 드론이 적을 알아보면 장갑차가 포를 쏜다고 했다. 장갑차가 자율주행해서 알아서 적을 죽이면, 전쟁의 책임자들도 사람들 죽였다는 직접적인 책임감은 덜 느끼게 될까. 이미 여러 곳에서 그런 전쟁은 진행중이고, 이 편에서도 사람이라서 어쩔 수 없이 드는 죄책감같은 것역시 점점 덜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누구의 것도 아닌 출렁임만 어슬렁거리며 출렁출렁 여럿을 죽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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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 끝에 느껴지던 작고 경미한 출렁임을 기억한다. 차가 스윽 하고 넘어서던 작은 동산같은 것. 차는 아무렇지 않게 다음 구간으로 진입했지만 그 순간 무언가가 부서지고 잘려나갔을지도 모른다는 의심까지 넘어서진 못했다. 쟁반노래방의 쟁반이 웃고 떠들던 사람들의 머리 위로 불시에 떨어지는 것처럼, 죽음은 도처에서 불시에 생명체를 기습한다고 생각해왔다. 막연히 피격만 두려워할 때는 그랬다. 이젠 조금 달리 걱정한다. 내가 어디선가 쟁반을 떨어트리는 처지가 될지도 모른다고. 단단히 붙잡아야 한다고. 식은땀 나는 두 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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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날, 경적이 아무리 울려도 잠깐 내려서 비둘기를 손으로 날려보낼 수 있었다면. 

 금방 아주 멀리 날아갔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