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main image
분류 전체보기 (177)
A (177)
Visitors up to today!
Today hit, Yesterday hit
daisy rss
tistory 티스토리 가입하기!
'A'에 해당되는 글 177건
2019. 7. 11. 14:00

 

 깜깜한 한밤중, 아기침대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숨이 막힐 것 같으니 살려달라는 절규다. 그 소리를 들으면 나는 한창 꿈을 꾸다가도 뚝 잘라먹고 현실로 소환된다. 꿈의 마지막 장면을 얼떨떨하게 재생하며 아기방으로 살금살금 다가간다.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아기는 엎드린 채 고개를 들고 울고 있다. 낑낑거리며.

 아기가 뒤집기를 마스터한 건 100일이 지나고서였다. 엉덩이를 번쩍 들어 옆으로 눕더니 뒤집고, 팔을 빼고 고개를 드는 일련의 동작들을 해내면서 아기는 뿌듯해했다. 뒤집고 나면 나 보세요! 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아이고 우리 아기 잘했네, 하면서 머리카락도 별로 없는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 아기는 좋아서 바둥거렸다. 나 뒤집었다고요! 뒤집었어요! 뒤집기를 마스터한 아기는 뒤집기를 자랑하며 항상 뒤집고 논다. 엎드려서 책도 보고, 앞으로 기어보기 위해 자벌레처럼 엉덩이를 들었다 내렸다 꿈틀거리기도 한다. 누워만 지내던 신생아 시기를 벗어나 이제 정말 '아기'가 되었다. 

 그런데 요즘, 이 뒤집기가 아기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하루종일 뒤집기를 하다보니 몸에 배었는지 곤히 자다가도 자꾸 뒤집기를 시도한다. 뒤집고 나서 엎드린채로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계속 자면 좋으련만, 아기에겐 너무 어려운 일이다. 문제는 아기가 뒤집을 줄만 알고 다시 되집는 방법을 모른다는 데 있다. 어른이 다가와 다시 되집어줄 때 까지는 엎드린 채 그저 우는 수 밖에 없다. 수면의 질도 떨어지기 시작했다. 뒤집기를 연마하기 전까진 쌔근쌔근 통잠을 잘 자던 아기가 뒤집고 나서부터는 새벽에 몇 번씩이나 깨서 운다. 덩달아 보호자인 내 수면시간도 조각조각 토막난다. 밤에 여러 번 뒤집어서 깬 날은, 아기도 눈 밑이 까맸다(아기도 피곤하면 다크써클이 생긴다). 밤에도 낮에도 아기는 엎드린 채 피곤해져 운다. 되집기를 몇 번 연습시켜봤지만 아직 멀었다. 

 아기가 처음 뒤집던 날을 기억한다. 고개를 들고 팔을 빼는 매 동작에 소리치며 환호했다. 아기가 할 줄 아는 게 생겼다는 게 마냥 기쁘고 신기했다. 그런데 요즘 뒤집기의 덫에 빠진 아기를 볼 때면, 고개를 쳐박고 엉엉 우는 모습에서 나 자신의 일부가 보이는 것만 같다. 내게도 작은 시작과 성취들이 있었다. 아주 잘 하진 못하지만 적당히 잘 하는 일들이 있었다. 하지만 가끔은 그 적당한 성취, 고만고만한 능력이 나의 발목을 잡는다. 이를테면 글이 그렇다. 뛰어나진 못해도 적당히 글을 쓸 수 있게 되어 운좋게 책을 내고 누군가에게 글을 보여줄 기회를 가지기도 했다. 아기로 치면 뒤집기를 막 시작한 셈이다. 그런데 그 뒤집기 이후로부터, 나는 가끔 좋은 글을 보면 탁 하고 숨이 막힌다. 좋은 책을 보면 독자로 그저 행복하고 즐거웠는데 이제는 막막해진다. 글을 조금씩 쓰기 시작하고 책을 내기 전까진 없던 증상이다. 뒤집기 전에는 몰랐던 답답함이다. 아주 작은 성취지만 그 성취가 발목을 잡는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아예 아무 것도 하지 못할 때는 통잠이라도 잘 수 있었는데 뒤집기를 하게 된 후부턴 잠마저 설치기 시작한 우리 아기처럼. 

 아기는 지금도 뒤집고서 낑낑대며 나를 부르고 있다. 엎드린 채 오래 놀아 목이 아픈 모양이다. 오늘도 밤잠을 설치며 뒤집어진 채 울게 될테다. 뒤집어서 오히려 힘들어진 이 일상은 꽤 지속될지도 모른다. 언제가 될지 모를 그 되집기가 완성될 때까진. 아기는 하루종일 엎드린 채 되돌아가지 못해 힘들 것이고 나는 탁월한 글을 볼 때마다 마음이 답답해질 것이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 뒤집기 시작한 아기도 글을 쓰기 시작한 나에게도. 그 날이 올 때까진 계속 뒤집고 또 뒤집어보는 수밖에. 그 끝에 무엇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2019. 6. 20. 15:16

 

 요즘 가장 부러운 부류는 자신에게 어울리는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사실 누구를 만나도 머리모양만 보인다. 길을 가다가도 드라마를 보다가도 심지어 나 자신의 과거 사진을 보다가도 머리모양에만 눈이 간다. 아 저 사람은 뿌리 볼륨감이 상당하구나. 아 저 사람은 머리숱이 적어서 펌을 해도 모양이 잘 안나오겠구나. 저 사람은 막 미용실에 다녀왔구나(제일 부럽다).

 요즘 가장 귀찮은 일은 바닥에 흘린 머리카락 줍기다. 머리카락들이 정말 어마어마한 속도로 몸에서 탈락해나가고 있다. 어쩌다 한번 머리를 쓸어넘기기만 해도 손가락 마디마디 사이에 가득 머리카락이 모인다. 속절없이 바라보는 수밖에 없다. 좋은 샴푸를 써도, 두피마사지를 해도, 심지어 머리를 감지 않고 버텨봐도 머리카락은 빠진다.

 얼마 전 미용실에 갔을 때 물어봤다. 머리카락은 언제까지 빠질까요? 200? 아니면 6개월? 머리 빠지는 게 멈추면 파마를 할 참이었다. 아기가 생긴 이후 한참 머리에 손을 대지 못해서 자연인같은 머리모양을 하고 있는 게 언제나 걸렸다. 6개월정도 지나면 대충 호르몬들도 정상으로 돌아올테니 머리카락도 그만 빠지지 않을까. 그럼 파마 해도 되겠지. 희망을 가지고 물었는데 약간은 맥빠지는 대답이 돌아왔다. “빠질 만큼 다 빠져야 멈춰요.”

 결국 파마는 기약하지 못한 채 머리를 자르기만 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 내 머리카락은 지금쯤 어디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걸까. 빠질 만큼의 초반부에 막 돌입해서 가속도를 붙이려 하고 있는 중일까. 아니면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어 서서히 새 머리카락을 내보낼 준비를 하고 있을까. 귀 옆으로 내려와있는 잔머리를 몇 가닥 만지작거려봤지만 역시나 머리카락의 의중은 알 수 없었다(만지면 만지는대로 또 빠질 뿐). 100일이든 200일이든 1년이든, 빠져야 하는 만큼의 분량을 채운 뒤에야 멈출 수 있으니 머리카락도 그저 쓸려나가느라 무력하기만 할 것이다.

 모두에게 주어진 분량이란 건 있지만 그 분량을 소진하는 시간은 다르다. 누군가는 100일만에 그 머리가 다 빠져버리기도 하고, 누군가는 1년에 걸쳐 빠지기도 한다. 드물고 또 운좋게는 분량이 조금 적게 주어지기도 해, 빨리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사람도 있을런지 모른다. 어쨌든 분량이 존재하고 우리는 그 분량을 채워야 한다. 모든 일이 그렇다. 분량을 채워야 끝이 나고 또 다음을 기약하게 된다.

 나는 지금 어느 단계에 멈춰있다. 그것도 한 가운데. 머리카락들은 미친듯이 빠져나가고 다음이 언제 올지는 아직 모른다. 1인칭의 세계에 딱 갇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언제나 나로 시작하고 나로 끝난다. 그렇다면 여기 멈춰선 채 흘려보내야 하는 나의 분량은 얼마만큼일지 생각하게 된다. 얼마나 빠져야 다시 새 머리카락이 돋아나기 시작할지. 그리고 여기서 얼마나 무엇을 어떻게 채워야, 다음 단계로 도약할 수 있을지. '나'로 시작하는 1인칭을 벗어나 자유로운 3인칭의 세계로 돌입할 수 있을지. 그래서 비로소 나 말고 타인에게도, 의미가 생길지.

내게 주어진 지금의 분량을 알지 못해 오늘도 이렇게 1인칭 기록을 남기며 머리카락을 줍는다. 정말 많이도 빠진다. 

 

 

 

2019. 6. 12. 14:50

 

 동네 요가센터에 등록한 건 운동 때문이 아니었다. 운동이 목적이었다면 좀 더 번듯한 센터, 기구가 갖춰져있고 회원들이 그럴듯한 레깅스를 입고 나타나는 곳을 찾았을 것이다. 인스타그램 홍보페이지를 따로 운영하고 날씬한 선생님들이 화보같은 자세로 홍보 전단을 뿌리는 센터들. 동네 요가센터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 집에서 입고 있던 늘어난 반팔티셔츠를 그대로 입고 가도 괜찮았다. 장소는 아파트 주민들을 위해 마련된 강당이었다. 운동보다는 동네 친구를 찾으러 간 내게 적당한 장소였다. 휴직기간동안 말동무가 되어줄 동네 친구, 이왕이면 아이를 양육하고 있는 사람이면 더 좋을 것 같았다. 

 드디어 개강날. 너무 일찍 도착한 바람에 아무도 없어 혼자 카페에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사왔다. 설레는 마음으로 제일 먼저 매트를 펴고 앉았다. 요가 수업을 들으러 온 회원은 여덟 명 남짓. 연령대는 다양했다. 여느 요가수업처럼 잔잔한 뉴에이지풍의 음악이 흐르기 시작하고 선생님과 회원들이 손을 모아 인사를 했다. 나마스떼!

 나마스떼! 근데 저번에 그 택배는 어떻게 됐어요? 인사가 끝나기 무섭게 제일 앞에 앉아있던 한 회원이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아니 글쎄 그때 그 택배 그래서 앞집에서 찾아갔어요? 자초지종은 이랬다. 앞집 아주머니가 집을 비운 며칠 사이 식료품으로 추정되는 택배박스가 도착했는데, 앞집 아저씨가 도무지 택배를 들고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거였다. 듣고 있던 옆자리 회원이 거들기 시작했다. 손은 여전히 합장을 하고 다리는 나비자세를 한채였다. 아니 우리집 양반도 택배가 안보인대! 그게 글쎄 문 앞에 버젓이 놓여져 있는데도. 그렇게 커다란 사이즈로. 근데도 보이질 않아서 못 들고 들어왔다는거 있지!

 아니 저희집도 그런데... 이야기는 선생님이 한마디를 거들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단계에 진입했다. 아니 쌀을 시켰는데 제가 들고 들어오기 너무 무거워서 들어다 달라고 부탁을 했거든요, 근데 글쎄 그걸 계속 까먹더라고요! 선생님은 요기니답게 길다란 팔로 휘저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선생님의 말이라 그런지 회원들은 더 격렬하게 공감했다. 맞아맞아 쌀이 없으면 밥은 어떻게 지으라고! 대체 왜 택배가 안보인다는거야! 

 결국 그날 나는 한마디도 거들지 못했다. 핑퐁처럼 오고가는 남편과 택배 에피소드에 내가 거들만한 게 없었기 때문이다. 회원들이 돌아가며 에피소드를 하나씩 꺼내놓고 나서야 수업은 천천히 시작됐다. 말하자면 50분 수업 중 15분은 근황토크였다. 입부터 풀고 몸을 푸는 플로우랄까. 그래, 그렇다면 나도 에피소드를 준비해야겠다. 동네 요가센터 첫 수업을 마친 날 나는 골똘히 남편에 대해 탐구했다. 남편이란...무엇인가. 남편에게 보이지 않는 택배란...무엇인가. 에피소드가 없다면 거들기라도 잘 해봐야겠다.  

 대망의 다음 수업날. 나는 마음의 준비를 마친채였다. 합장과 나마스떼, 조용하고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인사를 나눴다. 근황토크가 시작될 차례였다. 역시나 맨 앞자리에 앉은 회원이 분위기를 주도했다. 아니 근데 403동에 있던 학원은 왜 문 닫은거야? 혹시 알아요? 아니 거기가 그렇게 싹싹하고 괜찮았는데... 

 나는 이번에도 대화에 낄 수 없었다. 그날의 근황토크는 이른바 불법학원이었다. 등록하지 않고 영업하는, 소위 공부방. 회원들은 어느 공부방이 남아있고 어느 공부방이 진도를 잘 빼는지에 대해 한참 정보를 교환했다. 결론은 역시 멀더라도, 공부방보다는 학원에 셔틀을 태워 보내는 편이 낫다는 쪽으로 모아졌다. 아직 학원을 보낼만한 나이대의 자녀가 없는 회원들은 자신의 오래 전 경험담을 보탰다. 아니 글쎄 제가 학교다닐 때도 공부방이 있었는데요... 그랬는데 말이죠... 모든 대화는 속전속결로 이루어졌고 이야기는 금새 결론에 다달았다. 마치 잘 짜여진 소그룹 분임 토론을 보는 것 같았다. 주제를 던지를 사람이 있고 핑퐁처럼 받아치는 회원이 있었고, 선생님이 개입해 이야기가 풍부해지면 이윽고 짧고 또렷한 결론이 내려졌다. 남편들 눈에는 택배가 보이질 않는다, 가까운 공부방보단 먼 학원이 낫다, 땅땅땅. 

 그리고 오늘. 세 번째 수업날. 나는 약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자리에 앉았다. 이번에도 근황토크에 끼지 못한다면 차라리 운동이라도 열심히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 곳은 본격적인 운동을 하기에 적합한 센터는 아니었다. 나를 포함한 회원 중 누구도 선생님의 자세를 제대로 따라하지 못했을 뿐더러 요가보다는 오십견 방지 스트레칭에 가까웠다. 근황토크 주제를 던지곤 하는 핵심회원이 오십견 환자였기 때문이다. 오늘도 역시나 음악이 깔리고 나마스떼와 동시에 셋, 둘, 하나. 오십견 환자이자 핵심회원이 뒤를 돌아보며 토크주제를 던졌다. 매번 주제를 던지는 그녀에게선 마치 <강심장>이나 <세바퀴>와 같은 왕년의 떼토크 MC, 강호동이나 김구라같은 풍모가 엿보이는 것도 같았다. 나는 현란한 떼토크 속에서 언제 발언 기회를 잡을 수 있을까 전전긍긍하는 말석 출연진이었다. 입술만 달싹달싹하는. 그녀가 주제를 던진다. 셋, 둘, 하나, 나는 잡을 수 있을 것인가! 

 

(일동 긴장) 

요즘 단지장 가보신 분? 닭강정 아직 팔아요?

 아... 오늘도 역시나 나는 근황토크에 끼지 못했다. 요일마다 돌아가며 열리는 장터에 나가본 적은 있지만 닭강정을 사먹어 본 적은 없다. 물론 이제와 부랴부랴 사먹어봤자 다음 수업날의 근황토크는 또 다른 주제가 될 게 뻔하다. 게다가 나는 다른 건 다 좋아하면서도 튀긴 닭은 좋아하질 않는다. 나를 뺀 회원들이 열심히 닭강정의 양념과 닭의 신선도 그리고 닭강정 아저씨의 친절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심심해진 나는 혼자 스트레칭을 했다. 동네 요가학원에 적응하기 이것 참 쉽지 않구나, 근황토크란 대체 무엇인가, 핵심회원의 랜덤 주제선정과 결론지음은 어떤 알고리즘을 통해 도출되는가, 떼토크에 끼지 못하던 한시절의 패널들의 마음을 이젠 알겠다, 무엇보다 나는 왜 여기에 다니고 있는가...고민하면서. 

 

 

 

 

2019. 6. 7. 14:07

 

 

 올 초 이사를 하며 지나치게 많은 짐을 버렸다는 걸 깨닫는 요즘. 필요한 걸 찾다가 없어서 갸우뚱...하다보면 알게된다. 아, 내가 버렸구나. 100리터짜리 쓰레기봉투 일곱장을 꽉꽉 채워 버리면서 그것도 버렸구나. 

 책도 마찬가지다. 최근에 다시 읽은 무라카미 관련 에세이가 하도 재밌어서 뭐가 됐든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이 다시 보고싶어졌다. 책장을 뒤지다보니 아뿔싸 한 권도 없다. 다 버렸다. 

 결국 알라딘에서 책을 다시 주문했다. 역시 아무나 버리고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난 그냥 적립해두며 살아야겠다. 

 

 

 

 

2019. 5. 30. 15:03

 

 

 개봉날을 기다려 아기를 맡기고 <기생충>을 보았다. 집 근처 메가박스는 CGV에서 간판만 바뀌고 내부는 모두 그대로인데, 다행히 사운드MX관만은 의자를 비롯한 모든 시설이 바뀌었다. 영화 한 편을 보러 오면서도 혹시 아기를 보는 분에게 연락이 올까, 마음이 초조해 불빛이 보이지 않게 휴대폰을 들썩였다 놓기를 반복했다. 

 영화를 다 보고 걸어오는 짧은 순간 생각했다(내겐 요즘 시간이 아주 짧게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나이드는 일과 숙련되어가는 천재에 대해. 봉준호는 처음부터 천재였고 지금은 노련한, 숙련된 천재다. 천재성을 가지고 태어나는 일과 숙련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스스로를 노련하게 담금질하는 일 중 어떤 편이 더 갖기 어려운 행운일까. 지금은 추락한 한때의 천재들과 꾸준한 범재들을 떠올려보지만 갸우뚱하다. 어쨌든 분명한 것 하나는 천재성을 가지지 못한 나같은 평범자들에겐, 애초에 선택권이 없다는 점. 그게 오히려 얼마나 더 편한지 모른다. 

 짧게 조각나있는 자유시간들을 여러 갈래에 담을 수는 없다. 하나에만 집중해야 한다. 

 

 

 

2019. 5. 13. 17:53

 

 아기를 키우는 일은 양가감정과 싸우는 일이다. 아기를 보살피다보면 이 아기가 말을 하고 의사표시를 할 수 있을 때까지 잘 돌봐줘야겠다는 생각과, 당장이라도 짐을 싸서 뛰쳐나가고 싶다는 욕망이 충돌하곤 한다. 노트북을 들고 나가서 어디서든 글을 쓰고 싶고, 심지어는 직장으로 복귀하고 싶을 때도 있다. 글을 쓰고 일을 하는 건 나를 보살피는 일의 범주에 속한다. 나를 보살피는 일은 아기를 보살피는 일과는 대척점에 있다. 적어도 100일이 안 된 아기를 키우는 내겐 그렇다. 심지어 잘 하고 싶은 건 아닌데도, 그냥 적당히 둘 다 동시에 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두 가지를 동시에 하고 싶다는 마음은 하루에도 몇 번씩 충돌한다. 아침나절에는 아기가 한없이 귀엽고 사랑스럽다가도, 몇 시간이 지나면 바깥 세상으로 관심이 이동한다. 보고싶은 친구들이 떠오르고 뉴스도 궁금해진다. 학위를 따고 회사를 만들고 책을 번역하고, 어마어마한 성취를 이뤄내는 것처럼 보이는 지인들도 있다. 탁월해져 저 멀리 가버린 것만 같은 사람들의 소식을 듣고 나면 갑자기 아기 트림 자욱이 남은 목 늘어난 티셔츠 차림의 내가 보인다. 그러고보니 머리는 언제 감았더라

 라디오도 요즘 내겐 양가감정의 대상이다. 정확히는 지상파 라디오라는, 몸집은 무겁지만 변화는 더딘 이 매체가 그렇다. 좋으면서도 떠나고싶다.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애틋하면서도 미래를 생각하면 답답해진다. 라디오는 나의 가장 좋은 시절, 언제나 곁에 있었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매일매일 밤늦게 잠들고 소설을 읽고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던 시기. 사연은 딱 한번 소개된 적 있다. <이적의 드림온>의 마지막 방송이었을 것이다. 박정언님이 보내신 문자입니다, 이적의 목소리로 소개되는 내 사연을 들으며 나는 자그마한 기숙사 방 안에서 아주 행복했다. 20대를 지나오며 라디오에서 일하는 사람이 된 후에도 그랬다. 작게나마 내 팀을 꾸리고 디제이와 부스 안에 있으면 그 프로그램 안에선 작고 소박하게 기쁜 순간이 많았다. 

 한편으로 요즘 라디오는 더 이상 돌아보고 싶지않은, 좋았지만 그 때 뿐이었던 추억같다. 요즘같은 세상에 오래된 채널에서, 더군다나 라디오를 만든다는 건 어쩐지 외로운 고고학자의 조용한 발굴작업처럼 느껴진다. 선조들이 남긴 위대한 유산을 그리워하며 과거를 파고들고 또 기념하는. 어쩌다 작은 사금파리를 발견하면 아주 기뻐하지만 알아주는 이는 드물다. 전설이었던 시절, 화려했던 전성기, 그 시절이 남긴 흔적을 애지중지 갈고 닦는 몰락한 제국의 고고학자.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번영하지도 않을 것이 분명한 우리의 일. 

 라디오와 아기를 떠올리면 언제나 두 가지 마음이 충돌한다. 애틋하고 즐겁다가도 도망치고 싶다. 아기를 사랑하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해진다. 프로그램을 만드는 작은 공간이 그립다가도 족쇄처럼 느껴진다. 라디오라는 오랜 매체를 벗어나 에스타운이나 씨리얼 시리즈같은 장기 프로젝트를 해보면 어떨까. 개인적으로 아카이빙하고 싶었던 주제들도, 쓰고 싶은 글들도 떠오른다. 하지만 당분간은 책임져야 할 것이다. 아기를 그리고 월급 받는 만큼을. 

 두 가지 마음 속에서 갈팡질팡하다 울음을 터뜨린 날이 있었다. 아기가 타고 있는 스윙을 흔들어주다가 나도 모르게 와앙 하고 눈물이 터졌다. 아기는 나를 동그란 눈으로 쳐다보더니 활짝 웃었다. 우는 모양이, 얼굴 근육이 움직이는 표정이 신기하고 재밌는 모양이었다. 이후로도 아기는 내가 흑흑, 하고 우는 시늉을 해 보이면 소리까지 내면서 즐거워한다. 울던 나조차도 어리둥절할만큼의 큰 미소였다. 양가적인 마음은 정리되지 않았지만 - 아니 앞으로도 더 심해지겠지만, 우는 나를 보며 잇몸밖에 없는 작은 입을 활짝 벌리며 웃는 아기를 보는 게 웃겼다. 그 순간만큼은 웃는 아기를 보는 게 좋았다. 

-

 그나마 다행인 게 하나 있다. 라디오도 아기도 매일 매일 리셋된다는 점이다. 아기는 매일 자란다. 나의 기분도 그에 맞춰 매일 한 뼘씩 달라진다. 어제는 뛰쳐나가고 싶은 감정이 이겼다가 오늘은 보살피고 싶은 감정이 이긴다. 두 가지 감정 말고도 조금 더 다양한 감정들이 스며들기도 한다. 라디오 역시 오늘과 내일, 하루하루가 새롭게 다르다. 오늘 방송을 처참하게 망쳤어도 내일은 또 새로운 백지가 주어진다. 반대로 오늘 대박을 쳤어도 내일이면 아무 소용이 없다.

 오늘도 라디오를 켜놓고 아기를 보살핀다. 어르고 달래고 먹이고 재운다. 라디오에서도 먹고 사는 이야기와 기쁘고 슬픈 이야기가 하루종일 이어진다. 매일 비슷하지만 매일이 새롭게 다르다. 아기와 라디오는 매일 새로 받아들어야 하는 백지장이다. 어쩌면 이 백지장이, 가능성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한다.

 아기와 라디오, 그리고 내일의 나는 또 어떻게 달라질까. 

 

 

 

 

2019. 4. 25. 18:20

 

 대학로의 오래된 병원에는 병원답지 않은 정취가 깃들어있다. 창밖으로 보이는 300년된 은행나무에 정신이 팔려있는데 주치의가 들어왔다. 아주 오랜만에 만난 주치의는 그 사이 부교수가 되어 있었다. 병원에 남아 있는 나의 첫 진료기록은 2006년. 턱관절이 벌어지지 않아 찾은 병원에서 처음 만났던 주치의는 당시 레지던트였다. 나는 스무살이었고 주치의 역시 20대 후반이었다. 남쪽지방 사투리와 섞인 억양 덕분에 고향이 어디라는 이야기를 서로 주고받았던 것도 희미하게 기억이 난다. 13년 전 수더분하고 어리던 주치의는 이제 진료실 앞 스크린의 사진 속에서 팔짱을 낀 채 당당한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다만 사투리가 남아있는 특유의 억양이 있어, 이 교수가 그 시절의 레지던트였다는 걸 어렴풋이 기억나게 할 뿐이었다. 

 "그럼 어금니를 빼면 안된다는 말씀이신가요?" 치과 의자에 길게 기대 앉아있으니 옆 자리 남자의 고통이 들려왔다. 곤란한 상황인 것 같았다. "아뇨 이 어금니 주위가 붓고 아프시니 빼는 게 맞긴한데... 어금니를 빼는동안 턱이 많이 힘드실거예요". 어금니와 턱관절에 동시에 문제가 있는 남자였다. 이를 빼면 관절에 무리가 가고, 관절을 보호하기 위해 이를 빼지 않으면 주변 이까지 상하게 된다. 남자와 주치의는 한참동안 고민하는 것 같더니 결론을 내지 못했다. "일단 조금 더 지켜보시죠". 진퇴양난에 빠진 남자가 아이구...하고 한숨을 쉬는데 마침 그의 전화벨이 울렸다. 하필이면 가사에 이를 악물고 너를 잊을게...하는 부분이 들어가 있는 휘성의 발라드였다. 이를 악물고 너를 보낼게 사랑 앞에 나는 죄인이야... 절절한 가사를 듣다보니 새삼 경각심이 들었다. 그렇다 이는 절대로 악물어선 안 된다. 우리는 모두 이를 무는 습관 때문에 턱관절이 아프고, 여기까지 와 누워있으니까 말이다. 저도 아기를 낳으면서 이를 너무 악물어서 10년만에 여기 다시 왔거든요. 저희 이제 절대로 이 악물지 말아요. 얼굴을 덮은 온찜질팩을 들추고 나도 모르게 말을 건넬 뻔 했다. 휘성의 노래가 다 끝나갈 때까지 남자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집에 오는 길엔 오랜만에 버스를 탔다. 버스는 종로 거리를 천천히 가로지르다 종로3가 버거킹 앞에서 정차했다. 활짝 열린 버거킹 2층의 창문 너머로 중절모를 쓴 두 노인이 보였다. 커피를 앞에 두고 나란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종로3가 버거킹엔 여전히 아주 노인이거나 아주 젊은 사람들만 있는 모양이었다. 널따란 탑골공원과 높이 솟은 어학원에서 나온 사람들. 그 외엔 한산했는데, 여기저기 임대 표지판이 많이 붙어 있었다. 종각 역 앞의 스타벅스와 만년필 전문점마저도 사라진 채 공실이었다. 변한 게 많아보이는 종로거리는 왠지 스산했다. 그 안에서 여전히 커피를 팔고 있을 한 여자가 떠올랐다. 

-

 여자는 내가 만난 사람들 가운데 가장 신심이 깊은 사람이었다. 오래된 상가에서 30년 넘게 커피를 배달하는 일을 하며 살아온 여자는 가진 게 없었다. 가족은 아프거나 힘들었고 커피 장사도 내리막길이 된지 한참이었다. 500원짜리 커피값마저 제때 지불하지 않는 고객들이 많았다. 그런데도 여자의 얼굴엔 평화가 깃들어 있었고 입술에선 사랑의 말이 흘렀다. 여자는 자신이 커피와 라면을 배달해주는 주위 상인들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사랑했다. 하루 일과를 마치면 매일같이 작은 점방에서 성경을 펴놓고 기도를 올렸다. 하루 일과를 시작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여자를 처음 만나고 돌아온 날 나는 진짜 신앙이란 이런 거구나, 작은 예수의 모습이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일을 위해 섭외해 만난 여자였지만 이후 몇 번을 더 찾아가 안부를 묻곤 했다. 만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정화되는 것 같았다. 헤어지는 길에는 항상 근처 건어물전에 들러 마른 과자라도 쥐어주고 싶어해 한사코 사양해야 했다. 

 여자를 마지막으로 본 건 2년 전 겨울이다. 근처에 들를 일이 있어 겸사겸사 찾아간 여자는 그날도 작고 빛이 들지 않는 좁은 가게에서 성경책을 펴놓고 있었다. 낡아빠진 목도리를 맨 차림이었다. 크리스마스 즈음이었어서, 목도리라도 선물로 사들고 올걸...하고 잠시 아쉬워하는데 여자가 성경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마음을 열고 귀기울여 들었다. 내가 아는 사람들 중 가장 신실하고 이타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한참을 듣던 내게 그녀는 자신이 다니는 단체의 요한계시록 설교가 유명하다고 말했다. 요한계시록. 제대로 읽어본 적 없지만 어렵고 난해한 성경의 마지막 챕터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녀는 내게 계시록에 대해 잘 아느냐고 물었다. 기성 교회를 다녀서는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며 내게 팜플렛을 쥐어줬다. 

 집에 가는 길에 검색해본 단체의 홈페이지에선 웬 중년의 남자가 자신을 재림예수로 소개하고 있었다. 

-

 오늘 아주 오랜만에 그 거리를 다시 지났다. 종종거리며 커피와 라면을 배달하던 여자는 잘 지내고 있을까. 한겨울 차가운 내 손을 잡으며 건강하라고 기도해주던 그 손은 그대로일까. 순간 버스에서 잠시 내려 찾아가볼까 고민했지만 하차 벨이 눌러지지 않았다. 아마 그녀는 거기 그대로 있을 것이다. 여전히 새벽기도를 다니고 성경을 읽으며 낡은 옷차림이지만 환하고 평화롭게 웃고 있을 것이다. 가족을 위해 헌신하며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진정으로 실현하고 있을 터였다. 변한 건 내 마음이었다.

-

 집에 와서는 턱관절을 위해 새로 맞춘 스플린트를 착용해보았다. 스플린트를 처음 맞췄을 때 느꼈던 이물감은 십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했다. 잠자리에 누워서는 낮에 지나온 오래된 거리를 생각했다.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들이 서로를 가로지르며 교차하던 그 풍경을. 

 

 

2019. 4. 22. 14:18

 

 아기에게는 안과 밖이 무의미하다. 일단 몸이 그렇다. 가장 중요한 머리조차 대천문과 소천문이 열려 있는 판이니 말이다. 아직 여물지 않은 뼈 사이로는 몸 안의 숨이 팔딱팔딱 뛰어나온다. 탯줄이 떨어져나간 자리에 만들어진 배꼽은, 금방이라도 뱃속을 보여줄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검은 안쪽을 가지고 있다. 방금 먹어 안으로 들어간 우유가 바로 입밖으로 게워져 나와있기도 하고 

 안과 밖이 가장 무의미할 때는 외출할때다. 아기에게는 바깥세상이 똥오줌을 가려눠야 할 곳이라거나 옷을 갖춰입고 나가야 할 곳이 아니기 때문에, 안에서와 똑같이 산다. 안에서나 밖에서나 비슷한 옷을 입고 같은 곳에 배변하고 잠도 (오히려)잘 잔다. 

 아기를 보다보면 안팎 구분 없이 사는 게 얼마나 편한지 실감하게 된다. 밖에 나갔다고 눈치를 보거나 다르게 행동할 일 없이 그대로 사는 것. 안과 밖을 인위적으로 나누지 않고 사는 것. 세상을 아기처럼 단순하게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2019. 4. 11. 11:30

 

 집 앞 보도에 놓인 화단이 한창 교체중이다. 회색 점퍼를 입은 중년의 작업자 서너분이 둥그런 시멘트 화단 안에 고여있던 흙을 파내고, 새로 돋아나기 시작한 붉은 꽃을 심고 있다. 날씨가 부드러워 그런지 일하는 사람들의 표정도 덩달아 부드러워보인다. 꽃나무를 조심조심 옮겨 심을 때 작업자의 얼굴에는 아주 옅은 기쁨이 서려있다. 작고 붉고 여린 식물을 다루며 중년의 남자들은 자기들끼리 무슨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는다. 모처럼 길가가 환하다. 새로 피어나고 돋아나는 것들은 그저 쳐다보기만 해도 마음을 누그러지게 만든다. 

 아기의 얼굴은 그 자체가 봄이다. 태어난 지 두 달 된 피부, 눈동자, 머리카락, 손톱과 발톱 모두가 아주 연하고 또 푸르다. 며칠 전엔 아기의 얼굴에 꽤 큰 상처가 생겼다. 아직 손발의 움직임을 제대로 조율하지 못하는터라, 자기 손톱으로 얼굴을 자주 할퀴는 탓이다. 긁힌 자리는 깊게 패여 피까지 고여있었다. 기겁을 한 나는 연고를 발라주고 아침저녁으로 상처를 살폈다. 

 상처는 이틀만에 아물었다. 어디를 긁었는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을만큼 감쪽같다. 다시 희고 보드라워진 아기의 피부를 한참 들여다봤다. 새 피부는 방금 옮겨 심은 작은 꽃나무처럼 붉고 희다. 아기의 얼굴을 보고있으면 나는 원시인류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수만년 전 네안데르탈인이나 크로마뇽인들도 나와 비슷한 자세로 아기를 안고 있었을 것이다. 컴컴한 동굴에서, 구석기에도 신석기에도 전쟁중에도 전쟁이 끝난 후에도 아수라장 속에서도. 사람들은 자신이 낳은 작은 사람의 얼굴과 검고 작은 눈동자를 끊임없이 쳐다보고 또 쳐다보면서 그 안에서 봄을 느꼈을 것이다. 새로 태어난 것이 얼마나 희고 또 어여쁜지 감탄하면서 또 자신에게선 사라진 봄기운을 맡으며 놀라워했을 것이다. 나는 가끔 아기의 눈을 보다 거울을 본다. 내 눈에서는 사라진 빛이 아기의 눈에서 보인다. 이 빛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꾸역꾸역 새끼를 낳아 기르고, 세상이 이렇게 돌고 돌아 내게로 이어졌다고 생각하면, 아기의 작은 눈동자 속에 삼라만상의 이치가 녹아있는 것만 같다.

 아기의 눈동자에는 아주 먼 과거와 아주 먼 미래가 동시에 잠들어 있다. 아기의 눈동자를 보며 원시인류를 떠올리다가도, 이내 몇십년 후를 상상하게 된다. 이 눈동자에 감도는 윤기와 총기도 언젠간 시들해질 것이다. 그리고 나처럼 어른이 되어 또 다른 아기를 낳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면 이 아기 역시 나와 비슷한 자세로 자신이 낳은 것의 얼굴을, 눈동자를 하염없이 들여다보며 감탄하게 될까. 만일 내가 그 때도 존재한다면 꽤 늙은 채로 아기를 쳐다보며 어리둥절 놀랄 것이다. 우리 엄마가 어제 말한 것처럼,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너를 키우던 때로 돌아온건가'중얼거리며.

 미래의 나는 그 때 새로 만난 아기의 눈에서 도무지 눈을 뗄 수가 없을 것이다. 봄이 오면 좀처럼 집 안에선 머무를 수 없는 것처럼. 언제 겨울이 가고 또 봄이 온건가, 시간의 흐름에 놀라고 의아해하면서. 봄을 보는 기쁨에 새로 젖은 채로 말이다. 

 

 

 

 

2019. 4. 3. 14:49

 사흘만에 간신히 외출해 집 근처 카페에 들렀다. 쓰고싶은 글이 있었는데 배경음악으로 Lonely가 나와 그냥 앉아만 있는다. 며칠 전 꿈이 떠오르는 노래다.

 꿈은 사라져간 것들의 무덤이다. 실종된 친구, 허물어진 공간, 과거의 사건, 그리고 정말로 죽어버린 사람이 등장해 반갑게 인사하고 이야기 나누다 날이 밝아오면 다시 사라져간다. 그들 각자의 무덤 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