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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4. 9. 09:57

 

청탁이 들어와 이번 주 급히 쓴 원고.

 

<계산병 고치기>

“우리 이젠 더 이상 이러지 말자” 대로변 한가운데서 친구와 아웅다웅했다. 한 손에는 각자의 지갑을 꼭 쥔 채였다. 어깨를 밀치고 때론 팔을 억지로 끌어내리기도 하며 상대를 향해 뭔가를 호소하는 두 여자.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금전 관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 딱 좋은 풍경이다. 하긴, 따지고 보면 일종의 금전 관계라고도 할 수 있다. 

 친구와 나에겐 계산병이 있다. 뭐라도 먹거나 마시면 꼭 자신이 먼저 계산하겠다고 나서는 습관이다. 같은 대학, 같은 직장을 다니며 15년도 넘게 알아온 사이라 먹고 마신 밥과 커피가 수두룩한데도 그렇다. 그날도 계산대 앞에서 한창 실랑이한 끝에 이제는 그러지 말자고 다짐을 하고서야 헤어졌다. 

 언제부터 그랬을까. 비교적 이른 나이에 첫 취업을 하면서? 아니, 생각해보면 용돈 받아 생활하던 대학생 시절에도 곧잘 계산을 하고 다녔다. 형편이 빤한 대학생들이니 각자 내도 될텐데 꼭 사주고 싶었다. 그래야만 마음이 편했다. 이 습관이 극에 달했을 때는 회사 근처 식당에서 우연히 만난 선배 테이블의 밥값까지 먼저 내고 도망치듯 나오기도 했다. “제가 먼저 계산했어요!” 하고 의기양양하게 외치는 나를 바라보던 선배의 황망한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기분이 상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한참 지난 후에야 들었다. 자신이 대접하려 했을 수도 있고, 동석했던 일행이 계산하려던 자리였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저 한 식당에 있었다는 이유로 밥값을 먼저 내버린 것이다. 선배 입장에서 따져보면 난데없이, 강제로, 계산당한 셈이다. 

 습관을 고쳐보자고 마음먹은 건 그래서였다. 마음 편하자고 먼저 계산하고 다녔지만 배려 없는 행동일지도 몰랐다. 때에 따라선 무시당하는 것처럼 느낄 가능성도 있었다. 한 편으론 호의를 호의로 잘 받아들이고 싶기도 했다. 마침 코로나로 사람들과 약속이 줄어들면서 계산할 일이 드물어졌다. 오랜 계산병을 고칠 기회였다. 가끔 누군가 밥이나 커피를 사준다고 나서면 카운터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다음을 기약했다. 몇 번 하다보니 생각처럼 불편하지 않았다. 얻어먹어서 그런지 때론 더 홀가분하고 즐겁기까지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제의 사건이 터졌다. 

 지인 가족이 집으로 놀러온 자리였다. 코로나로 오래 만나지 못했던 터라 밀린 안부를 쏟아내고 저녁까지 챙겨 먹은 뒤 파하려는데 갑자기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머릿속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얼른 계산해야지! 집에서 먹었으니 계산은 할 수 없고 뭔가 들려 보내기라도 해야 했다. 나도 모르게 부엌 찬장을 열어젖히고 가장 먼저 손에 잡히는 걸 내밀었다. “이거라도 가져가!” 

 왁자지껄한 소란이 잦아든 뒤, 남편이 조용히 말했다. “혹시...얼마짜리인지 알아?” 나는 할 말이 없어 입을 다물었다. 그날 어린아이 셋을 데리고 온 지인 가족에게 들려 보낸 건 고급 양주, 그것도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밸런타인 30년 산이었다. 심지어 내가 사둔 양주도 아니었다. 남편이 누군가에게 선물할 일이 생기면 쓰려고 고이 아껴두었던 것인데...

 결국 계산하는 습관을 고치는 덴 장렬히 실패했다. 계산병이 있는 친구를 만나면 여전히 카운터 앞에서 서로 밀쳐댄다. 단돈 천 원짜리 커피라도 자신이 사게 해달라고, 저번에 네가 사지 않았냐고. 계산 싸움에서 진 쪽은 황급히 가방을 뒤져 뭔가 줄 게 없나 찾는다. 

 뒤늦게 내가 강제로 들려 보낸 양주 소식이 들려왔다. 마침 칠순을 맞은 지인의 어머님 잔칫날에 비장의 무기로 상에 올랐다고 했다. 다소 미적지근하던 잔치 분위기가 밸런타인 30년 산이 등장하자 후끈 달아오르며 어른들이 만면에 미소를 띠셨단다. 뿌듯한 후일담이었다. 어느 잔치 자리를 즐겁게 했다니 그보다 더 즐거운 실패가 있을까.  

 오늘도 호시탐탐 계산대로 향할 기회만을 엿본다. 어쩌면, 계산할 수 있다는 게 감사한 일인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하면서. 아무래도 내 오랜 계산병은 앞으로도 고치지 못할 것 같다. 아니, 고치지 않을 것 같다. 

 

 

 

2022. 3. 28. 12:47

 

"누가 제일 잘생겼어요??"

 예상했던 바로 그 질문이었다. 특강 시작과 동시에 잠들었던 학생이 갑자기 머리를 넘기며 고개를 들었다. 휘장같은 머리칼을 걷고 처음으로 마주하는 눈빛에 고등학생다운 총기가 빛났다. 맨 앞자리에서 공책을 펴놓고 필기를 하는 건지 그림을 그리는 건지 내내 펜을 들고 있던 학생이 비로소 펜을 내려놓았다. 그의 눈도 역시나 처음 마주했다. 역시나 십대에게서 볼 수 있는 윤기나는 눈동자. 스무 명 남짓한 학생들의 집중력이 순간 최대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렇다.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이 순간이었다. 방송이었다면 트레몰로를 배경음으로 깔아달라고 했을텐데.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음... 하고 잠깐 지금까지 만난 연예인들을 떠올려보는 척 했다. 사실 답은 정해져 있었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고등학생들이 좋아할 만한 남자 연예인으로. 

 고심한 것 같은 표정으로 한 연예인의 이름을 말했다. 여기저기서 꺄악과 으악이 뒤섞인 기쁨과 탄성이 터진다. 방금 들었어? 분명히 같이 들었는데도 옆 친구 어깨를 치며 한번 더 확인한다. 역시!! 하며 박수를 치기도 한다. 교실에 두둥실 차올랐던 흥분이 가라앉고 나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더 질문하실 것 있으신 분? 문장의 물음표가 끝나기도 전에 학생들이 이미 박수를 치며 짐을 챙긴다. 얼른 파하자는 의사 표시다. 심지어 학생들은 저녁도 거르고 저녁 여덟 시까지 앉아있은 터였다. 궁금한 것은 물었고 원하는 답을 들었다(그 날 나온 단 하나의 질문이었다). 나도 주섬주섬 짐을 챙긴다. 가방을 메고 나가던 학생들이 "오늘 정말 재밌었어요!" 하고 인사를 해준다. 라디오에 대한 이야기가 재밌었을까? 아니면 마지막 연예인의 이름이 만족스러웠을까. 어느 쪽이든 저녁도 거른 고등학생 스무 명의 기분이 그럭저럭 괜찮았다면 다행인 일이다. 

 강의 주제는 미디어 업계에 관한 것이었다. 짧지만 신문 기자, 티비 피디를 경험하고 라디오 피디로 일을 하는 내게 거쳐온 직업들과 지금 하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해 달란 부탁이었다. 경험한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니 쉬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준비가 까다로웠다. 무엇보다 십대 중후반인 아이들에게 라디오는, 영유아 대상의 교재에 등장하는 전화기나 라디오의 이미지가 거의 전부일 게 분명했다. "혹시 라디오 들어보신 분 계세요?" "장성규요..." 다행히 학생 하나가 출근 시간대 라디오 프로그램 이름을 댄다. 하늘에서 내려온 동앗줄을 부여잡듯 잡아채 말을 이어갔다. 우리 라디오엔 나름 이런 프로그램들이 있어요. 32년째 한 디제이가 진행을 하고 있는 '배철수의 음악캠프'도 있고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양희은 서경석의 여성시대'도 있고요... 설명하는데 왠지 어색하다. 프로그램을, 콘텐츠가 존재한다는 것을 말로 설명해야 한다니. 

 강의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라디오를 켰다. 나 역시 운전을 할 때만 라디오를 듣는다. 아까 만났던 아이들도 성인이 되고 운전을 하게 되면 라디오 청취자가 될까. 그 땐 자율주행기술이 더 발달해 있지 않을까. 괜히 주눅이 들었다. 명색이 매스 미디어인데, 사람들에게 설명해야 하는 매스 미디어라니 뭔가 어색한 일이다. 어쩌면 라디오는 더 이상 매스 미디어가 아닌지도 모른다. 10대와 20대라는 특정 연령대에서는 더욱 그렇다. 10대가 성인이 되고 20대가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할 무렵 라디오의 위치는 또 어디쯤에 가 있을까. 날로 줄어드는 청취율 그래프를 부여잡고 라디오 제작자들은 또 얼마나 조마조마하게 새로운 플랫폼들과 콘텐츠들의 등장을 바라보고 있을까. 

 강의를 마치고 돌아온 다음 날 내 또래의 사람들을 만났다. 서로 무슨 일을 하는지 몰랐다가 그 날 처음으로 서로의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사람들은 반가워했다. "아, 저도 옛날에 많이 들었는데!" "저는 사연도 보내서 선물도 받고..."   

-

 무슨 일을 하는지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게 특권인 줄도 몰랐다. 직업과 직장을 밝히면 모두가 아~ 하고 고개를 끄덕여주고, 심지어 그 중의 일부는 내가 하는 일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던 때도 있었다. 불과 십년 사이에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나를 소개하기 위해 직업을 밝히면 많은 사람들은 아, 나도 한때는... 하고 회상하는 눈빛에 잠긴다. 한때는 매일 문자를 보내고 두 시간씩 목소리를 듣기도 했는데요. 저도 한때는...그들의 한때는 대부분 십여년 전에 머물러 있다. 청춘의 시절에 라디오를 들으며 연애와 취업을 고민했지만 이제는 삶을 살아가느라, 더 이상 라디오에게 내어줄 시간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만 해도 아이 둘을 재우고 나면 열시 반, 뭔가를 보거나 듣고 싶을 때  라디오를 찾지는 않는다. 밀려있는 넷플릭스 에피소드와 쌓아만 두고 펼치지 못한 책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여가로도 문화생활로도 라디오는 이제 후순위에 있다. 

 요즘은 모두의 구남친 구여친이 된 기분이다. 

 

  

 

 

2022. 3. 2. 12:33

 

  분신처럼 지니고 다니던 방역패스가 사라진 줄도 몰랐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정신없이 지지고 볶은 지 2주. 지난 주엔 부산 본가에 내려와 매일같이 해운대 바닷가에서 모래놀이를 하는 중이다. 모래를 많이 만졌더니 금세 손가시가 자라나 따끔거린다. 두 아이와 본가에서 키우던 강아지까지 더해지니 누가 개고 누가 사람인지 헷갈려 여기를 부르면 저기가 돌아보고, 아기에게 주던 이유식을 강아지가 냉큼 받아먹기도 한다. 개도 짖고 사람도 짖다가 때론 개가 말하고 사람도 말한다. 

 무슨 요일인지도 헷갈리던 아침, 강아지와 같이 기어다니며 싸우던 둘째를 유모차에 태우고 바닷가 앞의 카페로 나왔다. 얼마만의 카페인가. 문을 밀고 들어가며 휴대폰을 흔드는데 아무것도 뜨지 않는다. 접종 정보가 삭제되었단다. 방역 정책이 바뀐 줄도 3월의 시작점에서 새로운 효력이 생기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그냥 들어간 카페에선 아무도 나를 붙잡지 않는다. 접종 완료하셨냐는 질문 대신 어떤 원두를 선택하시겠냐는 친절한 질문이 맞이한다. 왠지 허전하다. 남들처럼 반신반의하며 맞은 주사지만 3차까지 완료했다는 문구가 뜰 때면 이상하게도 당당해졌다. 과업을 완수한 자 특유의 자신만만함같은 게 생겼다. 걸리고 안 걸리고의 문제가 아니라, 들어가고 안 들어가고의 문제에서. 코로나19에 걸리는 것보다 공간에 들어갈 권리를 박탈당한다는 두려움이 더 컸기 때문이다. 일상적으로 드나들언 카페와 박물관 앞에서 주눅들기 싫었다. 들어갈 자격이 없는 인간으로 분류되는 건 참을 수 없었다. 그 어떤 과업에서도 쳐지고 싶지 않은 모범생적 기질의 인간에게는 백신패스가 꽤 유용했다. 백신'패스'라니, 무의식은 이미 패스의 반댓말이 fail 이라고 짐작하는 중이었다. 주민등록증을 얻어 투표를 하고 면허증을 따 운전을 하고 사원증을 수령해 회사 게이트를 통과하는 것처럼 백신패스는 어느새 증명서들 중 하나였다. 흔들면 나오는 그 증명서를 때론 뿌듯하게 바라봤다. 걸리더라도 사회의 떳떳한 구성원으로 인정받고 싶었다. 제도 자체의 효용성 논란을 떠나 일단 도입된 제도라면 낙제할 순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흔들면 안정감있게 착 하고 뜨던 코드는 사라진 채 흰 화면에 안내 문구 뿐이다. 카페엔 무사히 들어왔고 아무도 나를 붙잡지 않았는데도 서운하다. 패스 올 패일의 세계에서 패스가 그어놓은 금 안으로 안전히 떠밀어주던 증명 하나를 잃은 기분이다. 고작 이런 것에서도 자기증명의 기운을 끌어다 쓰고 있었다니, 어쩐지 굉장히 쑥쓰러운 자기발견이다. 없는 걸 알면서도 괜히 한 번 더 휴대폰을 흔들어본다. 흔들어도 없다. 역시 증명서와 제도는 얄궂다. 하루아침에 아무 힘도 없어질 것들이면서 사람 마음을 안심하게 만든다. 영원히 가질 수 있는 건 그런 게 아닌데도. 카페 문이 열릴 때마다 찬 바닷바람이 들이치며, 멍청아 정신차려 하고 짠내를 퍼붓고 사라져간다. 

 

 

 

 

 

2022. 2. 16. 10:39

 

 이소라가 콘서트를 열었다. 숏컷을 하고 나와 오랫동안 노래를 부르고 사람들이 오랜만의 음률에 한껏 들떴다. 아기가 울어 눈을 뜨고 보니 꿈이었다. 아주 좋아하는 아티스트도 아닌데(하지만 이소라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어쩐 일로 꿈에 등장하셨을까. 새벽 잠에 혼곤히 꿈을 생각하다보니 오래 전 무의식 속에 저장된 그녀의 목소리들에 생각이 미쳤다. 독서실에서 꽂은 이어픈으로 언제나 흘러나오던 음악도시와 그 음색. 구체적인 에피소드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지만, 켜켜이 쌓인 말과 말과 말들이 은둔의 화신인 그녀를 내 꿈에까지 소환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고 또 듣고, 계속 듣는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대부분 그게 엄청난 일이란 건 눈치채진 못하지만. 

 

 

 

2022. 2. 15. 11:01

 

 자의식과 자기연민은 사물과 그림자같다. 과한 자의식이 우뚝 솟은 자리엔 언제나 오후 네시의 그림자처럼 길게 늘어진 자기연민이 자리한다. 자의식을 뚜렷하게 가지는 건 누구에게나 필생의 과업이지만 자신에 대해 너무 오래 고찰하면 대체로 옆길로 새기 마련이다. 학습과 단련 없는 사유와 고민은 차라리 없으니만 못하지 않을까. 스스로에 대해 너무 골몰하지 말자, 어떤 존재인지 지나치게 깊이 탐구하지 말자. 다만 주어진대로 살아가고 가진대로 받아들이며 그림자가 드리우지 않도록 매일 손과 몸을 움직이자. 한참 지나고 다시 하는 새해 다짐. 

 

 

 

 

 

2022. 1. 11. 11:53

 

 토토! 토토! 

 사랑하는 인형이 존재하는 곳에서 아이는 최소한의 행복을 보장받는다. 1년이 되도록 울며 들어가는 어린이집에서도, 낯선 외출 장소에서도, 엄마가 사라지는 꿈 속에서도. 양 손에 들린 물고기와 토끼는 타인과 세계가 두려워질 때 아이를 보호하는 최후의 방어막이자 최소한의 따뜻함이다. 인형의 냄새와 닳은 면의 감촉은 안정감의 상징이다. 그러니 헤어지지 않아야 한다. 네 살 인생 평생의 연인이자 친구이자 반려자가 아닌가. 인형의 분실은 사별에 준하는 사건이다. 막을 수 있다면 막아야 한다.

 애타게 토토를 외치며 거리를 몇 번 배회한 이후 똑같은 인형을 하나 더 주문했다. 지금까지는 늘 내가 찾아냈지만 앞으로도 그러리란 보장은 없었다. 없어질 때마다 마음 졸이며 온 동네를 배회할 순 없었다. 게다가 돈 4만원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 아닌가. 복제품이 없는 물고기 인형과 달리 토토는 프랑스에서 대량 생산되어 각국으로 공급되는 유명한 어린이 브랜드의 제품이었다. 제2의 토토는 그렇게 택배상자에 실려 우리 집으로 배달되었다. 아이가 없는 틈을 타 몰래 상자를 열어 토토를 꺼내고 옷장 깊은 곳에 숨겨두었다. 아주 잠깐 전지전능해진 기분이 들었다. 아이와 인형의 세계에서만큼은 이별을 막아내고 예비 인형을 준비하며 세계의 붕괴를 온 몸으로 막아내고 있는 것 아닌가. 

 어지간해선 세탁도 삼갔다. 아이가 어릴 때는 인형들을 삶아 빨래했는데, 천들이 너무 빨리 닳아 떨어지곤 했기 때문이다. 아이가 냄새나는 인형을 더 좋아한단 이유도 있었다. 밥을 먹다 말고 입가를 인형에 부벼 자신이 먹은 것들의 흔적을 묻혀 놓고, 잠에 들면서는 여전히 침을 묻혔다. 모르는 이가 맡으면 깜짝 놀랄 냄새가 났지만 아주 가끔씩만 망에 감싸 세탁기에 넣었다. 지난 주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대방어와 우럭이 난도질당하던 그 자리에 뚝 떨어져서 나를 놀라게 하기 전까지는. 

 아이가 재빨리 토토를 주워들며 빨리 주워서 괜찮아! 하고 나를 쳐다보며 말한다. 한 번 떨어져 닿았다면 아무리 빨리 주워들어봤자 닿은 것이지만 아이가 그런 일을 납득해줄 것 같진 않았다. 그래 괜찮네! 제철 대방어의 피가 묻지는 않았을지 불안한 시선으로 재빨리 스캔한다. 다행히 외상을 입진 않은 것 같았다. 얼핏 냄새를 맡아보니 죽어가는 생선의 비린내가 훅 끼친다. 아이는 혹시나 엄마가 인형을 뺏아갈까봐 토끼의 손을 꼭 잡은 채다. 괜찮다, 절망하지 않아도 된다. 옷장에는 토토가 또 있잖아. 나는 또 잠시 전지전능함을 느꼈다. 

 아이가 잠시 다른 데 정신이 팔린 틈을 타 비린내를 뒤집어쓴 인형을 세탁기에 돌리고 옷장 안에 몰래 빨래집게로 널어두었다. 2번 토토를 꺼내 침대 위, 물고기 인형 옆 자리에 뉘이고 이불을 덮었다. 느낌이 다르긴 하다. 꼬질꼬질함이라곤 없고 방금 막 태어난 아기 토끼처럼 통통하고 맑은 혈색을 하고 있다. 그래도 같은 옷을 입고 있는 같은 토끼니 괜찮겠지. 자연스럽게 누워 있는거야 2번 토토! 초조한 마음으로 토끼 인형의 옷매무새를 한번 더 가다듬었다. 아이가 우다다다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토토! 토토? 어...?"

 토토 자고 있으니까 조용히 하자, 아이의 손을 잡아끌고 방문을 닫으려는데 한 마디를 남긴다. "토토가 살이 쪘네에~? 뭘 먹은거지~?" 늘 조물락거리며 여기저기 들고다녀 납작해진 원래의 토토에게선 찾아볼 수 없는 풍성한 볼륨감. 귀도 통통하고 볼도 통통하고 배도 통통해진 토토를 이불에서 꺼내 한참을 살펴보더니 아이는 몰래 웃는다. "내가아~ 자는 동안 쌀 꺼내서 밥 해먹었구나아~?" 

-

 아이는 하룻동안 살 진 토토를 소중히 안고 다녔다. 어린이집에 들어가면서도 인형을 높이 쳐들고 "토토가 살이 쪘어요!" 하고 외쳤다. 저녁이면 늘 이유식도 먹여주고 생일파티도 자주 열어 케익도 많이 먹여주었으니 살이 오르는 것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2번 토토의 등장이 아이의 세계에 아무 균열도 내지 않았음에 안도하던 어느 저녁, 내 무릎에 누운 채 양치를 하던 아이가 우물거리며 무어라고 외친다. 응? 뭐라고? 돗도! 돗도가 왜 저기에? 입가에 허옇게 거품이 묻은 아이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가보니... 열린 옷장 문 사이로 며칠 전 빨래를 해둔 1번 토토가 바지 집게에 귀를 접힌 채 매달려 있었다. 세탁을 마치고 더 홀쭉해져 마치 참수형을 당한 모양으로 애처롭게. 

 "토토!!!! 토토!!!!" 십자가 밑의 막달라 마리아처럼 아이는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왜 내 토토가 저기에 매달려 있지? 나는 급히 남편을 팔았다. "여기가 아빠 옷장이잖아. 아빠가 토토를 너무 좋아해서 잠깐 가져갔나봐." 아이는 아빠를 찾아가 울며 따지기 시작한다. "저건 내 돗토! 돗토라고!!!!" 아이가 따지는 사이 나는 눈알을 백 번쯤 굴리며 살진 2번 토토가 어디에 누워있는지 찾기 시작했다. 이 아이는 아직 4살이다. 스파이더맨이 이 세계와 저 세계에 동시에 존재한다는 걸 알 수 있는 나이가 아니다. 두 개의 달이 뜨는 세계에 사는 것도 아니다. 토토가 두 마리... 여기 한 마리 걸려있고 저기 한 마리가 이불을 덮고 누워있다면... 애써 지켜온 나의 전지전능함이 훼손될 게 분명했다. 

 아이가 자신의 아빠와 토토를 두고 담판을 짓는 동안(다시는 가져가지 마아~ 내꺼야~~)살진 2번 토토는 다시 금고 속으로 들어갔다. 컴컴한 어둠 속에 묻힌 채 당분간은 동면에 빠질 운명이다. 언젠가 비쩍 마른 원래의 토토가 자전거 바구니에서 떨어지는 날, 데굴데굴 굴러가 청소차의 뒷짐에 실리는 날, 금고에서 탈출해 다시 통통한 배를 자랑하게 될 것이다. 당장 내일이 될지 1년 후가 될지 모를.

-

 아이 둘을 재우고 잠에 빠지기 전 다시 한 번 토토를 검색한다. 여전히 4만원이면 살 수 있는, 그 자리에서 팔리고 있다. 복제품 토토가 이토록 많음에 나는 안도한다. 언제까지 이 세계를 견고하게 지탱해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언제나 나는 4만원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무너져가는 세계의 한 귀퉁이를 재빨리 메꿔줄 수 있는 나의 무기, 놀라운 물류시스템과 약간의 돈. 

 어린이는 오늘도 해맑게 1번 토토를 손에 들고 여전히 조금은 두려운 바깥 세상으로 걸어나갔다. 손에 들린 작은 천쪼가리가 자신을 지켜줄거라고 굳게 믿은 채. 그 작은 천쪼가리가 세상에 단 하나뿐이고, 유일무이한 존재하는 사랑을 간직한 채. 마음이 상하는 사건이 있을 때 마다 냄새나고 오래된 천에 얼굴을 부비고 말을 걸며 회복되고 또 회복될 것이다. 이 놀라운 회복탄력성, 자주 상하지만 금방 신선해지는 마음이야말로 어린이들의 무기일지도 모른다. 어디서고 언제고 금방 자신만의 작은 피난처를 만들어내는 능력. 

 우리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같은 세계를 지키는 중이다. 

 

 

 

 

 

 

 

2022. 1. 10. 17:07

 

 

*꿈

박근혜에 이어 꿈에 이병헌이 등장해 무언가 짧은 단답형의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대사는 기억이 나질 않는데 3음절 이내의 아주 짧은 단어였다). 뭐지 심리적 대사면의 기간인건가. 이제 MB가 나올 차례인가. 웰컴입니다 각하. 

 

*요리

지난해 나 자신을 위해 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것만은 아녔다. 갈비찜을 두세 번 성공하고 며칠 전엔 묵은지 등갈비찜을 완성했다. 고기로만 끓이던 미역국을 대합으로 끓여보기도 하고 시금치를 무쳐보기도 한다(세 번 무치면 세 번 다 실패지만). 자신의 삶을 가꾸는 데 요리만한 기술이 없다. 여전히 너무 못하지만 그래도 꾸준히 시도해보는걸로. 밀키트로 연명하는 할머니가 되고싶진 않다. 

 

*책

톨스토이의 <고백>, 문학동네의 두 밤(<밝은 밤>/<긴 긴 밤>)을 읽다 울었다.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역시 아주 재밌게 읽었는데 예전에 샀다가 읽지도 못하고 이사하며 처분했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다. 아 과거의 나여... 

 

*영화

영화관을 거의 가지 못했다. 그 와중에 프렌치 디스패치는 텍스트로 읽었으면 좋았으련만 너무 현란해 두 시간 넘게 버틸 수가 없었다. 

 

*사건

연말 건강검진에서 이상항목이 너무 많이 등장한 것. 압권은 녹내장 의증이었는데 동네 안과에서 한 시간동안 정밀검사를 받고 무사 판정을 받았다. 기다리는 동안 갖은 디스토피아적 상상에 시달리다 마침내 진료를 다시 보러 들어갔을 때, 의사의 얕은 한숨에 세계가 뒤흔들리는 것만 같던 그 기분이란.

 

*실패

밀가루 줄이기. 피터팬 베이커리 시오빵... 몽쉘x노티드...테라로사의 피칸파이와 치즈케이크... 새로 생긴 일디오 휘낭시에...

 

*성공

운전. 35세의 가장 잘한 일. 언니네이발관 앨범을 넣고 혼자 처음 운전했을 때의 그 기분, 음악이 통째로 새롭게 들리는 경험을 했다. 뒤늦게 라디오를 재밌게 듣고 있기도 하다(라디오는 역시 에스비에스다). 청취자들이 '내리려다 못 내리고 있어요' 문자 보내면 뻥인 줄 알았는데 정말 내가 그러고 있을 줄이야. 김창완 아저씨의 라디오 중에 임희윤 기자님이 출연하시는 제목없음 코너를 듣다 정말 내리지 못했다. 결의 Broken 이라는 노래가 흐르고 있었기 때문에. 여튼 운전한지 몇 달 안되었는데 면허 만료일자가 다 되어간다. 12년도 파업 때 땄었지 아마. 이젠 기억하기도 싫은 두 번의 파업이지만 그래도 나쁘기만 한 건 아녔네. 

 

*잘한 일

동네 보육원에 크리스마스를 기념해 도미노를 돌린 것. 휴직 상태라 넉넉하지 않았는데 연말 성과급이 일부 들어와 바로 실행했다. 크리스마스를 코 앞에 두고 문의했는데도 이브날 점심, 저녁에 특별한 후원이 들어온 게 없다고 했었다. 50만원이 채 들지 않았는데 작년에 가장 기쁘게 쓴 금액. 올해 크리스마스에도 계속하리. 

 

*다짐

연말연시에 들었던 조급증이 사라지면서 마음이 좀 나아졌다. 복직 전까지 운동을 일주일에 두 번은 하고, 요리는 나아질 때 까지 계속 시도해보고, 취미 잡문 쓰기 역시 일주일에 두 번은 쓰기로 했다. 한 시간을 앉아있으면 A4 한장 반 정도를 쓸 수 있으니 일주일에 두 시간만 쓰면 가능하다. 쓰지 않다보면 나 자신을 위해선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기에. 

 

 

 

 

 

 

 

 

 

 

2022. 1. 5. 23:19

 

노래방에선 누구나 자신이 노래를 잘 부른다는 착각에 빠진다. 작은 공간에 어울리지 않게 넘쳐나는 음량, 쇼파의 얼룩을 가리기 위함이 분명한 어두운 조도, 울려퍼지기 바쁘게 되울려 돌아오는 쉴새없는 에코까지 더해지면 누구나 '짝짝짝! 가수왕이 탄생했어요!' 자막을 볼 수 있다. 내 노래에 감탄한 게 분명한 주인이 보너스 시간을 30분, 1시간, 더 넣어준다. 그래도 소화할 레파토리가 있다. 작은 방 안에서 조악한 미러볼에 취하면 자신이 부르고 자신이 우는 황당한 사태가 생기기도 한다.

문제는 방 한칸을 나서면서 시작된다. 내가 있었던 방과 비슷하게 생긴, 아니 아주 똑같은 방이 앞뒤로 주욱 이어져 있고 번호가 주르륵 붙어 있었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 복도에 서서 들어보니 어라, 다들 노래를 꽤나 한다. 아니 제법 잘 하는 것 같다. 이 정도면 여기도 가수왕 탄생, 저기도 가수왕 탄생이다. 노래 잘 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았다니. 노래 잘 하는 사람이 많은 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노래를 잘 하는 것만 같다. 아니 사실이 그렇다. 주위에서 노래를 못 하는 사람은 정말 본 적이 없으니. 음악예능이 흥행한지 10년이 넘어가는데 여전히 누군가는 복면을 쓰고 오디션이 열리고 문자투표를 독려하고 그런다. 모두가 노래를 잘 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다시 내 방의 문을 닫고 들어간다. 옆 방에서 잔뜩 흐느끼며 함께 떠나자는 세기말 발라드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그 땐 왜 그렇게 툭하면 하늘을 찾고 뭐만 하면 함께 떠나쟸는지 알 수가 없지만 여튼 다시 노래방 책을 펴든다. 눈에 들어오는 곡들은 많지만 자꾸 남의 노랫소리가 들려 참을 수 없다. 내가 부르면 더 잘 부를 것 같은데... 아닌가... 저기가 더 잘 부르는 것 같기도 하고. 아까완 느낌이 조금 달라진다.

방이 열댓개쯤 있는 노래방을 떠나 부스가 단 하나인 코인노래방으로 간다. 옆 방의 절창이 더 이상 들리지 않고 카운터를 보며 서비스 시간을 넣어주는 주인도 없다. 500원짜리 동전만 넉넉히 가지고 있으면 부르다 쉬었다 부르다 쉬었다, 휴대폰도 보다가 불렀다가 어쩐대도 상관이 없다. 방 밖은 노래방 복도가 아니라 바로 거리이니 왜 이렇게 다들 잘 불러... 놀랄 일도 없다. 그냥 바로 영하의 바람에 양 뺨을 번갈아 맞으며 잠과 꿈을 동시에 깨면 되는 것이다.

 

여기가 딱 코인노래방이다.

 

 

 

 

 

2021. 12. 28. 14:42

 

책상의 외주화. 집에서 책을 읽거나 일기라도 한 줄 쓰는 게 불가능하다는 선고를 받은 이후 나는 책상을 외주화하기로 결심했다. 일단 한 시간이라도 안정적으로 앉을 수 있는 책상을 찾자.  

  매번 가서 공간을 둘러보기도 벅차 인스타그램으로 대리 체험을 시작했다. 마포구 카페, 합정 카페, 작업하기 좋은 카페...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남긴 수많은 태그들을 좇아가면 공간을 가늠할 수 있었다. 태그가 너무 많이 올라와있는 곳은 제외하고 커피와 디저트가 올라가있는 사진들 속 테이블을 보며 상상했다. 책상으로 쓸 만한 테이블일까? 의자를 깊숙하게 당기고 앉으면 안정감 드는 각도가 나올까?

이럴 때 그 카페가 남아있었다면. 인스타그램 대신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좋은 책상의 카페들이 있다. 한때 출판사들이 운영하는 카페들을 좋아했다. 창작과 비평사, 문학과 지성사, 후마니타스, 자음과 모음, 문학동네 꼼마... 좋은 책들을 내는 회사의 1층엔 분명 책을 읽기 좋은 카페들이 있었다. 같은 건물, 윗층에 깃든 업종의 정체성이 번져 스며들어 있는 공간들이었다. 커피 한 잔을 시키고 너무 오래 앉아있는 나 같은 손님들이 많아서였을까. 합정역의 후마니타스 책방이 폐업하고 치킨집이 되던 무렵, 출판사 1층의 카페들 역시 사라지거나 유명 카페가 대신 운영하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들른 게 창비의 1층 카페였던 것 같다. 도서관처럼 일렬로 앞을 보게 늘어서있던 긴 테이블이 철거되고 커피로 유명한 망원동의 한 브랜드가 드립을 팔았다. 결정적으로 외국 클래식 라디오 채널만 틀어주던 카페에서 최신 가요가 나오고 있었다. 커피 맛은 더 좋아졌을테지만 책 읽을 맛이 나질 않았다.

모 가구회사에서 운영하는 카페를 발견한 건 그 즈음이었다. 북카페였다. 음료 메뉴는 단촐했다. 브랜드에서 파는 각종 책상과 의자가 서재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다. 유명한 독립서점과 함께 큐레이션해둔 책들 사이로 리클라이너가 자리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읽고 쓸 수 있는 긴 테이블 너머로 1인용 책상이 보였다. 카페 전체에 딱 한 자리. 저기다!

달려가 앉아보니 허리가 그럭저럭 편했다. 원래가 책상으로 나온 테이블이니 노트북을 올려두어도 안정적이었다. 벽을 바라보고 있어 다른 사람들이 무얼 하는지 보이지 않는 것도 좋았다. 심지어 영업이 걱정될만큼 사람이 드물었다. 유튜브 재즈 채널을 돌려두었는지 잔잔한 음악들이 부드럽게 넘어갔다. 두 시간만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나가자. 1인용 책상 위에 놓인 스탠드의 불을 탁 켜는 순간 조용하던 북카페의 문이 호방하게 열렸다. 

 핫핫핫핫 자네 내가 누군지 아나? 

70대로 보이는 남성의 정체. '여성, 엄마, 북카페'를 표방한 그 공간에서 가장 이질적인 존재였지만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존재이기도 했다. '내가 누군지 아나?' 이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전직 경기도지사 혹은 건물주일 확률이 높다. 한 눈에도 그는 김문수가 아녔다. 카운터 직원의 당황스러움이 내가 앉은 1인용 책상까지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는 이 북카페와 가구 브랜드가 세들어 있는 건물의 주인, 건물주였다. 수많은 카페를 손님으로 들락거렸지만 건물주와 마주치긴 처음이었다.

 

 

 

 

 

 

2021. 12. 27. 12:00

 

 몇 해 전, 나 혼자 멘토로 여기는 L작가님과의 자리에서 글을 주로 어디서 쓰시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L작가님은 당연하다는 듯 집에서 쓴다고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혼자 속으로 감탄했다. 역시 잘 쓰는 사람은 어디서든 잘 쓰는구나. 저런 작가라면 우리 집 거실 한가운데 같은 곳에서도 정좌한 채 눈빛을 형형하게 빛내며 쓸 수 있을 것이다. 아기1이 중장비 책을 가져와 읽으라고 명령하고 아기2가 쌍자음 옹알이로 따따 짜짜 빠빠 격렬하게 호소하더라도(쌍자음 옹알이는 왠지 욕처럼 들린다). 그런 게 프로의 세계일까. 주위에서 난장판이 일어나더라도 자신의 일로 순식간에 몰입할 수 있는 전환의 힘. L작가님이라면 모르겠지만 내겐 없는 것 같았다. 한창 공부를 할 때도 책상부터 정리해야 하는 스타일이었고, 책상 정리 후 마음 정리를 위해 MP3라도 꽂아두면 30분이 그냥 흘러갔다. 오븐도 디젤차도 아닌데 일종의 예열이 필요했고 사전답사를 다녀와야 했다. 

 책을 들고 스타벅스에 뜨듯미지근히 앉아있다 돌아오는 길에 전단지 한 장을 밟았다. 새로 개업한 카페 홍보 전단이었다. 무려 24시간, 무인 카페인데 그것도 로봇이 서빙한다는 놀라운 문구가 쓰여있었다. 로봇이라면 카페에 손님이 아무리 나 하나라도 눈치볼 일도 없을테고, 밤에 아이를 재우고도 갈 수 있지 않을까. 심지어 집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있었다. 커피 맛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책상에 의자에 쿠션에 거리두기 간격에 커피 맛까지 따지기 시작하면 책상순례길 위에서 백발노년을 맞을지도 모른다. 쫓기는 걸음으로 빠르게 걸으니 십 분 안에 카페에 도착했다. 왕복 이십 분이라면 적당히 운동이 되고 예열도 될테니 완벽하다. 

 24시간 무인로봇카페. 정직한 간판이 달린 외양은 어쩐지 코인 빨래방에 가까워 보였다. 빨랫감 대신 노트북 봇짐을 지고 안으로 들어섰더니 어쩐지 바깥보다 평균기온이 낮은 것처럼 느껴졌다. 지금까지 가본 그 어느 카페보다도 넓었는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입구 정면에 카운터가 있고 벽 너머 주방 어디선가 사람의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완전 무인은 아닌 모양이었다. 키오스크로 주문하시면 로봇이 갖다드립니다, 문구대로 따라가 키오스크 앞에 섰다. 서빙을 맡은 로봇은 카페 한 켠에 서너대가 얌전히 일렬로 대기중이었다. 일 미터쯤 되는 키에 얼굴로 추정되는 부위가 직사각형으로 넓고 컸다. 몸통 가운데가 뻥 뚫려있고 컵홀더가 네 개, 그 밑에는 간단한 베이커리를 올려둘 수 있는 쟁반이 달려 있었다. 바퀴가 달려있고 혼자 움직인다는 것만 빼면 주방에서 흔히 쓰는 트롤리와 비슷했다. 

 출동을 기다리는 로봇 서버들을 옆에 둔 채 라떼를 주문했다. 자신이 앉을 테이블 번호를 입력하면 로봇 서버가 자리까지 가져다준단다. 커피를 만들지는 않고 서빙만 하는 모양이었다. 카페의 구조와도 연관있어 보였다. 모로 긴 카페는 기차 식당칸처럼 길었다. 사람이라면 지치겠지만 로봇 서버라면 카운터에서 꼬리칸까지 백 번 왕복을 한들 덜 힘들 것이다. 벽 너머 어디선가 커피를 내리는 소음이 작게 들려왔다. 카운터 뒤에서 조그맣게 감지되던 인기척은 바리스타였을까. 텅 빈 카페를 한참 구경하는데 커피가 도통 나오질 않는다. 분명 손님이 나 혼자 뿐인데...커피 내리는 소리가 들린지는 오래인데 어디선가 출발하지 못한 로봇 서버의 홀더 위에서 식고 있는 건 아닐까. 차라리 가서 가져올까, 엉덩이를 들썩이고 있는데 멀리서 지잉 하는 기계음이 들려온다. 일렬로 줄지어 있던 로봇 대열들 중에 누군가 출발한 것이다. 황급히 도로 앉았다. 사람이라면 중간에 만나 커피를 들고와도 괜찮겠지만 로봇 서버에게 그런 일은 입력되어있지 않을 것이다. 지잉지잉지잉, 왠지 긴장되는 기계음과 함께 단조로운 클래식 선율이 함께 흘렀다. 

 34번, 주문하신 따뜻한 카페 라떼 나왔습니다. 잘 저어서 드세요. 기계음 어조가 분명한 로봇의 몸통에 내 커피가 들려있었다. 로봇에게 커피를 쏟을까 조심스럽게 꺼내 한 모금을 맛보았다. 나쁘지도 좋지도 않은 그냥 커피 맛. 두 모금을 마셨다. 여전히 맛있지도 맛 없지도 않은 그냥 라떼의 맛. 세 모금을 마셨다. 그런데도... 로봇이 떠나가질 않았다. 커피를 꺼냈는데도 여전히 내 곁에 선 채였다. 손님 곁에 머물며 더 필요한 게 없는지 커피의 농도가 적절한지 살펴보는 세심한 동작까지 입력되어 있는걸까? 이유가 뭐든 부담스러웠다. 얼굴로 보이는 부분을 잠시 쳐다봤지만 역시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카운터 안에 있던 인기척이 내 곤란함을 알아주지 않을까. 로봇의 앞뒤를 둘러봤지만 내 쪽에서 뭔가를 지시할 수는 없어 보였다. 그렇다고 동료들이 대기하고 있는 쪽으로 밀고 갈 수도 없었다. 기능이야 단순하지만 그래도 로봇이니 고가일지도 모른다. 다 마신 잔을 내려놓아야 돌아가도록 설계되어 있는걸까. 아직 뜨거운 라떼를 꿀꺽꿀꺽 넘겼다. 누구도 눈치를 주지 않는데 이상하게 초조했다. 

 로봇 서버를 곁에 세워둔 채 어색하게 노트북을 펼쳐보았다. 일단 작업 공간으로 적당한지 가늠해봐야 했다. 그저 노트북을 올려두기만 했는데도 벌써 불편했다. 테이블은 저 앞에 놓여있었고 고정되어 있는 의자는 저 뒤에 자리했다. 타자를 치려면 팔이 자연스럽게 구부러져야 하는데 쭉 뻗어야만 노트북에 닿았다. 허리가 끙 하고 벌써 괴로움을 호소했다. 내 팔이 짧은걸까, 의자와 테이블 간격이 지나치게 넓은걸까. 둘 다 인 것 같았다. 의자와 테이블의 간격마저 기차칸같아서, 커피를 한 잔 손에 든 채 다리를 쭉 뻗고 차창을 바라보기에 딱 좋을 것 같았다. 앞에 무언가를 두고 일을 하거나 작업을 할 공간은 아니었다. 간혹 긴 의자에 눕는 사람들이 있는지 눕지 말라는 방송이 나온다. 손님은 나 혼자고 난 분명 앉아있는데, 혼자 괜히 뜨끔한다. 허공에 뜬 팔만 괜히 허우적대며 타자 치는 시늉을 하는데 역시나 곁에 선 로봇 서버가 거슬린다. 키오스크 옆에 붙어있던 카페 대표번호로 전화라도 해야할까. 내 불편한 기척을 눈치챘는지 로봇 서버가 소리를 냈다. 지잉 징 지잉 징... 올 때와 비슷한 지하철 정거장 알림음 클래식을 연주하며 동료들에게 천천히 돌아가고 있었다. 

 로봇 서버가 떠나고 남은 라떼를 원샷했다. 짐을 챙겨 나가는데 로봇 서버들은 여전히 일렬로 서 아무것도 쳐다보지 않으면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아, 방금 내게 온 서버가 누구였더라. 그렇게나 오래도록 곁에 서 있었는데도 그 중 누구였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