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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 5. 23:19

 

노래방에선 누구나 자신이 노래를 잘 부른다는 착각에 빠진다. 작은 공간에 어울리지 않게 넘쳐나는 음량, 쇼파의 얼룩을 가리기 위함이 분명한 어두운 조도, 울려퍼지기 바쁘게 되울려 돌아오는 쉴새없는 에코까지 더해지면 누구나 '짝짝짝! 가수왕이 탄생했어요!' 자막을 볼 수 있다. 내 노래에 감탄한 게 분명한 주인이 보너스 시간을 30분, 1시간, 더 넣어준다. 그래도 소화할 레파토리가 있다. 작은 방 안에서 조악한 미러볼에 취하면 자신이 부르고 자신이 우는 황당한 사태가 생기기도 한다.

문제는 방 한칸을 나서면서 시작된다. 내가 있었던 방과 비슷하게 생긴, 아니 아주 똑같은 방이 앞뒤로 주욱 이어져 있고 번호가 주르륵 붙어 있었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 복도에 서서 들어보니 어라, 다들 노래를 꽤나 한다. 아니 제법 잘 하는 것 같다. 이 정도면 여기도 가수왕 탄생, 저기도 가수왕 탄생이다. 노래 잘 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았다니. 노래 잘 하는 사람이 많은 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노래를 잘 하는 것만 같다. 아니 사실이 그렇다. 주위에서 노래를 못 하는 사람은 정말 본 적이 없으니. 음악예능이 흥행한지 10년이 넘어가는데 여전히 누군가는 복면을 쓰고 오디션이 열리고 문자투표를 독려하고 그런다. 모두가 노래를 잘 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다시 내 방의 문을 닫고 들어간다. 옆 방에서 잔뜩 흐느끼며 함께 떠나자는 세기말 발라드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그 땐 왜 그렇게 툭하면 하늘을 찾고 뭐만 하면 함께 떠나쟸는지 알 수가 없지만 여튼 다시 노래방 책을 펴든다. 눈에 들어오는 곡들은 많지만 자꾸 남의 노랫소리가 들려 참을 수 없다. 내가 부르면 더 잘 부를 것 같은데... 아닌가... 저기가 더 잘 부르는 것 같기도 하고. 아까완 느낌이 조금 달라진다.

방이 열댓개쯤 있는 노래방을 떠나 부스가 단 하나인 코인노래방으로 간다. 옆 방의 절창이 더 이상 들리지 않고 카운터를 보며 서비스 시간을 넣어주는 주인도 없다. 500원짜리 동전만 넉넉히 가지고 있으면 부르다 쉬었다 부르다 쉬었다, 휴대폰도 보다가 불렀다가 어쩐대도 상관이 없다. 방 밖은 노래방 복도가 아니라 바로 거리이니 왜 이렇게 다들 잘 불러... 놀랄 일도 없다. 그냥 바로 영하의 바람에 양 뺨을 번갈아 맞으며 잠과 꿈을 동시에 깨면 되는 것이다.

 

여기가 딱 코인노래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