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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3. 23. 14:18



 진부하다는 말은 대개 나쁜 뜻으로 쓰인다. 새롭지 않고 예상가능하며 낡아빠진 것들에 대해 설명하고 싶을 때, 진부하다고 말한다. 창의적인 구석이라곤 찾아볼 수 없고 나 말고도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정확히 똑같이, 그대로 행했을 것 같은 모든 행동들과 생각들. 나 역시 스스로가 진부해서 맘에 들지 않았다. 반짝반짝한 면모를 드러내야 하는 일 앞에선 자신없어질 때가 많았다. 내 생각, 내 말, 내 행동, 내 결과물이 진부함 그 자체인 것 같아서.


 그런데 요즘 진부하다고 여겨왔던 말들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아기를 낳고 나서부터다. 이를테면 자식을 낳아봐야 부모의 마음을 알게 된다는 말이 그렇다. 진부한데다 건방진 표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젠 정말로 예전에 내가 알던 그 말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두 팔을 만세한 채로 자는 아기를 보고 있을 때, 트림을 시키느라 깜깜한 새벽녘에 졸린채로 아기의 등을 하염없이 두드리고 있을 때, 아주 작고 따뜻한채로 내게 폭 안겨있는 모습을 보고 있을 때. 나는 달리 할 말을 찾지 못한 채 엄마도 나랑 똑같았을까 생각한다. 30여년 전 나보다 조금 더 젊은채로, 밤에 잠못이루고 아기를 재우거나 기저귀를 갈고 있었을까. 그런 상상을 하면 이상하게도 금방 눈물이 차오른다(역시 호르몬 때문인가?).


 자식을 낳아봐야 부모의 마음을 안다, 말고도 이런 말을 새로 생각한다. 자식을 낳고 나면 잃어버렸던 유년을 다시 산다는 말. 아기를 보고 있으면 내가 알지 못하는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하루종일 손을 꽉 쥐고 있어서 손에서 나는 발꼬랑내, 이가 하나도 없어 맨들맨들한 분홍색 잇몸, 눈을 꼭 감아 일자로 만들고 악을 쓰고 우는 얼굴에서(나는 세상 순둥이였댔으니 이건 아닐듯). 내가 전혀 기억하지 못하지만 분명 한때 나였을것이 틀림없는 어떤 모습들. 아주 연약하고 무력한 모습들. 아기를 보고 있으면 겸손해진다. 지금의 나를 만드는 데 나 아닌 타인의 노력이 얼마나 많이 들어갔는지, 이젠 모른 척 하려해도 그럴 수가 없다. 


 그래서 정말 진부하게도, 아기를 낳고 나니 세상이 달리 보인다는 말에 공감하게 됐다. 세상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돌아다니는데 이 사람들 모두 갓난아기였을 것 아닌가. 혼자서는 목도 못 가누고 밥도 먹을 수 없는 그 절대적인 무기력의 상태로 모두가 세상에 태어났을 것 아닌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우리 모두가, 아주 무기력한 아기였는데 걸어다니고 말도 하고 생각도 하고 또 사람을 낳아 키운다. 아주 무력했는데 누군가는 세상을 바꾸기도 한다. 그게 반복되고 반복되고 또 반복되며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하면 길을 걷다가도 멈추게 된다. 경이롭게 바라보게 된다. 이 세상이 이렇게 재생산되고 있었구나. 그리고 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느꼈던 걸 이제야 또 느끼고 있구나. 


 진부하다는 말을 달리 생각한다. 진부함 속에는 위대함이 숨어있다. 내가 짐짓 진부하다고 느꼈던 것들은 사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저 아는 척 하고 싶어했던 것들이었다. 이를테면 필연적일 수 밖에 없는 사랑, 부모가 자식을 사랑할 수 밖에 없게 되는 그 마음, 존재 자체가 주는 기쁨같은 것들. 예전에는 그저 뻔한 수식어라고 생각했던 표현들. 그 진부한 말이 진실을 품고 있었단 걸 깨닫는다. 사실은 더 이상 적확할 수 없다고까지 느낀다. 


 말을 새로 깨치고 표현을 다시 생각하는 요즘. 이젠 진부하다는 말이 싫지 않다. 뻔하지만 계속 보게되는 주말연속극처럼, 예상 가능한 신파에서 흐르는 눈물처럼. 요즘 나는 진부한 모든 것들이 새롭다. 


 








2019. 3. 14. 13:55



 사실 냄새보다 더 강렬했던 건 소리였다. 내가 입원했던 12층 병동에는 열 개 남짓한 병실이 있었는데 대부분 나이가 지긋한 환자분들이었다. 새벽이면 맞은편 병실에서 들려오는 고함소리에 잠을 깨야 했다. “나~쁜년! 니가 그랬지~” “아니 이 할배가 뭐라하시노!” 성미가 괄괄해보이는 할아버지 환자분이 소리를 지르면, 간병인 역시 못지 않은 소리로 응수했다. 처음엔 부부싸움인줄 알고 깜짝 놀라 의료진이라도 불러야하나 싶었지만 이내 익숙해져갔다. 두 분은 내가 퇴원하는 순간까지도 싸우고 있었다. 



 “부산에 가자 부산에 가자...” 이튿날 잠을 깨운 건 어떤 할머니의 애절한 목소리였다. 부산에 가자, 부산에 가자... 뭐 타고 가실거예요? 하는 간호사의 물음에 할머니는 대답했다. 우리 아저씨가 밖에 차 세워놨다 부산에 가자... 부산 가면 뭐 있으신데요? 부산 가면 유치원 있다 부산에 가자... 끊임없이 부산에 가자고 하던 할머니는, 아침만 드시고 출발하자는 다독거림에 다시 병실로 돌아가셨다. 아마 아침을 잡수시고 나서는 부산에 가야한다는 것도, 할아버지가 차를 세워 놓으셨다는 것도, 부산에 다시 가보고 싶은 유치원이 있다는 것도 모두 잊으셨을테지만. 



 새삼 KBS의 위력을 실감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병실이 문을 열어두고 지낸터라 어디에서 뭘 하는지, 뭘 보는지 실시간으로 알 수 있었다. 일요일 아침엔 <전국노래자랑>에서 아이유의 좋은날 3단고음을 뽐내는 중년 남자의 목소리가 온 병동에 울려펴졌다. 진품명품을 지나 몇 개의 낮 뉴스 프로그램이 나른하게 오후를 채우고 나면 드디어 하이라이트. 병동의 하이라이트는 단연코 KBS주말극이다. 덕분에 나도 시청률 50%를 넘본다는 <하나뿐인 내편>을 접했다. 최수종 유이 주연의 간 이식 드라마. 단 2회차를 봤을 뿐인데도 인생드라마로 등극했다. 충격적인 대사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너 우리 아들한테 간 줄 수 있니?” (토끼와 용왕님인가??) “우리 이러면 안되잖아요. 외국으로 도망가요.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이혼하고 다시 만나는 부부의 대사. 네에??). 여튼 절절하게 간을 꾸러 다니는 어머니 역할에 열연을 펼치는 중년 연기자에게 박수를 보낼 수 밖에 없었다. 주인공 이름이 도란이인데, 돌아서 도란이라고 지은건가...욕하면서 보는 게 주말드라마라더니 집에 돌아와서도 이 드라마가 보고 싶었다(하지만 아기가 자고 있어 볼 수 없었다).  



 <하나뿐인 내 편>의 간 꾸러 다니는 소리가 잦아들면, 병동의 일주일 역시 끝나간다. 하나 둘 불이 꺼지고 열려있던 문도 스르르 닫힌다. 다시 아침이 되어 환자식이 보급될때까지는 고단한 잠에 빠져드는 시간. 병동은 다시 고요해진다. 나이트 근무를 서러 나온 간호사들의 교대소리, 환자와 보호자들의 코 고는 소리와 이 가는 소리, 그리고 이따금씩 링거줄을 교체하러 들어오는 의료진들의 문 여는 소리와 발자국 소리. 그리고 몇 시간이 지나면 다시 반복되는 부산 가자, 이 나쁜 년 니가 그랬지, 그리고 KBS의 아침뉴스를 알리는 중저음 앵커의 목소리. 휠체어 끄는 느릿한 발걸음들 위로 주말이면 다시 들려올 도란이의 울음소리. 짧았던 병원 생활의 잊을 수 없는 소리들이다. 






2019. 3. 8. 09:10



병원 진료가 있는 날이라 아침 일찍 여의도엘 왔다. 링거 꽂은 자리가 아직 아물지도 않았는데 피를 다시 뽑고, 진료시간까지 여유가 있어 병원 밖으로 나왔다. 오랜만에 날씨가 좋다. 게다가 3월이다.

3월 초입은 언제나 설렌다. 아직 쌀쌀한 기운이 남은 찬 공기도 좋고 여기저기 보이는 새로 시작하는 사람들의 얼굴도 좋다. 나는 아직 두꺼운 옷차림이지만 성급하게 얇은 플로럴 패턴이며 트렌치를 꺼내입은 사람들을 구경하는 일도 더할나위없이 좋다. 매년 생일이 3월 초에 있어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사람들과 짧은 안부나마 나눌 수 있는 일도 좋다. 사람을 들뜨게 하지만 아직 춥고 또 가끔은 눈도 내리는 계절이라는 점에서 3월은 신기한 달이다. 대체로 다정하지만 동시에 몹시 쌀쌀한 면이 있다고 해야할까.

이 곳, 여의도에서 느끼는 3월의 공기는 더 각별하다. 좋아하는 계절에 좋아하던 장소에 머무는 기분이란. 약간 씁쓸하지만 여전히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무작정 들뜨거나 행복하진 않지만 그래도 회상할 수 있는 기억이 많은 장소기 때문에.

조금 있으면 내가 좋아했던 거래소 앞 대로변의 큰 나무들이 푸릇푸릇해지겠지. 그러면 또 그 길을 걸으러 올 수 있으면 좋겠다. 이왕이면 3월의 이 다정하지만 쌀쌀한 기운이 가시기 전에, 갈 곳도 없고 할 일도 없는 발걸음으로.






2019. 3. 3. 11:39




출산 20일만에 재입원을 했다. 원인 모르게 40도까지 오른 고열로 난생처음 씨티촬영을 하고 사흘째 입원실에 누워 창밖만 바라본다. 내과 외과 산부인과 응급의학과를 거쳐 검사를 했지만 뚜렷한 병명은 모른다. 3월이라 막 병원 생활을 시작한 젊은 인턴들이 쭈뼛쭈뼛 여기저기를 찌르고 갔다. 희한하지만 여튼 그 서툰 손길에서 봄이 느껴지기도 한다.

병원 생활은 냄새와의 싸움이다. 링거 줄을 밀며 복도에 나가면 여기 저기서 죽음이나 질병과 싸우는 사람들의 고된 냄새가 풍긴다. 그 뒤로 소독용 알코올냄새가 감춰져있다. 내게서도 냄새가 난다. 링거때문에 매일 씻지 못해 풍기는 쉰내, 그리고 아직 어린 갓난아기를 둔 엄마의 젖비린내 같은 것들.

새 환자복에서는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오묘한 냄새가 풍긴다. 색이 바랜 이 환자복을 지나갔을 수많은 사람들의 질병이 남긴 냄새. 고통과 절망과 희망이 오락가락하며 남긴 냄새의 자욱들이 소독약에 희석된 채 희미하게 내 몸에도 가라앉는다. 내 다음으로 이 환자복을 입을 사람은 또 여기서 무슨 냄새를 맡게될까.

며칠이라도 병원에 있어보니 일상의 냄새가 그리워진다. 내 집 현관을 열면 끼쳐오는 익숙한 체취, 밥 하는 냄새와 살아가는 온갖 냄새가 뒤섞여 풍기는 그 일상의 향기들. 오래된 옷과 살림에서 풍기는 묵은내. 후각을 안정시켜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

참, 오늘은 나의 서른세번째 생일이기도 하다. 잊을 수 없는 냄새들로 기억될 묘한 생일이겠지만 그래도 그동안 좋은 일들이 더 많았음은 틀림없다. 기다려지는 냄새, 돌아가 다시 맡고 싶은 냄새들이 이렇게 많은 걸 보니 말이다. 부디 다음주쯤엔, 다시 익숙한 냄새의 세계로 귀환할 수 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도 아기 냄새에게로.






2019. 2. 14. 11:58




 설 연휴 마지막날. 망원시장을 한바퀴 돌고 한강공원에 잠시 들렀다 찹쌀도너츠를 사러 서대문 영천시장까지 다녀왔다. 휴직이 시작되자마자 설 연휴였던지라 입사하고 처음으로 연휴를 내리 쉰 참이었다. 낮잠도 자고 밥도 배부르게 먹고 잠에 든 참이었는데 새벽녘에 양수가 터졌다. 정말로 양수가 터져보니 모든 게 확실했다.


 황급히 머리만 감고 짐을 챙겨 병원으로 갔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니 집안 불은 다 끄고, 코드도 다 뽑은채로. 약간 떨리고 황망했다. 예정일이 다 되긴했지만 예정일이 지난 다음 나올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딱 엿새 쉬었는데 바로 나와버리다니. 왠지 억울한 마음이랄까. 다음날엔 산발이 된 머리를 다듬고 눈썹 정리도 하려고 미용실을 예약해둔 참이었다. 아 내 미용실 아 내 브로우바... 아쉬운 마음으로 새벽 강변북로를 달려 병원에 도착하니 새벽 네시였다.


 분만병동에 내가 들어가자 자리가 꽉 찼다. 모두가 진통을 기다리고 있었다. 출산에는 어딘지 종말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 반드시 올 것을 알고 예감하고 있지만 정확히 언제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냥 끙끙대며 누워서 각자 몫으로 주어질 고통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깊은 새벽이었지만 분만대기실의 그 누구도 잠에 들진 못했다.


 새벽 여섯시쯤 되자 병동에 불이 켜졌다. 내게는 유도분만이 시작됐다. 양수가 터지면 24시간에서 48시간 안에 아기를 낳아야 하기 때문에, 촉진제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촉진제를 쓴 유도분만의 경우 진통이 더 심하다는 걸 전혀 몰랐다). 그 때만 해도 그 날 저녁이면 아기를 낳고, 저녁 식사를 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교수님 퇴근시간 전에 열심히 힘을 내서 마무리하자! 그렇게 속으로 혼자 다짐도 했던 것 같다. 


 -


 진통이 시작되면 분만이 진행되는데 내 경우엔 그 진행속도가 워낙 더뎠다. 기약없는 진통만 계속될 뿐이었다. 열 시간이 지나도 10퍼센트, 스무 시간이 지나도 20퍼센트. 기껏 내진을 하고 갔는데 아까랑 똑같다고 했을 때의 그 절망감이란. 시간이 지나고 분만대기실에서 나와 함께 진통을 하던 다른 임산부들이 하나 둘 분만장으로 옮겨졌다. 그나마 옆 사람의 가쁜 심호흡이 들려올 때는 덜 외로웠는데 텅 빈 분만대기실에 있으려니 시간은 어찌나 느리던지. 


 사람들이 진통하는 방식에는 크게 두 부류가 있었다. 끊임없이 멘트를 하며 자신의 고통을 어필하고 덜거나(아이고 배야 배야 배가 너무아파요), 무음으로 신음하는 쪽이었다(끙끙 호흡 한번 또 끙끙). 내가 대기하던 분만병동엔 외국인 산모도 있었다. 각자 할 수 있는 각자의 말과 방식으로 열심히 고통을 호소했다. 하지만 그 고통은 정말이지 누구도 덜어줄 순 없는 종류임엔 확실했다. 이미 배에 들어있는 아기를 안 낳을 수도 없는 일이니까. 잠깐만요 저 죄송한데 그냥 안할게요...가 불가능한 영역이 있다는 게, 사람들로 하여금 마지막 힘을 짜내도록 하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마지막 순간엔 정말로 최선을 다했다. 그 순간엔 정말로, 내가 최선을 다하는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


 막상 아기가 나온 순간은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누군가는 배를 누르고 누군가는 회음부를 절개하는데 갈비뼈 쪽에서 뚝 하는 소리가 살짝 난 것도 같았다. 레지던트 선생님 한 분이 아빠 들어오세요! 하고 큰 소리로 외쳐주어서 그제서야 끝난 줄을 알고 수고하셨습니다 인사를 했다. 금요일 오후 네시 무렵, 그러니까 목요일 새벽 네시에 병원에 도착하고 서른 여섯시간이 지난 후였다. 날짜로는 이틀이 지나 있었다. 눈을 감은 채 축 늘어져 있는 내 위로 누군가 다가와 뭔가를 올려놓고 갔다. 2.89키로그램의 작은 여자 아기였다. 










 

2019. 2. 5. 12:50
[A]



 두 번을 미룬 끝에 드디어 출산휴가가 시작됐다. 예정일을 불과 일주일여 앞두고 들어온 휴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어쨌든 한동안은 회사를 가지 않는다(고 쉬는 건 아니겠지만... 아직은 좋다). 이사를 막 끝낸터라 아직도 끝나지 않은 짐정리를 매일 하는 중. 다행히 설 연휴가 겹쳐 남편과 함께 호젓한 서울을 즐기는 마지막 휴가를 누리고 있다. 일요일에는 양수가 터진 줄 알고 급히 짐을 챙겨 분만실을 찾았다 아니라는 판정을 받고 다시 퇴원하는 해프닝도. 


 어제는 <가버나움>을 보았다. 많지는 않지만 올해 들어 본 영화 중에 가장 좋았다. 그리고 아마 남은 올해 보게 될 영화들 중에서도 가장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최근 영화관에서 본 영화들은 공교롭게도 모두 '세계의 비참'이라고 할 만한 소재들을 다루고 있는데('로마', '인 디 아일', '가버나움') 그 중에서도 비참함을 다루는 방식에 있어 가장 적절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대상을 지나치게 대상화하지 않으면서도 그 내면세계를 남김없이 보여주고 종내에는 관객으로 하여금 그 내면에 들어가게 만든다는 점에서 말이다. 무엇보다도 자인 역할을 맡은 주인공의 눈빛, 연기로는 결코 터득할 수 없는 그 체념과 절망의 눈빛이 영화의 거의 모든 것이 아니었나 싶다. 정말 좋았던 영화였는데 역시 말로는 반도 설명하기가 어렵다. 


 연휴가 하루 반나절 남았다. 이제 남은 집안 정리를 하고, 저녁엔 어떤 영화를 한 편쯤 더 보면 좋을지 고민중이다. 책이 나오고 나선 이상하게 힘이 빠져, 그간 뜸했던 블로그에도 다시 자주 기록을 남겨야겠다. 어찌됐건 중요한 건 책이나 블로그같은 형태가 아니라 계속 기록한다는 것- 그 하나 뿐일테니깐.




 

2018. 12. 23. 09:33



 티비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알쓸신잡에 채널을 멈췄다. 시즌1은 그럭저럭 재미있게 챙겨봤는데 이후로는 영 눈길이 가지 않아 오랜만에 본 참이었다. 프로그램의 포맷대로 유희열이 가운데서 사회를 보고, 유시민과 김영하를 포함한 네 명의 패널들이 한참 자신들의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었다. 외국의 저명한 학자에 대해, 국내의 오래된 유적에 대해, 소설과 세계와 사람들에 대해서. 과연 그들의 이야기는 유려하고 거침이 없었다. 와, 그렇구나... 그랬구나...하고 화려한 언변에 빠지려는 찰나, 엑스트라들이 눈에 들어왔다.


 미동도 없었다. 네 박사와 유희열 테이블 뒤로 포커스아웃된 두 테이블의 엑스트라가 있었다. 왼쪽 테이블에는 남자 한 명과 여자 두 명, 오른쪽 테이블에는 여자 두 명. 장소는 늘 그랬듯 어느 식당이었다. 식당이기에 엑스트라들의 밥상에도 역시 냄비가 하나씩 올라져 있긴 하지만, 엑스트라들은 아무리 컷이 바뀌어도 냄비에 손을 가져가지 않았다. 진즉에 다 먹어버렸을 수도 있고 제작비 절감을 위해 애초에 빈 냄비를 세팅했을 수도 있을 일이다. 


 냄비보다도, 내 눈길을 사로 잡았던 건 엑스트라들의 행동이었다. 식당 엑스트라라면 보통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하고 있을 법 한데 그들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저 앉아만 있었다. 앞만 쳐다보고 있었다. 앞 사람을 쳐다보고 있는 건 아니었다. 그냥 가만히 허공을 응시하며. 오른쪽 테이블의 두 여자는 각자 휴대폰을 쳐다보고 있었다. 한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로 티비에 출연하지만 그들은 모두 따로 있었다. 일당을 벌러 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 날 알쓸신잡의 배경으로 출연했던 흐릿한 엑스트라들은 모두 20대였다. 앞에서 네 박사님들과 셀러브리티들이 열심히 자신들의 지식을 떠들 때, 뒤에서 숟가락 뜨는 시늉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앞만 쳐다보던 그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녹화가 왜 이렇게 길어지는지 수다는 대체 왜 끝나질 않는지 원망했을까. 


 -


 집이 상암동이다보니 각종 촬영 현장을 자주 만나게 된다. 방송사들은 회사 근처에서 촬영하길 즐겨한다. 사무실 장면은 방송사 사무실에서, 복도 장면은 방송사 복도에서 찍는다. 며칠 전도 그런 날이었다. 집 앞 방송사 건물이 치킨회사로 둔갑한 채 촬영이 진행중이었다. 날은 꽤 추워서 나는 제일 두꺼운 파카를 걸쳐입고 시장을 보러 나간 참이었다. 촬영중이길래 아 정말 티브이는, 겨울에는 너무 힘들어... 하고 혼자 중얼거렸다. 촬영이 시작된 건 아니고 카메라를 세팅중인 모양이었다. 달리가 돌아가고 카메라가 위치를 잡는동안, 그 곳에도 역시나 배경이 되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길을 가는 행인처럼 보여야 하는 사람들. 모두 멀쑥한 행인처럼 보이기 위해 짙은 모직코트에 얇은 정장바지 같은 것들을 받쳐 입은 참이었다. 살색 스타킹에 치마를 차려입은 사람들도 있었다. 모두들 어깨를 한껏 모은 채 촬영이 시작되기만을 기다리며, 그래서 길을 걸어가는 척이라도 할 수 있기를 기다리며 달달 떠는 중이었다. 그 날 배경이 되기 위해 길거리에 서 있던 엑스트라들 역시 모두 내 또래였다. 20대 혹은 많아봤자 30대 초반. 


-


 요즘에는 부쩍 배경을 살피게 된다. 배경이 되는 장면에 누가 있는지 또 어떤 사람이 들어가 있는지. 티비 속에서도 실제 삶에서도, 주연은 언제나 주연이다. 그들은 그 자리에서 쉽게 내려오지 않는다. 하지만 배경은 매일 바뀐다. 그날 그날 대체 가능한 사람들로. 그리고 그 배경은 언제나 내 또래일 때가 많다. 아직까지 확고한 무언가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 배경을 바라보며 나는 무슨 생각을 해야할까 고민한다. 모두가 화면의 가운데 들어갈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화면의 바깥에, 포커스 아웃되는 공간에, 언제나 너무 많은 내 또래들이 서 있다는 건 여전히 눈에 밣히는 일이다. 허공을 바라보며 목적지 없이 걷다가 컷 소리에 멈추거나 빈 냄비를 앞에 두고 휴대폰만 바라보는 배경에 너무 젊은 사람들이 가득하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화면의 중앙을 가득 채운 중년의 박사님들은 화장실도 못 가고 앉아있는 배경의 청년들에게 신경이나 썼을까. 하다못해 촬영이 끝나고 수고하셨어요, 인사는 했을까. 요즘은 배경을 곱씹을수록 좀 서글퍼진다. 










  

2018. 11. 19. 07:50




 조금만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어도 바로 꿈의 세계에 반영되는 편이다. 최근 계속되는 타임어택들, 그 중에서도 오늘 당장 철거가 시작되는데 인터넷 전원과 TV단자를 어디로 옮길지...같은 사소해보이지만 생활에 엄청나게 중요한 문제들을 밤늦게까지 결정하지 못해 우왕좌왕하다 괴로움을 겪었다. 생애 가장 큰 돈이 드는 일이고(결혼보다도 더), 심지어 대출을 받아 감행하는 일인데도 사소한 변수들이 계속 등장하는 중이다. 그 와중에 뱃속 친구의 발길질은 거세져가서 잠을 깊게 못자는 날이 늘어간다. 원고도 다시 한 번 교정해야 하고 프롤로그도 써야 하는데 머릿속이 하얗다. 덕분에 어젯밤 꿈속에서는 밤새 누군가에게 흠씬 쫓기다 결국 붙잡혀 총구 앞에 서는 신세가 되었다. 가슴이 쿵딱쿵딱 뛰는데 나를 쫓던 사람이 내게 마지막으로 던진 질문. 


"마지막 질문이다. 고려는 몇 년도에 건국됐나?" 


1392... 아 그건 조선이고... 고려가 대충 오백년이었으니까 900년쯤일까... TV단자를 어디로 옮겨야 할지 우왕좌왕하던 때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다 총부리 앞에 그대로 얼음이 된 채 잠에서 깨어났다. 휴 역시 오늘도 쫓기다 깼군. 다시 자면 또 쫓길 것 같아 다시 잠들지 않기로 했다. 네이버에서 찾아보니 고려는 918년도에 건국됐다고 한다. 대충 찍었어도 살 수 있었을텐데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스스로의 창의력 없음에 좌절했다. 아니 어떻게 된 게 생애 마지막 질문마저 이렇게 재미가 없을 수 있냔 말이지... 생사의 기로 앞에서 고려 건국년도라니... 










2018. 11. 2. 08:57



 꿈에 오래 전 살던 아파트가 나왔다. 대단지 복도식 아파트로, 오천 세대는 족히 넘게 살던 곳이었다. 다시 찾은 아파트 우편함에는 알 수 없는 종이들만 가득했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내가 살던 곳, 103동 801호의 우편함을 들여다봤다. 작은 우편함이 뭔가로 터질 듯 꽉 차 있었다. 전단지와 광고물을 버리고 우편함을 쓸어보니, 십오년 전 누군가 내게 보낸 두꺼운 편지들이 여럿 들어있었다. 먼지가 한 겹 쌓여 있어 보낸 사람의 이름을 보려면 먼지를 한참 닦아내야 했다. 봉투가 두툼해서 누가 봐도 꽉꽉 눌러 채운 편지들이 가득 담겨있음을 알 수 있는 편지들이었다. 서둘러 편지들을 챙기는데 우편함 맨 밑에서 두꺼운 공책이 보였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할 십대 시절의 일기가 빼곡하게 담겨 있었다. 글씨체는 내 것 같지 않게 어리고 낯설었다. 

 

 공책과 편지를 챙겨서 아파트를 빠져 나오는데 사람들로 붐비던 큰 도로엔 아무도 없이 나 혼자였다. 





2018. 10. 26. 12:49



 


 최근 기억에 남은 사람 : 미친듯이 많은 인파로 붐비는 제주공항에서 갑자기 두통을 호소하며 울던 직원. 동료 한두명이 옆에서 달래고 있었지만 앉을 자리조차 없어 여자화장실 옆 귀퉁이에 기대서 울고 있었다. 그야말로 터져나갈 것 같은 국내선 청사 안에선 이미 사람들이 바닥에 앉아 대기중이었다. 멀쩡한 사람도 아프게 만들 것 같은 인파였다. 물리적으로건 심리적으로건, 일터에서 궁지에 몰리는 사람들을 가끔 본다. 그럴 때마다 일이란 우리에게 무엇인가, 생각해보지만 언제나 답 없는 한숨으로 대화는 마무리된다. 한 발자국만 나가도 탁 트인 하늘과 바다가 천지인데, 숨도 쉬기 어려운 공항에 갇혀 울던 그녀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