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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3. 14. 00:24

 

 

 아기는 요즘 이별을 연습하는 중이다. 출근준비를 마친 내가 옷을 갈아입고 나오면,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안넝-' 하고 나를 떠민다. 작은 손바닥을 쫙 펴서 어깨나 가슴께를 떠밀며 가버리라는 듯 밀친다. 복직 초반 며칠간은 드라이기로 머리만 말려도 옆에 와서 다리를 붙잡고 떼를 쓰더니 이제는 으레, 당연히 나가는 사람이 되었다. 매일 나간다고 해서 안녕이 쉬워지진 않는다. 퇴근하고 오면 뽀뽀도 윙크도 해주지만 출근길엔 눈맞춤조차도 언감생심이다. 

 금요일 저녁은 할머니 할아버지와 이별하는 시간이다. 퇴근한 내가 옷을 갈아입고 오면 한두시간 책도 읽고 걸음마도 연습하며 놀다가 잠 잘 준비를 한다. 주로 아기가 자러 들어간 사이 할머니 할아버지가 집을 나서시는데, 오늘은 잠깐 거실에 나온 사이 나갈 준비를 하던 할아버지와 딱 마주쳤다. 외출복으로 갈아입은 할아버지를 본 아기는 대번에 고개를 백팔십도 돌렸다. 쳐다보지도 않고 예의 '안넝-'. 간다는 거 알겠으니 얼른 가버리라는 걸까. 아기가 더 서운해할까 얼른 안고 방으로 들어와 책을 읽어주며 잘 분위기를 잡았다. 책도 보고 노래도 부르며 뒹구르르 하다가 아기가 혼잣말을 한다. 할미 안넝, 하라비 안넝, 언니 안넝... 안넝. 

 친척 조카가 놀러와 며칠을 함께 지냈다. 나이 차이가 열 살도 더 나니 같이 노는 건 아니었는데도 지내는 내내 언니 언니 하며 따랐다. 언니가 먹는 것, 언니가 하는 양에 관심이 많았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언니를 찾더니 집에 간다고 나선 언니 앞에선 역시나 고개를 돌렸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소리가 들리자 언니... 하며 그제야 울상을 지었다. 방을 맴돌며 언니 없다 하고 되새긴다. 아기에게 안녕은 곧 없음이다. 

 그 언니가 잠자리 누워 다시 떠오른 모양이었다. 한참을 혼자 할미 안넝, 하라비 안넝, 언니 안너엉 하며 천장을 향해 손을 흔드는 걸 지켜보는데 와락 눈물이 났다. 아주 옛날엔 나도 비슷한 어린이였다. 동생이 태어나기 전 대여섯살까진 집에 친구들이 왔다가 돌아가도 울었고 친척 언니들이 왔다가 돌아가도 울었다. 누군가 집에 놀러왔다가 돌아간다는 건 사라짐을 의미했다. 작고 좁은 세계 안엔 아는 사람이 몇 되지 않았고 그들은 모두 커다란 현관문을 통해 어디론가로 달아났다. 그 문을 통해 나가면 없어졌다. 저녁이 되면 함께 놀던 사람들이 없어지는 게 싫어서 울었고 울다가 혼났다. 그 울음은 동생이 태어나고 나서야-혹은 내가 좀 더 자랐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사라졌다. 

 -

 안녕의 세계는 자란다. 현관문 너머에도 세계가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되면 안녕의 의미가 달라진다. 밖으로 나가 더 많은 세계와 사람들을 사귀게 되고, 이별의 안녕 다음에는 재회의 안녕도 돌아온다는 걸 깨닫게 된다. 안녕이 아주 없음은 아니라는 걸 체득한다. 그렇게 의미를 바꿔가며 팽창했던 안녕의 세계는 넓어질 수 있을 만큼 넓어졌다 도로 영역을 좁히기도 한다. 현관문 밖으로 걸어나가는 사람들이 야속했던 내가 이젠 현관문 안으로 걸어들어와 문을 잠글 수 있음에 안도한다. 안녕, 하고 재빨리 선을 긋고 등을 보일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지긋지긋해지고 나 자신조차 싫어질 것만 같을 때, 그 모든 너절함으로부터 달아날 수 있게 해주는 단 한 마디. 안녕. 문을 걸어잠그고 다시 내면으로 돌아온다. 꼭꼭 숨는다, 안녕 뒤에.

 나는 이제 안녕기술자다. 사람들이 싫어지면 티나지 않게 마음에서 지워버린다. 안녕? 하고 잘도 인사하지만 사실 인사하는 줄도 모른 채 인사한다. 안녕! 하고 쉽게 돌아서지만 돌아서는 줄도 모르게 돌아선다. 그 모든 게 아주 쉬운, 몸에 익은 기술이 되었다. 지난 34년간 내가 연마했던 수많은 안녕들 덕분에, 안녕의 숙련공이 되었다. 아쉬운 것도 미련남는 것도 없는. 

 -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장에 대고 한참 손을 흔드는 아기를 바라보니 눈물이 난다. 아기가 아는 안녕, 내가 알았던 그리고 지금 안다고 믿는 안녕, 그리고 우리 둘 다 아직은 모르는 더 넓은 안녕의 세계가 있으리라. 언젠가는 그 안녕의 세계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2020. 3. 4. 10:53

 

 

 

https://www.youtube.com/watch?v=TcPk2p0Zaw4&amp=&feature=emb_title

 

 

 

웨즈 앤더슨 + 티모시 샬라메라니요. 너무 가고싶다 영화관...

 

 

2020. 3. 2. 23:41
[A]

 

 꿈을 자주 꾸고 기억도 곧잘 한다. 어제는 문이 열린 우리 집 창문틈으로 무서운 무언가가 침입하는 꿈을 꾸었는데 꿈에서 느낀 그 공포가 어찌나 또렷하고 현실감있던지, 잠에서 깨고 나서도 한동안 공포로 마음이 얼얼할 지경이었다. 바로 이틀인가 사흘 전에는 가까운 사람이 잘못됐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역시 꿈에서였다. 억억 하며 울음소리를 내며 울었다. 꿈 속이었지만 깨고 나서도 그 무너지는 심정이 마음 어딘가에 남아있어 눈 떴음에 어찌나 안도했는지 모른다.

 현실에선 감정변화가 크지 않은 편이다. 희노애락이 거의 없는 편이라고 자부한다. 언제나 좁은 맥시멈과 미니멈의 감정그래프 안에서 적당한 곡선을 그리며 안정적으로 오간다. 그런데 꿈만 꾸면 너무 무섭거나 너무 슬프거나 너무 두렵다(희한하게 너무 행복한 꿈은 꿔본 적이 없다). 종현이 일만 해도 그렇다. 지난 2년 사이 종현이 꿈을 열 번은 꾸었다. 그 때마다 굉장히 많이, 마음이 망치에 맞아 산산조각난 것처럼 슬펐다. 꿈에서 울다가 눈을 떴는데 여전히 울고 있기도 했다. 정작 현실의 나는 종현이를 추모하며 소리내어 제대로 울어본 기억이 없는데도.

 꿈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다 조금 이상한가, 하고 아주 잠깐 생각에 잠긴다. 현실의 나는 이렇게 평온하고 심지어 행복한데 꿈 속의 나는 어째서 대체로 미친듯이 두렵고 죽을 듯이 슬퍼질까. 의식이 잠잠해진 세계에선 나 자신조차도 낯설 만큼 강렬한 감정들이 휘몰아치는데, 눈을 뜨면 언제나 평온하다. 꿈이어서 정말 다행이다, 하고 일어나서 평화로운 표정을 장착한다.

어쩌면 내 마음은 현실을 제대로 살고 있는 게 아닌지도 모른다. 묻고 미뤄버리고 지금을 살아가느라 너무 바쁘니 어쩔 수 없는 걸까. 본체가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그 감정들이 밤만 되면 거대한 눈덩이가 되어 다시 달려든다. 꿈 속의 내 마음은 그 모든 걸 대리체험하느라 밤마다 이리 뛰고 저리 뛰느라 아침이면 녹초가 된다. 맛있는 커피 한 잔이면 금방 다시 정신을 차리긴 하는 효율 좋은 마음이긴 하지만. 

 

 

 

 

 

2020. 2. 25. 23:13

 

 나도 그랬다. 마지막이나 끝은 막연히 시간과 연관지어 떠올렸다. 선형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들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게 마지막일 거라고 생각해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80여년을 살다가 어떤 이유로 삶을 종료하게 될 거라고. 상상은 언제나 시간의 순서대로 흘러갔다. 더 나이를 먹고, 은퇴하고, 할머니가 되고, 몸의 어딘가가 아프다거나 말을 듣지 않는다거나. 

 묵시록의 삽화같은 거리 풍경이 이어진지 2주 남짓. 처음 우한의 소식을 들었을 때는 아주 먼 곳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한 번도 가본 적 없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중국의 어떤 고장을 상상했다(인구 천만의 대도시일줄은 꿈에도 몰랐다). 상황이 심각해졌다던 1월 중순에도 우한은 여전히 내게 먼 곳이었다. 복직 전 마지막 여행을 다녀오고 옷을 사러 이 곳 저 곳을 다니며 쇼핑했다. 아기와 하루종일 뒹굴거리며 낮잠도 같이 자고 저녁 일찍 잠에 들었다. 평화로운 나날들이었다. 

 2월의 시작과 함께 모든 게 달라졌다. 마치 여고괴담의 복도장면처럼, 어렴풋이 윤곽만 보이나 싶었는데 눈을 깜빡하고 나면 코 앞에 얼굴을 들이민다. 복직 첫 날 손소독제와 알콜솜을 챙겨 회사로 향했다. 방송국엔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었고 나도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매일 다른 사람들과 점심을 먹고 이야기를 나눴다. 서로의 커피잔에 침방울이 섞여드는 줄 모른 채 열을 올려가며 회사 이야기를 했다. 그러는 사이 뭔가 거대한 게 바뀌어가고 있었다. 마지막의 문제는 이제 더 이상, 시간이 아니었다.

 언제를 살아가느냐가 아니라 어디를 살아가느냐가 생사를 결정하기 시작했다. 생사가 아니더라도 생사에 준하는 사회적 죽음과 낙인을 선고받기도 한다. 확진자들의 동선이 공개되고 나면 그 장소는 초토화된다. 과거에 그 장소를 다녀갔던 사람들 뿐 아니라 미래에 그 장소로 올 예정이었던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방금도 휴대폰에는 재난문자 알림이 다녀갔다. "2월 1일 이후 은평성모병원을 출입한 이력이 있는 분들 중 호흡기증상이 있으시면 마스크 착용 후 선별진료소를 방문해주십시오". 이제 모든 것은 장소의 문제로 바뀌었다. 태어났는데 대구였고 옮길 일이 없어 평생 대구에 살았던 사람들은 졸지에 더 절박한 끝을 유사체험한다. 생수가 동나고 마스크 한 장을 사려고 끝없는 줄을 기다리면서. 서울의 대형병원들은 대구 경북 지역의 환자들의 접수를 받지 않기 시작했다. 대형병원마저 뚫리면 끝장이니 이해는 가지만, 그 문구가 언제든 내가 서 있는 여기, 이 곳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왠지 억울하고 답답해진다. 

장소가 때로는 끝을 결정할지도 모른다. 시간의 선형성에만 기대고 있던 내게는 요즘이 작지만 또렷한 충격이다. 동시에, 일종의 무력한 연대감을 느낀다. 언제를 선택할 수 없는 것처럼 어디 역시 선택의 영역 밖이니까. 80년대 후반에 태어나겠다고 결심한 것도 아닌데 태어나서 정신을 차려보니 87년 3월이었던 것처럼, 삶에 주어진 조건들 속에서 몇 가지 조합을 하다보면 '여기'에 살게 된다. 정착하게 되고 그 장소를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된다. 극소수 코스모폴리탄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삶은 비슷하리라. 어디인지가 그렇게 중요한 문제였구나. 그건 아마 그 '어디'가 아주 위험해지고 나서야 내지를 수 있는 외마디 비명일 것이다. 이미 많은 장소에서 들려왔지만 내가 아주 먼 곳의 메아리일거라고만 여겨오던. 알레포와 로힝야처럼 이국적인 단어 뒤에 숨어있던, 그 장소를 선택한 적 없었을 수많은 마지막들의 소리. 

-

 언제 그리고 어디. 삶을 결정짓는 아주 중요한 문제들 앞에서는 결국 무력하다. 수많은 결정을 하고 대단한 결심을 하는 것처럼 뻐기며 지내보지만 결국은 모른다. 내일 '그 곳'은 과연 어디가 될지. 내가 발 딛고 선 여기일지, 아닐지.

 마스크 핫딜을 기다리며 새로고침 버튼을 누르다 지쳐 생각이 길어졌다. 역시 장소가 문제였나. 집이 아니라 피씨방에서 접속했으면 하나쯤은 잡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피씨방에 가서 마스크를 사고싶진 않다. 그냥 사랑하는 곳에 머무르고 싶다. 어디인지가 우리의 생사를 결정하는 줄을 알게 된 후에도, 결국엔 그 어디를 쉽사리 버리지 못한다. 모르는 새 이미 나의 일부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2020. 2. 13. 22:03

 

 복직 2주차. 하루 세 시간의 녹음방송을 송출하려니 생각보다 허둥지둥할 때가 많고 여유가 없다. 그래도 열흘 남짓 지나니 어느정도 손에 익어 대충 다음 스케줄을 꿸 수 있게 됐다. 약간의 루틴도 생겨났다. 별 거 아닌 이 루틴이 사람을 참 든든하게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나의 아주 사소한 루틴은 이거다. 일주일에 사흘은 사람들과 약속을 잡아 밥을 먹고, 하루는 밥을 먹지 않고 점심에도 일을 하고, 하루는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오지 않는 카페에 가서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책을 한 권 읽는 것. 이렇게 읽지 않으면 책 읽을 시간은 아예 낼 수 없다. 복직하면서 혼자 만든 이 작은 루틴 덕에 이번주의 씨네21과 '아무튼, 하루키'를 재미있게 읽었고(나도 아무튼 OO을 써보고 싶단 생각마저 들었다!) 베스트셀러라 미뤄뒀던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읽기 시작했다. 이 좁고 좁은 상암동 바닥에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오지 않을 카페를 알고 있다는 게 얼마나 든든한 일인지 모른다. 뒷춤에 아주 작고 단단한 차돌을 하나 말아 쥐고 있는 기분이랄까. 커피는 맛이 없고 선곡은 오락가락하지만 호밀샌드위치는 그럭저럭 먹을 만 하다. 주위에선 주로 뜨개질을 하는 소모임의 멤버들이 커피를 마시거나 아이들을 데려온 엄마들이 대화를 나눈다. 한 번도 꺼내본 적은 없지만 책도 엄청나게 많다. 적고보니 왠지 적은 게 후회될 정도로 아깝다. 앞으로도 나만 알고 몰래 가야겠다. 

 오늘도 비를 그으며 급히 걸어가 사십오분짜리 독서를 즐기고 돌아왔다.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발목양말이 주룩 내려가있어 열심히 양말을 추켜올리는데 웬 시선이 느껴져 쳐다보니 새침하고도 세심한 눈빛의 초등학생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정확히 이런 말풍선이 머리 위에 떠올라있는 것만 같은 표정으로 말이다. "나는 어른이 되면 공공장소에서 발목양말을 추켜올리는 아줌마는 되지 말아야지. 옷매무새는 꼭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정돈해야지." 

 너무 열심히 발목양말을 추켜올리던 나는 괜히 뻘쭘해져서 백스텝을 밟아 카페에서 나왔다. 마시다 만 커피를 손에 들고 급하게 걸어들어오는데 덜 올린 발목양말이 걸리면서 새침하게 나를 쳐다보던 그 초딩의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하얗고 말수가 적은 초딩들에게도 그럭저럭 근사한 어른이 되고 싶었는데 이것 참 쉽지 않다. 

 

 

 

 

 

 

 

2020. 2. 3. 21:11

 

 

 1년 전 노트북과 가방을 챙겨 걸어나왔던 사무실로 다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에 내려 긴 복도 끝까지 걸어가면 사무실. 휴직을 신청할 때는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이 아주 약간은 있었던 것 같은데 결국(어쩌면 당연히)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앉아보니 거의 모든 게 그대로인데 어쩐지 혼자만 방학을 끝내고 앉아 새 학기 시간표도 모른 채 주섬주섬 가방 푸는 전학생 느낌. 가랑비에 솔찮히 젖었던 옷을 그럭저럭 말려왔는데 이제 다시 가랑비에 젖을 일만 남았다. 다행인 건 때론 그 가랑비가 나쁘지 않을 때도 있다는 것(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으나). 한 것도 없는데 10년차가 되었다.

 얼마나 더 프로그램에 이름을 얹으며 살 수 있을지 모르니 비 오는 동안 그럭저럭 맞을 만한 빗방울을 제조해야 한다. 같은 우산을 쓰는 사람들이랑 커피도 마시고 조금 더 웃어가면서. 커피는 또 우중커피가 제대로니까 말이다.

 

 

 

 

 

2020. 1. 30. 12:43

 

 

 이를 뽑아야겠다는 충동이 들 줄은 몰랐다. 언젠가 뽑아야 할 사랑니긴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복직이 며칠 남았는지 세어보고 오늘은 뭘 해야 할지 생각한다. 임신-육아를 거치다보니 입던 옷만 돌려입게돼서 옷도 한번 정리해야하고, 읽지 않은 책도 정리해야 하고, 회사에 들고 갈 다이어리(생전 안 썼으면서 이번엔 왜 이렇게 다이어리가 필요한 것처럼 느껴질까...기억력 감퇴를 본능적으로 아는걸까)며 사무용품도 챙겨야 할 것 같다. 2년 전 크리스마스 즈음, 출판사에서 선물로 받은 <전쟁과 평화> 완역본을 마지막으로 읽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어렵게 됐다. 복직 전 마지막 책은 조이스 캐럴 오츠의 <그림자 없는 남자>가 되었다. 

 사랑니를 뽑자! 결심하자마자 신촌에 있는 공장식 치과로 향했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모두들 마스크 차림이었다. 건물로 들어가자마자 볼이 퉁퉁 붓고 아이스패치를 붙인 사람들이 역시나 마스크를 끼고 밀려나왔다. 세 개 층을 동시에 쓰는 거대한 사랑니 발치 공장. 포스트잇 하나를 들고 7층으로 가세요, 9층으로 가세요, 안내에 따라 왔다갔다 하다보니 순식간에 치과 베드에 누운 자세다. 전망이 기가 막히게 좋은 건물이라 멀리 연세대가 한 눈에 내려다보였다. 무섭고 두려운 와중에 탁 트인 신촌의 정경을 보고 있자니 다시 태어나면 꼭 연세대를 다니고 싶다... 신촌 거리에서 흥청망청 젊음을 탕진해보고 싶다(이젠 탕진할 무엇이 없다)...공상이 시작된다. 필름포럼이나 아트하우스 모모도 가까우니 영화도 더 많이 볼 수 있겠지? 영화 보고 나면 혼자 커피마시는 게 최고지... zzz 공상 끝에 졸음이 오는가 싶더니 체어가 뒤로 휙 넘어가고 눈 앞을 초록색 면보가 덮은 채였다. 

 자 입 작게 벌리세요. 옳~지!. 

 뒤로 넘어가는 베드에서 어어 이제 뽑나요? 물어보려는데 입을 벌리는 순간 사랑니가 뽑혀나갔다. 마취때문에 사실 뽑힌줄도 모르고 누워있는데 일어나서 짐을 챙기라기에 뽑혀나간 줄을 알았다. 의사는 2초만에 내 자리를 떠 똑같이 입을 벌리고 있는 옆 환자에게로 갔다. 여긴 두 갭니다, 간호사의 말이 들리는가 했는데 의사는 또 그 옆자리로 옮겨가고 있었다. 주섬주섬 정신을 차려 드는데 사랑니 두 개를 동시에 뽑은 옆 환자도 당황한 채 일어나는 중이었다. 

 여기 사랑니 한번 보세요. 뿌리까지 잘 나왔어요.

 간호사가 눈 앞에 새끼손톱만한 물체를 들이밀었다. 작은 본체에 꽤 깊어보이는 뿌리가 두 가닥. 안경도 렌즈도 끼지 않아 뿌연 눈으로 인상을 써 자세히 보려는데 휙 가져가버렸다. 혹시 저 가져가도 되나요? 물어보려고 했는데 이미 저 멀리 사라져가신 뒤였다. 잠깐이나마 마주친 내 사랑니는 뿌리가 꽤나 깊고 튼튼하게 죽죽 뻗어있어 꽤 강인해보였다. 맞물릴만한 다른 이가 없어서 한번도 그 강인함을 사용해본 적은 없었을테지만. 

 입 안에 거대한 탈지면을 왕창 밀어넣고 퉁퉁 불은 채 다른 층으로 이동했다. 엘리베이터를 타자 비슷한 환자들이 가득했다. 누구도 말을 할 수 없어 사람이 가득한데도 아주 고요했다. 수납대에서 손에 브로셔를 한 장 쥐어주는데 브로셔 내용이 엄청났다. 사랑니 발치로 세계 기네스에 도전한다는 거였다. 지금까지 뽑은 사랑니를 합하면 63빌딩보다 높다며 CG로 사랑니탑을 만들어놓은 데선 입이 딱 벌어졌다(말이 그렇고 퉁퉁 부어있어 벌리진 못했다). 한 쪽 손으론 볼을 어루만지며 수납대에서 줄지어 계산을 끝내고 1층의 치과로 줄지어 들어갔다. 착하고 질서정연하게 진료실과 수납실, 치과를 오르내리던 환자 무리엔 왠지 모를 착한 질서정연함과 차분함이 감돌았다. 꽤 높은 비중으로 무기력함도 섞여 있었다. 

 이상하게 눈물이 나더라고. 슬프거나 그런 건 아니었는데... 

 얼마 전 엄마도 생니를 뺄 일이 있었다. 아프거나 슬픈 건 아닌데 운전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눈물이 주루룩, 흐르더라고 하셨다. 몇 달 후 있을 임플란트 시술을 위해 미리 이를 뺀 것이다. 하나도 아니고 여러 개를. 요즘 엄마의 미소는 비어있다. 그 빈 자리를 보면 나까지 더불어 의기소침해지고 추워진다. 발치가 인간의 본능적인 전투력을 떨어트리기 때문일까. 이를 뽑는다는 건, 공격하고 이길 가능성을 줄이는 행위다. 비록 진화하며 필요없어진 여분이라 할지라도, 어금니는 우리 몸에서는 전투력을 담당하는 최전선이다. 씹어 삼켜 소화시키며 세상을 만나는 최초의 관문이자, 손에 쥔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 우리를 지켜주는 최후의 보루. 서른 개 남짓한 마지막 맷돌이자 도끼. 내게는 이제 여분의 이가 남아있지 않다.  

 몇 시간이 지난 후 피투성이 거즈를 빼고 입 안을 한참 들여다봤다. 확실히 비어있었다. 있을 땐 있는 줄 몰랐는데 빠져버리니 정확히 빈틈이 느껴졌다. 진통제를 먹고 누웠는데도 이상하게 몸살기운이 돌았다. 사랑니 하나의 분량만큼 전투력이 줄어서일까. 허전해서 자꾸만 혀끝으로 그 부분을 더듬어본다. 움푹 파인 빈자리가 징그럽다. 그게 뭐가 됐든, 사라지는 것에 대한 감각은 언제나 생생하다.

 2초만에 빠져나간 내 사랑니도 지금쯤 기네스에 도전하는 바벨탑의 일부가 되어 있을까. 괴랄하긴 해도 그렇다면 좀 덜 섭섭할 것 같은데. 

 

 

2020. 1. 23. 23:26

 

 

구파발역을 막 지나치며 점심 먹을 곳을 찾아 두리번거리는데 도착한 문자. 피디님, 피디님처럼 생긴 여자를 본 것 같아요!

7년 전 함께 일하던 FD였다. 그 때 나는 이십대 중반, 그녀는 갓 스무살 남짓.

위장취업을 다녀와서 절뚝거리다 발목이 퉁퉁 부어올랐던. 

힘든 내색 없이 착하고 선했던 그 기억이 문자 한통에 스르륵 부풀어올랐다.

아이템들은 기억나지 않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떠오른다. 다정하고 신실하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던.

 

-

 

들른 회사에서 반가운 작가님을 만났다.

색감이 뚜렷하고 멋진. 

반가운 사람들이 있다면 그래도 일터로 돌아갈 이유가 하나정도는 있는 셈 아닐까.

 

 

 

2020. 1. 17. 23:02

 

길에서 구걸하는 늙은 여자들을 보면 가던 길을 돌아와 잔돈을 챙기다가도

마사지샵에서는 늙은 여자가 거칠거칠한 손으로 어깨를 쓰다듬으면 싫고

거리에 내몰린 아이들이 파는 1달러짜리 팔찌를 여러 번 사면서

다음 휴가는 우리 아기가 헤엄치기 좋은 풀장이 있는 곳으로 가야겠다고 결심하고

웨스턴이 많은 리조트가 좋은 곳이라고 평가하면서

한국 여행자를 만나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스캔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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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비참과 아늑한 겨울휴가

 

 

 

2020. 1. 7. 00:02

 

 

 한참을 기어다니며 온 집안을 헤집다 겨우 낮잠에 든 아기. 숨소리가 새근새근하다. 오르락 내리락하는 그 작은 가슴께와 콧잔등을 바라본다. 나도 옆에 가만히 누워 머리를 맞댄다. 아기의 숨소리는 천국의 리듬. 평화롭고 사랑스럽지만 아주 작은 소란에도 쉽게 무너지는 아슬아슬한 이 천국은 하루에 한 시간만 개장된다. 아기의 눈꺼풀이 열리고, 힘없이 풀려있던 손가락이 꼬물거리기 시작하는 순간, 다시 정신없는 사바세계의 육아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