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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0. 29. 11:57

 

 며칠 전 합정역을 걸어 지나가다 바닥에서 아주 붉게 잘 물든 단풍을 보았다. 몸을 굽혀 단풍을 주워들고 뒷면에 벌레 먹은 데가 없는지 확인하고 있는데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마침 내가 단풍을 주워들고 있던 곳이 합정역에 많은 발코니형 카페 바로 앞이었던 것. 단풍잎을 주워 허리를 펴자 데이트중인 것 같은 커플과 눈이 마주친다. 왠지 좀 민망해지긴 했지만 당당하게 단풍잎을 가디건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가을이 되자 길을 가다 만날 수 있는 거의 모든 나무들엔 열매가 달리기 시작했다. 저기도 열매가 있어? 싶은 곳에도 어김없이 손톱보다도 작은 열매들이 맺힌다. 키 작은 관목부터 나뭇가지를 주워들고 아무리 흔들어도 닿지 않는 높다란 사철나무들에까지. 우리 동네에는 꽃사과와 산딸나무, 땡감이 한 차례 지나갔다. 이제 곧 구기자가 열리고 떨어질 차례다. 

 왜 모르고 살았지, 하고 나무를 하염없이 쳐다보다가 그렇지만은 않을 수도 있단 생각을 했다. 아주 오래 전엔 나도 이 모든 열매들을 뜯고 맛보기도 하고 주머니에 소중하게 넣어뒀다 터지면 울기도 했을 것이다. 멈춰 서서 굽어보고 들여다보고 작은 숲 안으로 들어가볼 여유가 없어 아주 오랫동안 잊고 있었을 뿐. 

 오늘도 주머니 속엔 익은 열매들, 너무 익어 터지기 직전의 열매들, 아직 덜 익어 초록 풋내 나는 열매들로 가득하다. 열매, 열매, 눈 닿는 모든 곳에 여전히 열매가 맺혀 있다. 아직 한 번도 만져보지 못한 새로운 것들로. 키가 조금 더 컸으면 좋겠다. 높이 달린 열매들을 마음껏 만져볼 수 있게. 요즘 난 새로 태어난 사람처럼 아주 신기한 것 투성이다. 

 

 

2021. 10. 26. 14:03

어둠 속에서 보이는 건 자라 한 글자 뿐이었다. ZARA. 자라의 오십원짜리 쇼핑봉투가 힘 없이 집 앞에 놓여 있었다. 택배는 아니었다. 누군가 정확히 현관 앞에 두고간 종이봉투였다. 무성의하게 찢은 연습장 한 장이 절반 정도 위로 비죽 솟아있었고 드문드문 보이는 글자 몇 개. 놀란 우리는 발걸음을 멈췄다. 예사롭지 않은 봉투임이 분명했다. 적어도 자라의 스웨터나 티셔츠가 들어있는 게 아님은 틀림없었다. 열어보고 싶지 않았지만 얼른 열어서 확인해야 집에 들어갈 수 있을 터였다. 아이 두 명을 각자 안은 채 주춤주춤 봉투로 다가갔다.

죽 찢은 연습장에는 사인펜으로 썼음직한 한 문장이 두 줄에 나뉘어 적혀있었다. "키워/보세요". 휘갈겨 대충 쓴 것이 분명한 종이 한 장에는 보내는 사람도 이유도 설명되어 있지 않았다. 거기서 확실한 건 단 하나뿐이었다. 그 자라 봉투의 수신인이 우리 가족이라는 것. 봉투의 입구는, 모르는 척 슬며시 옆으로 밀어둘 수도 없게 확실히 우리 집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키워/보세요, 라니. 대체 종이봉투에 뭘 넣어둔걸까. 두려운 마음으로 휴대폰 라이트를 켜 종이봉투 안을 비추었다. 푸다닥. 무언가 살아있는 생명체가 움직이고 있었다. 밀봉된 투명 봉투 안에 묵직한 생명감이 느껴져왔다. 심지어 하나가 아녔다. 뒤에서 눈이 동그래져있던 아이가 흥분 반 두려움 반이 섞인 목소리로 소리질렀다. "물고기네~~??"

일요일 저녁 여섯시 반. 누군가 우리 집 현관 앞에 물고기 아홉 마리를 놓고 갔다. 어떤 이유로 놓고 간다는 부연설명은 없었다. 황당했다. 여기가 베이비박스도 아니고 왜 살아있는 생명체를 유기하고 간단 말인가. 아니, 베이비박스라면 적어도 '키워/보세요' 대신 '키워/주세요' 정도로 공손하기라도 했을 것이다. 키워보라니, 무엇을, 도대체 왜? 우리 부부는 이미 어린 아이 둘을 키우는 것만으로도 둘의 키움 능력치를 최대한으로 끌어쓰고 있는데.

황당함이 가시자 두려움이 찾아왔다. 물고기를, 그것도 살아 헤엄치는 물고기를 아홉 마리나 남의 집 앞에 두고 간 사람의 마음이 대체 무엇이었을지 상상하기 싫었다. 요즘 아이가 많이 울어서 화가 난 이웃이 있었던걸까. 나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원한을 산 일이 있었을까. 혼자 상상에 빠져있는데 남편이 말한다. 원한이면 죽은 물고기를 뒀겠지, 지금 살아있잖아. 저렇게 놔두면 물고기들 다 죽을 것 같아. 그리고 자갈들이랑 물고기 사료도 함께 두고갔어. 진짜 그냥 키워보라는 거야.

황당한 메시지, '키워/보세요'의 발신인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겠지만 우리 집엔 살아 헤엄치는 물고기 아홉 마리를 키울만한 시설이 전무했다. 심지어 나는 어린 시절에도 물고기를 키워 본 경험이 없었다. 유년시절을 탈탈 털어보아도 뭔가를 길러본 일이 드물었다. 어린 아이들이 흔히 좋아할만한 잠자리 잡기나 개미 키우기... 여하튼 그 모든 종류의 살아있는 생물을 기르는 데는 취미가 없었다. 길러보진 않았지만 소질도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집에는 기어다니는 아기 한 명과, 걸어다니지만 갖은 관심이 필요한 조금 큰 아기 한 명이 함께 살고 있었다. 이들을 기르는 데 온 힘을 다 바쳐도 쉽지 않은 판국에, 물고기라니. 나는 내심 남편이 연못이든 어디든 바깥의 적당한 장소에 그 물고기들을 유기하고 오길 바랐다. 차마 입 밖에 내진 못했지만 간절히 ‘처리해주길’ 원했다. 인상을 팍 구기고 물고기들을 집안에 들이고 싶지 않은 티를 냈다. 아이가 쭈뼛쭈뼛 말하기 전까지는.

엄마, 물고기랑 같이 있으면 좋겠어.

차마 물고기를 싫어한다는 얘긴 할 수 없었다. 말하지 않아도 이미 아이는 눈치챈 것 같았지만. 게다가 물고기들은, 몇 시간 갇혀있었을지 모르는 투명 비닐봉투 안에서 힘겹게 파닥거리는 중이었다. 파닥거림은 그 자체로 생명력의 전시인 동시에 위태로운 신호였다. 그대로 작은 비닐봉투 안에 가뒀다간 아침이 되기 전에 아홉 마리의 사체로 바뀔 게 틀림없었다. 살아있는 물고기 아홉마리도 골치였지만 죽어버린 물고기 아홉마리가 현관 앞에 놓여있다고 생각하면 더 견딜 수 없었다. 나는 체념한 채 쓰지 않는 반찬통을 뒤적거리다 가장 누렇고 냄새가 밴 통을 꺼냈다. 어항만은 못하겠지만 당장 하루 이틀밤을 지새울 임시 숙소로 나쁘진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 집엔 아홉 마리의 물고기들이 헤엄치기 시작했다. 재어둔 불고기며 막 담근 겉절이를 담아뒀던 오래된 락앤락 보관용기 안에서. 아이는 헤엄치는 물고기들 머리 위로 동봉돼있던 사료 몇 알을 떨어트리며 즐거워했다. 무작위의 아홉 마리가 아녔다. 노아의 방주에 탑승시키기 위해 종류별로 솎아내기라도 한 것처럼, 질서정연하게 종류 별로 세 마리였다. 청소물고기 세 마리, 구피 세 마리, (아직 종을 알아내지 못했지만 아주 빠르고 날렵하며 아이 새끼손가락만한) 어떤 종 세 마리. 남편과 아이는 락앤락 용기 앞에 한참을 앉아 물고기를 가리키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여차하면 이름도 붙여줄 기세였다.

임시 물고기 숙소 앞에서 들려오는 아이의 웃음소리를 뒤로 한 채 나는 머리를 핑핑 굴려보았다. "키워/보세요" 의 발신인을 찾아내야했다. 대체 누가 왜, 살아 있는 물고기들을 기습적으로 두고 갔는가. 아무리 떠올려봐도 그럴 만한 사람이 쉽게 떠오르질 않았다.

(계속)

2021. 10. 6. 11:45

 

 어느날 눈을 떠보니 절반이 사라졌다. 처음엔 어떤 상황인지 잘 가늠할 수 없었다. 뭐지? 뭔가 이상한 것 같긴 한데 정확히 어디가 어떻게 잘못된 건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새벽에 깨어나 우는데 얼굴 한쪽만 유난히 더 찡그리고 울고, 일어나 물과 우유를 마실 때도 뭔가 이상했다.

 동네 소아과에선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대학병원 전원 소견서를 써주었다. 대체로 회복되지만 보호자가 많이 불안할 거라는 말을 덧붙였다. 소아과 의사의 말은 사실이었다. 아픈 건 아이였지만 불안한 건 보호자였다. '우측 안면신경 마비'. 오른쪽 얼굴의 표정을 만드는 모든 신경들이 마비되어 굳어버렸단 얘기였다. 흔히 추운 데서 자면 입이 돌아간다고 하는데 정말로 입이 돌아간 것처럼 보였다. 입술의 절반이 굳어버리니 신경이 살아있는 쪽이 상대적으로 휙 돌아간 것처럼 느껴졌다. 

 절반과의 싸움이 시작됐다. 다행히 아이는 자신의 상태를 자각하지 못했다. 뭔가 이상한 것 같긴 한데 그게 뭔지는 정확히 모르는 것 같았다. 행운이었다. 어른도 마주하기 힘든 괴이함이었다. 자신의 상태를 자각한다면 심리적으로 무너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얼굴의 절반은 아예 굳어있었지만 나머지 절반은, 사라진 제 짝을 신경쓰지 않은 채 웃고 울고 종알거리고 찡그리고 떠들었다. 아이답게 풍부한 표정은 이제 풍부하고 다양한 일그러짐으로 변했다. 

 며칠을 지내다보니 답답했다. 절반이 살아 있었지만 아무것도 없음이나 마찬가지였다. 울고 웃고 찡그리고 놀라고 당황하고 얼어붙고 기뻐하고 졸린 그 다양한 표정들이, 절반으론 아무런 효력을 갖지 못했다. '100이 아니라 50만큼 웃기구나', 이렇게 받아들일 수 있는 문제가 아녔다. 웃는 그 자체를 해독할 수 없었다. 절반은 분명히 웃고 울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전달되지 않았다. 타인에게는 오히려 수수께끼로 다가울 뿐이었다. 그래서 지금 기분이 어떻다는 걸까? 절반이 남았잖아, 아니 절반은 때로 0이었다. 

 얼굴은 사람의 거의 모든 것이었다. 특히 관계에 있어선 오로지 얼굴만이 의미를 가진다. 아이의 팔다리와 전신은 멀쩡히 잘 움직였지만 아무도 아이가 괜찮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린이집을 쉬기 시작했다. 푹 쉬고 치료를 해야 한다는 의사의 조언 때문이기도 했지만 절반만 남은 얼굴을 내보이고 싶지 않은 탓이었다. 다른 아이들이 당황할 게 분명했다. 절반만 움직이는 얼굴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얼굴'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이가 아무리 표정으로 자신의 감정을 전달해도, 그 감정은 절반 정도 가닿는 게 아니라 오히려 역효과를 낳았다. 한껏 웃으며 반가워하는데 상대방은 두려움을 느끼며 뒤로 물러난다고 생각해보라. 아이에게 그런 경험을 남기고 싶진 않았다. 아직 아무것도 모른다 할지라도.

 하루, 이틀, 사흘... 아이는 웃는데 나는 뒤돌아서 우는 날들이 이어졌다. 1주, 2주, 3주... 급성 안면마비는 2주 안에 거의 회복된다는데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아주 조금 나아진 것 같으면서도 아니었다. 잘 때도 눈이 제대로 감기지 않아 잠에 들면 안연고를 넣고 테이프를 붙여 억지로 눈을 감겼다. 양치할 땐 입이 잘 벌어지지 않아 손가락으로 당긴 채 닦아야 했다. 빨대를 이용해 물을 마셔도 물이 흘러내렸다. 혹시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걱정이 솟구치는 날에는 끔찍했다. 세 살 밖에 안된 아이가 표정을 잃어버리다니. 얼굴을 붙잡고 기도하다가 뭘 기도하고 있었는지 잊은 채 까무룩 잠에 들었다. 눈웃음이 아주 예뻤는데 그 눈웃음을 다시는 볼 수 없게 되는 건 아닐까, 설핏 잠들었을 땐 예전처럼 환하게 웃는 얼굴을 다시 보기도 했다.

 작은 움직임들이 있었다. 이전엔 미처 몰랐던. 예를 들면 콧잔등의 찡그림이나 입 주위의 움푹 패인 우물을 만들어내는 근육들이 보여주는 섬세함이 중요했다. 단순히 눈을 뜨고 감고, 입을 움직이는 것만이 문제가 아녔다. 보조개도 콧잔등도 이마도 모두 표정의 일부였다. 그 중 하나라도 돌아오지 않는다면, 아이는 얼굴을 완전히 되찾았다고 하기 힘들 터였다. 모두가 잠든 어둠 속에서 눈과 코와 뺨과 콧잔등의 찡그림과 입가의 보조개와 턱의 주름을 상상하며 얼굴을 어루만졌다. 돌아올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려 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은 자꾸 헛다리를 짚은 것처럼 걱정 속으로 훅 빠져들어 허우적댔다. 

 한 달이 지났을까. 나는 절반의 탐정이 되었다. 절반 남은 표정에서 이전과 같은 기분을 읽어내고, 어제보다 조금 더 나아진 콧잔등의 찡그림을 추적하느라 혈안이 되었다. 아이의 얼굴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시험지였다. 데칼코마니를 다시 완벽하게 맞춰내는 게 목표였다. 웃을 땐 입가를 조금 더 올리고, 찡그릴 땐 눈가의 주름을 조금 더 잡고, 놀랄 땐 이마를 더 치켜올려야 했다. 절반만 남은 미로 속에서 아주 작은 단서라도 손에 잡히는 날에는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다. 어제보다 조금 더 늘어난 잔주름, 어제보다 0.1미리미터가량 더 감긴 것처럼 보이는 눈꺼풀, 하품할 때 아주 조금 더 보이는 것 같은 오른쪽 치아. 작은 단서들을 손에 잡고 더듬더듬 남은 절반을 향해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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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를 둘러싼 모두가 조금씩 절반의 없음에 익숙해지기도 하고 또 지쳐가기도 할 무렵, 아이는 성큼성큼 잃어버린 절반을 찾아왔다. 일주일이 지나면 입가가 벌어져있고 또 일주일이 지나면 눈웃음이 비슷해져있는 식이었다. 마스크를 씌워 어린이집에 다시 보내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쉬었던 아이는 들어가는 길에 또 울음을 터뜨렸다. 운다! 나는 울음 그 자체보다 찡그려지는 정도를 살피느라 바빴다. 아이는 훨씬 많이 우는 것처럼 '보였다'. 우는 데도 웃음을 감출 수 없었다. 절반이 돌아오고 있었다. 

 처음 절반을 잃었던 때로부터 거의 석 달이 지났다. 이제 아이는 얼굴을 되찾았다. 웃으면 상대도 웃는 줄 알고 울면 상대도 우는 줄 안다. 어린이집의 친구들은 다시 아이가 아이라는 걸 안다. 50만 남았던 표정은 이제 99정도가 되었다. 아직 100은 아니지만 비어있는 1은 친숙한 사이가 아니면 쉽게 눈치채진 못한다. 표정만 되찾게 된다면 더 이상 아무것도 바랄 게 없겠다던 나의 낮아진 마음도 차츰 회복되어 다시 비죽비죽 심술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짜증을 내는 아이의 표정이 훌륭한 대칭을 이루고 있음에 감탄하는 게 아니라, 조금 전 했던 약속을 잊고 또 짜증을 내는 데 감탄한다. 짜증에 집중하지 말고 저 멋진 대칭에 집중하라고! 순간 화들짝 놀란 나는 늘 같은 마음을 가지고 살 순 없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변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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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여름은 절반이 남긴 것으로 기록됐다. 절반이 때로는 0이 되기도 한다는 걸. 절반으로는 절대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는 걸. 온전하게 가져야만 가진 게 되기도 한다는 걸 알게 됐다. 사라진 절반을 찾아 치열하게 헤매던 여름날, 먼 대학병원을 향해 가던 길에 차창 밖으로 쏟아져 피부를 달구던 햇살, 백미러로 들여다본 아이의 땀흘리는 절반의 얼굴... 온통 절반, 절반, 사라진 절반을 찾아 외치던 순간들. 절반을 되찾지 못한다면 결국 아무것도 아니라는 데 절망하던 꿈 속. 

 이 시간을 아주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이다. 

 

 

 

2021. 10. 5. 11:30

 

낮엔 분명 맑았던 것 같은데 밤이 되자 돌풍이 불며 천둥번개가 내리친다. 바람이 매서워 온 집안 문을 다 닫아잠궜는데도 아파트 전체를 휘감고 흔드는 바람의 소리가 무섭다. 아기들을 재울 준비를 하다 말고 베란다에 나가 커튼을 살짝만 걷고 밖을 내다보았다. 아주 얇은 커튼이지만 그것마저 확 젖혀버리면 바람의 기세가 더욱 세질 것만 같아서. 평소 멍하니 쳐다보길 좋아하는 놀이터 앞 나무들이 바람에 머리채를 잡혀 이리 날리고 저리 날리며 몸부림치고 있었다. 창 밖은 재난영화 속 한 장면같았다. 아니 이제는 재난영화같다, 는 말을 손쉽게 입에 올릴 수도 없을 것이다. 현실의 재난이 너무나 생생하기 때문에.

 흰색 쉬폰 커튼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두려움에 휩싸여있는데 옆동의 비슷한 층 베란다에 사람의 실루엣이 어른거린다. 실내의 약한 불빛을 등에 진 채 나처럼 창문에 딱 붙어서 바깥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나이가 많은지 적은지,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는 실루엣은 그냥 그가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 정도만 알게 해주었다. 흉폭한 바람을 막아주는 샷시 한 장을 붙들고 커튼을 살짝 젖힌 채 바깥을 바라보고 있는, 돌풍 속의 위태로운 그림자.

 한참을 베란다에 기대어 서 있던 그림자는 곧 사라졌다. 집 안에서 흘러나오던 옅고 밝은 불빛도 그림자가 다시 친 커튼에 갇혀 사라져갔다. 순간 나도 정신을 차리고 다시 커튼을 쳤다. 돌풍이 계속 세상을 휘감아 쓸어버리고 있었지만 조금은 덜 외로워진 것 같았다. 베란다에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그림자가 하나 더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2021. 9. 23. 12:23

그 때는 모든 게 프로페셔널함의 상징으로만 보였다. 일단 설명이 길었다. 구비해야 하는 청소용품 설명 문자는 일곱 개가 연달아 도착했다. 청소 순서와 범위 설명에도 엄청난 공을 들였다. 집을 비우고 청소를 맡길 때의 주의점도 길었다. 매뉴얼이 마음에 들어, 아니 매뉴얼이 존재한다는 게 좋아 당장 집으로 모셨다. 그날로 만 3년간 일주일에 한 번 집의 모든 구석구석을 완전히 맡겼다.

그녀가 처음 우리집에 왔을 때 나는 저녁시간 프로그램을 하고 있어 출근시간이 비교적 늦은 편이었다. 청소를 거들고 가끔은 함께 샌드위치를 시켜먹거나 커피를 타 마셨다. 첫 아이가 태어나자 자신의 아이가 입던 옷가지와 머리핀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다 먹은 젖병을 씻을 땐 방향을 이렇게 하라거나 분유는 산양분유가 살이 잘 찌더라는 소소한 육아 팁을 전해줄 때는 언니같기도 했다. 집을 맡기는 나와 집을 청소해주는 분, 그 사이에 있을 수 밖에 없는 묘한 긴장이 이전보다 훨씬 덜하다고 느꼈다. 낯모르는 육십대의 여성에게 시급을 챙겨드리고 방바닥과 창틀의 먼지 정리를 부탁드리는 것보다는 확실히 수월했다. 이왕 집안 관리에 돈을 쓰는 거라면 마음 편하게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마 나보다 나이가 적은 사람이 와서 청소를 했다면 더 편하고 무난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녀가 우리집에 오고 나서야 그간 수많은 청소 외주화를 거치며 느꼈던 죄책감이 그나마 덜어진다고 느꼈다. 미처 알지 못했던 내 마음의 야비한 구석이었지만 구체적으로 그 감정의 실체를 알고싶진 않았다. 어쨌거나 네 시간동안 집을 맡기고 나면 화장실 타일은 윤이 났고 책장에 쌓여있던 먼지는 닦여 있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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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철이었다. 도보로 걸어다니기 힘들만큼 비가 쏟아졌다. 회사에서 큐시트를 짜고 있는데 문자가 왔다. 익숙한 문자였다. 그녀는 언제나 출근하면서 지하철 환승 시간까지 계산해 도착 예상 시간을 보내왔다. 오늘도 잘 부탁드립니다, 의례적인 답장을 보내는데 밑에 다른 문자가 하나 더 도착했다. "수고비는 가급적 현금으로 챙겨주시기 바랍니다." 순간 앗차, 집에 돌아가서 수고비를 현금으로 드리고 나와야할까 고민했지만 그럴만한 시간이 없었다. 정해진 자리에 현금으로 수고비를 올려두는 건 우리 사이의 룰이었다. 잊고 출근했을 땐 계좌이체도 상관없지만 웬만하면 현금으로 챙겨달라는 부탁을 한 지도 여러번이었다. 매일 현금이 필요한 일이 있다고 들었는데도 나는 늘 잊기 일쑤였다. 어차피 지급하는 수고비니 현금이나 계좌이체나 무슨 상관이냐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지급하는 건데 내가 편한대로 해야하지 않나, 현금을 어떻게 늘 가지고 다니나, 그런 생각도 덧붙여서. 왜 매일 현금이 필요한건지 궁금해하지도 않을만큼 만사가 귀찮았고 어느 정도 유대가 쌓인 관계니 그 정도는 양해해주리라고 혼자 편리한대로 믿었다. 그렇게 깜빡하고 계좌이체를 하는 날들이 점점 늘어갔다. 계좌에 있는 돈은 언제나 마음대로 출금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도 좁은 생각이란 걸 깨달은 건 최근이었다. 경제적 이유로 압류돼 입금은 가능하지만 필요한만큼 출금이 되지 않는 계좌들도 여기저기 널려있었다. 내 계좌가 아니라 신경쓰지 않고 살았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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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앙스가 다르단 걸 눈치채지 못한 건 아녔다. 하필이면 징검다리 연휴가 이어졌다. 집은 매주 청소를 한 덕에 깨끗했다. 한두번 정도는 건너뛰어도 상관없을거라 생각했다. "다음 주는 연휴니 쉬셔도 될 것 같아요." 그녀가 다시 물어왔다. 그 다음 날도 가능하다는 거였다. "집이 깨끗해 괜찮을 것 같습니다." 다시 문자가 왔다. 공휴일이지만 그 날에도 출근할 수 있다고. 내심 귀찮아졌다. 우리도 가족이 모두 집에 머물 계획입니다, 괜찮습니다. 사실 나는 괜찮았다. 그렇게 한 번의 청소를 건너뛰었지만 매일같이 그녀가 쓸고 닦아준 덕에 그다지 티가 나지 않았다. 타인의 수입을 잘라먹었단 자각은 크지 않았다. 주중 공휴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모님이 집에 방문하셨다. 또 한 번의 청소를 건너뛰었다. 그때도 그녀는 시간을 조정할 수 있다는 긴 문자를 보냈다. 나는 길게 생각하기 귀찮아 하던대로 행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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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팔찌가 없어졌다는 걸 깨달은 건 한참 뒤였다. 아이의 돌을 기념해 선물받은 팔찌였다. 잃어버렸다는 데 결론이 이르자 그간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것들의 목록이 하나 둘 떠올랐다. 상품권은 내가 잃어버린 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녔나, 현금도 내가 관리를 잘못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녔나. 확신을 가지게 된 건 청소 하던 날 가족구성원 두 사람이 동시에 현금을 잃어버린 후였다. 그 무렵 나는 출근시간대가 바뀌어 그녀와 마주칠 일이 거의 없었다. 언제나처럼 청소 범위를 알려오는 매뉴얼은 확인하지도 않고 넵, 자동문자를 발송했다. 현금을 올려두겠다는 다짐은 두 번 중 한 번 잊어버리고 허겁지겁 계좌이체를 했다. 간간히 청소도구가 떨어졌다거나 비품이 부족하다는 문자만 확인했다. 아이들이 잠들고 난 밤중에 금팔찌와 상품권과 현금의 행방을 궁금해하다 그녀에게로 생각이 미쳤다. 물론 물증은 어디에도 없었다. 내가 그렇게 믿기로 한 것이다. 그녀가 우리 집의 금팔찌와 상품권과 현금을 몰래 가져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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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는 간단했다. 전화를 걸었다. 긴 통화연결음만 들렸다. 혹시나 받을까 걱정하며 전화를 끊고 재빨리 문자를 보냈다. 이제 저도 휴직에 들어가니 저희 집엔 더 이상 오지 않으셔도 됩니다. 뒷 문장은 잠깐 고민하다 덧붙였다. 우리 집 물건을 훔쳐갔다고 단정한 주제에 고용주로서도 나쁜 인상을 남기고 싶진 않았다. "다음 번에 혹시 필요하면 다시 연락드릴게요." 오래 지나지 않아 답장이 왔다. 코로나 때문에 다른 집 일감도 거의 다 끊겨서 이젠 다른 일을 찾아봐야 한다, 다시 우리 집 청소를 할 순 없을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그녀답지 않게 짧았다. 그간 고마웠다거나 건강하시라는 예의상 문자는 둘 다 하지 않았다. 그것으로 3년간의 청소는 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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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물때를 견디다 못해 욕실 세제를 주문했다. 변기 청소하기에 딱 좋다며 구비하라던 스틱 리필형도 함께 시켰다. 그녀가 신던 청소용 장화와 장갑을 신고 화장실 문을 닫은 다음 욕실 세제를 한가득 뿌렸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몸이 아주 나빠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때는 오래지 않아 벗겨졌지만 상상했던 것만큼 유쾌하진 않았다. 청소 끝! 하고 허리를 쭉 펼치며 밝아진 욕실을 둘러다보거나 할 기분은 나지 않았다. 아주 오랜만에 느끼는 불유쾌함일 따름이었다. 몸을 쭈구리고 앉아 배수구의 머리카락을 긁어내고 변기에 들러붙은 물때를 닦아내는 작업. 나와 내 가족들이 만든 때였음에도 기분은 좋지 않았다. 하고 많은 수식어로 어떻게 포장해도 상쾌할 수는 없는 공정이었다. 화장실 하나를 끝내고 청소도구들을 든 채 다음 화장실로 이동하는데 음악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유튜브에서 이 음악 저 음악을 마구 눌렀다. 그 어떤 음악으로도 화장실 청소가 주는 고단함이 가시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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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하늘이 맑은 어느 가을날의 풍경 하나. 2년 전 첫 아이를 낳은 뒤 육아휴직에 들어갔을 때다. 그녀가 도착하자마자 청소도구들을 꺼내 안긴 후 아기를 유모차에 태운 뒤 스타벅스에 들렀다. 라떼를 하나 사서 손잡이에 꽂아두고 공원을 돌았을 것이다. 단풍도 구경하고 하늘도 보며 아기는 잠들고 나 역시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집에 가면 집은 깨끗해져 있을 것이므로.

유모차로 한 시간정도 아이를 재운 뒤 집에 도착했을 때 집의 인상은 달라져있었다. 꽉 잠긴 화장실에선 코요태의 순정이 아주 큰 소리로 울려퍼지고 있었다. 워워워 워워워, 어느날 갑자기 슬픈 내게로 다가와... 음악 소리보다 그 음악을 따라부르는 그녀의 목소리가 더 컸다. 악을 쓰며 순정을 따라부르고 있었다. 사랑만 주고서 멀리 떠나가 버린 너, 신지의 찢어지는 고음을 덮어버리는 그녀의 목소리가 온 집안을 아주 오랫동안 떠나지 않고 휘감았다. 어쩐지 발을 들여놓기가 두려워 유모차만 밀었다 당겼다 한참을 서성였다. 분명 내 집이었는데 그 순간만큼은 남의 집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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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나보다 다섯 살이 많은 여자였다. 비슷한 직장을 거쳐간 적이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 살며 가족 구성이 비슷했다. 나는 그녀를 편하게 여겼다. 반대로 그녀가 이런 나를 어떻게 느꼈을지는 영영 미스테리로 남았다. 아니, 알고 싶지 않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 날 화장실의 잠긴 문을 열고 싶지 않았던 것처럼. 코요태의 순정을 아주 크게 따라부르고 있었을 그 표정을 확인하고 싶지 않았던 것처럼.

2021. 9. 22. 12:04

 

 자려고 누워 딸과 얼굴을 마주보고 있는데 코의 흉터를 만지며 묻는다.

 "이건 언제 다쳤어?" "엄마가 아기였을 때 길에서 넘어졌지." "그래서 많이 울었어?" "아니 조금 울고 그쳤어."

 "아구 씩씩~하네~" 

 

 

 

 

 

 

2021. 9. 6. 11:44

"무섭지 않았어?"

남편이 알려주기 전까진 이 말을 꽤 자주 한다는 걸 몰랐다. 낮에 회전목마를 타고 내려온 아이에게도 연신 물었나보다. 무섭지 않았어? 괜찮았어?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아이는 그래도 괜찮았어, 정도로 대답했던 것 같다. 교외 아울렛에 설치된 어린이용 회전목마라 아주 느리게 두세바퀴를 돌고 멈춘 게 다였다. 훨씬 어린 돌쟁이 아기들도 꺄르르 웃으며 돌던 회전목마였고 그마저도 아빠가 옆에 서서 호위를 했는데도 왜 당연히 무서웠을거라 짐작했을까.

"괜찮았어? 무섭지 않았어?"

아이가 처음부터 벌레를 무서워한 건 아녔다. 벌레를 보면 싫다, 무섭다고 얘기하기 시작한 건 몇 번인가 내가 소리소리를 지르며 에프킬라를 찾아 뿌리고 난리법석을 떠는 걸 본 이후부터였다. 벌레는 신기하고 재밌어, 그게 아니라 으으 징그럽고 무서우니 얼른 피해야 하는구나. 막 걸음마를 하고 아장아장 걸어다닐 땐 신기하게 관찰하던 개미와 지렁이와 각종 이름모를 벌레들 앞에서도 으으, 하고 몸서리 치는 시늉을 한다. 얼마 전엔 놀이터에서 송충이를 처음으로 발견했다. 그 많은 다리로 꿈질꿈질 앞으로 기어나가는 걸 보고 아이는 어어? 이건 누구야? 하고 신기해 다가가는데 내가 아악 송충이, 하고 소리를 질러버렸다. 이후로 아이는 나무 밑을 지날 때면 송충이는 징그럽잖아! 엄마가 싫어하잖아! 스스로에게 다짐하듯이 이야기한다. 뒤늦게 아니야 송충이 좋아하는 사람도 있어 아빠는 송충이를 좋아해..(?) 하고 수습해봤지만 이미 아이는 송충이를 두려워할 준비가 끝난 것 같았다. 그건 아이의 본능이 준 두려움이 아니라 바로 내가 준 두려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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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좀 더 진취적으로 사셔야 해요"

인생에 대한 방어적 태도는 평생 내가 스스로에게서 가장 제거하고 싶은 부분이다. 주춤하고 멈칫하는 습관, 무서울만한 것들을 미리미리 제거해나가는 안전한 태도. 하지 말란 건 하지 않고 가지 말란 곳에 가지 않고 모범생처럼 착실히 살아와 얻은 것도 많지만 요즘은 부쩍 더 이상 그렇게 살고 싶진 않다는 생각을 한다. 나를 잘 알지는 못한다고 생각했던 누군가가 지난주에 던진 한 마디가 아직도 마음 한 켠에 걸려 있다. 잘 모르는 이에게도 멈칫하는 태도가 느껴진걸까. 그만큼 자주 주저하고 또 머뭇거렸던 걸까. 얼핏 봐도 보일만큼. 왠지 마음에 걸린 그 한마디가 두고두고 떠오른다.

"어머님께서 물려주실 수 있는 최고의 유산입니다"

후다닥 글을 써내려가는데 옆자리 테이블에서 한 보험설계사가 나긋나긋하게 앞자리 중년 여성에게 말을 건넨다. 단연코 어머님께서 물려주실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은 보험입니다. 아저씨 혹시 제가 가입할 수 있는 보험도 있나요. 두려움을 없앨 수 있는 보험이 있다면 나도 당장에 가입원서를 써내려갈텐데. 아니 두려울 거라 지레 짐작하고 피하기만 하려는 삶의 태도를 없앨 수 있는 보험이 있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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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조금 더 멀리 가고 싶어졌다, 어렵다면 그저 멀리 바라보기라도, 나와 아주 많이 닮은 아이들을 멀리 떠밀어주고라도 싶어졌다. 두려워도 잠시 겁을 접어두고 강하고 담대하게 한 발 앞으로 내딛을 수 있는 세계로. 조금 다른 삶의 태도로. 훌쩍 넘어서서 무서웠지만 괜찮았어, 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마음으로.

2021. 8. 30. 14:17

머리를 감는데 발바닥에 물이 찰랑인다. 수챗구멍이 또 막혔다. 요즘은 머리를 감을 때마다 수챗구멍을 비워야 한다. 수챗구멍을 비우다보면 여기저기 더러운 구석이 보인다. 수챗구멍 둘레에도 물때가 여기저기 껴 있고, 고개를 숙여 둘러보면 타일과 줄눈 사이에도 거뭇거뭇한 곰팡이가 올라와있다. 여름이 길어지며 습한 날들이 이어지자 물비린내도 올라오기 시작했다. 변기와 세면대의 하얀 도기에도 여기저기 얼룩과 때가 생겼다. 곰팡이 제거제를 들이붓고 한 번 청소해야 하는데, 아... 오늘은 왠지 기분이 별로니 그냥 내일 하자. 그러다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떠올린다. 요즘은 어떻게 지낼까.

그녀가 처음 우리 집에 온 건 3년 전, 첫 아이를 임신중이던 무렵이다. 그 전엔 업체를 통해 일주일에 한 번씩 청소를 도와주시는 분들이 오셨는데 갑자기 그만두거나, 연락 없이 오지 않으시면서 사람이 자주 바뀌었다. 얘기 없이 냉장고에 있는 음식을 꺼내드시거나 하는 일은 예사였다. 간식을 따로 준비해두지 않고 출근했다 돌아온 어느 날엔 보란듯이 식탁 위에 본인의 간식 봉지 쓰레기를 버리고 간 분도 있었다. 큰 일은 아녔지만 자잘하게 신경쓰이는 일이 이어졌다. 박사모의 열혈 회원 한 분은 식탁에 올려져 있던 나의 사원증을 보고 대번에 언성을 높였다. 새댁 다니는 회사가 요즘 잘못하고 있는 거 아니야? 대부분 나와는 스무 살 이상 차이나는 어머니 또래 분들였고, 나이의 위계 앞에선 돈의 흐름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다. 지역 카페에 글을 올릴 생각을 한 건 그렇게 너댓 분이 우리 집을 거쳐 간 후였다.

쪽지는 딱 한 통이 도착했다. 자신의 집에서 오래 일하던 분인데 이 지역에서만 일을 오래 하셨고 마침 한 집이 비어있다고 했다. 딸아이 한 명을 키우고 있으며 40대 초반이라고 했다. 어머니뻘 도우미 분들의 훈계에 피로했던 난 덥썩 번호를 받아 문자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소개받고 연락드립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모시려고 하는데요. 답 문자는 연이은 문자 다섯 통으로 길이가 팔만대장경급이었다. 공간별 청소 범위를 세세하게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된 문자는 출근을 취소할 경우 일주일에서 5일 전에 고지달라는 내용과, 청소 도중 자리를 비울 때의 유의점으로 이어졌다. 귀중품과 현금을 절대 아무 곳에나 올려두지 말라는 내용은 특별히 강조되어 서너 번 반복 등장했다. 마지막 부분은 청소도구 소개로 끝났다. 화장실 청소할 때 신는 신발, 솔, 세척제, 선반의 먼지를 정리할 때 쓰는 먼지털이의 종류가 모두 정해져 있었고 끝에는 쿠팡이나 11번가의 최저가 링크가 함께 동봉돼있었다. 답 문자를 모두 읽는 데 한참 걸렸지만 나는 당장 마음이 동했다. 찾아헤매던 청소의 신을 드디어 만났구나. 다음 주 월요일 오전타임에 와주실 수 있나요?

띵동, 띵동, 띵동. 그녀의 답은 또 세 개의 문자로 쪼개져 날아왔다.

- 계속 -

2021. 8. 19. 11:38

감자칼을 샀다. 그게 뭐라고 오래 벼르다 오랜만에 무인양품에 들른 참에 바로 하나를 샀다. 전에 쓰던 감자칼은 어딘가에 딸려온 사은품으로 여기저기 낡고 날이 무뎌져 감자를 깎고 있으면 칼이 감자를 깎는 것인지, 감자가 칼을 깎는 것인지 도무지 구분이 안 갔다. 인터넷으로 적당한 걸 얼른 주문하면 좋았겠지만 왠지 모르게 감자칼을 꼭 실물로 보고 손에도 쥐어보고 사고 싶었다. 세간살이 욕심이라곤 하나도 없고 특히 주방기구들엔 더 없는데도 그랬다.

아무도 없는 평일 오전의 가게. 스테인리스 재질의 깔끔하고 단정하게 생긴 감자칼을 매대에서 집어올려 손에 쥐자 놓기가 싫을 정도였다. 이런 감자칼이라면 나도 왠지 감자전을 부쳐먹고 감잣국을 끓여먹고 깍둑썰기한 감자들을 달큰하게 졸일수도 있을 것 같았다. 족히 0.5미리는 되도록 두껍게 깎이던 껍질도 포를 뜨듯 아주 얇게 깎을 수 있겠지. 감자칼을 앞뒤로 쥐어보고 이리저리 뜯어보는 단 한명의 손님을 매대의 점원이 무료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칼을 사서 돌아오는 길은 든든했다. 택을 떼어내고 부엌 한가운데 걸었다. 뭘 만들지 별 생각이 없는채로 슥슥 당근도 깎고 감자도 깎아보았다. 막힘없이 서걱서걱 껍질이 벗겨져 나가는 느낌이 시원하다못해 서늘했다. 잘 드는 도구를 하나 장만하자 왠지 별 것 아닌 일에 자신감이 붙었다. 감자칼을 하나 들고 부엌을 서성이며 뭐 또 깎아볼 게 없나 뒤적거리는데 유능해진 기분이 들었다. 뭐든 잘 깎아내고 부쳐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동시에 조금 더, 손에 딱 쥐어지는 잘 드는 감자칼같은 도구가 내게 몇 개만 더 있었으면... 하는 욕심이 피어났다.

독일제 집게를 갖고 싶다거나 주물냄비를 가지고 싶어졌다는 게 아니다. 조금 얇아진 감자 껍질처럼 생활의 작은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 도구, 기술, 혹은 지식같은 것들이 미친듯이 갖고 싶다. 무작정 시간과 자원을 투입해가며 이것 저것 시험해볼 수 있는 시기가 끝났기 때문이다. 차돌같은 감자칼을 손에 꼭 쥐고 부엌 한가운데서 서서, 각자의 이유로 우는 두 아기를 뒤로 한채 잠깐 서성이며 생각했다. 돌도끼를 처음 손에 쥔 신석기의 조상들처럼 아주 절박하게 생각했다. 이제는 더 이상 그냥 홑몸으로 살 수가 없다, 서른 다섯 이후에도 꺾이지 않고 슬프지 않고 전처럼 살기 위해선 뭣보다 도구와 기술이 필요하다. 절박하게 하나씩 그러모아 나가자고. 멍해지거나 슬퍼하지 않기 위해선.

2021. 8. 15. 23:23

 

 오랜만에 단골 꽃집에 들렀다. 반지하의 작고 조용한 가게지만 들어서면 딱 맞춤한 온도와 습도 덕분에 아주 깊은 숨을 들이쉬게 되는 곳이다. 단골 가게랄만한 곳이 변변히 없어서 더 애착이 가는 곳. 언제 처음 들렀는진 모르겠지만 첫째 아이가 외출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된 이후부턴 꾸준히 들러 꽃을 샀다. 매주 가진 못했지만 여유가 생기는 주말이면 언제나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다. 

 꽃을 고르는 덴 영 소질이 없는 그리고 사실은 큰 관심이 없는 나 대신 남편이 고른 꽃을 사장님이 다발로 만들어주는 사이 한 마디를 건네신다. 그 프로그램 하신 줄 몰랐어요. 예전에 많이 들었는데! 이제는 사라진 프로그램이지만 한 때 저녁과 새벽시간의 주파수를 채웠던 목소리들을 이야기하신다. 나조차 잊고 살다 갑자기 떠오르는 얼굴들, 음악들, 순간들. 대부분 이젠 보기 어려운 사람들이라 어쩔 수 없이 그리운 마음이 들었다. 대단하지 않은 프로그램들이지만 언제나 시한부로 함께하게 될 수 밖에 없는 처지라 육개월이든 일년이든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대체로 그 조합으로는 다신 만날 수 없게 된다. 어쩌면 이런 시스템이 모두에게 다행일지도 모르겠지만, 매일같이 지겹도록 만나다 어느 시기가 되면 별안간 딱 기억 속에만 남는다. 아, 그 때 그래도 재밌었는데 그 사람들에게도 그랬을까. 꽃을 사서 돌아나오는데 내 그리움에 약간은 자신이 없어졌다.

 꽃을 집에 꽂아두고 쳐다본지 하루가 지나고 휴대폰에 반가운 이름의 전화가 울렸다. 마침 어제 꽃집 사장님이 이야기했던 프로그램을 함께 만들었던 분이다. 아주 오랜만에 연락이 닿아 반가웠는데 역시나 표현을 제대로 못하는 난 반가운 마음을 반절밖에 알리지 못했다. 전화를 끊고 나니 해가 져 선선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꽃집 시그널인가, 왠지 더 고마웠던 전화 한 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