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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9. 1. 00:28

 

 열시쯤 잠들었다 늘 화들짝 깬다. 아이들을 재우며 같이 잠들었다가 아! 아직 뭔가 할 일이 있었는데! 하고 호다닥 잠에서 도망나온다. 오늘의 할 일은 보육료 결제. 낮에 메시지가 왔었는데 까맣게 잊고 있다 한밤이 되어서야 다시 떠올랐다(완전히 잊은 게 아니니 그게 어딘가). 

 ARS며 포털이며 접속해 국민행복카드 번호를 누르는데 알 수 없는 이유로 결제가 되지 않는다. 카드를 붙들고 이리저리 헤매는 사이 얕은 잠은 모두 달아나버린 뒤. 생각은 낮에 만났던 사람들에게로 이어진다. 좋은 날씨, 점심의 비스트로에서일로 만난 두 사람과의 대화가 좋았다. 복직 후 매일 점심약속이 있지만 대화가 좋았다고 여겨지는 날은 드물다. 직장인들의 점심이란 대개 회사와 사람과 업무에 대한 불평으로 시작해 끝나기 마련이고 나 역시 대체로 그런 대화엔 열을 올린다. 

 이례적으로, 오늘 점심의 주제는 죽음이었다. 어떤 부고로 시작한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각자가 처음으로 죽음이라는 개념을 깨친 어린 시절의 이야기에서부터 죽음과 관련한 각종 단상들을 오갔다. 놀랍게 읽은 기사와 책과 영화 속의 장면들이 오가는 사이 이야기 속에서 가장 자주 등장한 말이 있었다. 마침 요 며칠 내내 내 마음에도 맺혀 있던 문장이었다. 인생이 대체 뭔가, 삶이 대체 뭔가- 정확히는 인생,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걸까. 정도가 될 것 같다. 

 요즘 퇴근길엔 늘 인생 정말 알 수 없다, 혼자 되뇌였다. 오랜만에 복직해 전해들은 S의 근황 때문에 더욱 그랬다. S는 한 때 제왕처럼 조직에 군림하며 동료들을 쳐냈다. 얼굴이 알려지는 직종이었기에 악명도 빨리 높아졌고, 그 악명이 진영논리에 따라 반대편에서는 장점이 되기도 했다. 조직에서 군림한 이후 어찌어찌 뱃지 근처까지 갔는데 막판에 틀어져 결국 입성에는 실패했다. 여기까지는 모두가 아는 얘기. 한 시절 그와 쌍둥이처럼 엮여 불리던 B가 최근 모 정당의 핵심 인재(?)로 활약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S가 떠올랐다. 며칠 전 끝내 전해들은 근황은 그닥 유쾌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도 몹시 힘든 시간일 것임이 분명했다. 시원하지도 통쾌하지도 않았다. 다만 더 궁금해질 뿐이었다. 무엇을 위해 삶을 그런 방식으로 꾸려 나갔을까. 종착점에 어떤 트로피가 자신을 기다리길 바라고 바랐을까. 다른 사람들을 울리고, 괴롭히며 나아간 자리에서 무엇이 남아 그를 기다리고 있었을까. 

 죽음에 대해 한참 이야기하다 회사로 돌아오는 길에 S의 구둣발 소리를 떠올렸다. 조용한 복도를 쩌렁쩌렁 울리던 무겁고 둔중한 굽의 울림. 징이 박힌 것처럼 바닥을 쳐내던 신발의 반향음. 또각또각 소리에 마음을 졸이며, 문을 열러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던 스텝의 움직임. 새벽 생방송을 위해 스튜디오에 들어서면 느껴지던 차가운 한기와 뒤섞여- 인생 무언가, 아니 S는 무엇을 위해 그 시절의 매일매일을 그렇게 꾸린 걸까, 허망하고 답 없는 궁금증만 마음 속에 가득 고인다. 지금은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그 구둣발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