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괴한 소리는 내 바로 옆자리에서 들렸다. 여러 높낮이로 깔깔대는 웃음소리는 쇠를 긁는 소리와 기계음으로 이어졌고, 쇳소리는 이내 '양배추에 물을 줄 때는 수돗물 대신 정수한 물을 사용하세요. 양배추를 잘 키우기 위해서 중요한 건...' 사람 아닌 사람의 목소리로 바뀌어 각종 정보를 읊었다. 양배추에 이어 단호박 고르는 법에서 다시 짧은 시트콤의 한 장면인듯 더빙한 웃음소리들. 하나의 소리는 이십초를 넘기지 않았고 연쇄적으로 들려오는 소리들은 내용에 상관없이 그 단말마적 길이 때문에 두렵기까지 했다.
그 곳은 스타벅스였다. 모두 대체로 자신만의 책이나 노트북을 들고 와 각자의 할 일을 하는 곳. 휴대폰을 하는 사람들도 모두 이어폰을 끼고 혼자 소리를 들었다. 어떤 사람이길래 이렇게 큰 소리로 숏츠를 미친듯이 한 시간째 보고 있는 걸까. 차마 고개를 돌려 똑바로 쳐다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노란색 점퍼 위에 캡모자를 눌러쓴 실루엣을 곁눈질하며, 혹시 주머니에서 갑자기 흉기 같은 걸 꺼내진 않을까 잔뜩 경계했다. 딸아이를 미술학원에 데려다 주고 남는 시간에 늘 들르던 옆 동네 스타벅스는 언제 들어가도 늘 균질한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 쳐진 선을 넘지 않으려 조심하고 적당한 상식 선에서 행동과 소리를 제어하는 사람들. 수십 명의 균질한 사람들 속에서, 내 옆자리의 노란 점퍼가 만들어내는 작은 소란은 날카롭게 파괴적이었다.
마침 읽고 있던 나다니엘 호손 단편집이 더 음산하게 느껴졌다. 심연을 들여다보게 하는 이야기들이 더 깊고 질퍽하게 느껴져서, 발을 헛디딜 것만 같았다. 심란한 마음에 마지막으로 자리를 옮길까 고민하는 순간 미동도 없던 노란 점퍼가 움직였다. 숏츠를 끄고 둥근 테이블 옆으로 내민 발. 등산화였다. 느릿느릿 등산화 두 개가 테이블 밖으로 위치를 이동하고, 이어서 검은 바지가 따라나왔다. 먼저 간 하체가 상체를 끄집어내듯 노란 점퍼는 아주 천천히 옆으로 몸을 끌었다. 점퍼가 뒤를 돌아 섰을 때 재빨리 고개를 들어 숏츠 중독자의 뒷모습을 확인했다.
그는 아주 늙은 노인이었다. 등산화 옆으로 지팡이를 짚고 세 걸음을 비틀비틀 옮겼다 멈추고, 또 재빨리 몇 걸음을 걸었다 멈추기를 반복했다. 문까지 몇 걸음 되지 않는 거리를 아주 오래 음미한 노란 점퍼는 문 밖으로 사라졌다. 소지품은 모두 자리에 둔 채였다. 한 시간 동안 정면만 바라보던 나는 그제서야 게걸스럽게 옆자리를 훑었다. 생수 하나, 잔뜩 쌓여있는 에이포용지, 자리에는 회색 방석, 든 게 없어 보이는 가벼운 등산가방. 생수는 스타벅스에서 파는 에비앙이 아니라 백산수였다. 에이포용지엔 푸른색 컴퓨터용 사인펜으로 쓴 글씨가 빽빽했다. 단호박 잘 고르는 법과 양배추에 물 주는 법을 따라 써놓았을까, 글씨는 도통 알 수 없는 개성으로 중구난방이었다.
십여분이 지났을까. 노란 점퍼는 떠날 때처럼 아주 천천히, 발이 몸을 끄는지 지팡이가 끄는지 알 수 없는 모습으로 돌아왔다. 서서 이동하는 것 자체가 놀라울 정도로 불안정하고 느린 속도였다. 소리의 향연이 다시 시작되었다. 예능의 한 장면인지 미친듯이 웃어대는 사람들 다음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다녀간 자리를 아이유의 짧은 라이브 한 소절이 덮어버렸다. 계속되던 숏츠는 영어 회화 한 마디 배워보기에서 멈추었다. 당신 탓이 아녜요. 아 돈 블레임 유. 당신 탓이 아녜요. 아 돈 블레임 유. 당신 탓이 아녜요. 아 돈 블레임 유. 아 돈 블레임 유.
노란 점퍼는 숏츠를 넘기지 않고 아 돈 블레임 유에 꽤 오래 머물렀다. 아 돈 블레임 유. 사람인 것처럼 흉내내는 남자의 기계음이 계속해서 당신 탓이 아니라고 오십 번쯤 또박또박 같은 말을 반복했다. 노란 점퍼는 미동 없이 영어 회화 한 마디에 푹 빠진 것 같았다. 짐을 챙겨 일어날까 말까 고민하던 나는 순간 아주 깊은 곳에 발을 헛디딘 것처럼 막막해졌다. 우리가 각자 겪었거나 겪어야 할 각자의 외로움과 고통의 단말마들이 귓속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것만 같아서.
집에 가는 길에 나는 차를 탔다. 노인은 버스 정류장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눈이 마주친 것 같았는데 별다른 표정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