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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에 해당되는 글 4건
2020. 3. 18. 15:36

 

 

누가 뭐라 해도 난 나야
난 그냥 내가 되고 싶어
I wanna be me me me
굳이 뭔가 될 필요는 없어
난 그냥 나일 때 완벽하니까

 

ITZY의 노래를 듣다보면, 남과 달라지는 게 지상과제였던 십대와 이십대의 어느 시절이 떠오른다. 조금이라도 더 그럴듯해보이고 싶었던, 보통이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기에 보통 이상이 되기를 은밀히 소망했던. 어쩌면 그 즈음은 누구에게나 그런 시기인걸까. 자신이 아주 평범하다는 걸 인정하는 사람들에게까지도 상승의 기운이 침투하는. 

새벽에 깨어있고 소설을 좋아하고 멋진 문장을 만들어내면 세상이 달라보인다고 믿던 시절을 다 지나보낸 지금은 이제 이런 노래들에 새삼 울컥하게 된다. 다만 한 뼘이라도 남들과 다른 면을 가지고 싶었던 마음이 이제는, 다만 한 줌이라도 남들과 비슷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마음으로 변했다. 아주 보통으로 살고 싶다. 평범한 인생을 쟁취하고 싶다(이제는 보통이야말로 '쟁취'해야 하는 것이란 걸 안다). 자신이 요절할 거라고만 믿었다던 어느 빛바랜 록스타처럼.

 

찬란하게 빛나던 내 모습은
어디로 날아갔을까 어느 별로
작은 일에도 날 설레게 했던
내 안의 그 무언가는
어느 별에
거칠 것이 없었던 내 모습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어느 틈에
작은 일에도 늘 행복했었던

-

 

시간이 나면, 하고 미뤄둔 게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대중가요의 노랫말을 가지고 분류하는 작업이다. 그 중에서도 2000년대 초중반, 세기말부터 유의미하게 폭증했던 내면의 폐허(?!)를 다룬 가사들을 모아보고 싶다. 영화시장과 출판산업이 한참 젊은 천재들을 발굴해내던 시절(이라고 쓰니 정말 구태의연해보이지만), 자의식 충만했던 대중가요들이 반영한 그 시절 영혼의 허영. 내면에 침잠하고 이야기에 몰두할 수 있었던 한 줌의 여유. 그 시절엔 아이돌그룹의 가사라 하더라도 한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맡아 작사하는 일이 흔했고, 요즘처럼 한 곡의 작사가와 작곡가를 합해 열 손가락이 넘어가는 일이 흔치 않았다. 그야말로 멜랑콜리의 시대와 그 노랫말들. 어우, 하고 이맛살을 찌푸리면서도 계속 듣게 되는 내 기준 옛날 노래들.

여하간, 자기 자신의 청춘과 그 시절에 대해선 - 정말이지 객관적이기 어렵다. 요즘 맨날 라떼 백잔이다. 

 

 

 

 

2020. 3. 14. 00:24

 

 

 아기는 요즘 이별을 연습하는 중이다. 출근준비를 마친 내가 옷을 갈아입고 나오면,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안넝-' 하고 나를 떠민다. 작은 손바닥을 쫙 펴서 어깨나 가슴께를 떠밀며 가버리라는 듯 밀친다. 복직 초반 며칠간은 드라이기로 머리만 말려도 옆에 와서 다리를 붙잡고 떼를 쓰더니 이제는 으레, 당연히 나가는 사람이 되었다. 매일 나간다고 해서 안녕이 쉬워지진 않는다. 퇴근하고 오면 뽀뽀도 윙크도 해주지만 출근길엔 눈맞춤조차도 언감생심이다. 

 금요일 저녁은 할머니 할아버지와 이별하는 시간이다. 퇴근한 내가 옷을 갈아입고 오면 한두시간 책도 읽고 걸음마도 연습하며 놀다가 잠 잘 준비를 한다. 주로 아기가 자러 들어간 사이 할머니 할아버지가 집을 나서시는데, 오늘은 잠깐 거실에 나온 사이 나갈 준비를 하던 할아버지와 딱 마주쳤다. 외출복으로 갈아입은 할아버지를 본 아기는 대번에 고개를 백팔십도 돌렸다. 쳐다보지도 않고 예의 '안넝-'. 간다는 거 알겠으니 얼른 가버리라는 걸까. 아기가 더 서운해할까 얼른 안고 방으로 들어와 책을 읽어주며 잘 분위기를 잡았다. 책도 보고 노래도 부르며 뒹구르르 하다가 아기가 혼잣말을 한다. 할미 안넝, 하라비 안넝, 언니 안넝... 안넝. 

 친척 조카가 놀러와 며칠을 함께 지냈다. 나이 차이가 열 살도 더 나니 같이 노는 건 아니었는데도 지내는 내내 언니 언니 하며 따랐다. 언니가 먹는 것, 언니가 하는 양에 관심이 많았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언니를 찾더니 집에 간다고 나선 언니 앞에선 역시나 고개를 돌렸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소리가 들리자 언니... 하며 그제야 울상을 지었다. 방을 맴돌며 언니 없다 하고 되새긴다. 아기에게 안녕은 곧 없음이다. 

 그 언니가 잠자리 누워 다시 떠오른 모양이었다. 한참을 혼자 할미 안넝, 하라비 안넝, 언니 안너엉 하며 천장을 향해 손을 흔드는 걸 지켜보는데 와락 눈물이 났다. 아주 옛날엔 나도 비슷한 어린이였다. 동생이 태어나기 전 대여섯살까진 집에 친구들이 왔다가 돌아가도 울었고 친척 언니들이 왔다가 돌아가도 울었다. 누군가 집에 놀러왔다가 돌아간다는 건 사라짐을 의미했다. 작고 좁은 세계 안엔 아는 사람이 몇 되지 않았고 그들은 모두 커다란 현관문을 통해 어디론가로 달아났다. 그 문을 통해 나가면 없어졌다. 저녁이 되면 함께 놀던 사람들이 없어지는 게 싫어서 울었고 울다가 혼났다. 그 울음은 동생이 태어나고 나서야-혹은 내가 좀 더 자랐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사라졌다. 

 -

 안녕의 세계는 자란다. 현관문 너머에도 세계가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되면 안녕의 의미가 달라진다. 밖으로 나가 더 많은 세계와 사람들을 사귀게 되고, 이별의 안녕 다음에는 재회의 안녕도 돌아온다는 걸 깨닫게 된다. 안녕이 아주 없음은 아니라는 걸 체득한다. 그렇게 의미를 바꿔가며 팽창했던 안녕의 세계는 넓어질 수 있을 만큼 넓어졌다 도로 영역을 좁히기도 한다. 현관문 밖으로 걸어나가는 사람들이 야속했던 내가 이젠 현관문 안으로 걸어들어와 문을 잠글 수 있음에 안도한다. 안녕, 하고 재빨리 선을 긋고 등을 보일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지긋지긋해지고 나 자신조차 싫어질 것만 같을 때, 그 모든 너절함으로부터 달아날 수 있게 해주는 단 한 마디. 안녕. 문을 걸어잠그고 다시 내면으로 돌아온다. 꼭꼭 숨는다, 안녕 뒤에.

 나는 이제 안녕기술자다. 사람들이 싫어지면 티나지 않게 마음에서 지워버린다. 안녕? 하고 잘도 인사하지만 사실 인사하는 줄도 모른 채 인사한다. 안녕! 하고 쉽게 돌아서지만 돌아서는 줄도 모르게 돌아선다. 그 모든 게 아주 쉬운, 몸에 익은 기술이 되었다. 지난 34년간 내가 연마했던 수많은 안녕들 덕분에, 안녕의 숙련공이 되었다. 아쉬운 것도 미련남는 것도 없는. 

 -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장에 대고 한참 손을 흔드는 아기를 바라보니 눈물이 난다. 아기가 아는 안녕, 내가 알았던 그리고 지금 안다고 믿는 안녕, 그리고 우리 둘 다 아직은 모르는 더 넓은 안녕의 세계가 있으리라. 언젠가는 그 안녕의 세계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2020. 3. 4. 10:53

 

 

 

https://www.youtube.com/watch?v=TcPk2p0Zaw4&amp=&feature=emb_title

 

 

 

웨즈 앤더슨 + 티모시 샬라메라니요. 너무 가고싶다 영화관...

 

 

2020. 3. 2. 23:41
[A]

 

 꿈을 자주 꾸고 기억도 곧잘 한다. 어제는 문이 열린 우리 집 창문틈으로 무서운 무언가가 침입하는 꿈을 꾸었는데 꿈에서 느낀 그 공포가 어찌나 또렷하고 현실감있던지, 잠에서 깨고 나서도 한동안 공포로 마음이 얼얼할 지경이었다. 바로 이틀인가 사흘 전에는 가까운 사람이 잘못됐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역시 꿈에서였다. 억억 하며 울음소리를 내며 울었다. 꿈 속이었지만 깨고 나서도 그 무너지는 심정이 마음 어딘가에 남아있어 눈 떴음에 어찌나 안도했는지 모른다.

 현실에선 감정변화가 크지 않은 편이다. 희노애락이 거의 없는 편이라고 자부한다. 언제나 좁은 맥시멈과 미니멈의 감정그래프 안에서 적당한 곡선을 그리며 안정적으로 오간다. 그런데 꿈만 꾸면 너무 무섭거나 너무 슬프거나 너무 두렵다(희한하게 너무 행복한 꿈은 꿔본 적이 없다). 종현이 일만 해도 그렇다. 지난 2년 사이 종현이 꿈을 열 번은 꾸었다. 그 때마다 굉장히 많이, 마음이 망치에 맞아 산산조각난 것처럼 슬펐다. 꿈에서 울다가 눈을 떴는데 여전히 울고 있기도 했다. 정작 현실의 나는 종현이를 추모하며 소리내어 제대로 울어본 기억이 없는데도.

 꿈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다 조금 이상한가, 하고 아주 잠깐 생각에 잠긴다. 현실의 나는 이렇게 평온하고 심지어 행복한데 꿈 속의 나는 어째서 대체로 미친듯이 두렵고 죽을 듯이 슬퍼질까. 의식이 잠잠해진 세계에선 나 자신조차도 낯설 만큼 강렬한 감정들이 휘몰아치는데, 눈을 뜨면 언제나 평온하다. 꿈이어서 정말 다행이다, 하고 일어나서 평화로운 표정을 장착한다.

어쩌면 내 마음은 현실을 제대로 살고 있는 게 아닌지도 모른다. 묻고 미뤄버리고 지금을 살아가느라 너무 바쁘니 어쩔 수 없는 걸까. 본체가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그 감정들이 밤만 되면 거대한 눈덩이가 되어 다시 달려든다. 꿈 속의 내 마음은 그 모든 걸 대리체험하느라 밤마다 이리 뛰고 저리 뛰느라 아침이면 녹초가 된다. 맛있는 커피 한 잔이면 금방 다시 정신을 차리긴 하는 효율 좋은 마음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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