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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2. 15. 12:44

 

필요에 의해 써보는 책상시리즈 1 

부제 : 모범생은 책상에 앉으면 마음이 편해지는가? - 책상의 원형기억을 찾아서

 책상의 원형은 낡은 공립 고등학교에 놓여있는 1인용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기저기 생채기가 나고 낡아 반질반질해진 목재 합판으로 이루어진 책상. 잿빛 철재로 이루어진 짧은 다리와 책 몇 권이 들어가는 서랍이 아래로 달려있다. 코팅때문인지 아니면 수많은 엉덩이를 거치며 닳아서인지 반질반질했던 의자는 엉덩이를 깊숙이 붙이고 앉아야 나았다. 의자에 90도로 허리를 맞춘 다음 책상에 바짝 붙여 배와 책상의 거리를 최소화하는 방식. 책상에 윗배가 살짝 눌릴 정도로 앞으로 가 닿으면, 몸의 무게를 의자와 책상에 앞과 아래로 분산시킬 수 있어 한결 안정적이었다. 

 그 시절 책상에서는 거의 모든 것이 가능했다. 아니, 모든 것을 해결해야 했다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0교시인 8시에 책상에 앉으면 야간자율학습이 끝나는 10시까지 책상에 붙어있어야하니 하루 최소 14시간을 보낸다. 당연히 책상은 밥상이자 침상이기도 했는데, 희한하게 책상일 때는 어떤 자세를 취해도 불편하기만 하던 그 작은 가구가 쪽잠을 잘 때만큼은 기가 막히게 몸에 착 감기곤 했다(누구에게나 있는 경험일 것이다). 차가운 철재 다리나 책상의 거친 옹이도 잠을 자고자 하는 학생들의 욕구 앞에선 아무런 장애물이 되지 못했다. 다만 앞으로 구부러지며 가슴이 압박되는 자세 때문인지 책상에서 자면 가위를 자주 눌렸는데, 다음 교시가 시작되어 선생님이 문으로 들어오시는 장면이 보여도 도통 일어날 수 없었다. 뺨을 맞대고 누운 늙고 낡은 책상에서의 잠은 아주 진득하고 또 끈적였다. 옆에 앉은 짝꿍이 세차게 몸을 흔들어주기 전까진 도무지 뺨을 떼어내기 어려울만큼. 

 일단 책상에서 한숨을 돌리고 나면 나머지 일과는 편하게 흘러갔다. 침자국을 닦아내고 급식을 받아와 먹은 다음 음식물 자욱도 닦아낸다. 하루 한 번은 닦아줘야 또 뺨을 부비며 잘 수가 있으니까. 낮은 의자 등받이에는 언제든 덮을 수 있는 체육복 상의가 걸려있어 포근함을 연출했다. 본연의 취지에 맞게 수업을 듣고 필기를 하고 잠깐 딴 생각이 나면 죄 없는 책상 위를 볼펜으로 살짝 긁어 뭔가를 적어둔다. 십대 소녀에게 응당 있을 법한 심각한 고민같은 것... 다음 날 보면 H.O.T forever라고 적혀있을 따름이었지만. 나 말고 대부분의 아이들도 책상 위에 무언가를 즐겨 썼다. 누군가를 향한 사랑이나 증오나 분노나 아니면 다음 시험 과목에 반드시 나올 것 같은 공식같은 것들. 입 밖으로 소리내어 말할  없는  일단 책상에 써 두었다. 나 말고도 누군가 봐주길 원하는 소극적인 발언. 수신인 없는 그 낙서들을 발견하게 되는 건 대개 주말 사이 토익시험을 치러 온 수험생들이긴 했지만. 

 그 시절 책상은 작은 요새였다. 모범생이었던 내가 자습시간에 책상에 잠들어 있으면 선생님들은 대개 밤에 공부를 늦게까지 해서 피곤한 알았다. 새벽 두세시까지 깨어 신해철의 고스트네이션을 듣느라 피곤한 줄은 당연히 몰랐다. 낮 두시의 자습시간엔 윤도현에서 윤종신으로 이어졌던 두시의 데이트를 들었다. 졸거나 다른 짓을 하는 것처럼 보여 내 앞으로 다가오던 선생님들도, 책상 위에 근엄하게 붙어있는 두 사진을 보면 그냥 돌아섰다. 왜인지 2000년대 초반 내 책상에는 체 게바라의 사진과 서울대 사회과학대학교의 사진이 나란히 붙어있었다. 굳이 해석해보자면 체제에 저항은 하고싶은데 좋은 대학엔 들어가고싶다, 반항하고 싶지만 좋은 대학에 들어가서 이상주의적인 단어들로 내 반항심을 표출해보고 싶다, 정도였을까. 사실 해석할 필요도 없고 당시가 체 게바라의 사후 30주년이라 그냥 베스트셀러였다. 게릴라라니...왠지 멋있잖아! 국사책 표지에는 동네 베스킨라빈스에서 떼어온 김재원 포스터가 오려 붙여져 있었으니 김재원과 체 게바라와 서울대 사회과학대학의 붉은 건물은 서로 영문을 모른 채 나란히 펼쳐져 있었다. 그야말로 대혼란의 책상. 

 아무리 알 수 없는 조합으로 책상이 가득찼다 해도, 그 책상은 내 것이었다. 조가 바뀌거나 줄이 바뀌면 대개 책상과 의자를 들고 함께 이동했다. 그래서 책상은 때때로 개인의 환유로 쓰였다. 누군가 자리를 비우면 자리에 하고 싶은 말을 전했다. 과자나 쪽지를 올려두고 화해를 청하기도 수다를 걸기도, 때론 소심한 해꼬지들이 책상을 통해 오가기도 했다. 하긴 하루에 열 너댓시간을 보내는 곳이니 책상에 우리의 일부분이 정말로 깃들지 않았으리란 법도 없다. 목소리가 스며들고 침이 스며들어 책상은 더욱 낡아갔고 아이들은 책상에서 나아가 졸업했다. 학교를 떠났다해도 책상에 길들여진 생활의 패턴은 변하지 않았다. 일곱 살에 입학한 공립학교에서 처음 만난 낡은 목재 책상, 그리고 거기에 앉아 하루의 대부분과 일상의 대부분을 보내는 삶. 책상 위에 앉아 웃고 울고 쓰고 읽고 밥을 먹고 쪽잠을 청하고 여가를 누리던 하루의 패턴. 내 일평생의 안정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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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책상과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에게 아주 편한 존재다. 아니 적어도 책상을 아주 가까이 여기며 살아가고 있다. 무엇이든 일단 책상 위에서 해야 편해지기 때문에, 쇼핑도 영화 보기도 일단 책상에 앉아 의자를 바짝 끌어당겨 앉은 채 시작한다. 자세를 잡고 나면 내용은 어떠해도 상관없다. 인스타그램으로 남들이 얼마나 잘 사는지 구경하며 부러워하는 동시에 이마트 홈페이지에 들어가 쿠폰을 다운받는다. 2미터 거리두기를 한 채 이런 내 모습을 보면 너무나 학구적이겠지. 모범생은 삼십대가 되어도 언제나 지금 내 모습이 어떻게 보일지 의식하며 산다. 정작 내가 책상에서 하는 일의 구 할은 시간 흘려보내기인데도 말이다. 다른 장소에서 시간을 쏟아버릴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책상에 앉게 된다. 거기서 시간을 흘려보내면 왠지 아주 사소한 일에도 의미가 생기는 것만 같아서.

 문제가 생긴 건 3년 전이다. 더는 책상 생활이 가능하지 않다는 선고를 받은 것이다. 어쩌면 앞으로도 꽤나 불가능할 거라는. 당황스러웠다. 그럼 전 이제 어디에 있어야 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