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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에 해당되는 글 5건
2020. 6. 26. 10:49

 

 퇴근해 문을 여니 아기가 할머니 등에 포대기로 업힌 채 울고 있다. 돌이 지나고는 업히는 일도, 우는 일도 거의 없었는데 웬일인지. 이야길 들어보니 어릴 때부터 잘 듣던 동요 씨디를 듣다가 특정 곡만 나오면 울음이 터진단거였다. 단조의 슬픈 노래도 아니고 아주 발랄한 곡이어서, 그럴 리가 없는데 하고 씻고 나와 아기와 같이 그 노래를 다시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입을 삐죽삐죽하더니 아주 슬픈 표정으로 구슬프게 눈물을 떨궜다. 

 잠자리에 누워 아까 왜 아기곰 노래 들으면서 울었어? 하니 아기곰 잉잉잉, 이라고만 한다. 속상해? 슬펐어? 보통 말이 많은 편인데 왠지 오용하더니 혼자 돌아눕는다. 아기곰이 섬집아기처럼 혼자 집을 보는 내용도 아니고 가족들이랑 어울려 즐겁게 논다는 이야긴데 어디가 슬펐을까. 아님, 가족들이랑 어울려 즐겁게 노는 내용이라 슬펐을까. 돌아누운 아기는 혼자 이 노래 저 노래를 부르며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다 금방 잠에 들었다. 잠든 아기의 얼굴을 쓸어보는데 눈을 감은 표정이 이상하게 쓸쓸해 보였다. 16개월 인생에도 내가 알 수 없는 센티멘탈이 있구나. 요즘 장맛비가 내리는 창가에 유난히 오래 서 있더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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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6. 23. 23:06

 

 

 이사를 고민중이라는 누군가와 밥을 먹다 나도 모르게 이렇게 말했다. 상암동 정말 좋아요. 꼭 살아보세요. 헤어지고 나서 어두운 상암동 거리를 천천히 걸어 집으로 돌아오는데 아주 오래 전, 2007년 혹은 2008년 언저리에 처음 상암동에 왔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수업 과제 때문에 영상자료원엘 들른 참이었다. 관악구에선 너무 멀어 버스를 몇 번이나 갈아타고 겨우 도착했던 상암동의 분위기에 얼마나 놀랐는지. 모든 게 너무 황량하고 쓸쓸해 오래 전에 읽은 핵폭발 이후의 지구를 다룬 디스토피아적 소설 속의 한 장면을 걷는 것만 같았다. 인적은 드물고 건물들은 날카로운 금속성을 빛내며 역시 드문드문 들어서 있던. 

 학교로 돌아가기 위해 다시 버스를 기다리던 정류장 앞을 기억한다. 지금도 있는 스타벅스가 그 때도 있었다. 여기에 스타벅스가 있네, 이런 데도 스타벅스가 있구나. 정류장 앞에서 버스를 잡아타고 상암동을 벗어나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런 동네는 정말 싫다, 서울의 외곽이면서도 다른 외곽 동네들이 가지고 있는 오래된 서울의 분위기라곤 하나도 없이 황량하기만 하다, 상암동은 별로다, 이렇게. 

 버스를 타고 상암동을 벗어나며 유심히 봤던 건물 중엔 창업복지관도 있었다. 관이 운영하는 건물인데 이렇게 외곽에 있구나. 여기도 마포구인가보네, 마포구의 이미지는 이렇지 않았는데. 그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생생하게 난다. 그 건물은 지금도 그 자리에 있다. 내가 가장 자주 가는 카페 역시 거기에 있다. 

 시간은 정말 예측할 수 없는 공간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요즘은 나의 서울, 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나도 이제는 서울의 여러 공간에 대해 아주 개인적이면서도 아주 보편적인 감정을 갖게 되었다. 누군가 서울의 이런 장소들에 대해 내 마음과 꼭 같은 글을 써줬으면 좋겠다고 며칠간 생각하다 귀찮음을 떨치고 아주 짧게라도 써두기로 했다. 역시 처음은 상암동. 좋아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 2020.06.24 17:00 | PERMALINK | EDIT/DEL |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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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6. 5. 23:36

 

 점심을 먹고 오후 두세시였나. 다음 주 금요일 인터뷰이를 섭외하려다 전주영화제에 <사당동 더하기 33>이 나와 있는 걸 보고 가슴이 뛰었다. <사당동 더하기 22>, 책으로 나온 <사당동 더하기 25>는 그야말로 기념비적인 작품이 아니던가(이런 진부한 표현을 쓰고싶진 않지만). 이사를 거치며 수많은 책을 버릴 때도 <사당동 더하기 25>는 오랫동안 책장을 떠나지 않았다. 바로 연락처를 수소문해 전화를 걸었다. 연락처는 홍보팀을 통해 받았고 잠시 통화가 가능하시겠느냐, 여쭸을 때만 해도 섭외전화를 하다 빼기 일을 기록할 줄은 몰랐다.

 엠비씨 라디오에서 일하는 뫄뫄다, 하고 밝히자마자 "엠비씨 라디오? 누가 듣죠?" 라는 말이 돌아왔다. 음... 살짝 당황을 펼쳤다가 이내 접었다. 교수님께선 아무래도 들어보시지 못한 채널이시겠군요, 했더니 다시 "나는 엠비씨 라디오를 한 번도 안 들어봤어요." 라고 대답을 하신다. 맞다. 들어보지도 않은 매체에 나가서 내 이야기, 내 시간을 털어놓을 순 없는 일이다. 바쁜 중에 전화를 받았다고 하시기에 짧은 시간이지만 설명을 했다. 어떤 프로그램들이 방송되고, 주파수는 어디고, 방송시간은... 너무 구차했을까? 설명을 자르고 다시 같은 말이 돌아왔다. "라디오 생방송을 누가 듣죠? 나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데." 통화의 결론은 당연히 출연하지 않는 것으로 끝이 났다. 

전화를 끊고나니 잠깐, 무슨 감정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기분이 살짝 스쳤다. 모욕감이었다. 순간 감사하다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아, 평소의 나는 모욕감을 느낄 일이 거의 없는 업무환경에서 일하고 있구나.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으로 옮기면서 매일같이 섭외전화를 하긴 하지만 거절을 당할 때도 대체로 일로 거절당하기 때문에 모욕감을 느끼는 경우는 없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그 교수와의 짧은 통화, 그리고 몇 마디 말에서 내가 느낀 분명한 감정은 모욕이었다. 아무리 모르는 사람, 모르는 매체, 모르는 프로그램이라 할지라도 그런 방식의 거절은 드물다. 하물며 SK브로드밴드에서 통신사를 바꾸라고 전화가 와도 "SKT? 누가 쓰죠?" 이렇게 답하긴 쉽지 않다. 전화를 걸어 나를 소개하고 양해를 구했을 뿐인데 뭔가를 잘못하기에도 짧은 시간이었다. 그럼 왜, 나야 책과 이전의 다큐를 통해 그 교수를 알고 있었지만, 그 교수에게 나는 생면부지의 타인이었을텐데 굳이. 

 잠깐 고민하다 짧은 문자를 보냈다. 저희 라디오 채널은 주로 지방의 블루칼라들이 가내수공업을 하는 작은 공장에서 켜놓거나, 물류일을 하며 길에서 듣기 때문에 교수님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하셨을 것 같습니다. (...) 불쑥 섭외전화 드려서 죄송합니다. 문자를 보내고 나니 조금은 마음이 풀렸다. 자신이 경험하지 않았다고 해서, 다른 모두가 비슷하리라 단정하는 건 내가 아는 한 사회학과는 가장 거리가 먼 태도다. 사회학에 발가락도 담궈보지 않은 신세지만 그건 안다. 교수는 빈곤에 대해 누구보다 오랫동안 연구해왔겠지만 빈곤한 채 오랫동안 살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라디오 일을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알 게 된다. 아니, 알 수 밖에 없다. 자신 주변의 화이트칼라들은 누구도 듣지 않는 것 같은 라디오 방송을 누가 어디에서 켜놓고 있는지를. 일력을 한 장 한 장 찢어 손편지로 사연을 보내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다는 것을. 유투브나 넷플릭스같은 건 아직도 누군가에게 너무 멀고, 공짜인 주파수가 그나마 가깝다는 것을. 아직도 방송에서 이런 시대착오적인 이야기가 흘러나오다니, 하고 깜짝 놀라겠지만 그 시대착오가 누군가에겐 현재진행형의 삶이기도 하단 걸 말이다. 

 -

 몇 통의 전화를 더 돌리다 생방송 시간이 되어 후다닥 방송을 마쳤다. 어느덧 오후의 통화는 희미해져 있었다. 퇴근길에 자주 들르는 빵집에 가서 크로와상과 파운드케익을 샀다. 에어팟으로 뭘 듣느라 정신없이 멍한채로 계산대에 가서, 계산을 마치고 돌아서 나오는 길이었다. 점원이 나를 불러세웠다. 에어팟을 빼고 네? 하고 돌아서는데 녹차머핀을 하나 들고 와 이것도 드셔보세요, 한다. 갑작스런 호의라 눈만 크게 뜬 채 감사합니다, 하고 머핀을 가방에 챙겨넣었다. 살까 말까 하다 내려놓았던 머핀이었다. 

 빵집을 나서는데 그제야 그 교수가 그랬구나, 알 것 같았다. 돌아서는 내게 서비습니다, 하고 머핀을 하나 더 쥐어준 점원에게 거창한 선의가 있진 않았을 것이다. 물론 너무 고마운 일이지만 해석을 붙일 필요는 없다. 오후의 전화통화도 그냥 그런 해프닝이다. 누군가에게 모욕감을 주는 데 거창한 악의가 필요한 건 아니다. 빵을 하나 집어드는 것과 비슷한 무게가 아니었을까. 아마 내 문자는 읽히지도 않았을테다.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후식으로 빵을 먹었다(원래 밥 먹고 빵 먹는거니까!). 오늘은 빼기 일과 더하기 일이었네 싶다가 글로 쓸 수 있었으니 총합에선 하나 더 붙이기로 했다. 갑자기 오늘의 통화마저도 아주 싫진 않게 느껴졌다. 그래도 하나는 배웠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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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6. 4. 23:06

 

 아기를 재우느라 누워서 등을 긁어주는데(노인같은 잠버릇이 있다) 어린 시절 살던 대단지 아파트 안의 상가 2층이었나 3층 풍경이 떠올랐다. 정확히는 상가에 있던 안경점. 단지가 큰 만큼 상가도 커서 없는 가게가 없었는데 문구점만 해도 두 개였고, 비디오가게 쌀가게 반찬가게 철물상 분식점 이런 가게들이 1층에 있었고 2층엔 주로 학원이나 미용실이 자리했던 것 같다. 참, 빵집도 있었다. 

 2층 안경점의 진열대 너머 전시돼있는 안경테를 굽어보던 내 모습이 퍼뜩 떠올랐다. 최소 20년은 넘은 풍경일 것이다. 어처구니없는 어제의 실수 때문에 떠오른걸까. 렌즈를 빼지 않고 밤새 그대로 잤다가, 출근길에 눈이 너무 잘보여 그제야 깨달았다. 일회용 렌즈를 24시간 넘게 그대로 차고 일하고 잠자고 일어나 씻고 또 일하러 나왔다는걸. 

 하루종일 눈이 시리고 아파서 인공눈물을 몇 통이나 썼는지 모른다. 며칠간은 내리 안경만 껴야겠다고 생각한 참이었다. 불을 끄고 어두운 방 안에서 자장가를 부르다보니, 아주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던 풍경들이 하나 둘 떠오르기도 하는 모양이다. 기억은 안경점에서 2층 미용실로, 그리고 단지를 벗어나 꽤 걸어가야 했던 신발가게로까지 뻗쳐나갔다. 그 신발가게에서 운동화를 사 신고 돌아오던 어느 시절. 내가 무척 좋아했던 것 같고 엄마가 내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흐뭇해하던 아주 짧은 장면들. 

 모든 게 너무 짧기만 해 애달프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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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6. 3. 23:14

 

싫은 것 : 신념

진짜 싫은 것 : 강한 신념

진짜 진짜 싫은 것 : 강한 신념형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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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년간의 사회생활을 돌아보는 요즘이다. 손꼽게 힘든 몇몇 순간들이 있었는데 대체로 강한 신념형 인간을 선배로 두고 일할 때였다. 자기 확신이 강하다 못해 넘쳐나 남들 - 여기서 남들이란 주로 만만한 후배들이다 - 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그대로 실행하게 하고 싶어하는 군상들과 함께 일할 때는 정말로, 일의 기쁨과 슬픔 밸런스가 와장창 무너진다. 난 이렇게 생각하는데 너는 어때, 가 아니라 난 이렇게 생각하니 니가 이걸 따라주길 바란다. 네? 

 아주 작고 사소한 판단이라도 모두가 다르게 내리는 데는, 제각기의 기준과 가치판단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의외로 그 기본 전제가 없는 사람들이 꽤 많은데, 프로듀서 직군 중에 또 유의미하게 많다. 프로듀서들과 협업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프리랜서인 경우가 많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방송사 제작 파트에서 피디 외의 다른 직군은 대체로 계약직이거나 프리랜서니까. 아니라고 생각하더라도 강하게 반박할 사람이 주위에 없는 채로 오랫동안 일하다 보면 어느새 자기가 진짜로 언제나 맞다고 생각하게 된다. 물론 옳고 그름이 너무 없어도 문제지만 너무 선명하면... 그거 정말 주변 미쳐버리게 만드는 일이다. 

 어젠가 너무 힘이 들어 후배 하나 그리고 선배 하나에게 아이스 쵸코를 마시러 가자고 청했다. 들큰하고 맛은 없는 아이스 음료를 들이켜다가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나왔다. 이제 진짜 협업이 너무 싫어요. 내가 뱉은 말인데 왠지 낯설고 또 마음에 탁 걸렸다. 생각을 하고 한 말은 아니고 진짜 그 순간 그런 생각이 들어 뱉은 말이었다. 사실 요즘 그런 생각을 하긴 했더랬다. 차라리 일주일에 한 편씩이라도, 혼자 오디오 다큐멘터리만 만들면서 회사 다녔으면 좋겠다고. 기획도 섭외도 취재도 편집도 그냥 혼자 하는 1인 시스템으로. 그러니 순간 내가 뱉은 그 말도 거의 진심 100퍼센트에 가까운 말이긴 했을 것이다. 이제 진짜 협업이 싫다. 남들이랑 일하는 게 싫다. 잘 하진 못해도 좋아하니까 그냥 혼자 계속 다큐만 하고 싶다. 

 집에 오는데 왠지 내가 한 그 말이 맴돌았다. 그리고 덜컥 무서워졌다. 협업이 점점 싫어지는 나 역시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남들과 같이 일하는 방법이라곤 모르는 것만 같은, 포용의 틈이라곤 없는, 강한 신념형 인간들을. 타인의 가능성을 거의 믿지 않은 채 자신의 가능성만 극한으로 밀어붙여 탄생하는 게 강한 신념형 인간들 아니던가. 사람이 싫어지고 같이 일하는 게 싫어져가는 내 안에도 이젠 그만 나 위주로 가고 싶고 일하고 싶다는 그런 싹이 이미 자라고 있는 게 아닌가, 신념만 강하지 않다 뿐이지 패턴은 똑같지 않은가, 이런 생각을 하며

 자기반성을 조금 해보았으나 그래도 요즘 너무 힘든 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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