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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0. 26. 14:03

어둠 속에서 보이는 건 자라 한 글자 뿐이었다. ZARA. 자라의 오십원짜리 쇼핑봉투가 힘 없이 집 앞에 놓여 있었다. 택배는 아니었다. 누군가 정확히 현관 앞에 두고간 종이봉투였다. 무성의하게 찢은 연습장 한 장이 절반 정도 위로 비죽 솟아있었고 드문드문 보이는 글자 몇 개. 놀란 우리는 발걸음을 멈췄다. 예사롭지 않은 봉투임이 분명했다. 적어도 자라의 스웨터나 티셔츠가 들어있는 게 아님은 틀림없었다. 열어보고 싶지 않았지만 얼른 열어서 확인해야 집에 들어갈 수 있을 터였다. 아이 두 명을 각자 안은 채 주춤주춤 봉투로 다가갔다.

죽 찢은 연습장에는 사인펜으로 썼음직한 한 문장이 두 줄에 나뉘어 적혀있었다. "키워/보세요". 휘갈겨 대충 쓴 것이 분명한 종이 한 장에는 보내는 사람도 이유도 설명되어 있지 않았다. 거기서 확실한 건 단 하나뿐이었다. 그 자라 봉투의 수신인이 우리 가족이라는 것. 봉투의 입구는, 모르는 척 슬며시 옆으로 밀어둘 수도 없게 확실히 우리 집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키워/보세요, 라니. 대체 종이봉투에 뭘 넣어둔걸까. 두려운 마음으로 휴대폰 라이트를 켜 종이봉투 안을 비추었다. 푸다닥. 무언가 살아있는 생명체가 움직이고 있었다. 밀봉된 투명 봉투 안에 묵직한 생명감이 느껴져왔다. 심지어 하나가 아녔다. 뒤에서 눈이 동그래져있던 아이가 흥분 반 두려움 반이 섞인 목소리로 소리질렀다. "물고기네~~??"

일요일 저녁 여섯시 반. 누군가 우리 집 현관 앞에 물고기 아홉 마리를 놓고 갔다. 어떤 이유로 놓고 간다는 부연설명은 없었다. 황당했다. 여기가 베이비박스도 아니고 왜 살아있는 생명체를 유기하고 간단 말인가. 아니, 베이비박스라면 적어도 '키워/보세요' 대신 '키워/주세요' 정도로 공손하기라도 했을 것이다. 키워보라니, 무엇을, 도대체 왜? 우리 부부는 이미 어린 아이 둘을 키우는 것만으로도 둘의 키움 능력치를 최대한으로 끌어쓰고 있는데.

황당함이 가시자 두려움이 찾아왔다. 물고기를, 그것도 살아 헤엄치는 물고기를 아홉 마리나 남의 집 앞에 두고 간 사람의 마음이 대체 무엇이었을지 상상하기 싫었다. 요즘 아이가 많이 울어서 화가 난 이웃이 있었던걸까. 나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원한을 산 일이 있었을까. 혼자 상상에 빠져있는데 남편이 말한다. 원한이면 죽은 물고기를 뒀겠지, 지금 살아있잖아. 저렇게 놔두면 물고기들 다 죽을 것 같아. 그리고 자갈들이랑 물고기 사료도 함께 두고갔어. 진짜 그냥 키워보라는 거야.

황당한 메시지, '키워/보세요'의 발신인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겠지만 우리 집엔 살아 헤엄치는 물고기 아홉 마리를 키울만한 시설이 전무했다. 심지어 나는 어린 시절에도 물고기를 키워 본 경험이 없었다. 유년시절을 탈탈 털어보아도 뭔가를 길러본 일이 드물었다. 어린 아이들이 흔히 좋아할만한 잠자리 잡기나 개미 키우기... 여하튼 그 모든 종류의 살아있는 생물을 기르는 데는 취미가 없었다. 길러보진 않았지만 소질도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집에는 기어다니는 아기 한 명과, 걸어다니지만 갖은 관심이 필요한 조금 큰 아기 한 명이 함께 살고 있었다. 이들을 기르는 데 온 힘을 다 바쳐도 쉽지 않은 판국에, 물고기라니. 나는 내심 남편이 연못이든 어디든 바깥의 적당한 장소에 그 물고기들을 유기하고 오길 바랐다. 차마 입 밖에 내진 못했지만 간절히 ‘처리해주길’ 원했다. 인상을 팍 구기고 물고기들을 집안에 들이고 싶지 않은 티를 냈다. 아이가 쭈뼛쭈뼛 말하기 전까지는.

엄마, 물고기랑 같이 있으면 좋겠어.

차마 물고기를 싫어한다는 얘긴 할 수 없었다. 말하지 않아도 이미 아이는 눈치챈 것 같았지만. 게다가 물고기들은, 몇 시간 갇혀있었을지 모르는 투명 비닐봉투 안에서 힘겹게 파닥거리는 중이었다. 파닥거림은 그 자체로 생명력의 전시인 동시에 위태로운 신호였다. 그대로 작은 비닐봉투 안에 가뒀다간 아침이 되기 전에 아홉 마리의 사체로 바뀔 게 틀림없었다. 살아있는 물고기 아홉마리도 골치였지만 죽어버린 물고기 아홉마리가 현관 앞에 놓여있다고 생각하면 더 견딜 수 없었다. 나는 체념한 채 쓰지 않는 반찬통을 뒤적거리다 가장 누렇고 냄새가 밴 통을 꺼냈다. 어항만은 못하겠지만 당장 하루 이틀밤을 지새울 임시 숙소로 나쁘진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 집엔 아홉 마리의 물고기들이 헤엄치기 시작했다. 재어둔 불고기며 막 담근 겉절이를 담아뒀던 오래된 락앤락 보관용기 안에서. 아이는 헤엄치는 물고기들 머리 위로 동봉돼있던 사료 몇 알을 떨어트리며 즐거워했다. 무작위의 아홉 마리가 아녔다. 노아의 방주에 탑승시키기 위해 종류별로 솎아내기라도 한 것처럼, 질서정연하게 종류 별로 세 마리였다. 청소물고기 세 마리, 구피 세 마리, (아직 종을 알아내지 못했지만 아주 빠르고 날렵하며 아이 새끼손가락만한) 어떤 종 세 마리. 남편과 아이는 락앤락 용기 앞에 한참을 앉아 물고기를 가리키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여차하면 이름도 붙여줄 기세였다.

임시 물고기 숙소 앞에서 들려오는 아이의 웃음소리를 뒤로 한 채 나는 머리를 핑핑 굴려보았다. "키워/보세요" 의 발신인을 찾아내야했다. 대체 누가 왜, 살아 있는 물고기들을 기습적으로 두고 갔는가. 아무리 떠올려봐도 그럴 만한 사람이 쉽게 떠오르질 않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