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main image
분류 전체보기 (177)
A (177)
Visitors up to today!
Today hit, Yesterday hit
daisy rss
tistory 티스토리 가입하기!
'A'에 해당되는 글 177건
2022. 4. 15. 14:01


 삼사십대 여자들이 낳은 아이들을 이십대와 육십대 여자들이 나누어 돌본다. 어린이집 선생님들은 압도적인 비율로 이십대가 많고 아이들을 어린이집에서 데려가는 이모님들은 압도적으로 육십대다. 아이들의 주양육자인 삼사십대 여자들은 일을 나가면서 이십대 여자들에게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인사를 한다. 9시간 뒤 일을 마치고 들어오면서 육십대 여자들에게 다녀왔습니다, 하고 인사를 건넨다. 다른 세대 여자들에게 아이들을 넘겨주었다 받는다.

 낳기 전에는 낳고 기르고 돌보는 일이 이렇게까지 여자들에게 집중되어 있는 줄 몰랐다. 나의 경우는 사적, 공적 도움을 총망라해 받는 편에 속한다. 그 과정에서 가족이 아닌 여러 여자들에게도 아주 많이 의존하며 살아간다. 그녀들이 없다면, 한 순간에 도움들이 사라진다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건 곧 아무 존재도 아니게 된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오늘 나를 이러이러한 모양의 존재로 유지하게 도와주는 건 다른 세대의 여자들이다. 아이들은 이 품에서 저 품으로 옮겨다니며 안기고 업히고, 보드라운 손부터 검버섯 돋은 손까지 이 손 저 손으로 쓰다듬어지며 자라난다. 집을 청소하고 반찬을 만들어내는 데는 가끔 더 늙은 여자들까지 동원되기도 한다. 몇 달 전 마지막으로 집을 청소하러 온 여자는 등이 굽은 칠십대였다.

 여자의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젠더 문제에 대해 얄팍하게나마 귀동냥할 기회가 있었던 대학 시절에도 그랬던 것 같다. 이제는 몸으로, 생활로 느낀다. 나는 여자로 태어났고 사회에서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을. 그것도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도움이 어마무시하게 필요한, 여러모로 취약한 여자에 속한다는 것을. 돈을 지불하는 쪽이 나라 하더라도 이 관계는 언제까지나 호혜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돈이 흘러가는 방향에 따라 관계의 정의가 수립되는 대부분의 이치는 여기 적용되지 않는다. 모든 업무는 돈과 시간을 교환하는 데서 발생하지만 돌봄은 예외다. 돈과 시간을 교환하는 기본 거래 밑에 애정이 수반되야 한다는 치명적 조건이 있다. 살아있는 생명을 무감하게 키울 순 없기에, 애정이 없는 돌봄은 아예 성립하질 않는다. 그러나 애정은 돈과 별개로 생겨나고 자라난다. 이 어려운 조건을, 애정어린 손길을 부탁해야 하는 쪽은 나다. 매일 아침 적어보내는 알림장 마지막 문장은 "감사합니다, 오늘도 잘 부탁드립니다!"로 끝맺음한다. 앞으로도 꽤 많은 부탁합니다와 감사합니다 사이에서 오가야 할 것이다.

 오늘도 그들에게 업혀서 어그적 어그적 반 발짝씩 앞으로 나아가는 중이다. 육아휴직을 하고 명목상으로는 전업으로 아이를 돌보는데도 여전히 그렇다. 그녀들의 심기를 걱정하고 건강을 염려한다. 내가 빚지는 이십대 여자들과 육십대 여자들의 마음과 몸이 튼튼하기를 늘 기도한다. 혼자서는 빚지지 않고 잘 살 수 있었다. 무자녀 기혼 여성일 때도 그랬다. 이젠,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게 되었다. 그 도움은 대부분 여자들에게서 온다. 어떤 때는 발목이 무거운 것 같다가도 가끔은 이제야 알 것 같기도 하다. 세상이, 이런 모습으로 생육하고 번성하며 굴러가고 있었다는 걸.













2022. 4. 9. 10:14

 

 아이 둘을 양 팔에 하나씩 끼고 토닥이다 나도 잠이 든 모양이었다. 한밤인지 새벽인지 분간도 가지 않는데 엄마, 엄마, 쉬했어 하고 부르는 목소리가 들린다. 눈도 뜨지 않고 더듬더듬 바지를 갈아입히는데 아 방금까지 꾸던 꿈의 몇 장면이 너무 생생하다. 첫번째 장면에서는 내가 샤넬 부츠를 신어보려 발을 넣고 있었다(샤넬? 여튼 꿈이니까). 부츠 안에 모양을 잡기 위해 넣어둔 종이 뭉치며 가죽을 감싼 비닐 포장이 아직 뜯어지지 않은 채인데 신발에 웬 사용설명서가 딸려있는 게 아닌가. 읽어보려는데...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고 말았다. 거기선 야간분만이(라고 지칭해야 할 것 같다 아주 오래 전 호칭이지만)쉐쿄바레 무뵤바레에 여전히 일기를 쓰고 있었다. 그것도 비어있던 지난 몇 년간 계속. 그 일기장 속에선 여전히 날 것의 언어들이 생생하게 살아 숨쉬고 있어 간만에 설레는 독자의 마음으로 열심히 읽었다. 와, OOO작가님이 아니라 진짜 야간분만이 돌아왔다! 소리치면서. 그러다 세 번째 장면으로 넘어간다. 샤넬부츠, 야간분만, 그리고... 샤넬부츠, 야간분만, 그리고...그리고... 

 쉬 한 아기를 다시 토닥토닥 재우며 열심히 세 장면을 잊지 않겠다고 복기하며 잠들었는데... 무색하게도 지금은 기억이 안 나네. 부츠, 야간분만, 그 다음 마지막... 아주 중요한 장면이 하나 등장했는데. 

 

 

2022. 4. 9. 09:57

 

청탁이 들어와 이번 주 급히 쓴 원고.

 

<계산병 고치기>

“우리 이젠 더 이상 이러지 말자” 대로변 한가운데서 친구와 아웅다웅했다. 한 손에는 각자의 지갑을 꼭 쥔 채였다. 어깨를 밀치고 때론 팔을 억지로 끌어내리기도 하며 상대를 향해 뭔가를 호소하는 두 여자.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금전 관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 딱 좋은 풍경이다. 하긴, 따지고 보면 일종의 금전 관계라고도 할 수 있다. 

 친구와 나에겐 계산병이 있다. 뭐라도 먹거나 마시면 꼭 자신이 먼저 계산하겠다고 나서는 습관이다. 같은 대학, 같은 직장을 다니며 15년도 넘게 알아온 사이라 먹고 마신 밥과 커피가 수두룩한데도 그렇다. 그날도 계산대 앞에서 한창 실랑이한 끝에 이제는 그러지 말자고 다짐을 하고서야 헤어졌다. 

 언제부터 그랬을까. 비교적 이른 나이에 첫 취업을 하면서? 아니, 생각해보면 용돈 받아 생활하던 대학생 시절에도 곧잘 계산을 하고 다녔다. 형편이 빤한 대학생들이니 각자 내도 될텐데 꼭 사주고 싶었다. 그래야만 마음이 편했다. 이 습관이 극에 달했을 때는 회사 근처 식당에서 우연히 만난 선배 테이블의 밥값까지 먼저 내고 도망치듯 나오기도 했다. “제가 먼저 계산했어요!” 하고 의기양양하게 외치는 나를 바라보던 선배의 황망한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기분이 상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한참 지난 후에야 들었다. 자신이 대접하려 했을 수도 있고, 동석했던 일행이 계산하려던 자리였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저 한 식당에 있었다는 이유로 밥값을 먼저 내버린 것이다. 선배 입장에서 따져보면 난데없이, 강제로, 계산당한 셈이다. 

 습관을 고쳐보자고 마음먹은 건 그래서였다. 마음 편하자고 먼저 계산하고 다녔지만 배려 없는 행동일지도 몰랐다. 때에 따라선 무시당하는 것처럼 느낄 가능성도 있었다. 한 편으론 호의를 호의로 잘 받아들이고 싶기도 했다. 마침 코로나로 사람들과 약속이 줄어들면서 계산할 일이 드물어졌다. 오랜 계산병을 고칠 기회였다. 가끔 누군가 밥이나 커피를 사준다고 나서면 카운터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다음을 기약했다. 몇 번 하다보니 생각처럼 불편하지 않았다. 얻어먹어서 그런지 때론 더 홀가분하고 즐겁기까지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제의 사건이 터졌다. 

 지인 가족이 집으로 놀러온 자리였다. 코로나로 오래 만나지 못했던 터라 밀린 안부를 쏟아내고 저녁까지 챙겨 먹은 뒤 파하려는데 갑자기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머릿속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얼른 계산해야지! 집에서 먹었으니 계산은 할 수 없고 뭔가 들려 보내기라도 해야 했다. 나도 모르게 부엌 찬장을 열어젖히고 가장 먼저 손에 잡히는 걸 내밀었다. “이거라도 가져가!” 

 왁자지껄한 소란이 잦아든 뒤, 남편이 조용히 말했다. “혹시...얼마짜리인지 알아?” 나는 할 말이 없어 입을 다물었다. 그날 어린아이 셋을 데리고 온 지인 가족에게 들려 보낸 건 고급 양주, 그것도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밸런타인 30년 산이었다. 심지어 내가 사둔 양주도 아니었다. 남편이 누군가에게 선물할 일이 생기면 쓰려고 고이 아껴두었던 것인데...

 결국 계산하는 습관을 고치는 덴 장렬히 실패했다. 계산병이 있는 친구를 만나면 여전히 카운터 앞에서 서로 밀쳐댄다. 단돈 천 원짜리 커피라도 자신이 사게 해달라고, 저번에 네가 사지 않았냐고. 계산 싸움에서 진 쪽은 황급히 가방을 뒤져 뭔가 줄 게 없나 찾는다. 

 뒤늦게 내가 강제로 들려 보낸 양주 소식이 들려왔다. 마침 칠순을 맞은 지인의 어머님 잔칫날에 비장의 무기로 상에 올랐다고 했다. 다소 미적지근하던 잔치 분위기가 밸런타인 30년 산이 등장하자 후끈 달아오르며 어른들이 만면에 미소를 띠셨단다. 뿌듯한 후일담이었다. 어느 잔치 자리를 즐겁게 했다니 그보다 더 즐거운 실패가 있을까.  

 오늘도 호시탐탐 계산대로 향할 기회만을 엿본다. 어쩌면, 계산할 수 있다는 게 감사한 일인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하면서. 아무래도 내 오랜 계산병은 앞으로도 고치지 못할 것 같다. 아니, 고치지 않을 것 같다. 

 

 

 

2022. 4. 4. 14:09


엄마를 바래다드리고 돌아오는 길,
시간이 아쉽고 서럽다.
테라로사 이럴 때 꼭 문을 닫는다. 커피 한 잔 마시고 헤어지려 했는데. 

유하는 너무 쿨하게 토르할머니를 보낸다. 내 자식인데도 얄밉다.

 

 

2022. 4. 1. 10:32



어린이집을 안 가고 이케아에 가서 실컷 놀고 온 날.
블럭 기차놀이를 하는데 옆에서 어른들이 아이고 귀여워 하고 지나가던 게 기억나, 잠들기 전 물어봤다.

“유하야 왜 어른들이 아이고 귀여워~” 하는 거 같아?
“글쎄 얼굴에 뾰루지가 없고 깨끗해서 그런가?”

 

 

2022. 3. 29. 11:23

 

 어제 네시부터 여섯시까지 신나게 놀이터에서 놀았던 덕인지(그래도 다 못놀았다고 울면서 들어왔다) 유하는 제하와 함께 열시가 좀 넘어 스르륵 잠들었다. 제하는 누나가 놀 때 옆의 유모차에서 무료하게 실려 잠을 잔 탓에 상대적으로 늦은 취침이었다. 기저귀에 쉬를 하는 줄도 모르고 아침 아홉시까지 깨지 않고 푹 잘잔 아이의 기분은 맑았다. 양이 아직 푸르니에 가보질 못해 가고 싶어한다고 아침부터 상황극을 벌이니 눈이 반짝인다. 양아 너가 속상했구나? 양을 품에 안고 밥도 먹고, 푸르니에 데려가기 위해 미적거리지도 않고 잽싸게 옷을 입는다. 옆에서 중간중간에 매애애애 얼른 푸르니 가보고 싶어 하고 추임새를 넣어주는 것도 잊지 않아야 한다. 

 조금 쌀쌀하지만 볕이 따수운 봄날, 아이도 기분이 좋은지 자전거 앞에 타고선 "오늘은 정말 특별한 하루야! 또 어떤 재밌는 일이 생길까?" 하고 들뜬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대사가 너무나도 전형적인 어린이같아 웃음이 나온다. "찡그린 얼굴들의 마을에 가볼까?" 얼마 전 뒷산을 넘어오고 나서 찡그린 얼굴들의 마을이라는 테마를 지어낸 유하. 한참 신나게 재잘대더니 엠비씨 건물이 모습을 드러내자 풀이 죽기 시작한다. 입구에서는 또 가지 않겠다고 떼를 쓴다. 나비반, 꿀벌반 아기들이 옆으로 아장아장 걸어 들어간다.

 아이를 떼어놓고 반은 홀가분하고 반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다 못쓴 글을 쓰러 엄마의 서재에 들른다. 며칠 문을 닫았다 다시 연 탓인지 손님은 나와 다른 모녀 한 팀 뿐이다. 유하와 거의 또래인 것 같은 여자아이가 엄마를 따라 종종거리며 작은 목소리로 이것 저것 물어본다. 아, 여기는 엄마의 서재이기도 하지만 아이들도 올 수 있는 곳이었지. 동화책도 있고 사람도 적은 편이니.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휴직기간이 끝나기 전에 여기에도 한 번 데려와봐야겠다. 분명 좀 지루해하고 심심해하겠지만 그래도 옆에 앉혀두고 책을 같이 보는 분위기를 한번 연출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라디오에 관한 글을 쓰려고 했는데...어쩌다보니 아이 생각을 하고 있다. 

 

 

+까지 생각했는데 옆의 아기가 갑자기 "응가 마려워요!" 라고 외친다. 엄마가 아이의 손을 잡고 급히 화장실로 간다. 역시... 혼자 오는 편이 나을 것 같다. 

2022. 3. 28. 12:47

 

"누가 제일 잘생겼어요??"

 예상했던 바로 그 질문이었다. 특강 시작과 동시에 잠들었던 학생이 갑자기 머리를 넘기며 고개를 들었다. 휘장같은 머리칼을 걷고 처음으로 마주하는 눈빛에 고등학생다운 총기가 빛났다. 맨 앞자리에서 공책을 펴놓고 필기를 하는 건지 그림을 그리는 건지 내내 펜을 들고 있던 학생이 비로소 펜을 내려놓았다. 그의 눈도 역시나 처음 마주했다. 역시나 십대에게서 볼 수 있는 윤기나는 눈동자. 스무 명 남짓한 학생들의 집중력이 순간 최대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렇다.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이 순간이었다. 방송이었다면 트레몰로를 배경음으로 깔아달라고 했을텐데.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음... 하고 잠깐 지금까지 만난 연예인들을 떠올려보는 척 했다. 사실 답은 정해져 있었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고등학생들이 좋아할 만한 남자 연예인으로. 

 고심한 것 같은 표정으로 한 연예인의 이름을 말했다. 여기저기서 꺄악과 으악이 뒤섞인 기쁨과 탄성이 터진다. 방금 들었어? 분명히 같이 들었는데도 옆 친구 어깨를 치며 한번 더 확인한다. 역시!! 하며 박수를 치기도 한다. 교실에 두둥실 차올랐던 흥분이 가라앉고 나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더 질문하실 것 있으신 분? 문장의 물음표가 끝나기도 전에 학생들이 이미 박수를 치며 짐을 챙긴다. 얼른 파하자는 의사 표시다. 심지어 학생들은 저녁도 거르고 저녁 여덟 시까지 앉아있은 터였다. 궁금한 것은 물었고 원하는 답을 들었다(그 날 나온 단 하나의 질문이었다). 나도 주섬주섬 짐을 챙긴다. 가방을 메고 나가던 학생들이 "오늘 정말 재밌었어요!" 하고 인사를 해준다. 라디오에 대한 이야기가 재밌었을까? 아니면 마지막 연예인의 이름이 만족스러웠을까. 어느 쪽이든 저녁도 거른 고등학생 스무 명의 기분이 그럭저럭 괜찮았다면 다행인 일이다. 

 강의 주제는 미디어 업계에 관한 것이었다. 짧지만 신문 기자, 티비 피디를 경험하고 라디오 피디로 일을 하는 내게 거쳐온 직업들과 지금 하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해 달란 부탁이었다. 경험한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니 쉬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준비가 까다로웠다. 무엇보다 십대 중후반인 아이들에게 라디오는, 영유아 대상의 교재에 등장하는 전화기나 라디오의 이미지가 거의 전부일 게 분명했다. "혹시 라디오 들어보신 분 계세요?" "장성규요..." 다행히 학생 하나가 출근 시간대 라디오 프로그램 이름을 댄다. 하늘에서 내려온 동앗줄을 부여잡듯 잡아채 말을 이어갔다. 우리 라디오엔 나름 이런 프로그램들이 있어요. 32년째 한 디제이가 진행을 하고 있는 '배철수의 음악캠프'도 있고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양희은 서경석의 여성시대'도 있고요... 설명하는데 왠지 어색하다. 프로그램을, 콘텐츠가 존재한다는 것을 말로 설명해야 한다니. 

 강의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라디오를 켰다. 나 역시 운전을 할 때만 라디오를 듣는다. 아까 만났던 아이들도 성인이 되고 운전을 하게 되면 라디오 청취자가 될까. 그 땐 자율주행기술이 더 발달해 있지 않을까. 괜히 주눅이 들었다. 명색이 매스 미디어인데, 사람들에게 설명해야 하는 매스 미디어라니 뭔가 어색한 일이다. 어쩌면 라디오는 더 이상 매스 미디어가 아닌지도 모른다. 10대와 20대라는 특정 연령대에서는 더욱 그렇다. 10대가 성인이 되고 20대가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할 무렵 라디오의 위치는 또 어디쯤에 가 있을까. 날로 줄어드는 청취율 그래프를 부여잡고 라디오 제작자들은 또 얼마나 조마조마하게 새로운 플랫폼들과 콘텐츠들의 등장을 바라보고 있을까. 

 강의를 마치고 돌아온 다음 날 내 또래의 사람들을 만났다. 서로 무슨 일을 하는지 몰랐다가 그 날 처음으로 서로의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사람들은 반가워했다. "아, 저도 옛날에 많이 들었는데!" "저는 사연도 보내서 선물도 받고..."   

-

 무슨 일을 하는지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게 특권인 줄도 몰랐다. 직업과 직장을 밝히면 모두가 아~ 하고 고개를 끄덕여주고, 심지어 그 중의 일부는 내가 하는 일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던 때도 있었다. 불과 십년 사이에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나를 소개하기 위해 직업을 밝히면 많은 사람들은 아, 나도 한때는... 하고 회상하는 눈빛에 잠긴다. 한때는 매일 문자를 보내고 두 시간씩 목소리를 듣기도 했는데요. 저도 한때는...그들의 한때는 대부분 십여년 전에 머물러 있다. 청춘의 시절에 라디오를 들으며 연애와 취업을 고민했지만 이제는 삶을 살아가느라, 더 이상 라디오에게 내어줄 시간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만 해도 아이 둘을 재우고 나면 열시 반, 뭔가를 보거나 듣고 싶을 때  라디오를 찾지는 않는다. 밀려있는 넷플릭스 에피소드와 쌓아만 두고 펼치지 못한 책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여가로도 문화생활로도 라디오는 이제 후순위에 있다. 

 요즘은 모두의 구남친 구여친이 된 기분이다. 

 

  

 

 

2022. 3. 23. 10:08



“엄마는 열시 넘으면 체력이 고갈된단다”
“??? 그건 좀 어려운 말이네”

2022. 3. 17. 10:30


“나는 하늘나라 갈 때 얘네들 다 데려가야돼. 가방에 넣어서 뻐끔이 토토 쿠라 여우 데려가야돼. 내가 얘네들 엄마라서 돌봐줘야 하거든”

 

 

 

2022. 3. 2. 12:33

 

  분신처럼 지니고 다니던 방역패스가 사라진 줄도 몰랐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정신없이 지지고 볶은 지 2주. 지난 주엔 부산 본가에 내려와 매일같이 해운대 바닷가에서 모래놀이를 하는 중이다. 모래를 많이 만졌더니 금세 손가시가 자라나 따끔거린다. 두 아이와 본가에서 키우던 강아지까지 더해지니 누가 개고 누가 사람인지 헷갈려 여기를 부르면 저기가 돌아보고, 아기에게 주던 이유식을 강아지가 냉큼 받아먹기도 한다. 개도 짖고 사람도 짖다가 때론 개가 말하고 사람도 말한다. 

 무슨 요일인지도 헷갈리던 아침, 강아지와 같이 기어다니며 싸우던 둘째를 유모차에 태우고 바닷가 앞의 카페로 나왔다. 얼마만의 카페인가. 문을 밀고 들어가며 휴대폰을 흔드는데 아무것도 뜨지 않는다. 접종 정보가 삭제되었단다. 방역 정책이 바뀐 줄도 3월의 시작점에서 새로운 효력이 생기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그냥 들어간 카페에선 아무도 나를 붙잡지 않는다. 접종 완료하셨냐는 질문 대신 어떤 원두를 선택하시겠냐는 친절한 질문이 맞이한다. 왠지 허전하다. 남들처럼 반신반의하며 맞은 주사지만 3차까지 완료했다는 문구가 뜰 때면 이상하게도 당당해졌다. 과업을 완수한 자 특유의 자신만만함같은 게 생겼다. 걸리고 안 걸리고의 문제가 아니라, 들어가고 안 들어가고의 문제에서. 코로나19에 걸리는 것보다 공간에 들어갈 권리를 박탈당한다는 두려움이 더 컸기 때문이다. 일상적으로 드나들언 카페와 박물관 앞에서 주눅들기 싫었다. 들어갈 자격이 없는 인간으로 분류되는 건 참을 수 없었다. 그 어떤 과업에서도 쳐지고 싶지 않은 모범생적 기질의 인간에게는 백신패스가 꽤 유용했다. 백신'패스'라니, 무의식은 이미 패스의 반댓말이 fail 이라고 짐작하는 중이었다. 주민등록증을 얻어 투표를 하고 면허증을 따 운전을 하고 사원증을 수령해 회사 게이트를 통과하는 것처럼 백신패스는 어느새 증명서들 중 하나였다. 흔들면 나오는 그 증명서를 때론 뿌듯하게 바라봤다. 걸리더라도 사회의 떳떳한 구성원으로 인정받고 싶었다. 제도 자체의 효용성 논란을 떠나 일단 도입된 제도라면 낙제할 순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흔들면 안정감있게 착 하고 뜨던 코드는 사라진 채 흰 화면에 안내 문구 뿐이다. 카페엔 무사히 들어왔고 아무도 나를 붙잡지 않았는데도 서운하다. 패스 올 패일의 세계에서 패스가 그어놓은 금 안으로 안전히 떠밀어주던 증명 하나를 잃은 기분이다. 고작 이런 것에서도 자기증명의 기운을 끌어다 쓰고 있었다니, 어쩐지 굉장히 쑥쓰러운 자기발견이다. 없는 걸 알면서도 괜히 한 번 더 휴대폰을 흔들어본다. 흔들어도 없다. 역시 증명서와 제도는 얄궂다. 하루아침에 아무 힘도 없어질 것들이면서 사람 마음을 안심하게 만든다. 영원히 가질 수 있는 건 그런 게 아닌데도. 카페 문이 열릴 때마다 찬 바닷바람이 들이치며, 멍청아 정신차려 하고 짠내를 퍼붓고 사라져간다.