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main image
분류 전체보기 (177)
A (177)
Visitors up to today!
Today hit, Yesterday hit
daisy rss
tistory 티스토리 가입하기!
2022. 5. 10. 11:07

 

 허허벌판 위에 홀로 솟아있는 원색의 탑과 기둥들이 몇 킬로미터 밖에서도 선명했다. 들판에 들어선 주차장에 차를 대자 멀리서 바람이 불어오며 노래가 들려왔다. 블럭으로 외벽이 장식된 호텔을 지나자 정문이 등장했다. 붉고 푸른 옷을 입은 직원들이 블럭의 손처럼 자신들의 손을 디귿자로 모아 오그린 채 아래 위로 흔들며 인사했다.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문을 통과하자 세상의 큰 것들을 죄다 옮겨둔 공원이 등장했다. 청와대, 여의도 63빌딩, 해운대의 주상복합건물, 산과 바다.

 블럭으로 이루어진 풍경들을 한참 보다가 왜 레고를 좋아하지 않는지 다시 알게 되었다. 무엇이든 조립하고 해체해서 세상을 구현해낸다는 그 컨셉 자체가 싫다. 크고 웅장한 자연물과 인공건축물부터 꽃에 이르기까지 무엇이든 박스 안의 비닐봉지 속에 해체되고 축소된 채로 들어가 있고, 설명서대로 쌓고 조립해 다시 그 모습을 만들어낸다는 구상 자체가. 초등학교 무렵 즈음에 누군가에게서 얻어온 블럭을 한참 조립하다 아주 메스껍고 머리가 아팠던 적이 있는데 그때부터였을까. 해체와 재조립을 싫어한다니 아무튼 조금이라도 나아가거나, 나아지기는 글러먹은 모양이지만 여하간 여전히 좋아할 수가 없다. 아무것도 해체되지 않고 조립될 이유도 없는 세상에서 살고싶다. 그래도 조립과 해체가 가능한 세상 중에서 꼭 선택해야 한다면, 큰 것들을 작게 만들어 소유하기보단 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을 크게 크게 확대해 바라보고 관찰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