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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9. 23. 10:47

 

 분명히 아침에 봤던 아기인데 저녁에 퇴근하면 달라져있다. 등을 쓸어내려봐도 한층 넓어져있고, 손을 쥐어봐도 마디가 단단하게 여물었다.자리를 비운 건 열 시간 남짓인데 그 사이 달라진다. 처음 들어보는 말도 곧잘 한다. 앞에 와서 새로 배운 노래와 율동을 곁들여 재롱을 피운다. 분명 아침까지는 아기의 단어장에 없던 단어가 저녁엔 새로 깃들어 있다. 잠든 아기를 가만히 쳐다보면 팔이며 다리가 너무너무 길어져서 이 아기가 정말 내가 낳은 그 아기가 맞나, 누군가 중간에 바꿔치기라도 한 게 아닌가 싶어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아기의 아기시절이 이렇게 짧다니. 달리는 시간을 잡을 방법은 없고, 음미할 여유도 없고, 마음이 애달픈 요즘.

 

 

 

 

2020. 9. 8. 13:40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올라오는 엘리베이터 안. 나 빼고 모두 일행인 중년 남성 예닐곱명이 탔다. 정적을 깨고 누군가 상대방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오 닥터마틴 신으셨네요! 요즘 젊은 사람들 다시 이거 신더라고요." 순간 상대방은 멈칫하며 느리게 부인했다. "닥터마틴 아니고 락포트인데..."

 엘리베이터에서 먼저 내려 사무실로 걸어 들어오는데 왠지 MBC와 너무 잘 어울리는 한 장면이란 생각이 들었다. 닥터마틴 아니고 락포트. 닥터마틴은 발이 아파서 이제 못 신거든.

 

 

2020. 9. 7. 22:50
[A]

 

 8월 중순을 지나면서부터 생각하기 시작한다. 온수매트를 꺼내야 할까? 아니 그래도 명색이 8월인데 온수매트는 너무하지 않나. 갈팡질팡하던 마음은 몇 차례의 태풍을 거치며 확실해졌다. 8월 말이니 이젠 온수매트를 꺼내야 한다. 그리하여 온수매트와 함께한지 열흘째. 회사에서 피곤할 땐 얼른 집에 가서 온수매트 속에 들어가는 상상을 한다. 퇴근하고 아기를 재우면서도 온수매트를 생각했다. '아 얼른 온수매트 켜고 누워야지...' 기승전온수매트로 이어지는 사고의 흐름 끝에 잠깐 놀랐다. 아 나는 완전한 온수매트형 인간이 되었구나.

 온수매트형 인간은 아주 작은 쌀쌀함도 견딜 의지가 없다. 노래 <가을아침>에 나오는 초가을 아침의 쌀쌀한 정취, 재채기가 나올까말까 간지러운 정도의 추위도 용납하지 않는다. 의지가 약해진 대신 준비성이 조금 더 철저해진다. 잠들기 삼십분 전엔 미리 온수매트를 켜서 예열해두는 걸 잊지 않는다. 눕기 시작하면서 온수매트를 켜면, 따뜻함을 인지하기도 전에 잠들게 될지도 모르니까(온수매트는 빨리 따뜻해지지만 잠은 더 빨리 온다). 아주 작은 여지도 차단한다. 환절기라 감기에 걸릴까... 걱정할 틈도 주지 않는다. 폭염만 지나가면 바로 온수매트를 작동시키기 때문이다. 입추라고 여기저기서 떠들기 시작하면 이미 35도에 세팅된 온수매트 위에 누운지 한참이다. 온수매트형 인간의 계절은 오로지 둘로 나뉜다. 온수매트의 계절, 온수매트가 아닌 계절. 내게 온수매트의 계절은 9월부터 다음 5월까지로 사실상 일년의 대부분이다. 

 온수매트형 인간의 유토피아란 이런 것. 35도로 잘 데워진 온수매트 속에서 휘낭시에를 하나 까먹으며 책을 읽는다. 열다섯 쪽 정도를 읽으면 대체로 잠이 온다(한 권을 읽다가 한 달이 지나기도 했다). 본격적인 추위가 찾아오면 귤을 까먹어도 좋다. 내 작은 유토피아, 온수매트 위에선 매일매일 조금씩 의지가 사라져간다. 어쩔 수 없다. 난 이미 어쩔 수 없이 온수매트형 인간이 되었다. 지금도 꼼짝없이 온수매트 위에 붙어서 이 글을 쓰고 있는걸. 

 

 

 

 

 

 

  

2020. 8. 29. 00:44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는 게 무려 의무화 된 시대. 당연하다고 생각하곤 있지만 자판으로 치면서 다시 확인해보니 정말로 기이하기 짝이 없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유일한 승자는 눈웃음이 가능한 사람들이다. 검은 마스크를 써도, 덴탈을 써도, KF94를 쓰며 땀을 뻘뻘 흘려도 눈웃음은 가릴 수 없다. 태어나서 한 번도 눈으로 웃어본 적이 없는 것 같은 나 같은 사람에겐(기본적으로 잘 웃질 않는다...재밌는 일이 없어...) 너무나 부러운 재능.

 웃음의 제스처를 눈웃음파와 입웃음파로 거칠게 나눠보자면, 나는 후자에 가깝다. 그나마 입매도 아주 시원스레 웃진 않는데 마스크까지 늘상 쓰고 있으니, 웃고 있어도 웃는 게 아니다. 하하하 소릴 내서 웃기엔 겸연쩍고 좀 이상한 일이다. 무엇보다 소리란 건 너무 정직해서, 지어낸 웃음은 0.01초만에 귀가 캐치하니까. 여하튼 나 같은 종류의 사람들은 코로나19시대의 완벽한 제스처적 패자다. 퇴근길엔 뉴스에 나온 정세균 총리가 부러워서(단지 눈웃음 때문에) 집에 와 거울을 보고 눈으로 웃어보려 했는데 아무래도 안된다. 이래저래 코로나19는 빨리 꺼져줌이 마땅하다. 나도 다시 웃고 싶다. 

 

 

 

 

 

2020. 8. 4. 23:27
[A]

 

 

 잘 가고 있나 싶어서 잠도 오지 않을 때는 그냥 주문처럼 생각한다. 아님 말고, 뭐 어때. 

 

 

2020. 7. 27. 10:30

 

 회식 자리를 파하고 돌아오는 길에 발에 감기는 물을 쳐내다 굉장한 위기감을 느꼈다. 날이 갈수록 목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말의 분량도 늘어나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보자. 팀의 막내와 나의 나이차이는 여덟 살. 여덟 살 많은 선배와 밥을 먹든 술을 먹든 할 말이 그닥 없었던 예전을 되돌아보며 다시 한번 다짐했다(다짐마저 안하면 빠르게 나빠지니까). 목소리는 가급적 줄여보도록 하자. 말은 필요한 것 외에는 적게 하도록 하자. 일주일에 한 번은 나 혼자 점심을 먹으면서 책을 읽자(다행히도 문 닫았던 카페가 재개장했다). 퇴근하고 난 평일 저녁에 최소한 십 분은 생각을 하자(트위터 그만 보고). 흘러가는대로 그냥 두면 너무 별로일 것 같아서, 급한 마음에 남기는 월요일 아침의 반성문. 

 

 

2020. 7. 22. 10:25

 

 아기의 말이 청산유수로 늘어간다. 단어를 이어 문장을 말하기 시작하자, 기쁨과 함께 슬픔이 찾아왔다. 밤에 잠자리에 누워 온통 검은 와중에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며 이거는 엄마 눈, 이거는 엄마 코, 이거는 엄마 입...(눈코입이 괜히 나온 노래가 아니란 걸 깨달음) 하고 하나하나 짚어가며 엄마 예뻐, 이렇게 얘기해주는 걸 듣고 있으면 언어란 인간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발명됐구나 싶다. 하지만 그럴 리는 없다. 눈코입을 짚으며 예쁘네 예뻐~? 하던 아기가 돌아누워 아빠에게 이렇게 얘기한 것.

 아빠 비켜 아빠는 바닥에. 

어안이 벙벙해진 남편이 그럼 엄마는? 물어보자 아기는 천연덕스레 대답한다. 엄마는 이불에. 이불은 폭신폭신해 바닥은 딱딱해. 아빠는 바닥에 엄마는 이불에. 어둠 속이라 제대로 보이진 않았지만 남편은 정말로 크게 상처받은 표정이었다. 아빠는 저리가, 아빠는 비켜... 

 그래도 아직까지 우선순위에서 할아버지 할머니 다음에 엄마 정도는 있구나 싶어 상대적 안도(?)의 한숨을 쉬다가도, 언젠가 아기가 자라 어떤 말의 기쁨과 슬픔을 더 주게 될까 생각하면 설레면서도 한편 아득해진다. 나는 나의 부모에게 얼마나 많은 말의 슬픔을 안겨주었던가, 싶어서. 말은 왜 내 마음대로 나가지 않는걸까, 아니 왜 항상 마음보다 15도씩은 옆으로 빗나가는 걸까. 어쩌면 아기도 그 날 아빠 비켜, 바닥에, 하고 말을 하고 나서 속으로 약간 당황하진 않았을까. 내가 하려던 말은 이게 아닌데. 할 수 있는 말이 많지 않아서 그렇게 말한 것 뿐인데.

 아기보다 훨씬 많은 단어를 알고 잘 쓰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는 단어와 발화되는 단어가 언제나 미세하게 엇나간다는 점에서만큼은 나도 어쩌면 여전히 말을 배우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말의 기쁨과 슬픔에 대해서 여전히 배워가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2020. 7. 14. 10:44
[A]

 

 주말까지 더할나위없이 즐겁게 놀던 아기는 월요일 아침이 되면 본능적으로 월요일이란 걸 직감한다. 일단 눈을 뜨면 평소처럼(?) 아빠가 없다. 엄마도 곧 출근할 예정인 눈치다(노래를 부르고 있어도 마음은 왠지 다른 데 가 있는 것 같고 초조해 보인다). 아기는 성질이 나기 시작한다. 또, 또, 시작됐구나! 뭔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며칠을 또 보내야 하는구나! 

 아기는 밥을 먹다 말고 드러눕는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얼굴을 파묻고 엎드려보기도 한다. 별달리 소용은 없다. 엄마는 얼른 머리를 말리고 나가서 오늘 아이템을 잡아야 하고, 한 달 후엔 새 프로그램을 또 런칭해야 하는데(ㅠㅠ) 간밤 꿈에도 뾰족하게 좋은 제목은 나오질 않아 아 아침부터 시무룩하다. 엄마 가가, 놀자, 책 또 읽으까~?  열 번은 반복해도 왠지 멍한 눈초리. 본격적으로 심통이 난다. 할아버지를 외치며 울부짖기 시작한다. 엄마 아빠가 없을 때의 최애템 할아버지. 밖에 나가서 함께 열매도 줍고 개미도 구경하는 아기의 베프. 하지만 할아버지가 오시려면 아직 몇 시간이나 남은 것 같고, 엄마는 이미 옷을 주섬주섬 꺼내 입고 있다. 아기는 목이 찢어져라 소리를 지르며 울기 시작한다.

 엄마가 현관으로 나가면 엎드려 울던 아기는 이내 체념한다. 더 울어봤자 어차피 엄마는 나갈테고, 월요일은 시작되었다. 고개만 까딱 숙여 인사를 한다. 정성을 들여 꼭 두 번 인사를 하는데 엄마는 꼭 한 번만 하라고 손사래를 친다. 

 아기의 시간도 흐른다. 아기도 월요병을 앓고, 금요일 저녁이 되면 주말이 온 걸 알고 행복해한다. 월요일 아침은 너무 싫지만 영영 월요일 아침에 머물러 있지는 않을 거란 것도 안다. 무언가를 기다리기 시작한다. 시간은 흘러가고, 시간이 흘러가면 뭔가 변한다는 걸 아주 어렴풋이 알게 된 것이다. 

 

  

2020. 7. 7. 10:42

 

 체육계 선수 폭행, 안희정 모친상에 놓인 조화, 통합당의 국회 복귀, 이런 단어들 속에서 몇 번 파도를 타다 짠 바닷물을 가득 마시고 헛배만 부른 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아주 길게 한숨을 내쉰다. 부른 헛배라도 가라앉을까 해서. 몇 번 한숨을 반복하며 짠기를 털어내다 보면 바람이 아주 달콤하게 느껴진다. 여름밤의 선선한 퇴근길, 그 짧은 거리야말로 내게 주어진 유일한 시간. 아주 잠깐 감상들이 밀려올라치면 아무것도 없는 맨손으로 마구 쳐낸다. 썰물이 빠져나가듯 센티멘탈이 떠나가면 서둘러 샌들을 벗고 발을 씻어버린다. 짧은 퇴근길 발밑에 고여들었던 센티멘탈도, 힘없이 소용돌이치며 하수구로 씻겨 내려간다. 

 

 

2020. 6. 26. 10:49

 

 퇴근해 문을 여니 아기가 할머니 등에 포대기로 업힌 채 울고 있다. 돌이 지나고는 업히는 일도, 우는 일도 거의 없었는데 웬일인지. 이야길 들어보니 어릴 때부터 잘 듣던 동요 씨디를 듣다가 특정 곡만 나오면 울음이 터진단거였다. 단조의 슬픈 노래도 아니고 아주 발랄한 곡이어서, 그럴 리가 없는데 하고 씻고 나와 아기와 같이 그 노래를 다시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입을 삐죽삐죽하더니 아주 슬픈 표정으로 구슬프게 눈물을 떨궜다. 

 잠자리에 누워 아까 왜 아기곰 노래 들으면서 울었어? 하니 아기곰 잉잉잉, 이라고만 한다. 속상해? 슬펐어? 보통 말이 많은 편인데 왠지 오용하더니 혼자 돌아눕는다. 아기곰이 섬집아기처럼 혼자 집을 보는 내용도 아니고 가족들이랑 어울려 즐겁게 논다는 이야긴데 어디가 슬펐을까. 아님, 가족들이랑 어울려 즐겁게 노는 내용이라 슬펐을까. 돌아누운 아기는 혼자 이 노래 저 노래를 부르며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다 금방 잠에 들었다. 잠든 아기의 얼굴을 쓸어보는데 눈을 감은 표정이 이상하게 쓸쓸해 보였다. 16개월 인생에도 내가 알 수 없는 센티멘탈이 있구나. 요즘 장맛비가 내리는 창가에 유난히 오래 서 있더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