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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 17. 23:02

 

길에서 구걸하는 늙은 여자들을 보면 가던 길을 돌아와 잔돈을 챙기다가도

마사지샵에서는 늙은 여자가 거칠거칠한 손으로 어깨를 쓰다듬으면 싫고

거리에 내몰린 아이들이 파는 1달러짜리 팔찌를 여러 번 사면서

다음 휴가는 우리 아기가 헤엄치기 좋은 풀장이 있는 곳으로 가야겠다고 결심하고

웨스턴이 많은 리조트가 좋은 곳이라고 평가하면서

한국 여행자를 만나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스캔하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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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비참과 아늑한 겨울휴가

 

 

 

2019. 12. 26. 15:23

 

 

 쥐는 갑자기 등장한다. 음식점이 많은 상가 건물 뒷편이라든지 낮고 무성한 화단에서 스스슥 소리와 함께. 미키마우스와 쥐 혹은 햄스터와 쥐의 간격은 엄청나서, 살아있는 쥐가 재빠르게 지나가는 걸 보면 악 소리가 절로 난다. 분홍빛 꼬리는 왜 또 그렇게 길게 자취를 남기는지. 쥐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까, 아니 쥐를 싫어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까? 불결과 궁핍의 대명사, 왠지 생긴 것보다 더 징그럽게 느껴지는 외모. 발견하면 비명을 질러야 할 것 같은 느낌. 

 올해 성탄절엔 이 쥐를 생각했다. 몇 해 전 본 풍경이 갑자기 떠오르면서다. 동부이촌동에서 커피를 마시고 상점가를 산책중이었던 것 같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끝을 따라가보니 쥐 한마리가 애타게 왔다갔다, 같은 지점에서 빙빙 맴돌고 있었다. 동물병원 앞이었다. 자그마한 턱을 따라 동물병원의 유리 자동문 앞에 다다른 쥐가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문 앞에서 종횡무진 통로를 찾는 중이었다. 거기까지였으면 아직까지 그 쥐를 기억하진 못할 것이다. 그 쥐는 뭔가 이상했다. 뒷다리를 다쳤는지 한쪽 다리를 심하게 절었다. 절뚝이는 걸음으로 막힌 문 앞을 오른쪽 왼쪽으로 가로질러 봤지만 문이 열리진 않았다. 

 동물병원 문 앞에 선 쥐는 문을 열어달라고 애원하는 것처럼 보였다. 누가 봐도 그랬다. 징그러운데 불쌍했다. 쥐는 무서운데 아픈 쥐였다. 길을 가던 사람들이 멈춰서서 그 당황스런 풍경을 어찌할 바 모르고 쳐다봤다. 어찌할 바 모르긴 동물병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유리 자동문 안에서 유니폼을 입은 직원들이 난감한 표정으로 쥐를 지켜보고 있었다. 문을 열어줄 수도 없지만 쫓아버리기도 애처로웠다. 쥐는 절박했다. 아파서 절박했든 대낮에 사람들이 많은 도로 한가운데서 갈 곳을 몰라 절박했든 몸짓이 그랬다. 동물병원은 이름이 동물병원일 뿐 고양이와 개를 위한 곳이란 걸 알려줘야 했을까. 사람들이 무서웠다면 잽싸게 다른 곳으로 도망갈 수 있었을텐데 그러지 않았다. 쥐에게는 그 나름의 급한 용무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도심 한복판, 그것도 동부이촌동처럼 깔끔한 동네에서 본 장면치곤 굉장히 강렬했다. 한동안 잊고 있다가 갑자기 이 장면이 떠오른 건 환대와 구원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서였다. 조건 없는 환대 안에 구원의 실마리가 숨어있다는 성탄절 메시지였다. 누구를 맞이하고 누구를 내칠지 인간적으로 재고 따지지 않을 때,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구원이 다가온다는 얘기다. 맞다. 지금은 구원인 것처럼 보이는 이가 세월이 지난 후엔 악몽으로 돌변하기도, 보기만 해도 몸서리치던 이가 시간 지난 후 죽마고우로 변하기도 한다. 잘 알고 판단하는 것처럼 굴어보지만 사실은 말짱 모른다. 어차피 우리의 판단은 틀린다. 삶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영원히 알 수 없다. 자신할 수 있는 건 나의 무지, 단 하나 뿐이다.

 그러면 쥐를 환대할 수 있을까. 누구에게든 조건 없는 환대를 베풀 것. 다정한 강아지와 새침한 고양이를 귀여워하듯이 생쥐에게 같은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지금으로선 아니다. 아기를 낳고 나니 세상을 조금 다르게 보게 된다. 더 사랑스러운 눈으로? 아니, 더 의심스러운 눈으로. 아기를 낳기 전보다 방어적으로 변했다. 세상은 원래 두려웠지만 곱절로 두려워졌고, 싫어하는 것들의 목록은 세 배로 늘어났다. 해롭고 두려운 존재들로부터 도망쳐야 할 것 같다. 어떤 존재가 해로울지 모르니 미리 결계를 친다. 먼저 거절한다. 그런 마당에 조건 없는 환대라니, 그런 성탄절 메시지라니. 버스를 타고 멍하니 그 말을 곱씹는데 난데없이 생쥐의 모습이 재생된 것이다. 기억 속에 켜켜이 숨어있던 작고 더러운 길거리의 쥐. 

 그 날 동물병원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다친 쥐의 다리를 치료하고, 붕대를 감아줄 수는 없는 일이다. 절뚝거리던 쥐는 한참을 문 앞에서 서성이다 어디론가 사라져갔다. 상가 건물의 작은 통로, 비좁은 수로, 조용한 화단 속으로. 원래 있던 곳으로. 떠나는 생쥐를 보던 누군가 뛰어나왔다. 동물병원 바로 옆, 베스킨라빈스의 통유리에 붙어 아이스크림을 먹던 아주 작은 아이였다. 아이가 허겁지겁 사라지는 쥐를 몇 발자국 따라갔지만 쥐는 금새 사라져갔다. 다친 다리를 계속해서 절뚝거리면서. 그제서야 동물병원의 문이 다시 열렸다. 개와 고양이와 인간이 편히 드나들 수 있는 안전하고 깨끗한 통로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

 쥐는 갑자기 나타난다. 이촌동 동물병원 앞에서 맞닥트린 아픈 쥐가 그랬던 것처럼, 삶의 쥐들도 갑자기 튀어나올 것이다. 으악 이 쥐새끼! 하고 비명을 지르게 될지도 모른다. 사람이 되기도 사건이 되기도 할 것이다. 그 때 나는 쥐를 환대할 수 있을까. 너무 싫은 그 생쥐 앞에서 조건 없이 마음을 열 수 있을까. 오늘 내가 환대한 생쥐가 훗날 라따뚜이가 되어줄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환대해야 하는 건 아닐 것이다. 조건없는 환대에는 말 그대로 조건이 없다. 미래에 대한 기대라곤 없는, 오로지 현재 그 상태로의 환대라야 진짜겠지. 

 곧 한 살을 더 먹는다. 생쥐를 환대하는 연습. 무엇이든 환대하는 연습. 나의 타고난 기질과 아주 반대되는 덕목이 될 것이다. 

 

 

 

 

2019. 12. 19. 13:33

 

 

 도리도리가 문화권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는 얘기는 어디서 왔을까. 우리 집 아기는 도리도리를 한 번도 배운 적이 없는데 싫을 때는 어느새 도리도리를 한다. 10개월에 접어든 아기에게서 새로운 증상이 발현됐다. 바로 이유식 거부.

 4개월무렵 처음 이유식을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먹는 거라면 뭐든 잘 받아먹고 가리지 않아 은근히 즐겁고 뿌듯했다. 한 끼에 이만큼이나 먹었다구! 듣는 이도 없는데 혼자서 자랑했다. 손톱보다 작은 이로 야금야금 오물오물 뭔가를 씹어 삼키고 또 입을 아 하고 벌린다. 아기 새처럼 작은 입에 숟가락이 쉴 새 없이 드나들고 입가에 묻은 밥풀들을 닦아내면 끝. 이 행복하던 식사시간은 이제 사라졌다. 알 수 없는 이유로(이유가 있긴 하겠지?) 아기는 이유식을 전면거부중이다. 식탁의자에 앉혀 숟가락을 입에 가져대면 입을 꽉 다물고 도리도리 혹은 멀리 떨쳐내기. 비슷한 시기에 이유식 거부가 오는 경우가 많다기에 이것저것 다른 방법들을 시도해봤지만 여하튼 아기는 지금 먹는 게 싫다. 그렇다. 인생 10개월차에 드디어 싫은 게 생겼다. 강하게 의사표시를 한다. 도리도리도 하고 고함도 꽥 지르고 손으로 밀어내기도 하고 도망도 간다. 

 아기에게 좋고 싫음이 강력하게 생긴 건 말이 늘면서부터다. 8개월 무렵까진 엄마, 아빠, 맘마 정도만 하던 아기가 최근 한달 사이에 어휘량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음메 멍멍 꼬꼬 짹짹을 시작으로 귤, 물, 까까, 빵처럼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을 인지하고 말하기 시작했다. 물이 마시고 싶으면 물, 귤이 먹고 싶으면 귤, 까까가 먹고 싶으면 까까. 말할 수 있게 되자 좋고 싫음이 탄생했다. 귤, 바나나, 까까, 분유, 이유식은 모두 다른 맛이고 다른 좋음과 싫음이다. 입에 들어오는 걸 대충 다 맘마라고 뭉뚱그려서 먹일 수 있는 단계를 지나버린 것이다. 이렇게 탄생한 좋고 싫음에 대해 나는 무기력한 외부자다. 아기의 머릿속에 들어가 좋고 싫음의 회로를 바꿔놓을 수도, 좋고 싫음에도 불구하고 가리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납득시킬 수도 없다. 아기도 이제 인간이 되어버렸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들을 남이 바꿔놓을 수 없듯이 아기도 그럴 것이다. 우리는 아직 대화가 통하지 않지만 아기에게도 나름대로의 이유가 분명히 존재하겠지. 내가 좋아함과 싫어함에 어떤 기준이 있듯이. 돌이켜보면 나는 나의 좋음과 싫음에 대해 남들이 참견할 때가 가장 싫었다. 좋은 것은 좋아하도록 두고 싫은 것은 그저 싫어하도록 놔두었으면, 그게 내 10대 시절의 소박한 바람이었던 것 같다. 아무리 미성년자라 한들 혹은 10개월차 아기라 한들 한 인간의 머릿속에서 형성되고 있는 고유한 세계는 오로지 그 자신의 것이니까. 키우고 책임진다는 이유만으로 그 세계를 훼손하거나 방해할 수는 없으니까. 

 아기의 이유식 거부는 언젠가 끝나겠지만(영원히 밥을 안 먹고 살 순 없을테니)아기에게서 작고 고유한 세계를 발견한 지금, 나는 왠지 서운해진다. 언젠가부터 그 눈빛 뒤에 자리한 또 다른 영혼을 본다. 내 몸에 꼭 붙어있던 태아와 신생아 시절을 거쳐 이제 오롯한 한 인간의 형태를 갖춰가는 자의식을 본다. 내가 도무지 어찌할 수 없을, 언젠가는 이해조차 어려워질지도 모를, 나와는 다른 인간의 탄생을. 

 아기는 요즘 걸음마를 연습한다. 아직은 내가 손을 잡아주고 있지만 해가 바뀌면 그 손도 놓을 것이다. 이제는 정말로, 다른 세계와 평화롭게 공존하는 법을 배울 차례다. 아마 내가 평생 배운 것 중 가장 어려울테지만. 

 

 

 

2019. 12. 11. 12:48

 

 

 

 거실에 누워 뒹굴거리며 아기와 놀아주던 늦은 오후에 과거의 어느 장면이 방문했다. 과거라기보단 대과거정도 될까, 유아기에 어렴풋이 남아있는 장면이었다. 오랜만에 급작스러운 장면의 습격을 받고보니 몇달 전 꿈에 나온 배우 남주혁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삼시세끼에 나와 "음 이 온도 이 조명 이 습도..." 라는 기상천외한 대사를 놀라운 표정으로, 너무나 진지하게 하는 게 인터넷에서 밈이 됐을 무렵이었다. 처음 그 장면을 봤을 때 그 상황이 일단 너무 웃겼고(본 사람은 다 인정할 것...) 두번째로는 너무 웃긴데 또 무슨 느낌인지 너무 알 것 같았다. 이해하고 싶지 않은데 이해가 되는... 아니 사실 말을 안해서 그렇지 모두 그런 느낌을 가지고 사는 거 아닌가?(설마 다들 우스워질까봐 말을 안하는 거였나). 

 그 짤을 보고 며칠 지난 밤, 꿈에 남주혁이 나왔다. 밑도 끝도 없이 그냥 난데없이 등장했다. 여튼 꿈의 막이 열리자마자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저벅저벅 걸어들어와선 대뜸 내 책 중에 '온도와 습도의 병' 챕터를 너무 감명깊게 읽었다는 거다. 온도와 습도가 너무 중요한 거 아시지 않냐며 뭐라고 감상평을 장황하게 곁들였는데 좀 된 꿈이라 기억은 잘 안난다. 여튼 꿈에서도 웃겼는데 꿈을 깨고 나선 더 웃겼다. 

 미세먼지 가득한 찬바람을 맞고 있자니 난데없이 그 꿈이 떠오른다. 음 이 먼지와 온도와 습도... 

 

 

2019. 12. 6. 12:02

 

 

 아기를 돌보다 허리를 다친지 이주가 훌쩍 넘었다. 디스크에 문제가 있으리란 판정을 받곤 휴직생활의 가장 큰 즐거움이던 운동을 중단해야했고, 막 쓰기 시작했던 조금 긴 글은 도입부에서 멈춰버렸다. 초기엔 침상안정을 하느라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 뒹굴거리며 보냈다. 병원에서는 누워서 절대 휴대폰을 하지 말라고 했지만 그건 아이폰과 옴니아가 태동하기 전으로 돌아가야 가능한 일 아닌가... 어쨌든 모로 누워 쓸데없는 신변잡기들을 탐독하며 시간을 펑펑 낭비했다. 

 분통과 심술이 났다. 이 금쪽같은 시간에! 주양육자가 제대로 돌봐주지 못하자 아기는 아기대로 짜증이 늘어났고, 도움의 손길 없이 혼자서 아기를 하루종일 돌봐야 하는 날에는 좀 나아졌다 싶던 통증이 다시 도졌다. 걱정병은 더 심하게 도졌다. 환우카페에 가입해 글을 읽다 오밤중에 혼자 눈물짓기도 여러번(아 이렇게 내 인생이 끝나는건가...). 이제 운동도 글쓰기도 못하고 아기를 안고 매일 하던 산책도 못하는건가? 내년 봄이 오면 에버랜드도 가야하는데? 그 좋아하던 동백꽃 필 무렵도 누워서 봐야했고 무엇보다 책도 제대로 읽을 수 없었다(신기하게 그 와중에 복직해서 일은 어떡하나 걱정은 들지 않았다). 할 수 없는 것들의 목록이 늘어갈수록 짜증이 치밀었다. 몸이 다운되는 속도보다 마음이 다운되는 속도가 곱절로 빨랐다. 

 보름 넘게 희망과 절망의 자맥질을 반복하다 이틀에 한 번꼴로 물리치료와 한의원을 찾았다. 디스크엔 어차피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꽝꽝 얼어버린 근육이나마 풀 수 있는 방법을 찾아헤맸다. 동네 정형외과의 물리치료실에선 2900원에 고주파와 뜨거운 찜질을 제공한다. 처음 물리치료실에 들어갔을 땐 세상에 왜 이렇게 아픈 사람들이 많은지 깜짝 놀랐는데, 알고보니 모두 다 심각하게 아픈 건 아니었다. 한낮의 물리치료실은 일종의 낮잠방이었다. 누구나 아프고 결리는 곳은 한 군데씩 있으니까 잠깐 뜨끈한 침대에 누워서 찜질도 하고 지릿지릿 고주파도 쐬다보면 잠이 스스스 와도 너무 잘 온다. 커튼이 쳐진 침상은 열 개 남짓. 침상 머리맡에선 이십대 초중반의 물리치료사들이 마카롱과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먹으며 겨울 여행지를 검색하느라 들떠있다. 설렘에 들뜬 말소리를 들으며 제각기 허리며 팔목이며 어깨를 지지고 누운 사람들. 그렇게 잠깐 눈을 감고 뜨면 확실히 개운해졌다. 기분이.

 정형외과 물리치료실로 부족하다면 정오가 살짝 지난 오후, 동네 한의원엘 간다. 일단 계단참에서부터 진하게 달인 한약 냄새가 들큰하게 풍겨와 코를 벌름거리게 된다. 가정집처럼 신발을 현관에 벗고 들어가면 뜨뜻한 온돌바닥이 추위에 굳은 발을 덥썩 움켜쥔다. 맨발로 응접실(?)에 올라서면 오래 전 외할머니집에 놀러간 것처럼 오래된 화분들이 줄지어 놓여있다. 소지품 따위는 아무도 챙기지 않는다. 대기실에 뜸이며 부항을 뜨러 들어간 사람들의 가방과 겉옷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그 분위기만으로도 이미 오리엔탈 아줌마의 마음은 무장해제. 침을 맞을 생각은 없었지만 어느새 허리에 침이 꽂혀 있었다(그것도 봉침...).

 봉침을 꽂아넣은 채 뜨거운 적외선을 쬐고 있으려니 옆 칸에 누운 할머니가 자신이 왜 아픈지 설명하는 이야기가 서라운드로 들려온다. 최근에 이사한 집이 4층인데 엘리베이터가 없단다. 그런데도 강아지 두 마리를 안고 매일 산책을 했단다(어쩐지 나와 비슷. 강아지 두마리=9개월 아기 무게). 몸신인가 하는 프로를 보니 물에서 하는 운동치료법이 유명하다는 데 건대병원에서만 있다고, 원장님은 건대병원 가봤느냐고 물어보신다(네 가봤죠 근데 여기선 너무 멀어요). 엘리베이터는 몇 층 건물부터 보통 설치하냐고도 하신다(보통 5층 이상이면 있고 4층 밑은 잘 없더라고요). 김장을 해야해서 배추를 절여놨는데 속은 어떻게 무치냐고 걱정이시다(원장님도 이건 뾰족한 수가 없으신지 고민하신다). 

 내 허리 아픈 것 따위... 하고 숙연해질 때도 있다. "열네 살에 농사 시작했는데 말이 농사지 쌀 80키로짜리를 내가 들고..." 옆 침상에서 넘어오는 회고담을 듣고 있으면 9키로그람도 안되는 아기를 돌보다 허리가 나간 나는 왠지 민망하다. 하지만 뭐든지 저중량 고반복이 엄청난거니까 나도 할 말은 있다. 아무튼 한의원 원장님은 어떤 소재에서도 티키타카를 놓치는 법이 없다. "아이고 그러셨구나 근데 그 시절에 이 키면 동네에서 제일 크셨겠어요" "맞아 내가 79년에 군대를 갔는데 키가 174라고 축구를 엄청 시켰어..." 그리고 넘어가는 축구하다 부상당한 이야기, 정권의 격랑기와 변화를 군대에서 지켜본 이야기(어우 저는요 국민학교 조회시간이었는데 십이륙을 그때 들었잖아요 실시간으로...). 앞과 뒤, 좌우에서 끝도 없이 이어지는 살아온 이야기들을 듣다보면 어느새 초탈하게 된다. 인생사 격랑이지 뭐, 쿠데타와 내란 와중에 군대에서 고생도 하고 키 크다는 이유만으로 축구에 차출됐다가 허리 부상을 입기도 하는거지 뭐. 내 허리가 디스크면 어떠랴 터지지 않았으니 조심조심 살아가면 되겠지. 운동 좀 더 한다고 체력이 갑자기 국가대표 될 것도 아니었고, 당장 쓰고 싶었던 것들 써봤다 한들 필생의 걸작선이 될 것도 아닌데 잊어도 아무렴. 

 그렇게 한 시간 넘게 부항과 봉침, 뜨끈한 핫팩에 등을 기댄 채 한약 달이는 냄새에 푹 절여져 있다 나오면 마음의 결이 어쩐지 좀 달라진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가득한 한의원에서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귀동냥하다보면 누구나 언젠가는 아프게 될 수 밖에 없는, 우리네 운명을 다시 한번 받아들이게 된다. 크게 아프면 그건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해볼 일이지만 작게 아프다면 행복한 일이다. 할 수 있는 것들을 다 하며 도취된 채 한해를 마무리하지 못하고, 시무룩한 채로 물리치료며 부항이며 받으러 다니다가 소침해지고 또 약간은 숙연해진 나처럼. 그런데 이 기죽은 씁쓸함이 나쁘진 않다. 약침과 부항 가운데서 들려오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 어쩐지 자꾸 다시 거리로 나가 힘차게 걷고싶은 마음이 든다. 살다보면 이런 일 저런 일 당연히 생기는 것이고 그때마다 적절히 슬퍼하고 또 적절히 대응하며 살아가면 될 일이라는 걸 다시 되새긴다. 다들 그렇게 살아오며 내 옆 침대에 누워 침도 맞고 사혈도 빼고 있으니까. 

'다만 나쁜 일들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들이 함께 한다는 것,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 벌새의 마지막 대사를 한번 더 떠올린다.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던 마지막 말을 가장 좋아한다. 사라지고 닳아가는 것들 속에서도 작은 아름다움을 발견하길 소망하며 느려진 걸음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하나뿐인 내 물렁뼈들이 가능한 한 오래 버텨주길 바라며, 늘 걸어다니던 게 당연한지도 모르고 걷던 그 길을.

 

 

 

2019. 11. 17. 01:10

 

 길을 건너기 시작할 땐 언제나 초록이 아홉 칸 중에 일곱 칸 이상 남아있다. 이 정도면 충분해, 확신을 가지고 건너기 시작한 횡단보도는 생각보다 길다. 초록은 생각보다 빨리 무너진다. 붕괴의 시작은 언제나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여서, 모두 무너지기 전에 나 하나쯤은 건너갈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중간즈음에서도 상황을 알기는 힘들다. 아직 네 칸이 남아있고 나는 막 절반을 지나왔으니까 이대로만 가면 세이프다.

 어, 한 칸이 더 줄어들어 초록이 세 칸 남은 순간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닫는다. 나는 아직 길을 다 건너지도 못했는데 옆에 선 차의 운전자들이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는 소리가 들려온다. 한 대는 심지어 앞으로 나오고 있다. 든든했던 아홉 칸의 초록은 순식간에 텅 비어간다.

 초록은 균일한 속도로 무너지지 않는다. 두 칸 정도 남았을 땐 두 배로 빨리 무너진다. 이젠 가방을 부여잡고 양 옆을 살피며 뛰어야 한다. 이번에도 실패다. 횡단보도의 넓이와 내 걸음걸이의 속도, 시작부터 뛰어야할지 걸어도 괜찮을지를 가늠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왠지 나라면, 저 초록칸이 다 무너져내리기 전에 안전한 건너편으로 무사히 착지할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뛰지 않고 사뿐한 걸음으로 걸어도. 양 옆에 호시탐탐 지나가길 기다리는 차들이란 애초에 없는 것처럼. 하지만 세계는 인정사정 없고 룰은 정해져 있다는 걸 언제나 기억해야 한다. 가까스로 보도에 착지한 후 머리를 쓸어넘기며 흠흠 헛기침을 해봤자 이미 허둥지둥한 뒤다. 자신의 속도를 제대로 모르고 횡단보도에 뛰어들면 사소하게 볼품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대단히 볼품없는 존재가 차라리, 이런 경우보단 낫다. 

 이미 차들은 신나게 악셀레이터를 밟는 중이다. 세계의 속도를 가늠하는 데 곧잘 실패하는, 무너지는 초록 앞에 선 행인의 불안. 사소하고 시시하지만 쿵쾅대는 가슴은 한동안 불안의 기운을 머금는다. 그러니 스스로의 속도를 언제나 가늠해야 한다. 우리가 사는 세계엔 건너야 할 횡단보도가 이렇게나 많으니 말이다. 

 

 

 

 

 

 

 

2019. 11. 13. 14:23

 

 

 안방에 딸린 작은 욕실에서 샤워를 할 때마다 데자뷰가 스쳤다. 뜨거운 물을 목덜미에 붓고 있으면 밀려드는 아주 어릴 적의 기분들. 아늑하고 나른한데 별 일 없는 평일 오후에 외출했다 돌아와 6시에 하는 만화를 기다리고 있는 느낌.

 그 중에서도 목욕탕의 풍경이 자주 보였다. 평일 오후 느지막이 목욕탕 데스크에 값을 치르고 여탕 문을 열면 밀려드는 뜨끈한 수증기, 안경에 서린 김이 가시기 전에 눈 앞에 보이는 모습. 평상을 가운데 둔 채 옷장들이 미음자 형태로 탈의실을 채우고 있고, 평상 위에는 입는 중인지 벗는 중인지 알 수 없는 중년의 여성들이 부끄럼 없이 드러누워 재방송 중인 일일연속극을 보고 있다. 일일연속극 속 이야기가 언제나 그렇듯 주인공 중 한 명을 욕하는 것 같은데 그마저도 따스하고 구수하게 들리는 평일 오후의 목욕탕. 그 누구도 절박하거나 바쁜 표정 없이 그렇게 꾸벅꾸벅 어제 본 드라마를 보다가 잠시 잠에 빠져도 괜찮은 나른함. 침을 닦으며 평상에서 일어나 집으로 가는 길엔 시장에 들러 몇 가지 채소를 사고 또 이런 계절이면 붕어빵을 한 봉지 살지도 모른다. 

 한참 목욕탕 기분에 푹 빠져있다 정신을 차려보면 나는 다시 2019년의 우리집 욕실. 헐벗고 다같이 누워있던 평상은 온데간데 없다. 다른 욕실에선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는데 왜 여기는 언제나 다를까, 생각하다 외부로 바로 맞닿은 작은 창을 보았다. 초겨울 늦은 오후의 어렴풋한 햇볕이 불투명한 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며 한기와 온기가 동시에 전달됐다. 어린 시절 목욕탕에 앉아 보던 비슷한 풍경. 안쪽의 수증기와 바깥의 한기를 차단해주면서도 이어주던, 작고 불투명한 창이 거기에 있다. 

 그 창 밖으론 상인들의 소음이 들린다. 뻥튀기 기계 소리가 주기적으로 큰 소리를 내며 무언가를 튀겨댄다. 작은 규모로 요일마다 서는 시장이지만 채소가게와 어물전, 과일가게와 두부 파는 상인이 두루 와서 일주일치 장을 보기에 모자람이 없다. 손바닥만한 시장이라 아기를 데리고 아무리 천천히 돌아봐도 십 분이면 끝에서 끝에 도착한다. 단감과 고구마, 감자를 사서 집에 오는 길엔 언제나 떡볶이 포장마차 앞에서 잠깐 멈춤. 혹시 오늘은 물떡이 있을까? 간장에 푹 찍어먹을 수 있도록 퉁퉁 불려진 오뎅 옆의 가래떡. 하지만 서울의 분식집에선 단 한번도 물떡을 본 적이 없다. 맛있다고 할 수는 없는 맛인데 추워지면 이상하게 자꾸 먹고 싶은 맛. 아주 퉁퉁 불기 전, 오뎅 국물을 적당히 잘 머금은 상태의 가래떡이어야 하는데 집에선 결코 따라할 수가 없다. 

 집에 돌아와 옷에 묻은 한기를 털어내며 아기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추워서 양 볼이 빨개진 채 눈동자를 이리 저리 굴리며 오늘 본 풍경을 되새기는 모양이었다. 강아지 두 마리를 보았고 한 마리는 동네 어린이들에게 둘러싸여 '손!' '앉아!'를 훈련받는 중이었다. 생선가게에선 조그만 다라이에 담긴 미꾸라지들이 튀어나올 듯 헤엄쳤고, 옆에서 튀겨지는 옥수수 강냉이 냄새가 고소했다. 흥미롭고도 잔잔한 그 질감들은 아기의 작은 머릿속 어딘가에도 작은 보따리에 쌓인 채 자리잡을까. 그런 조각들이 모이고 모이면 유년의 질감이 되어, 언젠가 비슷한 실마리를 잡는 날이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풀어져 나오게 될 것이다. 그 순간 느꼈던 포근함과 안도감, 세상은 충분히 흥미롭되 무서운 곳이 아니리란 작은 믿음까지. 

 내 유년의 질감들은 대체로 무난한 포근함과 일관된 안정감같은 것들이다. 세상 밖에 무엇이 있는지는 잘 모르지만 일단은 적당히 만족스러운 작은 세상. 이제는 내가 다른 존재를 위해 만들어내는 공기에도 그런 질감이 섞여 있기를 바란다. 이왕이면 좀 더 인간적이고 원초적인 감각들이었으면 좋겠다. 말랑이고 따뜻하고 구수한 것들. 서툰 솜씨로 만드는 요리가 끓는 소리나 동네 풀밭에서 만난 예쁜 단풍 한 장.

 그런 유년의 질료들이 모이고 모여 언젠가 한 인간의 근원적인 감정의 풍경을 만들어내리라 믿는다. 내 감정풍경의 근본에 동네 목욕탕의 불투명한 창으로 올려다보던, 따뜻하고 차가운 공기와 한낮에도 재방송되던 일일드라마 소리가 낮게 깔려있는 것처럼. 

 

 

 

 

2019. 10. 30. 15:06

 

 요즘 내 안부를 가장 걱정해주는 건 스팸메일함이다. 날이 부쩍 춥다싶더니 기가 막히게 스팸메일함 제목들도 변한다. 오늘 아침 스팸은 "건강 꼭 챙기세요. 꼭이요", 그리고 "오늘의 명화입니다". 오늘의 명화는 고도원의 아침편지같은 신규 서비스인줄 알고 클릭했다. 며칠 전엔 심지어 “오랜만에 메일을 씁니다”라는 제목의 메일을 받기도 했다. 노래 제목인줄...누가 가을 아니랄까봐.

 보내는 사람들의 이름중엔 더러 아는 사람들도 섞여 있다. 받침이 많지 않고 부드럽게 발음되는 요즘 스타일 이름들이다. 한때 스팸의 대명사였던 김하나인지 김미진인지 여하튼 팀장님이 보이지 않은지 한참이다. 제목도 이름도 모두 있음직한 것들이라 헷갈린다. 최근엔 아예 메일 제목에 사람들의 이름을 적어 보내는 경우도 많다. "박OO 김XX 한AA" 이런 식. 먼 옛날 동창의 이름같기도 하고, 한때 친했지만 지금은 멀어져 연락이 오길 기다리는 애달픈 친구같기도 하다. 어쩌면 이 메일 안에 오랜만의 소식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잠깐 머문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오랜만에 메일을 씁니다”에 마음이 붙들려 혹시나...? 하고 클릭했다가 역시나만 잔뜩 보고 말았다. 오랜만에 썼다는 메일 속에는 성기능을 향상시켜주고 흥분시켜준다는 각종 약들의 이름이 빨갛고 파란 볼드체로 힘차게 움직이고 있었다. 제목 "사과의 말씀 드립니다"를 보는 순간엔 그래 누가 내게 사과를 한다는걸까, 하고 클릭했다가 엄청난 스트레스 개선제를 사라는 광고문구를 맞닥트렸다. 한알만 먹어도 모든 스트레스를 날려준단다. 스팸은 딱 세가지다. 갑작스런 돈, 성적 에너지, 그리고 무한한 건강과 휴식. 하고싶거나 벌고싶거나 쉬고싶거나 모두 다에 해당되거나. 그러고보니 한때 자주 오던 사행성 게임 메일들은 요즘 꽤나 뜸해졌다. 다들 요행을 바랄 기운조차 남지 않은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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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팸을 보낸 사람들의 이름을 가만히 살펴보다 답장하기를 클릭한 적이 있다. 평범한 이름에 주소도 그 이름의 이니셜을 따 만든 주소였다. 아주 쉬운 작명법, 나도 그런 메일주소가 있다. 이름 뒤에 붙은 숫자는 99였다. 9월 9일 혹은 99년을 뜻하는걸까. 'OO이맘'이라는 보낸이는 아예 대놓고 자신의 주민번호 앞자리가 주소인 것 같았다. 8509**... 'OO이맘'은 지역카페에서나 쓸법한 닉네임. 모두들 한메일 계정이다.

 이후 가끔씩 보낸이를 클릭해 메일주소를 확인했다. 그런 주소들은 자주 발견됐다. 사람들은 스팸을 위한 부계정을 개설하면서도 무의식중에 자기 자신의 일부를 남겨두는 실수를 하는 모양이었다. 실수라기보단 귀찮아서 익숙한 정보를 집어넣기 때문일테지만. 내가 스팸메일 알바를 한다해도 내 생일이나 이니셜 혹은 좋아하는 숫자를 넣어 계정을 만들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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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도 나는 매일 아침 메일함을 연다. 위에서 아래로 제목을 훑으며 잠깐이나마 낯모르는 타인들이 날린 서정을 감상한다. 가끔은 하나하나 메일을 클릭해 내용을 읽어본다. 제목에서 빛나던 서정과는 대비되지만 그래서 더 아득해진다. 붉고 푸른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면 스팸은 사라지고 거기 사람의 그림자가 보인다. 길에서 스쳐가고 버스 옆자리에서 손잡이를 잡고 선 모습이. 스팸을 보내면서도 자신의 일부를 거기 남겨둔 사람들이. 모두가 원하지만 영원히 가질 수 없는 것들을, 램프를 잃어버린 지니처럼 맴돌며 귓가에 속삭이는 사람들이. 언젠가 정말 못견디게 좋은 제목이 배달되는 날엔 오늘 진짜 제목 좋았어요, 하고 답장하게 될지도 모른다.

내가 아는 가장 뛰어난 시인들은 요즘 스팸메일함에 산다. 

 

 

2019. 10. 28. 12:30

 

 신촌에서 홍대입구로 넘어오는 길을 걷다 할머니 세분을 만났다. 버스정류장 앞에 함께 앉아 뭔가의 줄기를 까고 계셨다. 길가에 앉아 고구마며 뜯은 나물을 파는 평소의 할머니들보다 더 나이든 분들이었다. 어림잡아 팔십대가 분명한 세 분은 뭐라고 이야기를 주고받으시면서, 엄지손가락에 천을 덧대고 계속해서 줄기를 깠다. 정류장에 서있는데 버스는 오질 않고 할머니들의 두런두런한 말소리가 등짝을 자꾸만 간지럽혀 천천히 뒤로 돌아 한 바구니를 샀다. 다 사도 삼천원. 세 분이 까셨으니 한 분에 천원일까. 

 가을햇볕을 한데 받으며 앉아있던 할머니들을 보는데 왠지 딸이 생각났다. 요즘은 길을 가다 할머니들을 만나면 반사적으로 딸이 떠오른다. 지금은 걷지도 못하는 아기지만 언젠가 늙어 호호할머니가 될 것이다. 내가 절대로 볼 수 없을 그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딸의 조그만 등이 휘청거리고 무릎이 쪼그라지는 날이 오면, 나는 딸을 부축해주거나 안아줄 수 없을텐데. 할머니가 된 딸은 어디를 걷고 무엇을 먹고 있을까. 옆에서 같이 걸을만한 사람들은 얼마나 남아있을까. 세상은 또 얼마나 알아볼 수 없을만큼 변해있을까. 

 내 눈이 닿을 수 없고 내 손이 미칠 수 없는 그 곳을 더듬어본다. 상상할 수도 없는 아주 먼, 캄캄한 어둠 속을 더듬다보면 손아귀에는 걱정만 한가득 그러잡힌다. 그 곳에서 행복한 할머니가 되어 있어야 할텐데... 생각하다 갑자기 정신을 차리면 손에 그러쥔 걱정들이 얼마나 황당한지. 할머니의 할머니시절, 엄마의 할머니시절, 심지어 나 자신의 할머니시절에 대해선 무감하면서 딸의 할머니시절을 지레 앞당겨 상상하고 또 걱정한다. 웃기다가도 나만 그런 것 아니겠지, 모든 딸이 딸을 걱정하고 할머니가 할머니를 걱정하다 세상이 이렇게 이어졌겠거니 한다. 

 요즘엔 길에서 만나는 낯선 이들에게서 내가 가닿지 못할 오래된 미래의 기척을 엿본다. 그러면 낯선 이들이 왠지 덜 낯설게 느껴지고, 그 얼굴에 내리는 햇볕도 더 따사롭게 느껴진다. 뭔지 모르는 식물을 한 바구니 사오게 된다(알고보니 고구마줄기였다). 나는 없을 미래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마음일거라고 생각하면 왠지 아주 나쁘지는 않을 거란 믿음도 슬며시 생기곤 한다. 고구마줄기를 볶아놓으니 그런대로 짭쪼름하게 밥반찬이 되어주었다. 한 바구니가 얼마나 되겠어 했는데 아직도 냉장고에 한가득이다. 일주일은 볶아 먹을만큼. 

 요즘 난 별 것 아닌 일로 걱정하지만 또 별 것 아닌 일로 든든해진다. 

 

 

 

2019. 10. 26. 22:21

 

 가끔은 말을 많이 했는데도 진짜 중요한 건 제대로 말하지 못한 기분이 든다. 정말 좋아하고 응원해, 아프지 말고 항상 행복해야해, 이런 류의 말들인데 희한하게도 소리내어 말로 나오질 않았다. 아무래도 갑작스럽고 뜬금없는 단어들이니까. 하지만 정말 하고 싶은 말은 그런 것들이었는데,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아쉽다. 마음에 있는 얘기들을 끄집어내기가 이렇게 어렵구나 싶다. 

 왠지 마음이 개운치 않아 저녁시간에 짧은 엽서를 썼다. 쓰고 보니 역시나 마음에 있는 말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은 것 같아 실망스러웠다. 역시 나는 계속 계속 연습해나가야 한다. 말도 글도 조금 더 정확해질 때까지. 좋아하는 사람들을 끌어안을 수 있을만큼만, 말과 글의 팔이 길어질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