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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2. 17. 10:49

 

 회사에선 2년마다 휴대폰을 최신형으로 바꿔준다. 나는 최신형 기기에 워낙 관심도 없고, 사진을 옮기고 자료를 백업하는 게 귀찮아서 2년 전 휴대폰 교체시기를 그냥 넘기고 아이폰7을 여지껏 쓰고 있었다. 아이폰7은 크기도 작고 한 손으로 들어도 손목에 큰 무리가 가질 않아서, 그거면 충분했다. 아기 사진을 찍을 때 좀 아쉽긴 했지만 제일 잘 나오는 사진들은 필름카메라로 찍힌 것들이니 어차피 큰 미련은 없었다.

 그래도 4년을 넘게 쓰니 배터리가 빨리 닳고 혼자 꺼지기도 해서 이번 교체 시기엔 바꿔야겠다고 맘을 먹었다. 맘을 먹자마자 기계 녀석이 알아차리고 빈정이 상했는지 4년을 버티던 아이폰7이 음식점 테이블에서 떨어져 고장이 단단히 났다. 액정 깨지는 정도야 늘상 있는 일이라 익숙했지만 전화통화가 아예 안 됐다.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새 휴대폰으로 12미니를 신청하는데 회사에 물량을 대주는 업체에선 시간이 많이 걸린단다. 어쩔 수 없이 집에 있던 공기계를 수소문해 아이폰6를 쓰기 시작했다. 12가 출시된 시대에 절반으로 다운그레이드 된 셈이다.

 어차피 임시로 잠깐 쓸 기계니, 쓰던 앱들을 옮기지 않고 카카오톡만 깔았다. 인스타, 페이스북, 트위터, 블라인드, 요즘 주변에서 난리가 난 클럽하우스는 당연히 없다(클럽하우스를 깔기 위해선 IOS업데이트를 엄청나게 해야한다). 어쩌다보니 반강제로 디지털 디톡스를 하게 됐다. 전화 기능이 사라진 아이폰7는 집에서 가끔 와이파이에 연결해 하루에 한 번 정도 인스타그램을 확인한다. 이마저도 흥미삼아 둘러본다기보단 놓친 업무 연관 소식(?)들을 체크하는 용이다. 후다닥 좋아요 폭탄을 투척하고는 꺼버린다. 몇몇 페북 헤비유저들의 글을 보기 위해 팔로우하던 페이스북도 강제로 끊긴 지 2주가 되었다. 코로나19, 정치, 검찰, 부동산, 세상 돌아가는 꼴에 대한 각종 견해들이 뚝 끊겼다. 은근히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던 트위터도 마찬가지. 트위터를 끊으니 어떤 불평불만이 있는지를 조금 덜 알게 된다. 

 한편으로 초조하기도 하다. 클럽하우스는 초대장만 받아놓고 묵히는 와중에 일에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얼른 나도 뛰어들어서 한 마디 거들어야 하는데, 안그래도 체질 아닌 인싸 커뮤니티엔 영영 못 끼는 게 아닌가 싶은 마음도 든다. 그런데 그냥 이대로가 편하다. 자기 전에 박완서 작가의 책을 읽으며 사십년 전 일하며 글 쓰던 어떤 여성의 고민을 접하고, 그러다가도 영 할 게 없으면 저녁 열시 반에 잠에 들어버린다. 그러고는 아침 일고여덟 시까지 아주 내리 잔다. 

 미래는 언제나 두려운 존재다. 지금 밀려오는 파도에 얼른 몸을 실어 놓아야, 이 파도가 나를 그럴싸한 미래로 데려다줄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파도가 너무 자주, 너무 많이 밀려오는데 어떤 파도가 진짜 저 쪽으로 넘어갈 파도인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는 데 있다. 나 같이 평범한 사람들이, 모든 파도에 한 번씩은 다 몸을 맡겨볼 수 밖에 없는 이유일 것이다. 주식이 대세가 되면 주식도 해봐야 하고, 어떤 SNS가 대세가 되면 얼른 가입해서 한 마디라도 거들 수 있어야 하고. 어디서 어떤 가능성, 정확히는 미래의 방향을 알려줄 가능성을 발견하게 될지 도무지 모르기 때문에. 

 -

 나는 계속 엉거주춤 반 걸음 뒤쳐진 채로 이 모든 파도 곁에서 발가락만 담그고 있을 것 같다. 모든 파도에 몸을 실어볼만큼 에너지가 많지도 않을 뿐더러, 갈수록 관조적으로 살고 싶다는 강한 욕망을 느낀다. 반 걸음 정도 떨어진 위치에서 그냥 관찰하고 구경하면서. 그러다 정신을 차려보면 해변가엔 아무도 남아 있질 않고 우두커니 나 혼자 서 있을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들이 파도를 타고 저 다음 곳으로 넘어가서, 인기척도 느낄 수 없는 지경이 될지도. 아주 나쁠 것 같지만은 않다. 혼자 남은 해변가에서 아홉 시간 넘게 잠을 자고 읽을 만한 책을 한 권 찾아서 읽을 수만 있다면. 마음만 언제나 평화로울 수 있다면. 

 

 

2021. 2. 16. 10:30

 

 어느 날엔가 퇴근해서 집엘 갔는데 아기가 계속 쑥떡 비슷한 걸 찾는다. 쑤꾸리~! 쑤꾸리~! 그런데 평소에 쑥떡은 잘 발음하던 단어고, 쑥떡을 먹고 싶었으면 쑥떡 주세요라든가 쑥떡 먹고싶어요 했을 아이가 쑤꾸리~!를 발음할 땐 제스처가 뭔가 남다르다. 아주 큰 소리로 소리치는 건 둘째치고 자꾸 뭔가를 집어 던지는 게 아닌가. 힘차게 배에서부터 나오는 목소리로 쑤꾸리, 동시에 손에 쥔 인형이나 작은 블럭 같은 걸 멀리 멀리 던져댄다. 아침나절에만 해도 없던 나쁜 버릇이 들었나? 누군가 뭘 던지는 내용을 책에서 봤나? 뭐라고 해야겠다 싶어 아기를 붙잡고 물건 던지는 거 아니야, 하고 눈을 딱 쳐다보고 엄격하게 말했다.

 아기는 조금은 황당하고 또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던지는 거 아니야! 쑤꾸리 하는거야! 

 그러면서 또 내달려가 손에 쥐고 있던 걸 멀리 보내며 쑤꾸리를 외친다. 어딘가 목표 지점에 도달했는지 박수를 치며 좋아하기까지 한다. 쑤꾸리를 외칠 때 마다 즐거워보였다. 아기가 저녁 내내 외친 쑤꾸리는 다름아닌 슛 골인이었던 것이다. 슛, 골인~! 

 쑤꾸리는 며칠 가지 않아 슛, 골인으로 아주 정확하게 교정되었다. 두 돌이 되며 말이 부쩍 는 아기는 출근하는 내게 잔소리까지 한다. 엄마 눈이 펑펑 오니까 조심조심 엉금엉금 기어가. 짐짓 어린이처럼 참견도 잘 하고, 입기 싫은 옷은 나한테 어울리지 않아! 하며 밀어내기도 한다. 어쩌다 가끔 쑤꾸리처럼 불완전 학습된 단어를 쓰더라도 곁의 어른이 아, 슛 골인? 하고 가르쳐주면 그 단어는 금방 교정돼버린다. 내가 잘못 알았구나 하고 잠깐 발음하는 어른의 입을 유심히 쳐다보며 금방 연습을 한다. 슛 골인. 슛 골인. 엄마 다시 해봐 슛 골인. 그러고 나면 쑥떡과 비슷하던 쑤꾸리는 사라져버린다. 너무 짧은 찰나의 미숙함이다. 아침엔 있었다가도 저녁이 되면 햇볕과 함께 사라져버리는 찰나의 미숙하고 불완전한 아름다움, 너무 금방 사라져 마음을 에이는 구석이 있는 귀여움이다. 

-

 어제는 갑자기 자기 아빠더라 나잡아라바! 라고 외치더니 기저귀 찬 엉덩이를 뒤뚱뒤뚱 흔들며 멀리 도망을 갔다(말은 청산유수인데 기저귀를 가릴 생각은 전혀 없다). 나 잡아봐라 놀이가 하고 싶은 모양인데 다섯 음절까진 발음이 어려운 모양이었다. 제딴에 한껏 열심히 도망가던 아기는 다시 한 번 뒤를 돌아보더니 나잡아라바! 하고 소리친다. 나잡아라바, 나잡아라바, 왠지 주문같기도 먼 중동의 작은 도시 이름일 것 같기도 한 이 다섯 음절을 아직까진 고쳐주지 않았다. 잡아라바라가 아니라 나 잡아봐라야, 이렇게 얘기해버리면 또 순식간에 사라질 미숙함이란 걸 알아서. 너무 짧게 또 빨리 우리를 스쳐가는 찰나의 불완전함이라는 걸 이제는 너무 잘 알고 있어서. 

 

 

2021. 2. 2. 10:46

 

 

"이런 세상을 어떻게 저주하지 않을 수 있나. 그런데 이 순간에도 어떻게든 살아 있는 어린이들이 있지 않나. 대체 어떻게 해야 된다는 거야. 나 하나가 경멸해도, 나 하나가 사랑해도 세상은 그대로 있고 누군가는 살아 있다.

 다섯 살 어린이에게는 삶이나 죽음을 선택할 기회가 없었다. 그 어린이는 다른 사람의 의지로 인해 죽었다. 나는 삶을 선택할 수 있었다. 문제 해결은 여전히 요원하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날마다 살기로 선택하고 있는 셈이다. 나처럼 선택의 순간을 가졌든 아니든 간에, 지금 살아 있는 사람은 삶을 선택한 것이다. 그렇다면 살아 있는 사람은 무엇이든 어떻게든 해야 되는 것이 아닐까. 삶을 선택한다는 건 나아가겠다고 선택하는 것이니까. 나아가려면 외면할 수 없으니까. 나아가려면 맞서야 하니까. 삶을 선택한다는 건 그런 것이니까." 

 

 

2021. 2. 2. 10:36

 

 일주일 전이었다. 모처럼 춥지 않고 맑은 겨울 날씨길래, 집에만 있기 아까워 부암동으로 차를 몰고 갔다. 주차를 해두고 스콘을 사고(자그마하던 스콘 가게가 다섯 배로 커져 있었다! 긴 생머리의 20대 레깅스 등산족들이 등산 후 스콘을 먹는 풍경이란...) 사람이 없는 골목길을 이리저리 누비다, 무계정사를 발견했다. 몽유도원도의 배경이 되었다고 알려져 있는 작은 집터. 넓지 않은 고택이 복원되어 있었고 햇볕이 잘 드는 마당에는 봉오리가 빼곡히 맺힌 목련나무가. 아주 조용하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바닥에는 작은 자갈들이 빠짐없이 깔려있어 돌멩이를 좋아하는 아기는 삼사십분을 쪼그리고 앉아 돌멩이를 이리 옮기고 저리 옮기며 놀았다. 어른 둘은 바위 위에 걸터앉아 햇볕을 쬐는 망중한..

 이 끝나고 아주 평화로운 마음으로 집으로 출발하려 아기를 카시트에 태우다가, 그만 내 팔에 힘이 빠져 아기의 팔이 카시트 옆부분에서 꺾이고 말았다. 두둑 하는 소리가 들리고 아기와 눈이 마주치자 둘 다 동공확대. 이어지는 울음소리. 팔이 아프다는 아기 말에 돌아볼 것 없이 근처 응급실로 향했다. 아픈데 병원까지 데려가니 아기는 대략 패닉상태. 울부짖는 아기를 결박해 엑스레이를 찍고 부목을 댔는데 부목을 물어뜯고 자기 손가락을 물어뜯으며 부목을 떼어내라고 반항한다. 다행히 뼈에 이상은 없다지만, 혹시 모르니 부목을 좀 대고 있으라는 의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부목이 내동댕이쳐졌다. 두 돌 아기도 죽을 힘을 다하면 이렇게 완력이 셀 수 있구나, 순간 깜짝 놀랐다. 응급실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부목을 주워 아기를 안고 너덜너덜 집으로 돌아오니 아기는 또 멀쩡한 듯 잘 논다. 

 정신없는 주말을 보내고 출근해 회사에 앉았는데 걸을 때 마다 발이 아프다. 뭔가 하고 봤더니 신발 속에 무계정사의 작은 돌멩이가 굴러다닌다. 어젠 멀쩡해 보이던 아기가 월요일 아침이 되자 어깨가 아프다고 한바탕 울부짖은 후였다. 납덩이처럼 가라앉은 마음을 질질 끌고 겨우 출근했는데 걸음 걸음을 뗄 때마다 발바닥을 따갑게 굴러다니는 작은 돌멩이가 떠나질 않았다. 점심을 먹으러 갈 때도, 커피를 마시러 갈 때도, 화장실을 갈 때도 발에 밟혔다. 신발을 벗어 털어버리면 되는데, 이상하게 또 털어버릴 수는 없었다. 아기가 장난치느라 내 신발 위에 옮겨다 둔 돌멩이들이어서. 

 -

 며칠이 지나도록 신발에서 빠져나올 생각을 않는 작은 돌멩이를 밟으며, 자식이 생긴다는 건 평생 신발 안에 자갈을 넣고 다니는 기분일까 잠시 생각했다. 빼려고 해도 차마 뺄 수 없고, 좋은 걸음이든 기쁜 걸음이든 걸음마다 늘 밟히기 마련인. 아주 짧은 찰나라고 하더라도 잊기는 어려운 작은 돌멩이. 

 심지어 곧 신발 속 돌멩이가 하나 더 늘어난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양 발에 저벅저벅 무언가가 밟힐 것이다. 내가 아무리 먼 곳으로 떠나든, 어떤 놀라운 걸음을 걷든 결코 잊고 걸을 수는 없을 작고 귀여운 돌멩이 두 개가. 

 

2020. 12. 3. 23:14

 

 마땅한 병원이 없어 꽤 먼 거리의 대학병원엘 다닌다. 정기검진 때문에 방문한 며칠 전 대학병원. 코로나 상황이 심각해져서인지 입구부터 왠지 전과는 다른 분위기. 손 소독을 몇 번이나 하고 문고리를 잡을 일이 있을 때마다 팔꿈치로 대신 밀며 잔뜩 곤두서 진료를 마쳤다. 터치식 기계로 수납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화장실에 들러 손을 박박 닦은 뒤 병원을 떠나려는데, 

 한 할머니가 병원 로비에 마련된 벤치에서 누군가의 손을 너무나 간절하게 잡고 있었다. 눈을 감고 기도하시는 중이었다. 할머니에게 손을 부여잡힌 사람은, 사람이긴 한데 진짜 사람은 아니고 예수님의 형태를 본딴 동상이었다. 벤치에 앉아서 옆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 크기의 동상. 백발이 성성하고 어깨와 등이 잔뜩 굽은 낯모르는 할머니가, 동색 두 손을 꽉 맞잡은 채 눈을 질끈 감고 너무나 간절한 포즈로 기도를 하고 있었다. 얼마나 간절했으면, 세상에 그 간절함이 할머니의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가득 차있다는 걸 지나가다 스치듯 그 모습을 마주한 나조차도 너무나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화장실에서 나오다 말고 눈물이 핑 돌았다. 나도 모르게 그 순간만큼은 간절하게 그 할머니를 위해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저 할머니가 바라는 것이 무엇이든 제발 들어주시길, 누군가의 고통 때문에 기도하는 중이라면 그 고통을 아주 조금만이라도 덜어주시길. 큰 로비를 천천히 걸어 병원 문을 나설 때까지도, 할머니는 꽉 마주잡은 두 손을 놓지 못하고 작게 웅크린 채였다. 

 

 

 

2020. 11. 17. 10:39

 

 두 돌이 가까워져가면서 육아 난이도가 가파르게 상승했다. 그간 평지를 걸어왔다면 갑자기 암벽등반이 시작됐다. 심지어 근력은 인생 최저 수준인데 말이다. 몇 주 전부터 아기는 갑자기 떼를 쓰며 밤 열두시까지 자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겨우 잠들어서도 새벽 두세시에 깨어나선 놀아달라고 보챈다. 말은 청산유수라 자기 싫은 이유가 백 가지는 된다. 엄마랑 재밌게 놀아야 하고, 자기 방이 무섭고, 수박 수영장을 읽어야 하고, 당근 수프도 만들어야 하고...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떼를 쓰고 뒹구는 아기를 달래며 선잠을 자다 말다 하다보면 어느새 출근시간인데, 이게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회사 일이 쉬운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인간을 기르는 일에 비하면 난이도를 따진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비교 불가다. 심지어 회사에선 돈도 주지 않는가. 

 세상 가장 지친 모습으로 발을 질질 끌며 겨우 회사 앞까지 다다라선, 가장 가까운 카페에서 라떼를 한 잔 겨우 마시고 올라간다. 하루에 십 오분 정도 주어진 혼자 있는 시간. 육아 난이도를 겨우겨우 낮춰주는 건 다름아닌 커피 한 잔. 십여년 전 양천경찰서 옆 카페에서 아침을 해결할 때, 이른 아침부터 모여 커피를 마시며 아기 이야기를 하는 30대 여자들이 너무너무 싫었는데 이제 그 마음을 너무너무 알 것 같다. 아주 잠깐 커피를 들이붓고 이야기라도 하지 않으면 도무지 낮아지지 않는 일상의 긴장도 때문에. 카페인을 들이붓지 않으면 이완되지 않는 꽉 뭉친 마음의 근육 때문에. 

 

 

 

2020. 10. 30. 10:46

 

 지난 주말 평창엘 다녀왔다. 가는 데 네 시간 반, 오는 데 여섯 시간 반이 걸렸다. 국도를 많이 타 원없이 강원도와 경기도의 풍경을 보고 또 볼 수 있었다. 토요일 점심에 출발해 잘 먹고 잘 자고 약간의 단풍구경도 하고 일요일 저녁에 도착하도록, 가장 많이 본 풍경은 일하는 사람들이었다. 국도가 난 구불구불한 시골길을 따라 이어진 주택과 논밭에서는 허리를 구부린 사람들이 쉼없이 손을 놀리고 있었다. 배추와 무를 수확하는 아주 거대한 무리를 지나자 길가에 나와 찐 옥수수며 감자를 파는 사람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단풍이 들어가는 오대산 자락에서, 탁 트인 대관련 자락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을 하고 있었다. 자동차에 실려 한참 앉아있느라 뻐근한 허리를 두드리다보니 왠지 내가 철석같이 믿어 마지않는 주5일, 52시간, 주말의 여행이라는 환상이 너무나 덧없게 느껴졌다. 

 

 

2020. 10. 16. 10:38

 

 요즘 1인용 책상을 찾아 헤매고 있다. 아주 심플한 기준인데 의외로 찾기가 무척 어렵다. 내 노트북 하나를 딱 올려놓을 수 있는 공간, 가로폭이 60센티정도만 되어도 충분하다. 작은 원목 의자 하나만 쏙 들어갈 정도로, 서랍은 딸려 있지 않아도 상관없다. 집에 공간이 없냐...하면 정말로 없다. 명목상의 서재가 있긴 하지만 용도폐기된지 오래다.

 아침과 밤의 자투리 시간을 어떻게든 활용하기 위해선 1인용 책상이 절실하게 필요하단 결론에 이르렀다(역시 기승전물건이다). 보통 아침엔 일곱시 조금 넘으면 내가 먼저 일어나고, 아기가 나를 부르기까진 40분정도가 뜬다. 보통 휴대폰을 보며 뒹굴거리며 아기의 호출에 대기하는데, 요즘따라 이 시간이 너무 아깝게 느껴진다. 아기를 재우고 나서도 밤엔 삼사십분이 남는데, 침대에 누워 단편소설 한편이라도 읽다보면 어느새 모로 누워 잠들어 있다. 침대와 독서는 아무래도 내겐 전혀 맞지 않는 조합. 

 아주 완벽한 1인용 책상이 있긴 한데 품절이다. 마켓엠의 1인용 책상이다. 군더더기 없는 물푸레나무로 깔끔한 디귿자, 다리를 쏙 집어넣고 노트북을 펼치면 책상이 꽉 찬다. 스탠드 하나 정도 올려놓을 공간이 남는다. 가격도 비싸지 않은데 구할 길이 없다. 중고나라 키워드를 등록해놓아도 잘 뜨질 않는다. 무인양품에 딱 그런 제품이 있지 않을까 해서 뒤져봤는데 의외로 찾기가 어렵다. 역시 얼른 제작을 맡겨야 할까.

 오늘도 침대에 누워 하릴없이 뒹굴거리며 아기의 호출을 기다리다, 단정한 원목으로 제작된 완벽한 1인용 책상을 찾아헤맸다. 오늘의 집을 한시간이나 뒤졌지만 역시 찾을 수 없었다. 읽다 만 <런던스케치>는 오늘도 침대 옆에서 나뒹굴고 있다. <미국식 결혼>은 사놓고 아직 한 페이지도 펼치질 못했다. 스스로가 약간 한심해지려는 찰나 마음이 잽싸게 핑계를 댔다. 이게 다 아직 완벽한 1인용 책상을 찾지 못해서 그런거야. 나는 아주 공감하며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둡지 않은 원목으로 만들어진 아주 똑 떨어지는 1인용 책상이 없으니 어쩔 수 없지. 아, 세상에 달콤하고 합리적인 핑계란 얼마나 많은가. 오늘도 내 마음은 너무 편하다. 언젠가 아주 완벽한 1인용 책상을 찾는 날에는, 그런 날에는... 

 

 

 

 

 

2020. 10. 2. 16:06

 

 요즘 꿈의 결이 좀 달라졌다. 정확히는 내가 꿀 것 같지 않은 꿈을 자주 꾼다. 똑같은 시험치는 꿈, 모의고사를 앞두고 초조해하는 꿈이더라도 느낌이 좀 다르다. 원래의 나라면 수학 시간에 쩔쩔맸을테지만 요즘 꾸는 꿈에서는 뜬금없이 사회 시간에 쩔쩔매는 편이 되었달까. 난데없이 야구장 한가운데에 서서 열심히 야구를 하는 꿈을 꾸기도 하고(그대여 이제 볼이랑 스트라이크는 구분하는가...) 첫사랑 고백을 앞둔 심정이 되어 두근두근 볼이 빨개지는 소년 혹은 소녀가 되어 있기도 하고 여하튼 꿈의 스펙트럼이 변했다. 이유는 아마도 하나. 다른 존재가 세를 들어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세 들어 살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벌써부터 몸이 고단하다. 처음 겪는 일은 아니지만 구역감과 구토 증상은 정말 이 모든 과정을 통틀어 셈한다 하더라도 제일 힘든 축에 속한다. 약을 먹으면 구토 자체는 좀 참아지지만 땅바닥으로 주저앉은 컨디션을 끌어올리긴 쉽지 않다. 그나마 요령이 생겨서, 두 시간의 생방송 중 뉴스가 나가는 십 분 사이에 잽싸게 화장실로 달려가 해결(!)하고 오는 게 루틴이 되었다. 네네, 저녁 일곱 시만 되면 생방 스튜디오 옆 화장실에서 웩웩거리는 사람이 접니다.

 다른 존재라는 건 진짜 이질적이다. 꿈도 달라지고 몸도 달라진다. 컨디션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 된다. 낮엔 항시 졸립고 밤엔 잠이 잘 오지 않는다. 평소엔 좋아하던 음식들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양 못 먹게 된다. 늘상 하던 루틴들도 사라진다. 당장 커피를 줄이게 되고, 주말 저녁이면 소량 홀짝이던 맥주는 꿈도 꿀 수 없는 형편이다. 피부는 더 거칠어지고 지금껏 멀쩡히 작동했던 장기들은 갑자기 제각기의 불평불만을 늘어놓느라 태업하거나 파업한다. 겪었던 일이라고 결코 쉬워지진 않는다. 모르긴 몰라도 열 명씩 낳아 길렀던 위대한 어머니들 역시 열 번의 모든 과정이 똑같이 힘들고 어려웠을 거다. 적응되는 어려움이 있고 아무리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어려움이 있는데, 단연코 후자 쪽이다. 내가 가져온 어려움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존재, 완전히 다른 존재가 가지고 온 이질적인 어려움. 아주 낯설고 또 다른.

 하루에도 몇 번씩 올라오는 신물과 구역감을 마주할 때마다 다른 존재를 생각한다. 달라서 힘든 거구나, 달라서 결코 나 같을 수 없구나, 내 마음과 내 몸 같을 수 없겠구나. 어쩌면 이 지난한 과정은 다른 존재를 납득하고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예비 훈련같은 걸지도 모른다. 다르다는 것, 영원한 매혹이지만 영원히 내 맘 같지 않으리라는 걸 시작부터 알고 들어가라는. 몸으로 먼저 몸소 체험하고 무릎 꿇게 만들고야 마는.

 

 

 

2020. 9. 23. 10:47

 

 분명히 아침에 봤던 아기인데 저녁에 퇴근하면 달라져있다. 등을 쓸어내려봐도 한층 넓어져있고, 손을 쥐어봐도 마디가 단단하게 여물었다.자리를 비운 건 열 시간 남짓인데 그 사이 달라진다. 처음 들어보는 말도 곧잘 한다. 앞에 와서 새로 배운 노래와 율동을 곁들여 재롱을 피운다. 분명 아침까지는 아기의 단어장에 없던 단어가 저녁엔 새로 깃들어 있다. 잠든 아기를 가만히 쳐다보면 팔이며 다리가 너무너무 길어져서 이 아기가 정말 내가 낳은 그 아기가 맞나, 누군가 중간에 바꿔치기라도 한 게 아닌가 싶어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아기의 아기시절이 이렇게 짧다니. 달리는 시간을 잡을 방법은 없고, 음미할 여유도 없고, 마음이 애달픈 요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