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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1. 19. 07:50




 조금만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어도 바로 꿈의 세계에 반영되는 편이다. 최근 계속되는 타임어택들, 그 중에서도 오늘 당장 철거가 시작되는데 인터넷 전원과 TV단자를 어디로 옮길지...같은 사소해보이지만 생활에 엄청나게 중요한 문제들을 밤늦게까지 결정하지 못해 우왕좌왕하다 괴로움을 겪었다. 생애 가장 큰 돈이 드는 일이고(결혼보다도 더), 심지어 대출을 받아 감행하는 일인데도 사소한 변수들이 계속 등장하는 중이다. 그 와중에 뱃속 친구의 발길질은 거세져가서 잠을 깊게 못자는 날이 늘어간다. 원고도 다시 한 번 교정해야 하고 프롤로그도 써야 하는데 머릿속이 하얗다. 덕분에 어젯밤 꿈속에서는 밤새 누군가에게 흠씬 쫓기다 결국 붙잡혀 총구 앞에 서는 신세가 되었다. 가슴이 쿵딱쿵딱 뛰는데 나를 쫓던 사람이 내게 마지막으로 던진 질문. 


"마지막 질문이다. 고려는 몇 년도에 건국됐나?" 


1392... 아 그건 조선이고... 고려가 대충 오백년이었으니까 900년쯤일까... TV단자를 어디로 옮겨야 할지 우왕좌왕하던 때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다 총부리 앞에 그대로 얼음이 된 채 잠에서 깨어났다. 휴 역시 오늘도 쫓기다 깼군. 다시 자면 또 쫓길 것 같아 다시 잠들지 않기로 했다. 네이버에서 찾아보니 고려는 918년도에 건국됐다고 한다. 대충 찍었어도 살 수 있었을텐데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스스로의 창의력 없음에 좌절했다. 아니 어떻게 된 게 생애 마지막 질문마저 이렇게 재미가 없을 수 있냔 말이지... 생사의 기로 앞에서 고려 건국년도라니... 










2018. 11. 2. 08:57



 꿈에 오래 전 살던 아파트가 나왔다. 대단지 복도식 아파트로, 오천 세대는 족히 넘게 살던 곳이었다. 다시 찾은 아파트 우편함에는 알 수 없는 종이들만 가득했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내가 살던 곳, 103동 801호의 우편함을 들여다봤다. 작은 우편함이 뭔가로 터질 듯 꽉 차 있었다. 전단지와 광고물을 버리고 우편함을 쓸어보니, 십오년 전 누군가 내게 보낸 두꺼운 편지들이 여럿 들어있었다. 먼지가 한 겹 쌓여 있어 보낸 사람의 이름을 보려면 먼지를 한참 닦아내야 했다. 봉투가 두툼해서 누가 봐도 꽉꽉 눌러 채운 편지들이 가득 담겨있음을 알 수 있는 편지들이었다. 서둘러 편지들을 챙기는데 우편함 맨 밑에서 두꺼운 공책이 보였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할 십대 시절의 일기가 빼곡하게 담겨 있었다. 글씨체는 내 것 같지 않게 어리고 낯설었다. 

 

 공책과 편지를 챙겨서 아파트를 빠져 나오는데 사람들로 붐비던 큰 도로엔 아무도 없이 나 혼자였다. 





2018. 10. 26. 12:49



 


 최근 기억에 남은 사람 : 미친듯이 많은 인파로 붐비는 제주공항에서 갑자기 두통을 호소하며 울던 직원. 동료 한두명이 옆에서 달래고 있었지만 앉을 자리조차 없어 여자화장실 옆 귀퉁이에 기대서 울고 있었다. 그야말로 터져나갈 것 같은 국내선 청사 안에선 이미 사람들이 바닥에 앉아 대기중이었다. 멀쩡한 사람도 아프게 만들 것 같은 인파였다. 물리적으로건 심리적으로건, 일터에서 궁지에 몰리는 사람들을 가끔 본다. 그럴 때마다 일이란 우리에게 무엇인가, 생각해보지만 언제나 답 없는 한숨으로 대화는 마무리된다. 한 발자국만 나가도 탁 트인 하늘과 바다가 천지인데, 숨도 쉬기 어려운 공항에 갇혀 울던 그녀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2018. 9. 29. 12:54


 편집을 할 때는 대부분 노래를 듣지 않는다. 노래가 시작되는 부분과 끝나는 부분만 잘 페이드인, 페이드아웃 되는지 확인하고 넘긴다. 그런데 아주 가끔 가만히 다 듣게 되는 노래들이 있다. 좋은 노래라서가 아니라 이십대에 들었던 노래들과 마주할 때 그렇다. 


 어제도 그런 날이었다. 얼른 주말 방송을 편집하고 퇴근해야지 싶어 노래를 스킵하는데 이십대의 어느 날엔가 즐겨 들었던 노래가 한 곡 들어있었다. 2009년 봄에 발매된 음반이었다. 스물 셋에 들었던 노래가 그때를 그대로 품은 채 다시 들려올 때, 그럴 땐 편집기 앞에 앉아있어도 세상을 훨훨 날아다니는 것처럼 기분이 좋아진다. 음악을 타고 아주 멀리 다녀왔다가 다시 돌아온다. 그 음악을 들으며 걸었던 길과 풍경들이 눈 앞에 선하게 떠오른다. 달라진 것 없는 것 같지만 아주 타인처럼 느껴지는 그 시절의 나도 함께. 


 이십대는 어떤 시기이길래, 그 시절의 노래는 이렇게 오래 남아있는걸까. 지금 듣는 노래들도 십년 후 내게 그렇게 진하게 남을 수 있을까. 이십대를 떠나온지 그렇게 오래된 것도 아닌데 벌써부터 지나간 이십대가 그립고 또 아쉽다. 이렇게 뭐든지 진하고 강렬하게 남을 줄 알았다면 더 많은 노래를 듣고, 더 많은 곳을 여행하고, 더 많은 책을 읽을 걸 그랬다. 아마 사십대가 되면 삼십대를 그리워하며 똑같이 말하고 있겠지. 삼십대에 더 많이 듣고, 쓰고, 읽고, 말할 걸 그랬다고. 오늘도 많이 걷고 많이 생각해야겠다. 




2018. 8. 26. 07:51



 조기축구의 핵심은 소리다. 나는 삼 년째 매주 일요일 아침이면 조기축구회가 지르는 소리들로 잠에서 깨어난다. 에어컨 틀고 가만히 앉아만 있는 것도 힘들던 지난 한여름에도, 폭설로 운동장이 폐쇄될 지경인 한겨울에도 일요일 아침 일곱시면 어김없이 따흐야 후아 흐아~ 소리로 잠을 깨우는 우리 동네 조기축구회. 심지어 경기 시작 전에 개별 훈련 하시는 분들은 일곱시 전에 운동장에 나오셔서 한참을 연습하시다 본경기에 합류하니, 여섯시가 조금 넘으면 괴성이 들려오기 시작하는 셈이다. 심지어 이 분들의 경기는 90분을 훌쩍 넘어 기본이 두 시간이다. 아침 예닐곱시에 시작되는 따흐아~ 소리는 열시가 되어야 마무리된다. 


 월드컵이나 아시안게임 축구경기를 보게 될 때도 우리동네 조기축구회와 비교하게 된다. 선수들도 이렇게 소리를 많이 지르면서 경기할까? 역시 아니다. 각종 괴성은 조기축구만에서만 볼 수 있는 고유한 특징이다. 따흐아 으아~ 그리고 아주 가끔 경기가 잘 풀릴 때 나오는 나이수나이수! 소리와 함께하는 박수와 함성. 하지만 대부분의 소리는 역시나 안타까워하는 아흐~ 따흐~ 위주다. 이 소리들은 심지어 공을 차는 소리보다 더 많이 들린다. 


 나는 최근에 들어서 이 조기축구회를 정말로 존경하기 시작했다. 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축구에 대한 무한한 사랑 때문이다. 가끔 경기가 맘대로 풀리지 않을 때 들려오는 그 장탄식을 들으며 누워 있으면 나는 무언가를 저렇게 간절히 원해본 적 있나 싶으면서 새벽부터 반성하게 된다. 오늘도 조기축구회의 간절한 비명소리를 들으며 이른 아침부터 잠에서 깨어나 가만히 누워 그저 감탄중이다. 경기가 끝나면 단체로 사우나에 갔다가 순대국을 한 그릇씩 하시겠지. 상상만 해도 나까지 행복해지는 코스다. 그나저나 다시 잠을 자야하는데... 아흐 따흐 나이수~ 소리들은 한참 클라이막스를 향해 달려가는 중이다. 가만히 일어나 창가에서 경기를 관람하기로 한다. 역시나 공은 거의 움직이질 않는데 소리 입자들만 바쁘게 허공을 가르고 있다. 








 

2018. 7. 19. 12:52




 오렌지 이스 더 뉴 블랙, 하우스 오브 카드 정도를 보고 넷플릭스를 해지한지 6개월. 아직도 구구절절하게 날아오는 구애의 메일("정언님, 요즘 시간이 날 땐 뭘 하고 지내시나요?" "정언님에게 꼭 맞을 만한 시리즈가 기다리고 있어요")을 열어보다 나도 모르게 재가입을 하고 말았다. 너무 애절했다. 내가 졌다 넷플릭스.



2018. 6. 26. 09:50




 몇 년째 다니고 있는 상수동의 헤어샵에는 곰청년이 산다. 곰청년은 주로 카운터를 지키거나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쓸고, 샵으로 걸려오는 전화를 처리한다. 펌은 일년에 두어 번, 컷트는 거의 한 달에 한 번 하니 나는 매달 곰청년에게 전화를 거는 셈이다. 덩치가 꽤 커서 혼자 곰청년이라고 별명을 붙였다. 홍대 앞 인디밴드에서 조용한 드러머를 하고 있을 것만 같은 인상의 20대 청년으로 커다란 뿔테에 과묵한 인상이다. 


 머리를 하는 짧지 않은 시간동안 곰청년이 거울에 자주 보인다. 내가 주로 앉는 자리 뒷쪽으로 곰청년의 데스크가 있어, 앉아 있으면 자연스레 곰청년을 관찰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손님들의 예약전화가 없고 쓸어낼 머리카락들도 없을 때 곰청년은 주로 창 밖을 바라본다. 헤어샵의 한쪽 벽면은 전면 유리로 트여있어 상수동 거리가 훤히 보인다. 곰청년은 작은 데스크에 큰 덩치를 구기고 조용히 앉아서 하염없이 창 밖을 구경하곤 한다. 밖으로 나가고 싶지만 나갈 수 없는 우리 속의 곰처럼 말이다. 나는 그런 곰청년을 거울 너머로 가끔 살펴보며 곰청년의 머릿속에는 무슨 생각이 오가는지 항상 궁금해하며 컷트나 퍼머를 한다. 잘은 모르지만 헤어샵을 나가고 싶어하는 것만은 분명했다. 창 밖으로 완전히 돌아간 몸의 방향, 언제나 밖을 바라보는 시선은 분명히 먼 곳으로 떠나고 싶어하는 사람의 몸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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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곰청년이 사라진 건 얼마 전이었다. 오랜만에 머리를 자르러 갔더니 카운터가 비어 있었다. 디자이너 선생님들이 번갈아가며 전화예약을 받고 카운터를 챙겼다. 사람 한 명이 줄었다고 가게가 공연히 분주했다. 카운터 보시던 직원분은 어디 가셨나봐요, 하고 묻자 디자이너 선생님이 답한다. 아, 그만뒀어요. 다른 일 하고싶다고.  나는 내심 기뻤다. 곰청년이 드디어 헤어샵을 탈주한건가! 좁고 작은 헤어샵의 데스크가 아닌 넓은 어떤 곳에서, 몸을 구겨넣지 않고도 즐겁게 일할 수 있기를 바랬다. 인상처럼 어디선가 시원하게 드럼을 치고 있어도 좋을 것 같았다. 


-


 그리고 2주 전, 다시 찾은 헤어샵에서 곰청년을 다시 만났다. 그는 여전히 데스크에 몸을 구겨넣은 채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어색하게 건넨 인사에 곰청년은 힘 없는 인사로 답했다. 머리를 자르며 넌지시 물었다. 데스크 보시는 분 다시 돌아오셨네요. 디자이너 선생님은 말 없이 웃기만 했다. 


 헤어샵의 곰청년은 오늘도 창 밖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비가 시원하게 내리는 날이면 더 열심히, 간절하게 창 밖을 바라볼 것이다. 창 밖을 간절히 쳐다보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일이 없기라도 한 것처럼. 그러다 잠깐 졸음에 들면, 곰처럼 크게 기지개를 켜며 거리로 나서는 꿈을 꿀지도 모른다. 다음 달에 머리를 자르러 가면 과연 그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까. 부디 언젠가 곰청년이 그에게 잘 맞는, 아주 넓고 탁 트인 곳을 찾아 떠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2018. 6. 6. 12:06

12년 전 스무 살의 일기 중에서.

덧붙여진 노래는 이승환의 <외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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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9 22:19

나는 가끔 라디오 디제이들에게 마음을 읽힌 것이 아닐까 하고

두려워질 때가 있다.

기숙사를 나와 사촌언니와 함께 살기 시작.

내 공간을 가지게 된 것은 정말 행복하지만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는 것은 그저 그렇다.

춥고 피곤하고 그냥 따뜻한 집 안에서 책 읽으며 저녁시간을 보낼까

아님 운동 다녀올까 고민하다가

아 설거지부터.. 하고 라디오를 켰는데

마침 아침부터 생각하고 있던 이 음악이 나왔다.

이럴 땐 가끔씩 세상이 나를 위해 돌아간다고 착각하게 된다.

비록 내가 세상 위를 날아다닐 수는 없지만 말이다.

-

2017. 12. 23. 14:45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일 년 전, 이제는 저 너머로 가버린 종현이의 칭찬. 

 라디오 전학생이라 한껏 의기소침했던 내게 큰 힘이 됐다.


 그런데 나는...일곱 달, 매일 매일 그 많은 시간을 함께하면서 

 힘내라는 말 한 마디 제대로 하질 못했다. 


 혹시 다시 한 번만

 그 새벽의 스튜디오로 돌아갈 수 있다면...

 음악이 나가는 동안 피곤해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너에게 

 정말 잘하고 있다고, 정말 대단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영원히 잊을 수 없을 나의 첫 번째 프로그램

 그리고 나의 첫 번째 디제이. 








 

2017. 12. 17. 00:13


 시사교양국이 부활했다. 


 5년 만이다. 2012년에 해체됐으니. 조직도를 한참 보고 있자니 이제서야 끝이 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 개인, 선배가 아니라 막연하게 그 이름에 가지고 있던 오래된 미안함과 죄책감. 무너져가는 곳에서 살아보겠다고 난파선에서 혼자 열심히 백기 흔들고 구명보트 던져 뛰어 나왔다는 속상함 같은 것들이... 아주 조금은 덜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씨지실에 갈 일이 있어 3층 복도를 지나다가 오랜만에 시사교양국 청소 아주머니를 만났다. "다 돌아오는데 자기는 안 돌아와?" 하신다. 여의도 시절부터 시사교양국을 청소하시던 분이다. 불만제로에 물건이 나오면 제일 먼저 와서 저건 안 파는거야..? 하고 조심스럽게 물어보시던 분.  일본산 수산물 편을 하느라 냉동 생선을 박스째 쌓아놨다가 촬영이 끝나고 드리니까 너무 좋아하시며 가져가셨더랬다. 지져 먹고 볶아 먹고 한참 먹어도 되겠다며...생선 종류가 뭐였더라. 


 네 저는 안 돌아가요... 하자 그래도 거기 피디들이 더 순하고 일하기도 좋지? 하신다. 아마 아직도 내가 작기인줄 아시는 모양이다. 설명하기도 민망해서 네 맞아요... 지금 있는 데가 더 좋아요, 자주 놀러 올게요 하고 돌아섰다. 이제는 챙겨드릴 생선 같은 것도 없는데 왠지 마음이 쓰인다. 


 이제는 정말로 끝이 난 것 같다. 혼자만의 조용한 푸닥거리가 조금 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