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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 13. 10:31

 

 아이의 애착인형이 뜯어지다 못해 솜이 비져나오기 시작했다. 오래 전 베트남에서 사온 물고기 모양 인형으로, 다시 구할 수도 없어 2년 전 첫 분실 사건 때 동네 카페에서 다정한 분이 새로 만들어준 것인데. 2년 반을 하루도 빠짐없이 모든 곳에 들고 다니다보니 또 이리저리 해지고 천이 터졌다. 시어머님이 임시방편으로 덧대어주셨지만 낡은 천 가운데 새 천을 덧대자 오히려 더 비어져나왔다. 방법이 없었다. 민망한 마음은 접어두고 2년만에 동네 카페 아이디를 클릭해 연락을 드렸다. 남은 천이 있다면 좀 팔아주십사하고. 

 다정한 분은 흔쾌히 아예 보수공사를 해줄테니 인형을 택배로 보내라셨다. 아이에게 상황을 잘 설명하고 인형을 병원에 며칠간 입원시키겠다는 서약을 받았다. 점심시간에 우체국에 달려가 락앤락 봉지에 담은 인형을 부쳤다. 호이안의 작은 수공예품점에서 너를 처음 살 때는 이런 물건이 될 줄은 몰랐는데... 지금은 거의 인형에 영혼이 깃든 느낌이다. 응급환자를 이송하는 마음으로 우체국 등기를 띄우고 일주일을 조마조마했다. 잠들기 위해 누웠다가 인형의 이름을 부르며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는 아이를 재우고, 검은 새벽에 뛰어나와 방송을 하고, 하루종일 아이템을 정하고 조율하고 뭔가를 수습하고...집에 돌아오면 아이와 같이 인형을 기다렸다. 수술이 오래 걸리나봐. 겨울이라 아픈 환자들이 많은가봐.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다정한 분으로부터 곧 도착할거라는 메시지가 왔다. 

 택배가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받자마자 달려와 박스를 열었다. 물고기 인형이 세 마리나 들어있었다. 원래 가지고놀던 크기의 인형이 두 마리, 그리고 손바닥만한 새끼 물고기 인형 한 마리. 세 마리 가운데는 직접 그리고 글을 써 실로 묶은 동화책이 놓여있었다. 물고기 인형을 정말 좋아하던 한 아이가 놀다가 그만 인형을 놓쳐버리고, 인형은 물고기로 변해 바다로 가서 멋진 친구를 만나 아기 물고기까지 낳고 가족이 되어 다시 아이에게로 돌아온다는 내용이었다. 주황색 실로 꽁꽁 묶어 제본한 도화지 책을 읽다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매일 보는 사람들의 악의에 지치기도 하지만,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선의에 기대어 다시 살아가기도 한다. 지치게 하는 것도 사람이고 소생시키는 것도 사람이다. 아무리 초연한 척, 상관없는 척 해봐도 역시 사람이 힘들고 사람 덕분에 덜 힘들어진다. 해지고 닳은 물고기 인형 한 마리를 보냈다가 가족 물고기를 선물받은 아이는 손이 모자라도록 인형을 들고 다닌다. 잃어버리면 어쩌나, 지켜보는 마음이 조마조마할 때도 있지만 걱정부터 하지는 않으려 한다. 어떤 순간이든 선의를 베푸는 사람들은 꼭 나타난다. 나쁜 것은 얼른 잊고 좋은 것들을 더 오래 바라보는 한 해가 되어야겠다. 곱게 봉재된 인형 세 마리를 손에 들고 새해 첫 머리에서 혼자 해본 다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