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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0. 29. 11:57

 

 며칠 전 합정역을 걸어 지나가다 바닥에서 아주 붉게 잘 물든 단풍을 보았다. 몸을 굽혀 단풍을 주워들고 뒷면에 벌레 먹은 데가 없는지 확인하고 있는데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마침 내가 단풍을 주워들고 있던 곳이 합정역에 많은 발코니형 카페 바로 앞이었던 것. 단풍잎을 주워 허리를 펴자 데이트중인 것 같은 커플과 눈이 마주친다. 왠지 좀 민망해지긴 했지만 당당하게 단풍잎을 가디건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가을이 되자 길을 가다 만날 수 있는 거의 모든 나무들엔 열매가 달리기 시작했다. 저기도 열매가 있어? 싶은 곳에도 어김없이 손톱보다도 작은 열매들이 맺힌다. 키 작은 관목부터 나뭇가지를 주워들고 아무리 흔들어도 닿지 않는 높다란 사철나무들에까지. 우리 동네에는 꽃사과와 산딸나무, 땡감이 한 차례 지나갔다. 이제 곧 구기자가 열리고 떨어질 차례다. 

 왜 모르고 살았지, 하고 나무를 하염없이 쳐다보다가 그렇지만은 않을 수도 있단 생각을 했다. 아주 오래 전엔 나도 이 모든 열매들을 뜯고 맛보기도 하고 주머니에 소중하게 넣어뒀다 터지면 울기도 했을 것이다. 멈춰 서서 굽어보고 들여다보고 작은 숲 안으로 들어가볼 여유가 없어 아주 오랫동안 잊고 있었을 뿐. 

 오늘도 주머니 속엔 익은 열매들, 너무 익어 터지기 직전의 열매들, 아직 덜 익어 초록 풋내 나는 열매들로 가득하다. 열매, 열매, 눈 닿는 모든 곳에 여전히 열매가 맺혀 있다. 아직 한 번도 만져보지 못한 새로운 것들로. 키가 조금 더 컸으면 좋겠다. 높이 달린 열매들을 마음껏 만져볼 수 있게. 요즘 난 새로 태어난 사람처럼 아주 신기한 것 투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