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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3. 2. 12:33

 

  분신처럼 지니고 다니던 방역패스가 사라진 줄도 몰랐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정신없이 지지고 볶은 지 2주. 지난 주엔 부산 본가에 내려와 매일같이 해운대 바닷가에서 모래놀이를 하는 중이다. 모래를 많이 만졌더니 금세 손가시가 자라나 따끔거린다. 두 아이와 본가에서 키우던 강아지까지 더해지니 누가 개고 누가 사람인지 헷갈려 여기를 부르면 저기가 돌아보고, 아기에게 주던 이유식을 강아지가 냉큼 받아먹기도 한다. 개도 짖고 사람도 짖다가 때론 개가 말하고 사람도 말한다. 

 무슨 요일인지도 헷갈리던 아침, 강아지와 같이 기어다니며 싸우던 둘째를 유모차에 태우고 바닷가 앞의 카페로 나왔다. 얼마만의 카페인가. 문을 밀고 들어가며 휴대폰을 흔드는데 아무것도 뜨지 않는다. 접종 정보가 삭제되었단다. 방역 정책이 바뀐 줄도 3월의 시작점에서 새로운 효력이 생기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그냥 들어간 카페에선 아무도 나를 붙잡지 않는다. 접종 완료하셨냐는 질문 대신 어떤 원두를 선택하시겠냐는 친절한 질문이 맞이한다. 왠지 허전하다. 남들처럼 반신반의하며 맞은 주사지만 3차까지 완료했다는 문구가 뜰 때면 이상하게도 당당해졌다. 과업을 완수한 자 특유의 자신만만함같은 게 생겼다. 걸리고 안 걸리고의 문제가 아니라, 들어가고 안 들어가고의 문제에서. 코로나19에 걸리는 것보다 공간에 들어갈 권리를 박탈당한다는 두려움이 더 컸기 때문이다. 일상적으로 드나들언 카페와 박물관 앞에서 주눅들기 싫었다. 들어갈 자격이 없는 인간으로 분류되는 건 참을 수 없었다. 그 어떤 과업에서도 쳐지고 싶지 않은 모범생적 기질의 인간에게는 백신패스가 꽤 유용했다. 백신'패스'라니, 무의식은 이미 패스의 반댓말이 fail 이라고 짐작하는 중이었다. 주민등록증을 얻어 투표를 하고 면허증을 따 운전을 하고 사원증을 수령해 회사 게이트를 통과하는 것처럼 백신패스는 어느새 증명서들 중 하나였다. 흔들면 나오는 그 증명서를 때론 뿌듯하게 바라봤다. 걸리더라도 사회의 떳떳한 구성원으로 인정받고 싶었다. 제도 자체의 효용성 논란을 떠나 일단 도입된 제도라면 낙제할 순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흔들면 안정감있게 착 하고 뜨던 코드는 사라진 채 흰 화면에 안내 문구 뿐이다. 카페엔 무사히 들어왔고 아무도 나를 붙잡지 않았는데도 서운하다. 패스 올 패일의 세계에서 패스가 그어놓은 금 안으로 안전히 떠밀어주던 증명 하나를 잃은 기분이다. 고작 이런 것에서도 자기증명의 기운을 끌어다 쓰고 있었다니, 어쩐지 굉장히 쑥쓰러운 자기발견이다. 없는 걸 알면서도 괜히 한 번 더 휴대폰을 흔들어본다. 흔들어도 없다. 역시 증명서와 제도는 얄궂다. 하루아침에 아무 힘도 없어질 것들이면서 사람 마음을 안심하게 만든다. 영원히 가질 수 있는 건 그런 게 아닌데도. 카페 문이 열릴 때마다 찬 바닷바람이 들이치며, 멍청아 정신차려 하고 짠내를 퍼붓고 사라져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