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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에 해당되는 글 4건
2020. 7. 27. 10:30

 

 회식 자리를 파하고 돌아오는 길에 발에 감기는 물을 쳐내다 굉장한 위기감을 느꼈다. 날이 갈수록 목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말의 분량도 늘어나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보자. 팀의 막내와 나의 나이차이는 여덟 살. 여덟 살 많은 선배와 밥을 먹든 술을 먹든 할 말이 그닥 없었던 예전을 되돌아보며 다시 한번 다짐했다(다짐마저 안하면 빠르게 나빠지니까). 목소리는 가급적 줄여보도록 하자. 말은 필요한 것 외에는 적게 하도록 하자. 일주일에 한 번은 나 혼자 점심을 먹으면서 책을 읽자(다행히도 문 닫았던 카페가 재개장했다). 퇴근하고 난 평일 저녁에 최소한 십 분은 생각을 하자(트위터 그만 보고). 흘러가는대로 그냥 두면 너무 별로일 것 같아서, 급한 마음에 남기는 월요일 아침의 반성문. 

 

 

2020. 7. 22. 10:25

 

 아기의 말이 청산유수로 늘어간다. 단어를 이어 문장을 말하기 시작하자, 기쁨과 함께 슬픔이 찾아왔다. 밤에 잠자리에 누워 온통 검은 와중에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며 이거는 엄마 눈, 이거는 엄마 코, 이거는 엄마 입...(눈코입이 괜히 나온 노래가 아니란 걸 깨달음) 하고 하나하나 짚어가며 엄마 예뻐, 이렇게 얘기해주는 걸 듣고 있으면 언어란 인간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발명됐구나 싶다. 하지만 그럴 리는 없다. 눈코입을 짚으며 예쁘네 예뻐~? 하던 아기가 돌아누워 아빠에게 이렇게 얘기한 것.

 아빠 비켜 아빠는 바닥에. 

어안이 벙벙해진 남편이 그럼 엄마는? 물어보자 아기는 천연덕스레 대답한다. 엄마는 이불에. 이불은 폭신폭신해 바닥은 딱딱해. 아빠는 바닥에 엄마는 이불에. 어둠 속이라 제대로 보이진 않았지만 남편은 정말로 크게 상처받은 표정이었다. 아빠는 저리가, 아빠는 비켜... 

 그래도 아직까지 우선순위에서 할아버지 할머니 다음에 엄마 정도는 있구나 싶어 상대적 안도(?)의 한숨을 쉬다가도, 언젠가 아기가 자라 어떤 말의 기쁨과 슬픔을 더 주게 될까 생각하면 설레면서도 한편 아득해진다. 나는 나의 부모에게 얼마나 많은 말의 슬픔을 안겨주었던가, 싶어서. 말은 왜 내 마음대로 나가지 않는걸까, 아니 왜 항상 마음보다 15도씩은 옆으로 빗나가는 걸까. 어쩌면 아기도 그 날 아빠 비켜, 바닥에, 하고 말을 하고 나서 속으로 약간 당황하진 않았을까. 내가 하려던 말은 이게 아닌데. 할 수 있는 말이 많지 않아서 그렇게 말한 것 뿐인데.

 아기보다 훨씬 많은 단어를 알고 잘 쓰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는 단어와 발화되는 단어가 언제나 미세하게 엇나간다는 점에서만큼은 나도 어쩌면 여전히 말을 배우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말의 기쁨과 슬픔에 대해서 여전히 배워가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2020. 7. 14. 10:44
[A]

 

 주말까지 더할나위없이 즐겁게 놀던 아기는 월요일 아침이 되면 본능적으로 월요일이란 걸 직감한다. 일단 눈을 뜨면 평소처럼(?) 아빠가 없다. 엄마도 곧 출근할 예정인 눈치다(노래를 부르고 있어도 마음은 왠지 다른 데 가 있는 것 같고 초조해 보인다). 아기는 성질이 나기 시작한다. 또, 또, 시작됐구나! 뭔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며칠을 또 보내야 하는구나! 

 아기는 밥을 먹다 말고 드러눕는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얼굴을 파묻고 엎드려보기도 한다. 별달리 소용은 없다. 엄마는 얼른 머리를 말리고 나가서 오늘 아이템을 잡아야 하고, 한 달 후엔 새 프로그램을 또 런칭해야 하는데(ㅠㅠ) 간밤 꿈에도 뾰족하게 좋은 제목은 나오질 않아 아 아침부터 시무룩하다. 엄마 가가, 놀자, 책 또 읽으까~?  열 번은 반복해도 왠지 멍한 눈초리. 본격적으로 심통이 난다. 할아버지를 외치며 울부짖기 시작한다. 엄마 아빠가 없을 때의 최애템 할아버지. 밖에 나가서 함께 열매도 줍고 개미도 구경하는 아기의 베프. 하지만 할아버지가 오시려면 아직 몇 시간이나 남은 것 같고, 엄마는 이미 옷을 주섬주섬 꺼내 입고 있다. 아기는 목이 찢어져라 소리를 지르며 울기 시작한다.

 엄마가 현관으로 나가면 엎드려 울던 아기는 이내 체념한다. 더 울어봤자 어차피 엄마는 나갈테고, 월요일은 시작되었다. 고개만 까딱 숙여 인사를 한다. 정성을 들여 꼭 두 번 인사를 하는데 엄마는 꼭 한 번만 하라고 손사래를 친다. 

 아기의 시간도 흐른다. 아기도 월요병을 앓고, 금요일 저녁이 되면 주말이 온 걸 알고 행복해한다. 월요일 아침은 너무 싫지만 영영 월요일 아침에 머물러 있지는 않을 거란 것도 안다. 무언가를 기다리기 시작한다. 시간은 흘러가고, 시간이 흘러가면 뭔가 변한다는 걸 아주 어렴풋이 알게 된 것이다. 

 

  

2020. 7. 7. 10:42

 

 체육계 선수 폭행, 안희정 모친상에 놓인 조화, 통합당의 국회 복귀, 이런 단어들 속에서 몇 번 파도를 타다 짠 바닷물을 가득 마시고 헛배만 부른 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아주 길게 한숨을 내쉰다. 부른 헛배라도 가라앉을까 해서. 몇 번 한숨을 반복하며 짠기를 털어내다 보면 바람이 아주 달콤하게 느껴진다. 여름밤의 선선한 퇴근길, 그 짧은 거리야말로 내게 주어진 유일한 시간. 아주 잠깐 감상들이 밀려올라치면 아무것도 없는 맨손으로 마구 쳐낸다. 썰물이 빠져나가듯 센티멘탈이 떠나가면 서둘러 샌들을 벗고 발을 씻어버린다. 짧은 퇴근길 발밑에 고여들었던 센티멘탈도, 힘없이 소용돌이치며 하수구로 씻겨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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